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0.05.14
코로나 시대 이주민의 고난
인종주의와 정책적 배제
코로나19 재난은 불평등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통을 겪어 온 사회적 약자 계층을 더욱 고난에 빠트렸다.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나 퍼질 수 있지만, 재난의 충격은 평등하지 않고 취약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 3억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대표적이다. 3월 말 기준 약 230만 명의 국내 이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도 겪어 왔던 인종주의, ‘이등·삼등 시민’으로서의 계급적 불평등을 코로나 시기에 더욱 크게 겪고 있다.
건강보험 가진 사람에게만 마스크를 허하다
3월 6일부터 약국 등에서 공적 마스크가 판매되었다. 마스크 착용의 효과에 대한 논란도 있었으나 방역 당국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 누구나 인식하고 실천하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마스크 중복구매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시스템에서 조회되는 이들에게만 판매하게 한 정부 정책이다.
이주민(정부 정책 상에서는 ‘외국인’) 전체의 절반 정도인 125만 명만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나머지 절반은 체계적으로 마스크 구매에서 배제되었다. 지역건강보험 의무가입이 2021년으로 유예된 유학생, 지역건보 가입을 할 수 없는 6개월 미만 체류자, 미등록자 등은 광범위하게 배제되었다.
가입되어 있다 해도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구매하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바깥에 나가서 혹시라도 감염될까봐 내국인은 출퇴근 시키면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업장 외부 이동조차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이주민에게만 외국인등록증 외에 건강보험증까지 요구하여서 이를 발급받으려는 이주민들로 인해 건강보험공단 업무가 폭주하는 웃지 못 할 일까지 발생했다(요즘 어느 누가 보험증을 갖고 다니나). 대한민국 땅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방역 체계에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정작 개인 방역 필수품인 마스크는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게만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항의가 전국적으로 빗발치자 정부는 민간단체 등에 KF마스크가 아닌 덴탈마스크 등을 우회적으로 지원하여 이주민들에게 나눠주게끔 했다. 그마저도 못 받은 이들은 사업장에서 쓰는 작업용마스크를 쓰거나 면마스크를 며칠이고 빨아 써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마스크 재고가 충분해졌는지 4월 20일부터는 건강보험이 없어도 마스크를 살 수 있게 정책을 바꿨다.
쏟아지는 코로나 정보에서 소외되다
재난 시기에 정보는 기본적인 생명줄과도 같다. 매일같이 나오는 다양한 정부 정책 발표, 코로나 관련한 중요 뉴스, 방역에 대한 정확한 정보, 체류와 노동에 대한 관련 부처의 방침 등을 제대로 알아야 스스로를 지키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주민들의 본국 언어, 최소한 이주노동자로 들어와 있는 이들의 16개 출신국 언어로제공된 정보는 극히 적다. 코로나 예방 수칙, 자가격리 수칙 정도를 제외하면 별로 없을 정도다.
법무부 다국어 상담전화인 1345 등 코로나 관련 다국어 상담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전화라는 수단이 전부였다. 예컨대 매일 중앙재난대책본부 브리핑 자료를 다국어로 번역해서 이주민들이 많이 보는 하이코리아나 다누리포털에 올리고 관련 소셜미디어 계정과 이주민커뮤니티들을 통해 유통시킬 수 없는 것일까. 재난주관방송사의 자막뉴스를 여러나라 말로 내보낼 수는 없을까. 긴급재난문자나 안전안내 문자를 영어로라도 발송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여러 번 되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공식적 정보가 부족하면 가짜뉴스를 믿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불안과 공포를 키울 수 있어서 문제가 된다. 지금은 오히려 이주민 지원단체나 이주민 커뮤니티들이 자체적으로 번역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접근권은 재난 대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권리라는 측면에서 개선이 시급하다.
재난지원금에서 배제되다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큰 정책적 제도적 인종차별은 각종 재난지원금에서 이주민들이 배제된 것이다. 서울시의 긴급생활비,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등 명칭이 약간씩 다르지만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지원하고 소비진작을 통해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정책이 각 지자체와 정부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외국인은 제외하거나, 결혼이주민과 영주권자 정도만을 포함시키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기존의 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테두리를 따른다는 이유를 대며 내국인과 가구를 구성하고 있는 외국인, 난민인정자 정도만 지급대상에 포함시켰고 경기도는 처음에는 외국인 전체 제외라고 했다가 반발이 커지자 결혼이주민과 영주권자를 포함시켰다. 중앙정부의 재난지원금 역시 결혼이주민과 영주권자에게만 주는데 이러한 정책은 대다수 이주민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3개월 이상 장기체류 이주민이 전체 230만 명 가운데 173만 명 정도인데 이 중에서 결혼이주민과 영주권자는 29만 명 정도여서 144만 명이 제외된다. 정부는 ‘결혼이민자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높은 경우 및 영주권자’를 이유로 말하고 있는데, 내국인과의 관계만을 보는 것은 차별적 발상이며 피해지원 정책으로서도 근거가 희박하다. 예를 들어, 취업 비자나 동포 비자, 거주 비자 등을 가지고 장기체류를 하는 이주민, 사실상의 생활터전이 여기에 있는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와 연관성이 낮다고 볼 수 없다. 혹여 주민등록 전산을 이용하여 정부 재난지원금을 빨리 지급해야 한다는 실무적인 이유가 배제의 근거로 작동하는 것이라면(모 지자체의 자료에 이유로 나와 있기도 하다)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정책 대상으로서 이주민은 유령과 같이 보이지 않는, 아니 정부 당국이 보려 하지 않는 존재였다. 여기에 재난 시기 ‘국민’ 중심 정책으로 지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인종주의적 포퓰리즘이 더해지면서 이주민 배제 정책이 심화되는 것이 아닐까. 재난지원정책에서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 이주민이 광범위하게 배제되고 차별받을 이유는 없다. 재난지원금에 있어서도 평등하게 지원해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 무권리가 두드러지다
이주노동자 숫자에 비해 확진자는 거의 없었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사실상 격리 상태에 있어서 외부와 교류·접촉이 별로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여진다. 많은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를 사업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본인들도 무서워서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터와 일터에 붙어 있는 숙소만 오가는 생활을 하는 이주노동자가 바이러스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었다. 내국인들은 출퇴근하는데 이주노동자는 감염 의심자 취급을 당해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차별적 상황이 비일비재 했던 것이다. 일례로 이주노조의 어떤 조합원은 3개월씩이나 외출을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급휴직, 해고 등이 급증하는데 이주노동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강제로 동의서를 쓰고 혹은 형식적 동의서조차 쓰지 않고 몇 개월씩 무급휴직을 당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은 이들, 임금체불 등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이나 무급휴직자 지원, 실업급여 등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는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비자 이주노동자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용허가제(EPS) 이주노동자(아시아지역 16개 국가 출신)와 방문취업제 동포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이 의무가입이 아니고 임의가입이어서 사업주가 거의 가입해주지 않는다. 고용유지지원금, 실업급여 등은 고용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이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도입 논의가 되고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사실 ‘전체 취업자 고용보험’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3D업종의 저임금 장시간 열악한 노동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라는 성인노동력 형성에 한국사회는 별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사회가 필요로 해서 들어온 이들에게 대우마저 차별적이고 그 차별이 재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문제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어려움으로 드러나고 있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업장에서 휴가를 받거나 사업장 변경을 위한 구직기간 3개월 동안에 본국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런데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의 자가격리 장소, 비용 문제가 있다.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는 노동자는 사업장 기숙사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러 명이 거주하고 주거환경이 열악하므로 자가격리를 할 수 없다. 그러면 사업주가 부담을 해서 격리장소를 따로 정해야 하는데 이를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구직기간에 있는 노동자는 소속 사업장이 없으므로 부득이하게 다른 장소를 찾거나 지자체의 격리시설에 입소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내기가 어렵다. 사업주가 필요로 해서 들어와 정부가 알선해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자가격리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부, 사업주, 지자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주민 혐오의 팬데믹
국내에서 코로나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중국출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사태 초기에 대림동 르포기사를 통해 이주민 밀집지역을 감염 위험 지역으로 묘사한 언론 기사를 필두로 해서 온라인 상에서 혐오 발언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중국출신 이주민들은 기피당하거나 식당, 간병, 건설 등의 일자리를 잃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받는 일을 겪었다. 아예 중국인 출입금지라고 써놓은 식당, 상점 등도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림동이나 안산에서 이주민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출신 이주민들도 바이러스 전파자 취급을 당하는 일이 마찬가지로 있었다. 외국인을 출입금지한 스파 시설은 국가인권위에 진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십수 년을 살았어도 지자체나 정부의 재난지원 정책에서 제외하는 것 역시 제도적 정책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주민 혐오는 세계적으로, 특히 서구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책임을 선동하는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정치세력들이 이를 조장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아시아계가 모욕을 겪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내에서 이주민을 혐오하는 이들이 서구에서 아시아계 차별에 대해서는 분노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내용인데 말이다. 위기 상황에서 내부 혹은 외부의 특정 집단을 표적삼아 책임을 떠넘기고 반감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은 사회적 결속과 연대를 해칠 뿐 아니라 방역 그 자체에도 해롭다. 결국 이러한 혐오에 대한 비타협적 비판과 더불어, 제도적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 근본적 대안일 것이다.
운동 진영에서는 초기에 마스크 구매 차별에 대해서 단체들의 연대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대응을 했다. 성서공단노조 같은 곳에서는 ‘평등 마스크’라는 이름을 붙여 자체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배부하는 활동을 펼치며 불평등한 방역정책을 비판했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에 즈음해서는 공동성명을 내고 코로나 사태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을 밝히는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재난지원금 배제에 대해서는 4월 초에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하는 한편 서울시와 경기도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를 통해 사회적 문제제기를 진행했다. 또한 5월에는 전국 이주인권단체 공동으로 청와대 항의 기자회견을 해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평등한 지원을 촉구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초기에 공적 마스크 구매 차별로 대표되는 방역 상의 배제에서 시작하여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배제에 이르기까지 이주민들은 정당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이주민권리·이주노동자운동 진영은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재난피해는 이주민도 똑같다.”며 끈질기고 일관되게 항의해 오고 있으나 재난 시기에 공동체 내외부의 적, 이방인을 상정하여 공격하고 배제와 차별을 강화하며 반(反)이주민 정책과 정서를 조장하는 행태는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종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공동체의 경계와 범위를 계속 질문하며 확장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