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0.03.18
노동조합, 재난 극복의 제도로 역할 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와 노동조합
코로나 사태는 세 가지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첫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둘째, 인적 격리와 장소 폐쇄로 인해 경제적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셋째, 코로나 발 경제침체로 다수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세 가지 영역 모두에서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정부가 재난 대책의 핵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노동조합도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제도다. 노동조합은 자본과 시장의 관점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과 연대의 관점에서 재난 대처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본 글은 코로나 사태 속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사업장 방역: 노총과 산별의 초기업적 활동이 필요한 시기다.
먼저, 방역 문제부터 보자. 방역 일선에 있는 노동자는 물론이거니와 집단작업을 하는 노동자들도 감염에 취약하다. 콜센터 집단감염이 대표적 사례였다. 작업을 멈출 수 없다면 최대한의 안전 조치들이 이뤄져야 하는데, 노동집약적 사업장일수록 안전 조치에 들어가는 비용은 많고, 반대로 사업주의 재정 여력은 일반적으로 적다. 외부 강제가 없으면, 작업장에서 제대로 된 보건 대책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업주의 선한 마음에 기댈 일이 아니다. 이때 외부의 힘은 정부의 규제도 있지만, 현장의 감시자인 노동조합이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외부적 강제가 더 절실한 사업장일수록 노동조합을 찾아보기 힘들다. 10% 내외의 낮은 조직률에 기업 내에서만 단체협약이 유효한 기업별 노조 체계이다 보니 그렇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이 지금이야말로 미조직 부문에서 안전 조치를 요구하는 초기업적 활동을 펴야 한다. 미조직 사업장에서의 캠페인, 지역과 산업 수준의 협약체결 등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총과 산별노조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예로 코로나로 위협받는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노총 지역본부와 산별노조 지역조직들이 임시로 지역노조를 만들어 캠페인, 지역대책, 조합가입 등에 집중해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경제적 피해: 현장에 필요한 실질적 지원과 연대고용 정책이 필요하다.
방역 과정에서 입는 경제적 피해는 어떤 점에서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이다. 취약계층은 경제적 피해를 보면 오랫동안 복구를 할 수 없다. 심지어 상처가 후세대까지 이어지는 빈곤의 악순환도 발생한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이 집중되는 곳은 영세기업, 자영업 부문이다. 내수 급감으로 폐업, 해고, 임금삭감이 확대되고 있다. 이곳의 취업자 수는 대략 1천만 명인데, 사업주의 평균소득이 연 3천만 원이 되지 않고, 노동자의 소득 역시 최저임금에 불과하다. 고용형태는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며, 취업자 나이도 청년과 고령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정부는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려운 고령 취업자에게 긴급한 복지 지원을 확대하고, 노동조합은 청년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고용 친화적 임금과 노동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긴급복지지원 제도,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구직촉진수당, 한국형실업부조제도 등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최대한 확대해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런 대책은 장기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청년에게는 해답이 되지 못한다. 노동조합은 이 대목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영세기업, 자영업 부문의 청년 노동자를 최대한 대기업, 공공부문으로 흡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20대 고용률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대기업, 공공부문에 밀집해 있다.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인 이 부문에서 청년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임금‧단체협약부터 청년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되는 여러 정책을 도입해보자. 임금체계 합리화, 노동시간 단축 등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작년 말 통상임금소송 승소로 받을 임금을 청년 일자리 확대에 이용한 부산지하철노조 사례도 참조할 수 있다.
장기 경제침체: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하고, 장기전을 준비하자.
코로나 사태로 세계경제의 취약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방역으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소비가 급감했고, 세계의 공장 중국이 멈춰 공급사슬도 손상을 입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공급된 통화가 주식시장 거품과 무분별한 기업부채 증가로 이어져 세계적 금융혼란까지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세계화, 인종주의 포퓰리즘 정책의 확산으로 국제적 공조 체제가 무너진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경폐쇄만 할 뿐 세계 주요국들이 제대로 된 공동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실물경제 위기, 금융혼란, 국제적 공조의 불안정성이 함께 나타났던 시기는 전간기로 불리는 20세기 초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시기 말이다. 현재 우리는 그만큼 위험한 정세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적 위기는 한국경제에서 자영업 붕괴와 제조업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1% 미만 성장률을 예상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위기는 구조적이며, 장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상태만 모면해보자는 식의 재정정책은 후에 나라 경제를 더 큰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제안했던 전 국민 100만 원 현금지급 정책이 대표적이다. 100만 원으로 저소득 계층의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느닷없는 50조 원 재정적자는 나라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기본소득이나 과감한 재정확장을 요구하는 개혁진영 지식인들은 현 위기를 단기간의 소비침체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마중물을 넣어주면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은 지하수가 말라서 새 수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구조적 위기 하의 장기침체 의미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은 필요한 재정지출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무분별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최근 노동조합 일각에서는 정부 지출을 늘리고 그것도 부족하면 재벌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소비하자는 요구도 나온다. 그런데, 국가채무는 결국 부가가치 생산의 유일한 주체인 노동자가 갚아야 할 빚이고, 대부분이 이미 투자된 자산이거나 앞으로의 투자기금인 사내유보금을 소비하자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투자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국민경제와 재벌을 노동자가 통제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지, 분별없이 망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큰 틀에서 이윤 추구 경제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폭로하고, 현장에 실제로 필요한 것들과 노동조합이 스스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요즘 유행하는 다양한 포퓰리즘적 재정 요구는 경계해야 한다.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조건에서도 노동자가 삶을 영위하며, 노동이 주도하는 구조변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