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10.07

한국의 국가부채 현황과 위험 요인들

사회진보연대

 

국가부채 논란이 뜨겁다. 코로나19로 인해 재정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2020년에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4% 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둘러싸고 상반기부터 논란이 많았는데,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국가부채를 더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상징적인 사건이 작년 5월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의 일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을 40%선으로 유지하겠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40%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2020년 10월 5일, 홍남기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 60%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구체적인 한도는 시행령에 담기로 했고, 5년마다 국회 동의 없이 한도를 바꿀 수 있게 했다. 예산안의 중요 주체인 입법부를 무시하고 행정부가 재정준칙을 임의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기조 변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자료는 장기재정전망이다. 지난 9월 기재부는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실시해 국회에 제출했는데,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81.1%로 예상했다. 반면에 국회예산정책처는 같은 달에 발간한 장기재정전망에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158.7%로 전망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기재부가 앞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해서 재량지출을 크게 줄인다고 낙관적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예산정책처는 재량지출을 현행 추세대로 추산했다.
 
이 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낙관이 타당한지 따져본다. 한국의 국가부채 현황을 살펴보고, 어떤 위험 요인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저하와 인구 고령화는 역전할 수 없다면, 낭비되는 재정을 최소화해야 한다. 재정 낭비 측면에서 봤을 때 경계해야 할 건, 나쁜 부채를 양산하는 포퓰리즘이다.
 

국가 부채의 현황과 전망

 
한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얼마나 많을까?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여러 법과 국제기구에 따라 서로 다른 정의와 범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조세재정연구원이 2019년에 발표한 ‘국가부채 현황 및 재정위험 관리방안 연구’를 참고해 대표적 기준 4가지를 살펴보겠다. 이 기준은 모두 국내총생산(GDP)의 몇 퍼센트인지 나타낸다. 이렇게 표시하는 이유는 국가별로 경제력이 상이하므로, 절대적인 액수보다 상환가능성을 판단하기 좋은 지표이기 때문이다. 지표별로 발표시기가 다른데, 발표된 가장 최신 수치를 인용했다.
 
먼저 국가채무(D1)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채무만을 대상으로 한다. 2019년 기준으로 GDP의 38.1%다. 지난 9월 국회예산정책처의 발표에 의하면 2020년 예상치는 44.5%다. D1에는 공공기관·공기업의 부채나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채(예컨대 연금 관련)는 포함하지 않는다. 95% 이상이 국채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서 국가부채 비율을 이야기할 때 주로 기준이 되는 게 바로 이 지표다.
 
일반정부부채(D2)는 D1에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합산했다. 2018년 기준으로 GDP의 40.1%다. 같은 기간 D1은 35.9%이므로 약 4% 포인트 정도 더 많다. D2는 부채를 계산하는 방법상으로도 D1보다 좀 더 포괄적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재정건전성을 비교할 때 가장 많이 쓰인다. 공공부문부채(D3)는 D2에 비금융공기업의 부채까지 합산한 수치다. 공기업을 없앨 생각이 아니라면, 사실상 D3까지는 정부가 최종적으로 책임진다고 봐도 합당하다. D3는 2018년 기준 56.9%다.
 
마지막으로 국가결산부채가 있다. 중앙정부의 부채만을 계산하기 때문에 포괄 범위는 좁지만, 향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채를 모두 포함한다. 2019년 기준으로 1743조 원인데, 이 중 공무원·군인 연금충당부채가 944조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공무원·군인 연금충당부채다. 쉽게 이야기하면 향후 70년간 지급될 연금액수를 모두 합한 것이다. 따라서 944조 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매년 연금보험료를 걷어서 지급하면 된다. 다만 공무원·군인 연금은 적립금이 소진된 상태라, 모자란 금액은 국고보조를 받아 지급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공무원 연금은 2조 2800억 원, 군인연금은 1조 5천억 원의 적자 보전금을 받았다.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수치에 의하면, 한국은 단기간 내 재정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다.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는 여러 경제적·정치적 요인이 있는데, 특히 한국이 취약한 요인들이 있다. 또 장기적으로 국가부채가 굉장히 높은 수치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가계부채의 부담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서 가장 큰 우려를 표하고 있는 위험 요인은 바로 가계부채다. 한국 가계부채는 2020년 1분기 기준으로 GDP 대비 97.9%다. 이는 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가계부채 수준(95.9%)보다 높다. 증가속도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2분기 말 기준 166.5%로 2015년 1분기 130%에서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직전에 같은 비율이 140%도 안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계부채가 국가부채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계부채가 부실화되면 그걸 구제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국가부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7년 미국의 정부채무는 GDP 대비 64%였지만,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2012년 100%까지 급상승했다. 비슷한 사례로 아일랜드와 스페인이 있다. 아일랜드 역시 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부동산거품 폭발과 가계부채 부실화가 은행위기로 이어져 이를 구제하면서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2007년 정부부채 비율은 25%에 불과했지만, 2012년에는 120%까지 치솟았다. 스페인 역시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은행위기를 겪었다. 2007년 정부부채는 36.2%였지만, 2012년에는 85.7%까지 증가했다.
 
정부가 포기할 수 없는 두 경제주체가 부도의 당사자가 된다. 바로 가계와 은행이다. 기업은 부실화되면 청산이라는 방법을 통해 스스로 책임지게 할 수 있다. 남은 자산을 매각하면 은행은 채권을 회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가계부채는 대부분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것들이다. 주택을 매각하면 저소득층은 당장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택을 매각하지 않으면 은행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망한다. 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은행 대량 파산 사태가 국가 경제 붕괴로 이어진다고 보았던 미국 중앙은행은 결국 은행이 가진 주택담보부증권을 모두 사주었다.
 
한국에서도 부실화된 가계부채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할 수도 있다. 결국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하기 전에 부채를 감축해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때문에 이자율이 사상 최저 수준이기 때문이다. 저금리를 유지하면 가계부채를 감축할 수 없고, 금리를 올리면 갚아야 할 이자가 증가해 가계부채 연체율이 급증한다. 물론 가계부채가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닌 경우를 대비해서 재정여력을 마련해 놓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경제성장률과 불안한 이자율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더 낮아질 거라는 점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에서 분모에 해당하는 GDP 증가속도가 점점 더 느려진다는 뜻이다. 분자의 증가속도는 부채에 매겨지는 이자율에 비례한다. 세입과 세출(국채 이자 상환액은 제외)이 일치하는 균형재정을 가정해도, GDP 증가율이 이자율보다 낮아지면 GDP 대비 국가부채 수치는 장기적으로 무한대로 증가한다. 이러면 세금을 계속 올려서 이자를 갚거나, 국가부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고, 앞으로도 떨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과 조세재정연구원의 2017년 공동연구에 의하면,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초가 되면 1%대로 떨어진다. 2030년대부터는 0%대로 떨어진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부터 이미 경제성장률은 하락세였는데, 2017년 3.2%, 2018년 2.9%, 2019년 2.0%였다.
 
그렇다면 관건은 이자율이다. 한국의 이자율은 경기변동에 따라 한국은행이 정하는 것이 기본원리이지만, 실제로는 더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기축통화국, 특히 미국의 금리다. 한국은 미국보다 낮거나 비슷한 금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미국의 금리가 더 높으면,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가려고 외국 자본이 한국에서 대량 이탈해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의 본원통화인 원화의 지속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금융과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환율 변동성이 가장 큰 편에 속한다.
 
특히 경제위기 시대에는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져, 수익률과 관계없이 기축통화 발행국으로 자본을 이동시킨다. 이번 코로나19 창궐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도 전례 없는 보건위기와 경제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에서 대량의 자본이 빠져나와 미국으로 향했다. 이는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이자율을 정하는 데 다른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뜻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고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의 자본 도피가 일상화되었다. 따라서 자본 이탈의 위험이 낮아서 초저금리를 장기간 지속할 수 있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잠복된 부채라 할 수 있는 공공기관부채(D3)까지 포함한 부채비율이 높고, 인구위기와 저성장은 3만불 경제에서 가장 심각하며, 금융규제 부재로 인해 대외 자본유출이 빠르고 크다. 이런 점 등이 정부의 지불능력을 지속해서 위협하는 가운데, 그나마 지속되고 있는 무역흑자가 유지될 수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투자자들이 인식하는 해당 국가의 위험도다. 국채를 사는 사람이 해당 국가가 빚을 못 갚을 것 같다고, 즉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국채를 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국가는 국채를 팔기 위해 더 높은 이자 지불을 약속해야 한다. 이를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 하며 개별 국가의 이자율을 높이는 중요 원인이다. 리스크 프리미엄이 증가하는 대표적인 상황은 전쟁이나 경제위기지만, 최근에는 포퓰리즘도 중요하다. 이탈리아 중장기 국채 이자율은 코로나19로 비상사태를 맞았던 2020년 봄보다 2018년 5~6월에 훨씬 더 높았다.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선거 승리 후 내각을 구성하면서 이탈렉시트를 주장해 온 경제학자 파올로 사보나를 경제장관으로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경제성장률을 반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이유에서든 이자율을 대폭 인상하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부채는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는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르거나 정부가 포퓰리즘적 경제정책을 시행해도, 이자율이 상승해 부채가 증가할 수 있다.
 

나쁜 부채를 양산하는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위에서 국가부채 증가의 위험과 한국의 취약성을 잔뜩 지적했지만, 부채를 활용해서라도 재정을 투입해야 할 시기도 있다.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생산과 수요가 모두 감소하기 때문에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쓸 때 쓰더라도 제대로 써야 한다. 지출의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는 연구와 토론이 꼭 필요하다.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선거 승리나 지지율 확보를 위해 발행하는 국가부채는 가장 질이 나쁜 부채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런 연구와 토론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코로나19를 구실로 공공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에 대한 면제 조처가 쏟아지고 있다. 객관적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릴 순 있지만, 조사 자체를 하지 않으면 나쁜 부채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차기 민주당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술 더 떠, 권력으로 연구와 토론을 압살하려는 듯 보인다. 지난 9월 조세재정연구원이 지역화폐정책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간하자, 이재명 도지사가 공개적으로 연구원을 적폐로 낙인찍고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포퓰리즘 세력은 근거없는 낙관주의로 노동자도 자본가도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이윤율이 하락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이라는 사실을 냉정히 인식해야 한다. 시리자와 같이 2010년대 유럽에서 집권했던 포퓰리즘 정부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당선 후에는 공약과 달리 긴축과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자신들의 낙관적 전망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경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달리 한국은 아직 재정 여력이 남아있기에, 그걸 모두 소진할 때까지 포퓰리즘 세력은 국가부채 발행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진보진영도 이런 문제에 맹목적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국가부채를 인수해주는 현대화폐이론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자는 주장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 ‘낭비’에 맹목적으로 일조하는 것은, 후세대 노동자에게 고통과 부담을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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