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19.10.10
조국 논란과 개혁 세력 지식인들의 타락
조국 논란이 집권 세력과 야권 세력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대결로 확대됐다. 양쪽은 급기야 대규모 집회로 세 대결에 나서고 있기까지 하다.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에서는 “검찰개혁이 시급하며 그 적임자가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에서는 “검찰개혁은 정권의 검찰 장악 음모일 뿐이며 조국은 그 앞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결집하게 했다. 이제 두 집단 사이 대화는 불가능하다. 내년 총선에서 한 쪽이 ‘심판’받기 전까지 한국 정치는 작동 중지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가 조국 장관을 두고 이런 사생결단의 대결을 계속하는 것이 옳을까? 조국 법무장관 임명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한일 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한일 간의 무역전쟁으로까지 번진 역사 갈등은 국운이 걸렸다 할 만큼 큰 쟁점이었다. 그런데 조국 논란이 터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세계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침체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한국경제의 침체도 마찬가지다. 자칫 군사적 갈등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북미 간의 협상도 이슈에서 밀렸다. 정세의 위중함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 전체가 한가로운 정쟁만 하는 꼴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우리는 현 정치적 혼란이 그 누구보다도 개혁 세력으로 불리는 정당, 시민단체, 지식인들 탓에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정치적 이중잣대 때문이다. 조국 장관만이 아니라 개혁 세력 전반이 ‘내로남불’ 정치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중잣대의 정치로는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국민적 합의도 모아낼 수 없다. 누가 로맨스고 누가 불륜인지를 두고 악무한의 쟁투만 지속될 뿐이다. 둘째, 검찰개혁이 과대하게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혁 세력이 주장하는 조국 임명의 정당성은 검찰개혁의 절박성에 있다. 하지만 권력기관 부패의 핵심은 그 권력기관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에 있다. 현재 검찰개혁은 검찰권은 약화하되 대통령의 권한은 더 키운다. 야당 세력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권력기관 개혁에서도 일탈한 것이다. 집권 세력의 권력만 더 키우는 검찰개혁은 여야 간의 사생결단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조국을 둘러싼 개혁 세력의 이중잣대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이중잣대 문제를 먼저 보자.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조국 개인만이 아니라 현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개혁 세력 전반이 조 장관과 비슷한 ‘내로남불’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참여연대는 조국 장관 가족의 부패 의혹에 대해서 “만시지탄이나 사즉생 각오로 검찰개혁 추진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내부에서 참여연대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그 회원을 징계위에 회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여연대는 스스로 꼽은 ‘빛나는 활동 100선(1994~2014)’에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활동 - 부도덕한 고위 공직자를 낙마시키다”라고 적어 놓은 단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 중 참여연대 검증에 낙마한 후보도 여럿이다. 하지만 조 장관에 대해서만큼은 이 “빛나는 활동”이 퇴색했다. 조국 장관은 오랫동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맡았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는 철저한 검찰개혁을, 정부에는 진정한 평등을 위한 개혁을 요구한다”며 조 장관 임명에 사실상 찬성했다. 민변은 조국 가족의 특권과 부패 의혹이 “우리 사회의 법체계와 작동원리가 갖는 공백과 흠결”이라며, 조 장관에게 “되돌릴 수 없는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민변이 권재진, 황교안 등 보수 정부의 고위공직자 임명을 반대했던 근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들의 병역, 세금, 전관예우 문제 또한 대체로 법체계와 작동원리가 갖는 공백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변 사무처장,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했고, 세월호 변호사로 불리다 2016년 민주당에 입당한 박주민 의원은 인사청문회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법률 위반이 없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있는 사람들은 이익만을 챙기고 희생은 전 사회에 떠밀고 있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회복 됐으면 좋겠고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정치인으로서 이바지”하겠다고 자신의 정치입문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조국 논란은 특권 교육이라는 “있는 사람들만의 이익” 탓에 말 그대로 한국 사회 공동체가 세대별, 계층별, 진영 별로 쪼개진 사례다.
개혁진영 교수 그룹의 핵심이자, 현 정부 권력 집단의 하나로도 평가받는 개혁진영 교수 그룹의 ‘내로남불’도 여러 건이 논란이 됐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 교수였던 김민웅(현 경희대)은 서초동 집회에 연사로 나와 “조국이 검찰개혁”이라 외쳤다. 그런데 그는 “공적 차원의 윤리적 책무가 없는 사고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망치는 적”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거듭 겸손하고, 함께 논의해 나가는 노력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그의 칼럼에서 강조한 바 있다. 조 장관은 자녀 교육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 장관 후보로 지명받기 며칠 전까지도 SNS에서 친일파 색출에 나섰던 권력의 오만, 여론에도 개의치 않고 장관직에 집착하는 불통 등 그의 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사람이다. 성공회대 석좌교수였던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조 장관 딸이 고등학생 재학 당시 의학 논문 제1 저자로 오른 것에 대해 “에세이를 쓴 것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두둔해 공분을 샀다. 그런데 그의 교육감 공약은 “공정한 교육, 공평한 학교”였다. 그런 그가 보통 고등학생이라면 꿈도 꾸기 어려운 ‘아빠 엄마 찬스’를 정당하다고 말했다. 개혁적 교수 그룹을 묶어 좌장 역할을 했던 상지대 정대화 총장은 “‘조국 사태’ 뒤 소모적 정쟁… 그 뒤엔 바뀌지 않은 친일파 세상”이 있다며, 아예 조국 비판 세력을 친일파로 규정했다. 민주화 운동 뒤에 북한이 있다며 민주당이 당선되면 나라가 적화될 것이라 선동했던 극우세력 주장과 닮은꼴이다.
‘내로남불’의 뿌리 : 반(反)보수 진영론과 포퓰리즘
개혁진영을 대표하는 시민단체, 지식인들의 조국 옹호는 이렇게 부끄러울 정도로 거침이 없다. 자신들의 과거 잣대와 현재 잣대가 다른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 총선 경쟁 중인 민주당이야 조건상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지만, 합리성과 도덕성을 자산으로 삼는 시민단체, 지식인들의 태도는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개혁 세력의 뿌리가 사회변화의 실체적 내용이 아니라 보수 기득권 세력을 악마화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내용은 모호하고 허술하나, 반대하고 쳐부숴야 할 상대방은 명확하다. 개혁/보수가 진영으로 굳어진 2000년 이후 대규모 대중운동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2000년 총선낙선운동, 2004년 노무현탄핵반대촛불, 2008년 광우병촛불, 2014년 세월호참사진실규명촛불, 2016년 박근혜퇴진촛불이 바로 그것들이다.
4백여 개 시민단체는 부정부패 정치인들을 물갈이하자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를 꾸려 낙선 캠페인을 벌였다. 86명의 낙선대상자 중 59명, 약 70%가 낙선했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낙선대상자 20명 중 19명을 낙선시켰다. 그런데 이들의 운동은 낙선대상 기준에서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 총선시민연대는 재벌에겐 구제금융 특혜를, 노동자에겐 살인과 같은 정리해고를 남긴 집권 세력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는 면죄부를 주면서, 한나라당, 자민련 같은 보수 세력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었다. 민주당은 당시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 불만과 ‘옷로비사건’으로 인한 도덕적 위기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낙선운동 덕에 이전보다 의석수와 득표율을 늘릴 수 있었다. 낙선운동을 조직했던 박원순(참여연대), 김기식(참여연대), 지은희(여성단체연합) 같은 시민단체 간부들은 후에 고위 관료와 민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또한 낙선운동의 주역이었고 2008년 이후 보수 정부 하에서도 여러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참여연대는 현재 문 정부 출범 이후 60여 명이 핵심 관직에 진출해 가장 강력한 권력 집단이 됐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집회에 뒤이은 17대 총선에서는 임종석, 이인영, 우상호 등의 열린우리당의 386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의 30% 가까이가 386세대였을 정도다. 하지만 386 정치인들이 딱히 개혁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은 17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386 정치인들의 ‘싸가지’ 논란, 내부 당권 경쟁, 도덕성 문제 속에서 침몰했다. 참고로 열린우리당 집권 시기는 비정규직 비율, 부동산 격차, 재벌의 경제적 집중력, 이윤분배율 등 대부분의 경제 불평등 지표가 크게 상승했던 때이기도 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을 주도한 시민단체들은 시작부터 종료까지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공포”를 “이명박 반대”로 엮었다. 사실 미국산 쇠고기 안전 문제는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야기되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노무현 때는 검토 대상이었던 것이 이명박 집권과 동시에 ‘공포’가 되었다. PD수첩의 광우병 방송이나 이후 개혁 지식인들이 제기한 수많은 광우병 공포들은 지금까지도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촛불집회는 광우병이나 한미FTA에 대한 과학적 토론이 아니라 “쥐박이”, “명박산성” 같은 이명박에 대한 조롱과 악마화로 일관했다. 하지만 촛불광장을 칭송하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한미FTA로 인한 사회변화에 결과적으로 편승한 사례가 많다. 영어 회화나 미국 사회 네트워크가 이전보다 더 중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 보냈고, 업그레이드된 금융 세계화 속에서 부동산, 금융 재산도 늘렸다. 진보지식인들의 자녀가 미국 유학을 많이 가다 보니 보수언론이 “반미 좌파 자녀들의 미국 유학”을 보도할 정도였다. 조국 장관의 자녀교육과 재산도 그런 사례다.
2008년 촛불의 시민단체들과 정치인들은 2014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촛불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다. 사회적 참사가 음모론으로 뒤범벅되면서 촛불은 사회개혁보다도 박근혜를 상대로 한 정치투쟁으로 발전했다. 세월호 참사는 연안여객선에 대한 관리부실과 정부의 안전사고에 대한 총체적 무능이 만든 사회적 비극이었다. 그런데 야권의 구심이었던 문재인 의원은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고 발언했다. 세월호 참사를 의도된 학살로 몰아간 것이다. SNS에서 여론을 만드는 김어준, 유시민 같은 친노 인사들은 “박근혜의 7시간”을 이슈로 만들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SNS에서 떠도는 음모론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꾸린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를 만든 사회제도에도 문제를 제기하긴 했다. 하지만 주류적 흐름은 박근혜 7시간 같은 음모론에 기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었다. 이런 운동들이 제기한 각종 음모론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확인되고 있지 않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물론 세월호참사가 음모론과 반정부 투쟁으로 흐른 것은 박근혜 정부의 탓도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책임보다는 정치적 모면을 위해 더러운 공작들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세월호 투쟁이 사회개혁이 아니라 정권교체 운동으로 이어진 것은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의 전략 탓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변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무효 국민소송단‘,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 같은 집권 세력을 상대로 법률적 투쟁을 펼쳐 개혁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중 하나로 부상했다. 당시 민변에서 활동하며 스타 정치인으로 도약한 사람이 진선미 여성부 장관과 박주민 의원 등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민변 출신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고위공직자에 상당수 등용되었다. 민변 회장 출신의 김선수 대법관, 이석태 헌법재판관이 대표적이고, 이 밖에도 십 수 명의 민변 회원이 정부 요직에 진입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의 여진이 남아있던 2009년과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열린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세력을 비판하던 성공회대, 한신대 교수들이 대거 선거에 나섰다. 2009년에는 한신대 김상곤 교수가 경기교육감에 당선됐고, 2014년에는 성공회대의 조희연, 이재정 교수가 각각 서울과 경기도에서 교육감에 당선됐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는 그야말로 2000년대 촛불집회들의 종합판이었다. 2016년 촛불집회의 응집된 요구는 ‘적폐 청산’이었다.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적폐 목록에는 한국 사회 온갖 문제들이 총망라됐지만, 실상 적폐의 핵심은 보수집권 시기 권력자들이었다. 전직 두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검찰 수사 끝에 구속됐다. 정부, 여당, 시민단체, SNS 셀럽들은 적폐로 찍힌 과거 권력자들을 구속하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이른바 촛불 시민들은 적폐 인물들이 교도소로 끌려가는 장면을 보며 환호했다. 그리고 적폐와 싸웠다고 평가받는 촛불집회 주도 세력들이 새 정부에 등용됐다. 문재인 정부는 2000년대 촛불을 이끌었던 세력들의 연합정부라 평가받을만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당연하고, 386 정치인, 참여연대, 민변 출신들이 대거 정부 요직을 차지했다.
하지만 촛불의 환호는 거기까지였다. 적폐 처단에는 유능했던 문 정부가 막상 개혁에서는 좌충우돌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소액주주운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교수가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운 청와대 경제팀 총책으로 왔다. 그런데 장 교수는 국민경제 전반을 다루는 거시경제 전공도 아닐뿐더러 소액주주운동이라는 주주행동주의 운동을 조직했던 사람이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이론적 타당성도 문제지만 그 책임자도 문제였다. 그는 거시 이론도 없거니와 케인스주의 계통의 정책과 반대편에서 미시적 금융시장 합리성을 신념으로 삼았단 사람이다. 90억 원대 금융 자산가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스텝이 꼬인 청와대 경제팀은 온갖 말들만 쏟아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경제정책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행정부 운영 스타일도 계속 문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부정부패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적하고 이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정부의 청와대 권력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대통령제 개혁을 포함한 개헌은 시늉만 하다 포기했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가 내각보다 실권을 행사했다. 심지어 청와대 내부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도 3년째 비워놓았다. 최근에는 자신들이 적폐 청산 수사한다고 키워놓은 검찰 특수부가 조국 장관을 수사하자, 특수부를 축소해야 한다며 ‘내로남불’ 개혁까지 하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정부를 향해 불을 뿜었을 참여연대, 민변 같은 시민단체들의 비판도 말 그대로 온순해졌다.
정리해보자. 개혁 세력의 ‘내로남불’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2000년대 내내 보수 세력과 대결한다는 명분으로 쌓아온 오래된 정치적 태도다. 현 정부를 구성하는 세력들은 민주당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는 면죄부를 주면서도, 보수세력에 대해서는 개혁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렸다. 하지만 낙선운동, 노무현탄핵반대촛불, 광우병촛불, 세월호진상규명촛불, 박근혜퇴진촛불 등은 사회변화를 위한 진지한 쟁점보다 보수 세력을 타격하기 위한 권력투쟁에 이용됐다. 가치는 모호했고, 과학적 분석과 비판은 결여됐다. 그리고 오직 진영만 남은 상태에서 도덕적 정치적 이중잣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개혁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 한국 사회는 경제적 불평등에 있어서나, 정치 권력의 민주화에 있어서나 답보와 퇴보만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조국 사태는 이것이 보수 세력 탓만이 아니란 것을 극적으로 폭로했다.
포장된 검찰개혁과 잊어버린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국민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혁 세력이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이유는 검찰개혁의 절박성이다. 조국 지지자들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어 한국 사회 민주주의가 정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검찰개혁이 이 정도로 나라를 두 동강 내면서까지 절박하게 추진해야 할 개혁일까?
권력형 비리와 부패 사건에 검찰이 자주 엮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은 사태의 원인보다는 증상에 가까웠다. 박근혜 정부도 검찰이 ‘정치’를 한 것보다 대통령이 아무런 견제 없이 검찰을 정치에 사용했기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때도 비슷했다. 대통령이 검찰과 불화를 겪었던 것은 노무현 정부 말기 때의 특수한 사례다. 비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도 현직 대통령이 전직을 수사했던 악습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검찰개혁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개혁의 큰 줄기는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다. 검찰이 독점한 수사권을 경찰과 조정하고, 고위공직자 비리는 아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로 넘긴다. 하지만 이런 검찰개혁이 얼마나 범죄 수사와 기소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검찰의 축소된 권한이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천여 명의 판사와 검사를 수사할 수 있는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후보 선정 시 여야가 합의하고, 국회에서 임명 동의 절차도 밟겠다고는 하지만, 대통령 직속인 공수처는 법무부 산하 기관인 검찰보다도 대통령과 훨씬 밀접한 관계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수처는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겨누면서도 검찰총장보다도 견제 장치가 엉성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검찰총장도 임명하고, 공수처장도 임명하면서 이전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한번 박근혜 시기 공수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자. 공수처장 1순위는 우병우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민정수석 임명 전 우병우의 스펙은 공수처장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검찰만 힘을 빼는 것이 이런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경찰이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안부 소속 경찰은 검찰보다도 더 권력의 외압에 취약하다. 단적인 예로 이명박 시기 용산 철거민과 쌍용차 파업을 진압했던 경찰 간부들은 그야말로 청와대의 하수인이었다. 경찰이 여러 권한을 검찰에게 넘긴 계기가 해방 직후 깡패와 유사했던 정치경찰 행태였던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군부독재 시절 중정, 안기부와 손발을 맞추며 정권의 요구를 앞장서 수행했던 것도 경찰이었다. 경찰이 검찰보다 덜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한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가진다는 것 역시 위험천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수사를 위해 검찰을 위험한 방식으로 키웠던 것을 반추해보자. 대통령이 마음먹기 따라서는 경찰을 검찰보다 더 위험하게 키울 수도 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혁 세력이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강하게 주장하는 근거는 우리나라 검찰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맞다. 대한민국 검찰은 확실히 권한이 과도하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막강한 검찰권이 효과를 발휘하는 전제는 그 이상으로 막강한 대통령제란 점이다. 앞서 본 것처럼 한국의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을 어떻게 나누든, 그것을 또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국 대통령은 선진국들과 비교해 봐도 권한이 매우 큰 권력자다. 선진국 대부분은 의원내각제인데, 대통령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도 대통령의 공직자 임면권과 예산권을 국회와 나눈다. 미국의 경우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예산권은 아예 하원에 있다. 연방제다 보니 주정부, 주의회 권한도 막강하다. 권력기관 권한들이 어떻게 배정되어 있든 대통령이 맘대로 다룰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현재 검찰개혁은 막강한 대통령은 그대로 둔 채 검찰만 개혁 대상 위에 올려둔다. 심지어 대통령 권한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모순이다. 만약 문 정부와 여당이 조국 사태만큼 단호하게 대통령제 개혁에 나섰다면, 집권 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의회와 나누겠다며 검찰개혁에 나섰다면 사태는 오늘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참고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문재인 정부 2년 검찰보고서”의 총론을 이렇게 끝맺는다. “검찰 권력에 대한 제도적 통제에 대한 고민 없이 ‘검찰의 독립성, 중립성’을 명분으로 자율성만을 강조한다면, 정권 말기 다시금 독자적으로, 다시 말하면 초법적으로 활동하는,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검찰, ‘정치검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중기 이후 검찰의 독자적 행보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이 자신들이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현 정부의 안위와 관계되어 있다는 속내다. 그러나 따져보자. 한국 사회의 진정한 개혁이 과연 정치검찰 탓에 정체된 것일까? 권력의 안위가 진정 개혁의 과제인가?
포퓰리즘 정치와 타락한 개혁 세력의 몰락, 하지만 사회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조국 사태는 포퓰리즘 개혁정치의 실패를 상징한다. 현 집권 세력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확대할 실질적 방안보다 기득권, 보수 세력, 적폐 세력 등 집권 세력 외부의 가상의 적을 상대로 한 섬멸전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이런 정치는 결과적으로 국가의 혼란만 가중하며 정치적 환멸과 각자도생의 사회 파탄으로 이어진다. 참여연대, 민변, 386 정치인, 진보교수, SNS 샐럽들로 이어지는 한국 개혁 세력은 지금도 이런 사회파탄의 길을 열심히 닦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 좌파’로 불렸던 혼란이 2010년대 후반 ‘강남 좌파’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조국 논란을 끝내고 미래를 좌우할 진짜 개혁의 본령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 저성장, 인구 고령화, 수출감소, 경제적 불평등, 한일 역사갈등, 북미 핵 협상, 미중 무역전쟁 등등 현재 한국 사회가 부딪힌 문제들은 장기간에 걸쳐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것들이다. 정당성 없이 갈등만 키우는 조국 장관은 사퇴하고, 검찰개혁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라는 권력기관 개혁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더불어 집단적 ‘내로남불’ 상태에 빠진 개혁 세력의 진지한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 이들의 집단적 성찰이 없다면 한국 사회는 이들에 의해 또 다시 반(反)보수 같은 허망한 진영대결로 이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 또한 엄중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서초동 집회나 조국 관련 이슈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개혁 세력의 운동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실용적으로 노동 의제를 사회 이슈로 만들기 위해 개혁 세력의 일원으로 행동했던 적도 많고, 집행부가 의식적으로 보수 세력 타격을 1순위로 삼아 조합원을 동원했던 적도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봐도, 오늘날 상황을 봐도, 그 개혁 세력의 정책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옭아맸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는 정리해고 시대를 연 민주당에 면죄부를 줬다. 2004년 복권된 참여정부와 386 정치인들이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완고한 제도로 뿌리박게 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은 2009년 쌍용차 파업을 외면했고, 2014년 세월호 진실규명 촛불 역시 매년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산업재해의 현장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보수 세력을 타격해 개혁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진영 논리만 촛불의 끝에 남아있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촛불혁명 정부를 자처했던 새 정부는 386 정치인, 참여연대, 민변 등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세력들의 연합정부로 꾸려졌다. 하지만 이 정부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이었다. 올려놓고 다시 내리는 최저임금, 단축해 놓고 다시 유연하게 늘리는 근로시간제, ILO 협약 비준이라며 역으로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노동법개정이 그런 사례들이다. 정부 정책 기조도 시나브로 노동 존중에서 기업 존중으로 바뀌었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자운동은 이제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원래의 포부로 되돌아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맞는 담대한 개혁 구상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개혁 세력에 끌려다니는 것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끝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