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1.22

북한 개별관광 허용, 신의 한 수인가? 총선용 쇼인가?

사회진보연대
 
지난 1월 20일, 정부는 통일부 브리핑을 통해 남한 시민의 북한 개별관광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별관광을 언급한 데 이은 후속조치다. 사실 김정은은 관광 비즈니스를 ‘정면돌파전’의 하나로 몇 년 전부터 강조해왔다. ‘정면돌파’란 경제·정치·군사적 역량 강화를 통해 북미 교착상태와 대북제재 장기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관광 비즈니스는 대북제재를 우회해 달러를 얻을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문 정부의 이번 개별관광 허용은 김정은 정책에 힘을 실어줘 북한을 북미, 남북 협상장에 나오게 하겠다는 유인책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부 정책이 교착상태의 북미, 남북 대화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과연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는 도움이 되는 것일까? 우리의 답은 부정적이다. 개별관광 허용이 진지한 전략이라기보다는 총선을 앞둔 또 한 번의 남북관계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20일 밝힌 북한 개별관광 3가지 방안. (출처: 중앙법률신문)
 
대북제재를 우회해 개별관광이 이뤄질 수 있는가?
 
개별관광은 시행 가능성부터가 쟁점이다. 대통령 신년연설 직후부터 유엔 대북 제재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는 개별관광이 제재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미국 국무부는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정부는 이미 중국관광객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북한을 관광하고 있는데 남한만 안 될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말 자체는 맞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처럼 현실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개별관광 그 자체는 제재 사항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관광이 진행되면 제재 위반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다른 국가들이 진행 중인 북한 개별관광 사례를 근거로 들고 있으나, 남한 시민의 북한 관광 문제는 제3국에 비해 훨씬 많은 문제 제기와 검증 시비를 낳을 것이 자명하다. 이런 여행에 보험을 제공한 보험사는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작년 12월 미국 국회에서 통과된 오토웜비어법은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해놓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제3국 여행사가 남한 시민을 상대로 한 북한 관광상품을 만들거나, 여러 외국인들이 남한에 들렀다 북한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남한 시민들은 이런 관광 상품에 개별적으로 신청하는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꼼수는 관광객 규모가 소규모일 때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지만, 규모가 수만 수십만 명으로 커지면 크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 같은 제3국 관광사를 이용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남한 여행사와 북한 관계기관이 중개기관을 끼고 거래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진짜 사장과 노동자가 바지 사장에 불과한 하청업체를 끼고 불법파견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대북 정책 핵심 기조는 북한으로의 외화 유입을 차단하여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안보리 제재는 그 수단일 뿐이다. 수단이 무력해지면 목적에 맞는 다른 수단이 강구되게 되어 있다.
 
한편 소규모 관광의 경우 북한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정권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메시지에 대해 “중재자 운운하며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고 일축해 왔다는 점을 떠올려 봐야 한다. 북한 개별관광은 관광규모가 커지면 제재 위반이 될 가능성이 크고, 관광규모가 작으면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6월 평양 국제공항에서 고려항공 여객기에 탑승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출처: VOA)
 
개별관광은 한반도 비핵화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가?
 
개별관광의 현실성 여부와 별개로 그 자체가 한반도 비핵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최근 한국과 미국이 티격태격 설전을 벌인 것도 비핵화 프로세스에 관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북한 핵무기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확인하자.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한국과 일본 역시 항구적으로 핵무기를 금지하는 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말할 때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 이런 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멸을 판돈으로 해서 핵전쟁 억지력의 도박판을 여는 길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현실로 인정하고, 한국과 일본도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가지거나 또는 나토체제처럼 미국의 핵을 공유하는 방법이다. 최근 한국 보수세력 일부에서 제시하는 길은 사실상 이것이다. 양자 사이에 타협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세 나라 중 한 나라만 핵무기를 보유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 핵무기가 인정되면, 그 사정권에 드는 일본에서는 당연히 핵무장론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남한 역시 양쪽 핵무기 사이에 끼어 혼자 재래식 무기만 갖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김정은 세습정권은 핵무기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한처럼 안보를 의탁할 세계패권 국가가 없는데다, 이라크나 리비아에서 봤듯 미국이 인권이나 평화를 명분으로 독재정권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경우 한 순간에 권력이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김씨 일가의 세습권력은 군부를 비롯한 북한 지배계급을 대내외 적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암묵적 약속 덕분에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는 김정은에게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우상화된 김정은과 군부, 당의 엘리트들의 동맹은 핵무기를 매개로 체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개방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 그 다음 문제다. 절대권력에는 절대무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북핵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정은에 대한 문 정부의 인식은 비현실적이라고 볼만큼 낭만적이다. 청와대 2인자였던 임종석 전 대통령실장은 어제 민주당 정강정책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하고 대담한 리더였습니다. 그의 의지는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경제중심으로 가겠다는 확고한 자세”라고 평가했고, 문재인의 복심이라 불리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시사인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가 가야 할 길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모른다기보다는 김정은을 띄워 자신들의 대북정책을 치장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철도·도로 협력 사업을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자는 유엔 결의안을 제출하자마자,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기념 토론회를 개최하고, 북한 개별관광 계획 발표와 ‘2032년 올림픽 남북공동유치 추진’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컨대 문 정부의 대북정책은 진지한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안일한 정세판단 속에서 국내 정치의 이벤트로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이벤트가 한반도 비핵화를 더 어렵게 한다
 
문재인 정부 3년을 따져보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실질적 성과도, 현실적 로드맵도 없이 이벤트성 대북 정책을 국정운영의 돌파구로 삼는 행태가 반복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벤트가 계속되면 상황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벤트의 효과는 실체적 변화보단 집권세력의 정치적 실리와 대중적 낙담이었을 뿐이다.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남북철도협력’,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신한반도경제’ 등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개별관광 허용정책 또한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미국과 북한과 사전조율 없이 막무가내로 언론에 발표하는 것만 봐도 정책의 진정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이벤트로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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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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