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19.11.28
변화와 혼란의 시대, 금속노조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11기 금속노조의 방향과 과제
금속노조 11기 임원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다. 난세란 말이 과장이 아닌 한국사회 상황을 생각하면 차기 집행부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다. 금속노조가 한국사회 변화에서 차지한 역사적 지위를 따져 봐도 그럴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11기 선거 즈음하여 차기 집행부 과제를 짧게 제안해보고자 한다.
첫째, 11기 집행부는 빠른 변화의 시대에 대응할 정책역량을 갖춰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야기되는 기술변화로 미국에서는 아예 기존 자동차 공장들을 폐쇄하고 있다. 세계 최고 자동차 강국 독일에서조차 미래 기술에 대비한 구조조정이 준비될 정도다. 한국사회 변화 역시 그 속도가 무섭다. 저성장, 고령화, 기술변화의 속도가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도는 대부분이 고성장-고인구에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빠른 변화의 시대에는 분석하고, 예측하며,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자본에 속수무책 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잘 알고 있다시피 과거 노동운동은 그러하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 노동운동은 세계적으로 밀어닥치던 금융시장의 세계화와 노동시장유연화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외환위기 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지로 내몰렸는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자동차산업에서 생산방식 변화와 해외공장이 급격히 진행됐을 때도 그러했다. 세계적 거품경제 속에 조선업의 과잉투자와 무모한 사업 확장이 이뤄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호황이 천년만년 지속될 것처럼 생각했지, 이후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조정을 예상치 못했다. 금속노조는 자본이 10년 앞을 내다본 구조조정을 준비할 때 매번 올해 임금인상과 내년 단체협약개정을 준비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다. 왜 우리는 10년의 사회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했는가. 왜 그것을 준비할 계획에 재정과 인력을 배분하지 못했는가. 11기 금속노조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둘째, 주체적 전략으로 대규모 조직화를 이뤄내야 한다.
금속노조 조합원 대부분이 한국사회의 상위 임금소득 계층에 속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세습으로 대대손손 부를 늘린 기득권 세력과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소득을 높인 노동자는 근본이 다르다.
다만, 그러함에도 노동시장의 객관적 상태는 금속노조 운동의 조건으로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한국은 두 개의 나라로 이뤄져 있다. 높음 임금과 넓은 기업복지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은 북유럽이고, 낮은 임금과 아무런 사회안전망을 제공받지 못하는 나머지는 동남아이다.” 이 비유를 따르자면, 금속노조에 주어진 과제는 이제 노동자를 통일하는 일이다. 더 지체할 수가 없다.
어렵지는 않다. 전략조직화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많이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받으면 된다. 금속노조 사업 하나하나에 이들의 상태가 고려되고, 이들의 요구가 우선시되도록 만들면 된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연대임금이나 연대고용 같은 정책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금속노조가 임금과 고용을 평준화하려면 당연히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있어야 하고, 단체협약이 그들에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벌해체’ 구호만 외치는 노조를 지양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재벌로 인해 여러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70년간 한국사회 자원을 모조리 빨아들여 성장한 것이 현재의 재벌이다. 하지만 이들 재벌은 노동자 모두와 그 성장의 과실을 나누지는 않았다. 재벌로 인한 성장과 분배의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보수세력조차 인정하는 시대적 과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이다. 진보진영에서 구호로 외치는 “재벌체제 청산”은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해법은 되지 못한다.
재벌 총수를 내쫓는다 치자. 그러면 다음은 누가 그룹을 경영하는가. 금호타이어 사례를 보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해외 먹튀였다. 그룹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다 치자. 계열사들은 어떻게 되는가. 대우그룹이나 한라그룹 사례를 보면, 망하거나 해외자본에 팔려나갔다.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국유화했다고 치자. 국가는 재벌그룹을 어떻게 경영하는가. 정부 역량이 형편없다는 것은 대우조선 부실 사태에서도 확인한 바다. 정부 관료가 재벌 경영진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원하청 공정거래를 했다고 치자. 그러면 하청 기업의 이윤은 누가 가져가는가. 중견기업으로도 불리는 1차 벤더 기업들은 행태는 작은 재벌로 불릴 정도로 위선적이다.
재벌체제 문제는 지배구조나 공정거래 같은 시장의 방법이 아니라 노동자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바로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산별교섭이 그것이다. 이는 서유럽의 경험이기도 했다.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평준화되면, 자본은 알아서 자신들의 지배구조와 거래구조를 만들기 마련이다.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을 통해 산업의 질서와 방향을 만들면, 자본은 그에 맞춰 자신들의 경영 패턴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 산업민주화는 탐욕의 시장이 아니라 평등의 단체협약에 의해 달성된다.
재벌해체 같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실질화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 18만이 기업별로 쪼개지지 않고 어떻게 단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그리고 실질적인 재벌개혁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분기점에 있다. 그리고 11기 금속노조는 그 분기점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번 임원선거에서 많은 토론과 고민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