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0.01.20
쌍용차의 반복되는 위기와 대책
쌍용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고엔카 사장이 방한했다. 산업은행에 추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쌍용차의 2019년 적자규모는 2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쌍용차는 경영위기를 이유로 재작년 합의한 복직 대기자의 현장 복귀도 무기한 연기했다. 10여 년간 회사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 40여 명의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그런데 왜 쌍용차에서는 경영위기, 고용위기가 반복되는 것일까? 노동운동은 쌍용차의 지원 요청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쌍용차의 구조적 문제점
사실 쌍용차 위기는 만성적 현상이었다. 쌍용차는 2010년 마힌드라에 매각된 후에도 2016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쌍용차는 중저가 SUV 차종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생산량은 15만대 미만이다. 영국 로버처럼 고가 SUV를 생산하는 것도 아닌데, 생산량이 너무 적다. 생산구조 자체가 흑자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더구나 쌍용차는 수출이 거의 없어 내수침체에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이 저성장 인구감소 시대에 진입하면서 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오랫동안 상하이차 ‘먹튀’와 법정관리를 겪어 투자도 부족한 상태다. 글로벌 자동차기업 같은 미래차 투자는 언감생심이고, 신차 개발도 벅차다. 자동화율이 낮아 생산성 역시 높지 않은 편이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쌍용차가 선점했던 소형SUV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자 작년에 적자가 급증했다.
물론 마힌드라가 이런 문제점을 모르고 쌍용차를 인수한 것은 아니었다. 마힌드라는 미국 시장 진출, 인도에서의 신차 출시, 대규모 자본투자 등을 2010년에 이야기했었다. 두 기업의 시너지 효과로 쌍용차 약점을 극복해보겠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그 포부는 실현되지 못했다. 마힌드라는 상하이차 같은 ‘먹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구세주 역할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정부정책에서 시작된 외투기업 일반의 문제점
이런 위기는 쌍용차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지엠, 르노삼성 등의 외국인투자기업들에서도 비슷한 위기가 만성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다. 쌍용차 위기는 한국의 경제구조와 외국인자본의 특성이 결합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르노삼성, 한국지엠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점은 무엇보다 투자 부족이다. 르노삼성은 몇 년간 자체 개발 차가 부족해 위탁생산으로 공장 가동률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은 국내 투자가 아니라 본사로 모두 배당됐다. 한국지엠도 마찬가지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엠은 한국에서 생산하던 차를 미국으로 가져간 것은 물론 수출차 가격도 후려쳤다. 그 결과 한국지엠의 손해로 본사의 이익이 채워졌다. 물론 투자가 활발했던 것도 아니다.
이들 3사가 투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막무가내로 국내 기업들을 헐값에 해외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비싼 만큼 아끼고, 싼 만큼 막 쓰는 것은 인간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기계설비의 일반적 사용가능연한이 15~20년인데, 딱 이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기업들이 심각한 자본철수 위기에 처했다. 말하자면 쓸 만큼 쓴 뒤 버려지는 셈이다. 요컨대, 최근 3사가 겪는 어려움은 본질적으로 십여 년 전 정부정책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응방향에 대한 제언
쌍용차 위기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장기불황이 고용위기를 극단적으로 키우고 있어 외국인투자기업 모두가 쌍용차와 비슷한 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쌍용차 대책은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의 위기와 그 대응전략까지 염두에 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쌍용차의 경영, 고용위기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대응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기업별 대응을 지양해야 한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차원에서 정부 대책을 요구하고,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 노동조합들은 교섭 권한 상당 부분을 금속노조에 위임할 수도 있다. 산업적 차원의 문제해결을 위해 기업 내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전략이다. 자본이동 규제부터 산업정책에 이르기까지 장기적, 구조적인 문제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은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총연맹이나 산업노조의 몫이다.
둘째, 임금과 일자리를 나누면서 버텨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투쟁들이 규탄만 되풀이하다 막바지에 이르러 조합원 내부에서 희생의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본사가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초국적 기업 해외공장은 버텨서 얻을 것이 국내기업보다도 적다. 쌍용차 경영위기는 단기간에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희생의 순서를 정하는 ‘의자놀이’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욱이 임금과 고용을 나누어 조합원 간 유대를 지키면서 근본적 대책이 나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내부에서 연대의 윤리가 깨지면, 정부와 자본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힘도 약화된다.
셋째, 정부 지원은 최후의 방법이며 가능한 자제되어야 한다. 외국자본이 고용위기를 무기로 삼아 정부 지원금을 받아낼 경우 원인에 대한 처방보단 증상에 대한 완화에 자금 대부분이 소진된다. 단적인 예로 2018년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에 지원한 8천억 원은 장기적 발전보다 다운사이징 구조조정에 사용된 꼴이 되고 말았다. 여러 조건을 붙여 지원하더라도, 현금에 명찰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정부가 사용처를 규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쌍용차 위기는 최대한 내부적으로 해결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 지원금이 해외 본사의 책임 회피를 위해 사용되면, 쌍용차 노동자와 국민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마힌드라는 자신이 2천3백억 원을 투자할테니, 산업은행도 그에 준해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 본사가 얼마나 정부 지원금 상환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다만, 재무위기가 너무 심각해져 정부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도 발생할 수는 있는데, 그런 상황에도 자금지원 협상은 사측과 산업은행 간이 아니라 노동조합까지 참여한 협상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내부 감시자로 역할을 해야 정부가 그나마 덜 ‘호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자금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외부 감시자가 아니라 내부의 종사자들만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한 가지 우려를 덧붙이고자 한다. 외국인투자기업의 고용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자금유출이나 경영비리 논란 만드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부와 기업 책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술이다. 하지만 그런 분석은 타당성도 부족하고, 쌍용차 문제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노조의 잘못된 대응은 작금의 위기를 가속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엄중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최대한 많은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버틸 수 있도록 노조가 다양한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