국제동향
| 2019.09.05
코빈이 이끄는 영국노동당과 브렉시트
[역자 해설]
2019년 9월 3일 영국 하원은 노딜 브렉시트 저지를 위한 1단계 절차인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을 표결에 붙여 찬성 328표와 반대 301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힐러리 벤 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총리가 10월 19일까지 EU와 브렉시트 재협상에 실패할 경우 내년 1월 31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하도록 강제한다는 내용이다. 존슨 총리는 의회가 브렉시트 연기를 강제하는 투표를 할 경우 브렉시트 교착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총선뿐이라고 밝혔다. 법안 통과에 따라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과 관련한 안건을 발의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원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을 경우 영국은 10월 14일 총선을 치러야 한다.
이처럼 영국이 브렉시트 문제를 두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 노동당의 브렉시트 대응 과정을 살펴보는 글을 소개한다. 다니엘 핀이 《뉴 레프트 리뷰》 2019년 7-8월호에 실은 <역류: 코빈, 노동당, 브렉시트>다. 저자는 코빈이 지지한 ‘소프트 브렉시트’가 국민투표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일상의 혼란을 최소화하며, 코빈 자신이 수립한 국내 개혁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가장 적절한 방책이었다고 평가한다. 2차 국민투표와 같은 대안은 잔류파와 탈퇴파 사이의 균열을 극대화하고 어쩌면 탈퇴파의 입장을 다시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될 위험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만약 조기 총선이 실시되어 코빈이 차기 총리가 된다면 노동당의 협상패키지로 유럽연합과 탈퇴 협상을 하고, 노동당이 추진한 탈퇴협상 합의안과 잔류안 두 개를 두고 대중투표(public vote)를 실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지만, 노동당이 단독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자유민주당이나 스코틀랜드독립당 등과 연정을 구성하게 된다면, 이들이 코빈의 국내 개혁프로그램을 소멸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도 존재한다.
저자는 대처, 블레어에서 최근 캐머런, 메이, 존슨에 이르는, 즉 한 세대에 걸치는 우파 헤게모니에 맞서 등장한 코빈이 당내 좌파분파, 노동조합, 청년 당원을 결합하는 블록을 형성하며 상당히 공고한 동맹을 구성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브렉시트 위기를 거치며 코빈 프로젝트가 실패로 귀결된다면, 영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퇴각이 급속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Daniel Finn, Crosscurrent: Corbyn, Labour, and the Brexit Crisis, New Left Review, 118, JULY-AUG 2019.
2015년 이후로 영국 노동당은 유럽 중도좌파와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당은 선거결과나 조직의 측면에서 쇠퇴를 경험했으나, 처음부터 낡은 화석이라고 조롱을 받았던 코빈 지도부 하에서 악전고투 속에 전진하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프랑스나 독일의 자매 정당은 전례가 없는 저점을 향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당은 당원이 극적으로 증가하여 서유럽에서 최대 정당으로 등극했다. 노동당 지도자 제레미 코빈은 현재 차기 브리튼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코빈의 프로젝트는 수많은 장애물에 직면해 있고, 어쩌면 이를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브렉시트는 모든 정치의 영역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고 노동당은 다음 선거에서 의회 다수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연립정부의 파트너로서 가능성이 있는 자유민주당이나 스코틀랜드민족당(SNP)은 코빈 프로젝트를 멸종시키고자 할 수 있다.
이 글은 코빈 하에서 노동당의 내부적 변형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검토할 것인데, 이는 노동당이 광범위한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당 내에서 얼마나 득점을 했나? 코빈 지도부는 브리튼 미디어나 브렉시트라는 도전에 어떻게 대처했나?
아웃사이더
2015년 여름, 토리당(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후, 세 가지 요인이 상황을 변화시켰다. 첫째,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데이비드 캐머런과 조지 오스본의 긴축정책에 대한 분노가 높아졌는데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층에서 그러했다. 이는 그리스와 스페인의 ‘광장운동’, 오큐파이라는 바람을 따라잡으며, 위기에 대한 더 급진적이고 평등주의적 해결책을 생각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둘째, 에드 밀리반드가 노동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방식을 개혁하려고 했는데, 이는 정당 엘리트에게 극적인 자살골이 되었다.
노동조합 유나이트는 지지하는 후보의 선출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밀리반드는 당과 노동조합의 연계에 관한 보고서를 의뢰했다. <콜린스 보고서>는 노동조합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여러 조치를 촉구했는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에서 노동조합이 1/3의 투표 지분을 철회하라는 조치도 포함되었다. 유나이트의 사무총장 렌 맥클루스키는 노동당 의회 대표의 역할 변화와 교환하여 이를 수용했다. 어떤 후보자도 원내노동당(PLP, Parliamentary Labour Party) 15%에 의해 지명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외하면, 노동당 의원들은 더 이상 지도부를 선출할 때 수문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으로 노동당 지도부는 1인 1표로 선출되었다. 블레어주의 분파는 비당원도 3파운드의 돈을 내고 지지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 모델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제레미 코빈이 부상할 수 있는 조직적 전제조건이 구축되었다.
마지막으로 2015년 지도부 경선은 노동당 기득권층의 다면적인 취약성에 기인한 바 크다. 2015년 총선에서 밀리반드의 완패(캐머런 보수당의 330석 대 밀리반드 노동당 232석) 후, 당원, 지지자, 노동조합 모두 방향 변화를 요구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는데, SNP는 독립과 긴축반대를 결합해서 완승을 거두었다.
2015년 지도부 선출방식은 코빈의 강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열혈 웅변가는 아니었지만, 편안하게 연설을 했고, 참가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의 세련되지 않은 처신은 오히려 그의 자산이 되었다. 그의 캠페인은 비전통적 방식, 즉 대규모 공중집회, 소셜 미디어에 의존했다. 예상치 못하게도, 그는 거대 노동조합의 일부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유나이트 집행부는 코빈을 선호했다. 유니슨의 지지는 더 예상 밖이었는데, 지도부의 전술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었다. 유니슨 지도부는 재선거를 앞두고 조합 내 좌파 활동가와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려 했다.)
뜨거운 시험대에 오르다
코빈 지도부의 첫 단계는 2015년 9월부터 시작되어 2017년 선거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언론, 노동당의 상근관리, 노동당 의원 다수는 코빈을 불법적인 권력찬탈자로 간주했다. 코빈이 자신의 적수를 그림자 내각에 제안하기로 한 결정은 그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전술적 판단이었다. 2015년 코빈의 위치가 매우 취약해서 그는 시리아 공습에 대해 그의 프론트 벤치 팀[영국 하원에서 앞쪽 좌석에 앉는 내각이나 그림자 내각]에게 자유투표하라고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우스사이드(Southside)라고 불리는 빅토리아에 위치한 노동당 본부는 당 관리를 200명 이상 고용하고 있으나, 그에 비하여 지도부 사무실은 매우 소규모다. 즉 지도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사우스사이드에 비해 매우 불균형적이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 준비기간 동안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에 큰 차이로 우위를 지켰다. 국민투표 캠페인 동안, 코빈은 노동당이 ‘영국의 비판적 잔류’(critical Remain) 입장을 취하도록 이끌었고, 데이비드 캐머런이 주도하는 공식적 캠페인, ‘잔류할 때 더 강한 영국’(Stronger In)에 참여하라는 압력에 저항했다.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에서 노동당이 보수당과 공동으로 캠페인을 펼쳤지만,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볼 때, 코빈의 거부는 원칙적으로 올바랐고 합리적인 정치였다. 노동당의 ‘잔류하고 개혁하자’(Remain and Reform)는 구호는 기본적으로 모호성이 존재했다. 한편으로 ‘유럽연합에 남고 유럽연합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국가 정부와 협력하자’는 의미일 수 있다. (코빈은 그리스에 대한 유럽연합의 잔혹한 조치를 비판했다.) 그러나 그 슬로건은 더 제한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유럽연합에 남아서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수행함으로써 유럽연합 규칙의 한계를 시험하자는 것이다.
노동당 지도부는 이러한 메시지를 가지고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첫째, 언론은 캐머런과 보리스 존슨이 주도하는 보수주의 분파 라이벌 간 논쟁에 집중했고, 노동당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잔류하자는 투표는 기능적으로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는 의미이므로, 코빈이 지난 해 노동당 선거 캠페인으로 분출된 봉기적 에너지에 다가가기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어려움은 당 내부 적대자들이 지속적으로 코빈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노동당 우파는 잔류 측이 편안히 승리를 거두리라 예상하면서, 국민투표 캠페인을 분파적 목적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코빈의 노선이 실제로는 유럽연합을 떠나자는 주장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지각변동
국민투표는 의회가 요새화되면서 은폐되었던 정치의 균열을 드러냈다. 산업이 몰락하고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미드랜즈, 웨일스, 잉글랜드 북부)은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강세를 보였지만, 떠나자고 표를 던졌다. 원내정당에 존재하는 코빈의 적수들은 그가 ‘교묘하게 국민투표 캠페인을 사보타지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도부 교체를 주장했다. 자세히 검증해보면, 이민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를 코빈이 거부했다는 것이 핵심적인 혐의였다. 즉 그들이 보기에 코빈은 너무 국제주의자였다. 그림자 내각의 10여 명이 사임했고, 노동당 의원들은 172 대 40으로 코빈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통과시켰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사임은 코빈에게 축복이 되었고, 그는 자신의 그림자 내각 팀을 재조직했고, 더 젊은 의원들을 기용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극도로 파괴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코빈이 사임을 거부하자 적수들은 지도부 경선이라는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노동당 전국집행위원회(NEC)의 노동조합 대표 중 다수가 코빈을 지지했다. (유나이트와 유니슨 양자 모두 코빈의 재선출 캠페인을 지지했다. GMB와 USDAW는 코빈의 상대편 오언 스미스를 지지했다.) 지도부를 교체하려는 시도는 코빈 지지자들을 격분시켰다. 62: 38이 최종 결과였다. 하지만 그의 적수들이 사용한 초토화 전술은 노동당의 공적 위상에 거대한 피해를 입혔다.
2016-7년 겨울, 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끔직하게 하락했다. 코빈의 당내 적대자들은 지도부가 곧 내려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톰 왓슨은 자유민주당이 ‘브렉시트 거부자’라며 비난했으며, 노동당이 브리튼 인민의 민주적 의지를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17년 2월,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시키기 위한 의회 투표 이후, 노동당의 추카 우무나, 웨스 스티어링은 유럽연합을 떠나라는 분명한 선택을 민주주의자로서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노동당 우파는 코빈이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를 포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하드 브렉시트란 영국이 EU를 탈퇴함에 있어 EU와 무역, 관세, 노동 정책 등 전분야에 걸쳐 맺었던 모든 동맹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탈퇴하는 방식. 일정한 분담금을 내면서 단일시장 접근권만은 유지하는 ‘노르웨이 모델’ 같은 ‘소프트 브렉시트’가 아니라 완전한 분리를 뜻하는 것이다.] 2017년 초반, 코빈은 여전히 이주자가 너무 많다고 말하기를 거부했지만,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날 때, 소프트 랜딩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라면, (법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현상유지를 지지하겠다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러나 이민 문제에 관한 코빈의 모호한 입장은 그의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분수령이 된 선거
2017년 4월 테레사 메이는 조기선거를 요청했다. 보수당 지지율이 평균 18.5% 더 높았다. (이는 전 영국독립당(UKIP)의 지지가 쏠린 것이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들은 코빈의 사퇴를 주장했다. 선거결과는 정치평론가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노동당 지지율은 30%에서 40%로 상승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노동당의 상승이지, 보수당의 약화가 아니었다. 메이의 42% 득표율은 1987년 이후 보수당의 최고성적이었고, 평범한 상황이라면 편안하게 의회 다수파를 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당이 13석을 상실했으므로, 북아일랜드의 극우 민주연합당에 의존해야 했다.
코빈의 선거전략 중 중핵은 사회민주적 정책에 대한 선언이었다. 즉 ‘다수를 위하여, 소수가 아니라’(For the Many, Not the Few). 이러한 선언은 정치적 관심사를 유럽연합과 영국의 관계라는 문제로부터 돌려놓았으며, ‘소프트 브렉시트’를 강조했다. 맨처스터 폭탄 테러에 대한 코빈의 대응은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고,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위한 전쟁이 실패했고, 세계를 더 위험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연설은 여론에 반향을 일으켰고 비판적 토론을 위한 공간을 넓혔다.
공고화
선거에서 코빈이 이룬 성취는 2019년 초반까지 이어진 공고화를 위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의 그림자 내각은 더 응집력 있고 지지도가 높은 팀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일반적인 패턴과 달리) 노동당의 프론트 라인 의원은 뒤에 앉아 있는 의원보다 더 좌파였다. 그렇지만 그림자 내각이 통일적으로 코빈파는 아니었고, 31명 중 오직 7명만이 캠페인 그룹(Campaign Group, 오랜 역사를 지닌 노동당의 좌파 코커스)에 속했다.
246명의 의원 중에서 152명은 2010년 이후에 의회에 입성한 사람들이며, 원내 노동당 중에는 이제 훨씬 더 젊고, 노동조합이나 지방정부라는 배경을 지닌 사람이 늘었다. 그렇지만 오직 19명만이 캠페인 그룹에 속하며, 이는 원내 노동당의 8%에 불과하다. 2015년, 2017년에 선출된 92명 중에서 오직 10명만이 좌파 코커스에 참가했다.
노동당 우파는 분파적 행동을 조정하는 여러 조직적 기구가 있다. 피터 만델슨이 이끄는 프로그레스(Progress)로부터, 덩치가 큰 브라운파 트리뷴(Tribune)에 이르기까지. 톰 왓슨은 퓨처 브리튼 그룹(Future Britain Group)을 결성함으로써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80명의 의원을 모았는데, 이는 원내 노동당의 1/3이다. 그렇지만, 토니 벤의 표현을 빌자면, 노동당 의원의 다수는 이정표라기보다는 풍향계다. 즉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
노동당 활동가들은 지구당이 의원 후보자를 다시 선택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요구를 부활시켰다. 이러한 요구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는데, ‘공개선택’(open selection)이다. 2018년 노동당 대회는 이 문제를 피했다. 대회에서는 이 쟁점을 두고 당원과 노동조합 대표단 간 날카로운 대립이 발생했다. (유나이트의 간부는 노동당의 목표 선거구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지명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활동했다.) 퇴색된 수정안은 현직 의원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더 용이하게 했지만, 지구당은 현직에 도전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해야만 한다. (보수당의 절차는 더 단순하다. 지구당 집행부는 언제라도 현직 의원이 공식 후보로 재신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으며, 이때 비밀투표가 적용된다.) 만약 당 활동가들이 투표가 발표되었을 때 발생하는 소동을 감당할 의지가 없다면, 원내 노동당의 정치적 색깔은 대체로 자기영속적일 것이다.
이에 반해, 코빈은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으며 전국집행위원회와 당 기구에서 점진적으로 힘을 얻었다. 39석으로 구성되는 전국집행위원회는 상이한 기관의 담당자로 구성되는데, 그 중 네 자리는 노동당 그림자 내각에 배당된다. 지구당에는 9명의 대표가 배당된다. 2018년 9월, 코빈에 친화적인 명부가 직접 선출되는 9개의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그래서 39개 중 21개가 좌파의 편에 들어왔다. 노동당과 제휴하는 노동조합은 전국집행위원회에서 최대의 단일집단이며, 당대회 대표단의 50%를 차지한다. 여기서 유나이트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유나이티드 레프트(The United Left)라는 분파는 유나이트 집행부을 지배하며, 사무총장으로서 맥클루스키의 위치는 확고해 보인다. 사우스사이드에서는 유나이트의 제니 폼비가 사무총장이 되었다. 처음으로 노동당 본부가 코빈 지도부에 기본적 지원을 하게 되었다.
운동으로서의 정당?
노동당 당원은 새로운 지도부 하에서 극적으로 증가했다. 20만 명 미만에서 5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정당의 재정상태가 건전했졌다. 코빈 지지자 중 가장 중요한 기구는 모멘텀(Momentum)으로, 벤 지지파였던 존 랜즈맨이 2015년 지도부 경선 당시 구성했다. 모멘텀은 현재 4만 명 이상의 회원을 지니고 있고, 이는 <노동당 민주주의를 위한 캠페인>, <노동당 대표위원회>, <붉은 노동당>과 같은 전통적인 노동당 좌파 기구를 훨씬 능가한다. 랜즈맨과 여타 지도자들은 새로운 조직이 당 내부 분파처럼 작동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운동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토론을 진행했다. 그 결과는 두 가지의 혼합이었다. 모멘텀은 고도로 전문적인 캠페인 기구로 등장했고, 당 내부 선거에서 좌파 명부에 대한 지지를 효과적으로 동원했다. (비록 명부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논쟁이 촉발되기는 했지만.)
동시에 2016년 이후로 모멘텀은 ‘사상의 페스티벌’을 제도화했는데, 노동당 대회와 시기가 일치하는 ‘세계를 변혁하자’(The World Transformed)이다. 2-3일간 브리튼과 국제좌파의 연사를 세우고, 정치적 토론을 진행한다. 이는 노동당의 전통적 문화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요구에 답하려는 노력이다. 더비, 브리스톨, 사우스햄튼 등 도시에서 지역별 행사도 진행되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기존 좌익 네트워크, 즉 <사회주의를 향한 캠페인>, <웨일즈 노동당 풀뿌리>는 모멘텀의 지역 지부가 되기로 했다. 전반적으로 코빈 지도부는 스코틀랜드 정치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미 2015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1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의석을 잃었다. 코빈 지지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2014년 이후 스코틀랜드민족당이나 독립을 지지하는 좌파정당에 가입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는 24% 차이로 유럽연합 잔류를 선택했는데, 노동당은 탈퇴 투표를 수용해야 했으며, SNP는 잔류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소용돌이
브렉시트 위기에서 노동당이 채택한 전술적 방책은 계속 변화했다. 그렇지만 그 기저에는 일련의 원칙이 존재했다. 노동당의 브렉시트 전략을 정확히 이해하면 어떻게 브리튼의 정치시스템이 현재 상태로 도달했는지 알 수 있다. 노동당의 투표 기반은 잔류와 탈퇴를 두고 대략 2:1로 나뉘어 있다. 노동당이 당선된 선거구는 2:1의 비율로 탈퇴에 더 많이 투표했다. 즉 149개의 노동당 당선 지역구가 탈퇴에 투표했고, 83개 지역구가 잔류에 투표했다. 선거캠페인 동안 여론조사에서 잔류 투표자의 다수는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를 탈퇴 유권자와 합치면, 68%가 (비록 미지근하더라도) 브리튼의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하는 셈이다. 노동당 투표자의 오직 8%만이 노동당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브렉시트를 꼽았다.
‘강경 잔류파’(Hard Remainers)는 브렉시트가 재앙을 낳을 것이므로 모든 대가를 치르고서도 대향해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는 생각 그 자체는 정치적으로 쉽게 규정할 수 없었고, 그 결과는 이행 방식에 의존했다. 2016년에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동맹은 ‘강경’ 노선과 ‘온건’ 노선으로 구성되었다. 강경 탈퇴파와 온건 탈퇴파 사이의 틈을 벌리는 것은 좋은 전략이었고, 그 최종 결과는 노르웨이가 누리는 상태와 비슷한 것이었다. 즉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는 유권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일상의 혼란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노선에서 협상은 아일랜드 국경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노동당이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중화하면 국내 정치의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는 반복되는 국민투표보다는 분명히 바람직했을 것이다. 국민투표가 반복되면 잔류파와 탈퇴파 간 파괴적 양극화를 연장하고 아마도 탈퇴파의 두 번째 승리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2017년 선거는 코빈의 권위를 대단히 강화했지만, 노동당은 의회의 수렁 속으로 들어갔다. 메이는 조기선거라는 모험을 감행했으며, 그녀가 원하는 조건으로 브렉시트 합의를 협상할 수 있도록 다수파를 획득하고자 했다. 노동당은 그녀의 모험을 실패로 돌아가게 했다. 이제 그것이 너무 강경하다거나 온건하다고 생각하는 보수당의 반대세력은 모든 협상안을 부결시킬 수 있었다. 메이가 민주연합당에 의존한 사실도 불확실성을 높였다. 민주연합당은 탈퇴를 지지했지만, 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북아일랜드와 브리튼의 분리를 막는 것이었다.
메이를 위해 가장 현실적인 코스는 기대를 낮추고 제1야당에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이는 ‘노딜이 나쁜 협상보다 낫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함으로써 화를 자초했다. 노동당의 브렉시트 강령에서 가장 큰 결점은 대자본이 관여해서 자신의 전통적인 정당(보수당)에 어떤 규율을 부여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이었다. 하지만 브리튼의 자본가는 더 실용적인 접근법을 위해 어떤 술책을 부릴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2018년 여름, 메이는 이른바 백서 협상안(Chequer’s deal)을 중심으로 보수당의 단결을 꾀하려고 했으나, 강경파인 유럽연구그룹(ERG)은 그녀의 안을 조롱했고 보리스 존슨은 이에 항의하며 내각에서 사직했다. ERG는 최소한 100명의 의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그녀의 청사진을 거부했다.
반면, 반(反)브렉시트 진영은 또다른 국민투표를 밀어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피터 만델슨, 앨라스태어 캠벨과 같은 블레어 지지파들이 인민투표(People’s Vote, PV) 캠페인의 지도부를 장악했다. PV 지도부는 냉소적인 최대주의적 노선을 채택했는데, 노동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다. 그들은 코빈 홀로 원내 노동당에 브렉시트에 친화적인 노선을 강제했다는 잘못된 생각을 불어넣었다. 만약 코빈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두 번째 국민투표가 가능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러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톰 왓슨이나 추카 우무나와 같은 코빈의 내부 적대자들은 지도부를 잠식하기 위한 최선의 판단이라고 간주하면서 ‘강경 잔류파’ 노선을 채택했다. 그들은 국민투표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는 그 이전 입장을 파쇄기 속에 집어 넣었다. 2018년 여름 노동당 대회는 타협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상이한 분파들의 관점을 종합해 균형을 맞추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즉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데, 여기에는 메이의 협상안이 부결된 후 노동당이 총선을 강제할 수 없다면 ‘대중투표(public vote)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옵션도 포함되었다.
난파
2018년 11월, 유럽이사회(회원국 정상회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협상담당 마이클 배니어와 메이가 타결했던 탈퇴합의를 지지했다. 메이의 마지막 안은 ERG가 보기에는 백서 계획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끝이 언제인지 정해지지 않은 이행기간 동안 유럽사법재판소의 관장을 받아야 하며, 백스톱(안전장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탈퇴할 여지가 없었다. [백스톱이란 영국이 유럽연합(EU)를 탈퇴한 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의 국경이 강화(하드보더·hard border)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조항이다. 양측의 자유로운 왕래와 통관을 보장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영국 전체를 EU 관세 동맹에 잔류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메이는 2019년까지 투표를 연기했다. 2019년 1월, 양 극단에 있는 토리 의원들은 민주연합당과 야당에 합류하여 전례가 없는 부결을 야기했다. (202대 432.) 코빈은 불신임안을 제기했으나, 민주연합당은 메이를 지지해서 불신임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2019년 2월 노동당 지도부는 더 구체적이며 달성 가능한 일련의 요구를 제출했다. 이는 ‘단일시장과 긴밀히 제휴’하기 위해 유럽연합과 ‘영구적이고 포괄적인 범UK 차원의 관세동맹’을 체결하며, ‘권리와 보호라는 측면에서 역동적으로 제휴함으로써 영국의 표준이 최소기준으로서의 유럽의 표준과 보조를 맞추어 변화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유럽연합 관리는 코빈의 계획과 협력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당 지도부는 브렉시트를 중단시키기 위해 싸우라는 강한 압력에 직면했다. 더 완강한 강경 잔류파의 도전은 자유민주당, 녹색당, SNP, 웨일스민족당(웨일스 독립 지지)로부터 나왔다. 코빈은 마지막 수단으로서 두 번째 국민투표라는 아이디어를 열어두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다. 이는 노동당이 소프트 브렉시트를 옹호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2019년 3월, 메이가 협상안을 통과시키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도가 286 대 344로 실패를 거두었다. 의원들은 상이한 옵션을 두고 일련의 ‘의향 투표’를 진행했다. 코빈은 세 가지 안에 대해 찬성하라고 독려했다. 즉 △의회가 승인한 어떤 안이든가 ‘확정 대중투표’(confirmatory public vote)를 진행하자는 옵션, △유럽연합과의 관세동맹, △단일시장/관세동맹안(‘노르웨이 플러스’라고 불렸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50조 발동을 철회하도록 정부에 위임한다는 안에 대해서는 기권하라고 독려했다. 의회에서 어떤 안도 다수를 얻지 못했다. 의원들은 노딜에 반대하여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어떤 구체적 대안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메이는 브렉시트 과정을 연장하도록 요청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유럽이사회는 새로운 브렉시트 데드라인을 2019년 10월 31일로 연장하기로 타협했다. 이는 UK가 5월 23일 유럽의회 선거에 참가한다는 의미였다.
브렉시트 문제는 코빈 프로젝트의 중핵이었던 국내 개혁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소진시켰다. 노동당은 브렉시트에 대한 타협안을 제시할 때 불편한 처지였다. 노르웨이 플러스가 메이의 합의안보다 더 선호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강하게 옹호한다면 이 안이 현상유지를 거의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코빈의 정책에 대한 끊임없는 내부의 공격은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러한 압력은 유럽선거에서 노동당에 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투표권자의 37%만이 참여했는데, 선거에 참가한 사람만이 브렉시트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표출할 수 있었다. 탈퇴 지지파는 나이젤 패라지[영국독립당 출신 정치인]이 이끄는 새로운 브렉시트 당으로 이끌려갔는데, 그들은 30.5%의 득표율을 얻었다. 잔류파는 자유민주당과(거의 20%의 지지를 얻었다), 녹색당(12%에 조금 못 미쳤다)을 지지했다. 코빈의 소프트 브렉시트 안과 국내 정치문제로 관심을 돌리려는 노력은 아무런 견인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노동당은 3등을 했으나, 13.6%의 지지를 얻었을 뿐이다. 그 다음 날 메이는 사직을 발표했다.
노동당이 두 번째 국민투표를 지지하라는 요구는 더욱 강해졌다. 왓슨은 두 번째 국민투표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도 엄격하게 잔류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빈의 동맹자, 존 맥도넬, 다이안 애보트는 전략의 변화를 선호했다. 노동당의 프론트 벤치 는 두 번째 국민투표에 강경하게 반대했으나, 맥클루스키는 강경 잔류파로 돌연 이동했고, 스테판 키녹이나 루스 스미스와 같은 코빈의 적대자들도 두번째 국민투표가 민족주의 우파에세 선물을 주는 독약과 같은 생각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소프트 브렉시트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곧 두번째 국민투표가 더 달성되기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양자 모두 주된 장애물은 보수당과 의회에서의 세력관계다. 또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동지와 적 모두, 선거에서 참패를 면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고 달성하기 더 용이하지도 않은 목표를 채택하라고 촉구하는 형국이다.
2019년 7월, 코빈은 노딜이나 보수당의 협상안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다면, 노동당이 유럽연합에 남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한편, 브렉시트 데드라인 이전에 노동당이 정부를 구성한다면, 노동당 자신의 패키지로 협상을 벌일 것이며, 합의안과 잔류 두 가지 안을 두고 투표에 붙이겠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새로운 노선은 작동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코빈의 내부 적수들이 이를 허용할 것이냐는 것이다.
미래들
이러한 봉쇄상태에서 의사결정이 보수당의 기층 당원에게 이전되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심지어 반동적인 집단으로 브렉시트 문제에 외골수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이 영국의 차기 총리로 보리스 존슨을 선택했다.
새로운 지도자는 가을에 조기총선을 선택하여, 나이젤 패러지(브렉시트당)와 의석을 나누기 위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다른 옵션은 노딜이라는 위협을 가하면서, 메이의 패키지를 약간 변경하여 브뤼셀로부터 승인을 받는 것이다. 이럴 경우, 브렉시트 입법이 통과하려면 10월 31일을 지나 아마도 6개월은 연장되어야 하며, 이행기간은 몇 년으로 연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슨은 2020년 봄에 브렉시트가 공식적으로 달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다양한 요인이 이러한 아젠다를 좌초시킬 수 있다. 의회 내에서의 날카로운 대립, 아일랜드 정치 문제, 총리 자신의 무능력한 집행 등. 토리 반대파들이 불신임안 반대에 동참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속에서 노딜 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조기총선에서 강경 브렉시트 연합을 달성하는 길을 창출하는 간접적인 경로다. 4-5개의 경쟁정당에다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민족주의자들이 존재하므로, ‘상대적 다수 대표제’[소선거구제에서 최다득표자 1인이 당선되는 방식]는 좋게 말하면 변덕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무질서하다. 만약 존슨의 도박이 분명한 다수파 연합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민족연립정부를 수립하자는 왓슨의 주장이 작동할 수도 있다. 코빈이 1936년의 램지 맥도널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노동당이 코빈 지도부 하에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다면, 이데올로기적 퇴각을 요구하는 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코빈 배후에서 동맹을 형성했던 집단(노동조합, 당원, 의원)은 해체될 것이다. 그렇지만 코빈이 총리가 되는 데 성공한다면 여러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재 의회 내 세력관계를 예측하는 것은 불필요할 것이지만, 의회 내 노동당이 더 크게 다수파를 모을수록 사보타지에 대응하기 용이할 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코빈 지도부가 보수당의 저항에 의해 황급히 퇴각하게 되는 시나리오다. 이는 그리스의 시리자와 유사한 경우다. 최근 수십 년간 동안 이와 같은 사례가 매우 많았다. 더 희망적인 예측은 현대의 매우 희귀한 사례로 개혁주의(개량주의) 정당이 실제로 개혁을 수행하는 것이다. 반(反)노동조합 법률들을 폐지하고, 공공소유를 확대하고, 더 진보적인 조세체계를 도입하는 등. 대처, 블레어로부터 캐머런, 메이, 존슨에 이르는 한 세대의 우파 헤게모니 이후, 사회민주주의의 부활한 판본은 (그 개혁이 아무리 협소했던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케인지안의 전성기의 개혁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1960-70년대 좌익을 움직였던 사상으로 ‘혁명적 개혁주의(개량주의)’다. 그 당시 좌익세력은 가장 성공한 노르딕 모델에서조차 사회민주주의적 규칙의 한계를 인식했고, 랄프 밀리반드, 안드레 고르, 니코스 플란차스와 같은 사상가들이 그러한 사상을 제기했다. 개혁은 전후 사민주의 정부를 넘어서는 것으로, 자본주의 권력의 뿌리에 실제적 일격을 가하고, 국가기구 내부에서 위기를 유발하며, 보수파 블록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대중동원에 의존한다. 이러한 사상은 토니 벤을 지지하는 좌파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로부터 코빈과 맥노넬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가능성은 가장 낮아 보인다.
세 번째는 고사하고, 두 번째 시나리오를 실현하는 것도 노동당이 모든 장벽에 직면하게 할 것이다. (재무부, 영국은행, 내무부, 국방부, M15 등.) 몇몇 분산된 사례를 제외하면 노동조합은 한 세대 동안 주눅이 들었고, 노동당 노선의 오래된 악령이 남아 있으며, 코빈 배후에 있는 행동주의는 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않았다. 만약 코빈이 다음 총선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가공할 만한 장애물을 타개하며 자신의 길을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