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0.06.22
‘임금동결론’은 허울뿐인 연대임금
코로나19 정세에 적합한 연대임금, 연대고용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에서 임금인상분으로 40조 원의 상생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앞서 일부 노동운동 활동가들도 코로나19 사태 대응책으로 “임금동결을 통한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전 경험으로 볼 때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한바탕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대화의 목적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사의 사회적 역할을 찾는 것이다. 노사 간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타협이 목적이 아니다. 임금동결을 통한 연대기금 조성 방안이 이런 목적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실효성과 지속성이 없는 정책
첫째, 실효성이 없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올해 죽자 살자 임금인상 투쟁에 나설 노동조합이 없다. 한국노총이 계산한 40조 원의 기금조성안은 관성적 임금인상 ‘요구안’을 노동자 숫자에 곱해서 만든 것이다. 과장이 심한 숫자다. 시쳇말로 ‘뻥카’로 노사정 교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부문에서 올해 임금교섭은 인상과 동결 사이가 아니라, 동결과 삭감 사이에 있다. 임금인상분으로 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 노사정 대화의 결론이 된다면, 보나 마나 생색만 내고 후에 계륵처럼 남을 작은 규모의 기금 하나 만들고 끝날 것이다. 대기업, 공공부문 노사가 경제적 기여는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노사정 대화라는 쇼를 통해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꼴이다.
둘째, 지속성도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한두 달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 짧아도 1년, 길면 2~3년간 이어질 수 있는 장기전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는 세계자본주의의 기저질환을 건드렸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2천 년대 중반부터 이어지는 이윤율 하락, 세계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정부 부채, 양적완화 통화정책이 야기한 화폐의 불안정성 증가, 중국 자본주의의 고도성장 부작용, 반세계화 포퓰리즘의 확대, 한국의 경우 여기에 더해 저성장, 고령화 심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런 세계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더욱 심각해졌다. 효과도 불확실한 임금동결 식의 ‘결단’으로는 장기간의 위기는 물론이거니와 1~2년을 예상해야 하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대처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도 못 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의 이번 제안도 그러하고, 사용자 측 대표들의 막무가내식 노동시간 유연화 제안도 그러하고,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는 노사 양측의 알리바이 쌓기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민주노총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떤 점에서 보면 더하다. 민주노총의 첫 번째 요구(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내려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는 현실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의회와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요구이다. 선정적이기만 할 뿐,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대기업, 공공부문 노사의 사회적 역할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공공부문 노사가 할 일은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피해를 구제하는 정책이다. 지금 절박한 것은 사회를 한순간에 바꾸는 급진적 정책 이전에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적당한 조치들이다.
충분한 방역, 충분한 구제, 적정한 재정관리, 지대추구의 규제 등이 이뤄져야 한다. 충분한 방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어가는 것이고, 충분한 구제는 고용유지지원확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실업부조 등을 확대하는 것이다. 적정한 재정관리는 오랫동안 방역을 할 수 있는 재정여력을 지속해서 확보하는 것이고, 지대추구 규제는 코로나19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이런 절박한 조치들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이윤 추구를 위해 방역을 소홀히 하는 사업주들을 감시하고, 고용 및 실업과 관련한 보험을 확대하기 위해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사가 사회보험료에 대한 책임을 높이며, 방역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민주노총 조합원을 포함한 고소득 계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조합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재난 사태로 인해 민간 부분의 여력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가장 후하게 누리는 집단이다. 또한, 코로나19 위기에도 가장 안전하다. 그래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위의 과제들에 더해서, 일자리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일자리를 잃은 청년과 고령층에게는 단기 일자리를 포함하더라도 고용을 최대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재정의 제한을 고려하면, 고임금을 유지하는 노동조합의 기득권 일부는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의 연대임금, 연대고용
이상이 코로나19에 필요한 연대임금, 연대고용 정책이다. 사회임금에 필요한 긴급한 재원을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가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임금을 매개로 한 연대이고,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민간에서 주저앉은 고용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도록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고용을 매개로 한 연대이다. 물론 연대임금, 연대고용의 핵심은 전국적, 산별적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 다수를 단결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기업별 체계로 굳어져 있고, 코로나19 사태는 너무나 다급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임금과 고용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기업별로 나뉘어 각자도생하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다.
참고로, 연대임금, 연대고용 정책의 키를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쥐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민간은 현재 대기업조차 정부 지원의 대상이 되는 형편이다. 앞장을 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도 공공부분일 수밖에 없다. 만약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코로나19 정세에서조차 자신의 이익 추구에 매몰될 경우,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될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절반 가까이도 공공부문과 연관이 있다. 위원장도 공공부문 출신인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화에서 이런 쟁점에 대해 솔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