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0.03.04
기어코 비례위성정당을 강행하려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민주당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사실상 승인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월 23일 “의병들이 나서서 만드는 것을 말릴 수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원내대표가 비례‧위성정당 창당은 선거법 개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단호히 말하며 말리는 게 충분히 가능한데, 왜 말릴 수 없다고 했겠는가. 이는 민주당 내외곽 인사들에게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서두르라는 신호탄이 아니었겠는가. 물론 현재까지도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이 어떤 세력과 인물을 주축으로, 어떤 형태로 세워질지는 유동적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정치행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비판이 필요하다.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언론의 용어법이 제각각이다. 이 글에서 비례정당이란 민주당이 비례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경우, 위성정당이란 민주당이 비례후보를 내지만 사실상 비례후보는 다른 정당을 찍으라고 독려하는 경우로 쓰겠다.
1. 왜 민주당은 공수처와 선거법을 맞바꾸었나?
2월 28일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기사, ‘민주당 5인 마포서 비례당 결의’에 따르면, 2월 26일 민주당 핵심 의원이 모여 비례·위성정당 창당 문제를 논의했다.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전해철 당대표 특보단장, 김종민, 홍영표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이 나눈 대화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전해철 의원: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 (연동형 30석) 비율을 더 낮춰야 했다.
(목소리를 확인할 수 없는) 어느 참석자: 그 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즉,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의회 내 대치 상황에서 여당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거법이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통과였다는 ‘실토’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공수처가 중요했을까? 당시는 조국 전 민정수석 개인의 위법(입시, 사모펀드 등)을 넘어서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을 두고 검찰수사가 확대되는 국면이었다.
특히 울산 선거 하명수사는 정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건이다. 한국의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한국 정치사에서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고 공무원을 동원하는 부정선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즉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도 탄핵 사유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그 정도 후과를 낳았는데, 청와대가 시장 선거에 하명수사를 포함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기소와 재판으로 확정된다면 그 정치적 파장은 실로 막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란 무엇이었을까?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속내를 너무나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조국 전 수석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되자 “검찰권을 남용한 기소쿠데타”라면서 공수처가 출범하면 “윤 총장 세력의 사적농단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대상’이라고도 했다. 그의 발언은 공수처가 이미 진행 중인 수사를 포함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청와대·여당 관련 권력형 부패·비리 사건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그야말로 방패막이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낸 셈이었다. 공수처와 같이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준)사법기관을 새로 도입하고 장악해서, 권력형 사건을 미리 차단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의도야말로 정권의 본질적 반(反)민주성을 드러내지 않는가? (공수처 문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검찰개혁인가, 수사기관의 과대팽창인가?’(2019.11.11.)를 참조하라.)
2. 그렇다면 왜 다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다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한 마디로, 공수처 통과로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소수정당에 나눠주어 잃어버리게 된 국회의원 의석이 아까운 것이다. 준연동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란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정당이 정당명부 투표를 통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바로 이런 거대한 ‘실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4+1 협의체가 가동되어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된 셈이었다.
사실 선거법 개정의 방향으로 제시된 ‘비례성’이라는 쟁점에도 논란이 있었다. 새로운 선거법을 지지하는 세력은 연동형이 국민의 정당 지지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보장하므로 ‘비례성’을 높이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세력은 지역구 투표와 분리하여 시행되는 정당명부 투표의 ‘비례성’이 왜곡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즉 현 상황처럼 특정 정당이 지역구에 많은 의석수를 낼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조금밖에 얻지 못하거나 아예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법을 여야합의가 아닌 다수결로, 그것도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킨 것은 상당한 무리였다. 이는 넓은 의미의 ‘게리맨더링’이기 때문이다. 게리맨더링이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넓은 의미로 쓰면, 의회 내 다수당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시도 전반을 일컫게 된다. 그런데 게리맨더링은 극히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성숙한 의회정치에서는 금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게리맨더링이 관행화되면 매번 여야가 교체될 때마다 여당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이 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정당은 최소한 정당의 ‘밥그릇’이 걸려 있는 선거제도에 관한 한, 여야 합의 없이 개정을 강행하는 것을 피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법의 전면적 개정이란 쉬운 일이 아니고, 일단 한 번 도입되면 바꾸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4+1 협의체는 그러한 의회민주주의의 관습을 무시하고 다수결로 선거법 개정을 강행했다. 이러한 선거법 개정 강행은 당장 4+1에 속한 정당의 의석수를 늘리기 때문에 유리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야당을 배제한 다수당에 의한 선거법 개정이라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어쨌든 그에 따라, 선거법 개정에서 소외된 야당 세력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야당은 선거법이 개정되면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계속 경고했고, 통과되자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야당의 비례정당에 대해 “국민투표권을 무시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이해찬 대표), “국민을 얕잡아보고는 눈속임이다, 유권자의 거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이인영 원내대표)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다가 막상 선거가 가까워오자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그 명분은 무엇인가? ‘야당의 꼼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거나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명분은 얼마나 정당할까?
3. 야당의 꼼수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여당은 야당의 꼼수 때문이라고 하지만, 야당은 4+1의 선거법 개정이야말로 ‘꼼수’라고 주장하며, 비례정당이 그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변호할 것이다. 누가 꼼수를 쓴 것이고 누가 정당방위를 행사한 것인가? 선거법 개정이 이뤄진 전반적 과정을 봤을 때, 현재의 파행은 4+1의 게리맨더링이 낳은 후폭풍일 수밖에 없다. 야권을 배제한 선거법 개정은 어떤 식으로든 진통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결과에 4+1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5인 회동에서 김종민 의원의 발언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비례한국당이 우리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의석수이고, 명분은 만들면 된다, 비례한국당을 명분으로 삼으면 된다는 말이다.
기실, 민주당이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법 개정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2019년 3월 시점의 여야 합의안은 왜 뒤집었겠나? 당시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비례대표를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고, 비례대표에 대해 상한선 없이 50% 연동률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20대 국회에 적용하면 민주당은 123석에서 105석으로 18석이나 감소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9년 3월 19일 《연합뉴스》 기사 ‘여야 4당 합의안 적용시 민주 18석↓ 한국 16석↓ 정의 8석↑’이라는 기사를 보라.) 그렇지만, 결국에 통과된 선거법은 비례대표를 현행대로 47석으로 유지하고, 연동제 적용범위를 상한 30석으로 제한했다.
이를 사후적으로 해석해본다면, 민주당은 처음에는 공수처 도입을 목표로 파격적인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함으로써 제1 야당을 배제하고 소수 정당을 4+1 협의체라는 틀로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에는 선거법 개정안의 파격적인 내용을 조금씩 깎아내고 덜어내면서, 다른 소수정당이 ‘그 정도도 어디냐’라는 식으로, 또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거법 수정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면서 결국 공수처를 통과시켰다. 그러다가, 막상 선거가 다가오자 소수정당으로 돌아갈 표가 아까워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길로 나간 것이다.
4.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
민주당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는 ‘탄핵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야당이 의회 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미 대통령 탄핵 과정을 두 차례(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겪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듯이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는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 의결에는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선거 판세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탄핵소추 의결은 물론이거니와 발의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당이 탄핵을 마치 정치공세인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미 ‘추 장관의 사법방해와 자연국가로 타락하는 문 정부’(2020. 2. 11.)에서 주장했듯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검찰 수사 방해와 기소장 비공개는 명백한 사법방해이며, 미국과 같은 경우 탄핵사유에 해당한다. 우리는 미국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도청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도청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탄핵 심판에 소추되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청와대나 여당이 탄핵을 막고 싶다면, 탄핵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이, 게다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탄핵을 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탄핵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잘못이 있다면 자복하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빌미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여 소수 정당의 표를 다시 빼앗아 오려고 시도하는 게 사태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지 심히 의문이다.
5. 기어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 흐름은 여러 축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흐름은 ‘정치개혁연합’ 창당 제안이었다. 주권자전국회의라는 단체가 주도했고, 2월 28일 기자회견에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변호사, 배우 문성근 씨도 참석했고 함세웅 신부,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등 40여 명이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범여권 정당의 비례후보를 모으는 ‘선거연합 정당’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이는 정의당과 녹색당이 거부의사를 보이며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3월 1일, “비례민주당이든 연합정당이든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연동형 선거제 개혁의 대의를 훼손하는 거대 특권정당들의 꼼수비례정당”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또한 녹색당도 3월 3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정치전략적 목적의 명분 없는 선거연합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해 사실상 거부의사를 표했다.
기실 정치개혁연합의 제안은 소수정당의 표를 빼앗아 오는 모양새를 피함으로써 민주당으로서는 그나마 ‘명분’ 있는 방안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상호 의원이 “비례연합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에도 맞는 이야기”라고 말했으리라. 그러나 어떤 이유든 간에 정의당과 녹색당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개혁연합 외에 사실상 비례·위성정당으로 간주할 수 있는 흐름은 3월 2일 창당 선언을 한 ‘플랫폼 정당, 시민을 위하여’(공동대표: 최배근, 우희종)나, 2월 29일 정봉주 전 의원이 창당을 선언한 ‘열린민주당’도 있다. 선거법상 4·15 총선에 참여하려는 정당의 창당 마감시한은 3월 16일이다. 후보자 등록 개시일(3월 26일)로부터 10일 전까지 후보자 추천절차를 정한 당헌당규를 선관위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례·위성정당으로 선거에 임하려면 민주당이나 여당 지지 세력은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방침을 결정하여 신속하게 창당을 마무리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창당이 된다면 비례정당이 아니라 위성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즉 민주당도 비례후보를 내되 소극적으로 비례명부를 구성하고, 위성정당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과연 민주당은 기어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가? 만약 위성정당 창당을 강행한다면, 민주당의 후안무치는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