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0.10.27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과대평가는 한국사회에 해롭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0월 25일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이중적 위치만큼이나 그에 대한 평가도 양극단으로 나뉜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고질적 병폐인 재벌체제의 핵심이다. 이 회장이 삼성을 경영한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20여 년은 이런 이중성이 극단화된 시기였다.
운칠기삼
사실 이 회장은 운이 좋았다. 1987년 그가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 한국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중화학공업 과잉‧중복투자로 1980년대 중반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삼성도 마찬가지였다. 1985년 정부 당국은 위기에 빠진 반도체산업을 구한다며 대규모 특별 대출과 세제 특혜를 제공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85년 9월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가 초강세로 돌아선 이후였다. 엔고 덕에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는 저가 제품군에서 그럭저럭 일본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상황이라 하겠다. 플라자합의가 없었다면 반도체사업은 대규모 투자 손실과 함께 주저앉았을 가능성이 컸다.
1995~96년 반도체 호황은 1980년대 후반의 연장선이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기업들은 플라자합의 이후 형성된 일본경제의 거품과 이후 거품 붕괴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초중반에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대규모 반도체 설비투자를 단행했는데, 이게 윈도즈 95 출시 이후 불어닥친 세계적 PC 판매 열풍과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운칠기삼 식 성공은 후유증도 큰 법. 1996년 하반기부터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출이 급감했고, 이건희의 또 다른 대규모 투자였던 삼성자동차가 대실패로 마무리되며 삼성 역시 국가 부도 사태의 주역 중 하나가 되었다.
삼성‘만’ 잘 나가게 만드는 힘
일본이란 경쟁자가 사라진 메모리 반도체 부분에서 삼성전자는 2천 년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건희의 반도체사업이 과대평가 받을 이유는 없다. 대만의 반도체사업과 비교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대만의 반도체산업은 현재 메모리분야보다 훨씬 큰 시장인 비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비롯해 세계 4위 반도체 설계전문업체인 미디어텍, 이밖에도 다수의 강소기업들이 탄탄한 반도체 생태계를 꾸리고 있다. CPU의 세계2위 업체인 AMD와 인공지능 분야 최강자 중 하나로 부상한 엔비디아 창업자들도 대만계로 범(凡) 대만 반도체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 삼성 하나 보고 가는 한국과 비교해 대만 반도체산업이 더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대만이 이렇게 차이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재벌은 세습된 족벌 총수가 문어발식 계열사 집단을 경영하는 체제이다. 소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기 위해 계열사 자원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재벌 가족의 사익을 위해 다른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도 내부거래로 흡수한다. 그 결과 산업 전체가 소수 가문의 사익추구에 종속된다. 삼성이 바로 그러했다.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만드는 삼성은 효율성을 위한 수직계열화를 넘어 문어발식 확장과 내부거래를 수십 년간 이어오고 있다.
정리해보자. 삼성은 잘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이 지배하는 산업에서는 삼성‘만’ 잘 나간다.
정치를 4류로 만든 2류 기업
이건희 회장의 말 중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이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이다. 1995년 4월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었다. 기업규제를 풀어주지 않는 정부를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망친 주범 중 하나가 이건희였다는 점에서 이는 그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할만하다.
이건희 씨가 회장으로 취임한 1987년은 민주화 이후 선거 정치가 활발해지던 시기였다. 당연히 막대한 선거자금도 필요해졌다. 삼성은 이 상황을 최고로 잘 이용한 재벌이었다. 이전까지 군부 폭력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던 삼성은 이때부터 정치를 자신의 금권으로 포획해버렸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삼성 안기부 X파일 사건, 차떼기 사건, 안희정 정치자금 사건, 박근혜 게이트 등등 정경유착 부패 사건에는 삼성이 끼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삼성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법 규제를 바꿨고, 특히 편법 불법의 종합판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정치권만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언론은 광고주 지위에서, 검찰, 법원, 공정거래위원회는 퇴직 후 고용주 지위에서 포획했다.
이 회장은 한국사회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삼성을 경영했다. 그리고 삼성은 1987년 이후 민주화 개혁의 중요한 시기를 망쳐놓았다. 제도는 시작점이 중요한데, 한국의 민주화는 삼성으로 인해 금권정치라는 후진국의 유산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금권정치의 잔재가 지금도 이어진다. 제도의 공정성을 확립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일부 기업의 매출과 순익 증가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삼성은 자신이 2류가 되기 위해 정치를 4류로 만든 기업이었다.
올바른 평가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독보적이다. 삼성 없는 한국경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고도성장과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시대가 그의 성공을 만들었지, 그가 시대를 만든 게 아니다. 그는 족벌경영과 금권정치라는 21세기 한국 발전을 제약하는 큰 장애물을 남겨놓았다. 우리 시대는 이 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 회장에 대한 우상화는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은폐한다. 역사적이며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