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0.03.25
민주노총 코로나19 대응 정책워크숍 참관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총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주도해야
지난 3월 24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는 “코로나19 대응 정책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워크숍에 참가한 발제자 각각이 강조한 지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삼아 한국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서는 의견을 같이했다.
(워크숍 자료집은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다. 바로가기)
전망: 세계경제의 기저질환과 코로나 사태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단기에 종식되기보다는 올해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영국 보건당국의 예상을 참고해보면, 치료제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결국 완전한 봉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시 바이러스가 유입되어 2차 대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올해 내내 병원의 감염체계에 대한 역량을 최대한으로 가동하면서 버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한지원 운영위원은 더 큰 문제로 세계경제가 안고 있던 ‘기저질환’을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가 그렇듯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태가 훨씬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다”면서, 우선 2010년대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글로벌 포퓰리즘을 하나의 기저질환으로 지목했다. 그는 “무역전쟁과 반(反)세계화로 대표되는 글로벌 포퓰리즘으로 인하여 2010년대 들어서 존재했던 세계질서가 와해되고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세계적 공조는커녕 준비되지 않은 채로 국경을 폐쇄하면서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다. 중국 혐오 등의 혐오정서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결과다. 그럼에도 방역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두 번째 기저질환으로 꼽았다. “세계경제 역시 그러하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인 작년 11~12월에 이미 2020년 세계경제의 침체를 예견했었다. 한국도 2%성장이 가능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기도 했다. 세계경제는 이윤율 하락이라는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를 기저질환으로 앓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코로나 사태는 상황을 더욱 악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재난 기본소득류의 주장이 전제하는 V자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따라서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보다는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생산자원 유지에 힘쓰면서 현존하는 제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둘러싼 쟁점
한편 현 상황이 평시가 아니라 재난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에 과감한 확장재정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OECD국가의 평균 국가채무를 봤을 때, 한국은 낮은 순위다. 또 재정건전성이라는 점에서 국가채무비율이 40%를 유지해야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추가적 적자재정의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적자재정을 통해서 재난 수당을 지급해야 하며 그 규모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기본 소득이 유일한 길은 아니며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정건전성은 위험과 양호, 양쪽의 주장이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어서 확실하게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은 일본 등과는 다른 조건임을 생각해야한다는 점이다. 엔화는 원화와 달리 기축통화인 점, 일본의 국가부채는 모두 일본 내 민간이 흡수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가계부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민간에서 흡수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국가부채비율이 채 100%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재정건전성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박상인 교수는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신경써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 시기까지 재정건전성을 따져서 재정지출을 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적자재정은 불가피하다. 다만 재정지출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상황이 급변해서 집행되지 못하는 예산이 있다. 이를 끌어와서 적절히 집행할 수도 있다. 또 현재 정부의 대책을 보면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지원하여 기업 도산을 막는 것이 1순위가 되어야한다”고 하면서 정부의 효율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노동조합의 대응 방향
워크숍에서는 노동조합이 코로나19에 대응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할지에 대한 토론도 진행되었다. 대체로 노동조합이 자기헌신적인 자세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불안정노동, 영세사업자에 직격탄이 되고 있고, 이들이 무너짐으로써 사회가 붕괴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강력한 복지국가 담론을 재도입할만한 계기가 되고 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우선 ‘해고금지’를 도입하여 고용을 유지하고, 기간산업 국유화, 공공 인프라 확대를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대응에서 언급된 ‘해고금지’의 도입은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도입되어 잘 알려지게 되었다. 관련해서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이 발표한 “코로나19의 국제노동계/해외노총대응 사례”는 세계 각국 노총의 대응과 그 중에서 특히 이탈리아 노총의 사례를 자세히 검토하고 있다. 류미경 국장은 “이탈리아는 ‘해고금지’를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탈리아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살아있기 때문에 안전 확보와 생계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 노총을 주축으로 입체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사회를 책임지는 주체로서 노총이 정부와 대책을 논의하는 점을 잘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인 교수 역시 “이탈리아의 사례에서 보면 노총이 정부와 소통하면서 전 사회적인 대책을 강구한다. 현재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조합원 개인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접근한다면 구조적으로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조 없는 노동자에 주목하면서 각종 지원 및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원 운영위원은 “노동조합 주도의 구조변화를 위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전국적인 교섭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현 상황, 현 조건에서 가장 진취적으로 해볼 수 있는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민주노총이 전국적으로 쟁취해야할 의제가 무엇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결국 교섭은 의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 시대에 노동자운동이 만들어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의제설정 뿐만 아니라 대기업,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교섭권을 중앙에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전국적인 교섭을 만들기 위해 민주노총이 주연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대공장,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번 워크숍은 민주노총이 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서 나설 수 있어야 함을 확인한 자리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도 높다. 정부와 기업에 재난대책을 요구하는 동시에 민주노총 또한 사회의 중요 주체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미조직 노동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