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0.11.03
(전태일50) ② 민주당은 전태일의 친구였을까?
(전태일 이후의 노동‧경제 50년 -우리가 풀지 못한 역사적 난제와 노동자운동의 현재적 과제) 소책자의 글들을 네 차례에 걸쳐 온라인 버전으로 공개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작년 49주기에는 “열사 정신 계승”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민주당의 정치인들도 매년 기일이 되면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전태일 누나인 전순옥 씨는 2012년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 비례 1번으로 국회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전태일 열사에 대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친노동 이미지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0년 역사를 따져보면, 민주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는 그야말로 악연이었을 뿐이었는데요.
현 민주당의 친노동 이미지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신민당)가 1970년 11월 말 전태일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다음 해 대선에서 친노동으로 평가받는 ‘대중경제론’을 주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노동자 편을 들면 ‘빨갱이’라는 낙인찍히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는 나름 대범한 도전을 한 것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정책이 실제로는 작동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의 수출 대기업 중심 정책을 수입대체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대중경제론의 핵심이었기 습니다. 그러나, 수입대체는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서 이미 20세기 초중반 실패로 검증된 것입니다. 중소기업 중심 역시 대만 같은 국제 분업구조 상의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 한 공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경제정책에 대한 적합한 비판은 앞장에서 봤듯 무리한 군사적 중화학공업화의 폐해를 개혁하는 것이었어야 했는데요.
이미지만 친노동일 뿐 현실에서 작동 불가능한 그의 정책은 후에 그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김대중은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이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가 있었다고 자평하며, 미국이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은 노동유연화를 무자비하게 밀어붙였습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가 적절한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데도 김대중으로부터 시작하는 현 민주당의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1987년 야권 단일화를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은 1986년, 1987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대선 출마 포기 약속을 했지만, 결국 이를 뒤엎고 당시 야권의 중심이었던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를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전두환 후임인 노태우의 당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군부 정권의 연장은 노동운동에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노동운동 성장에 걸맞은 노동법 개정이 지연되었고, 군부와 재벌의 협공으로 가까스로 성장하던 초기업노조 운동이 침체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은 1988년 지역별노동조합협의회(지노협)을 건설하며 빠르게 기업별 노조 체계를 벗어나 전국적, 산업적 조직과 제도적 변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국회도 제3자개입금지 폐지, 파업권 보장 등 노동기본권을 정상화하는 노동법 개정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노태우 당선으로 인해 노동법 개정은 물거품이 됐고, 노동운동의 초기업적 운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7년 12월 마침내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은 취임하기도 전에 국가 부도를 협박하며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는데요. 더불어 노사정 교섭구조의 첫 시작을 망쳐놓아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이 노사정 교섭에 트라우마를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김대중만의 민주화가 노동운동의 성장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와 2004년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임금과 고용의 격차를 고착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개혁의 기수를 자처했지만, 그 개혁은 금융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였을 뿐이었죠. 청와대와 여당은 노동운동보다 오히려 삼성과 거리가 가까웠습니다. 이때는 군사독재 시절만큼 노동자가 많이 죽어나기도 했습니다. 임금 격차와 비정규직 증가도 노무현 집권 시기가 산업화 이후 가장 컸습니다. 물론 이들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초기업적 노사관계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개혁에 대해서는 보수적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전형적인 노동자에 대한 포섭과 배제의 전략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박근혜 탄핵의 결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을 내걸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정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책 없이 추진한 최저임금1만원은 결국 각종 부작용과 최저임금에 대한 회의감만 남겨놓고 중단된 상태고, 비정규직 문제도 가시적 수치에만 집착하다 공정성 논란과 노노갈등만 키워놓았습니다. ILO협약비준은 파업권 제한을 은근슬쩍 포함해 독이 든 사과로 국회에 넘어가 있고, 야당 시절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 약속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친위부대를 자처하며 권력 연장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50년간 민주당의 일관된 태도는 야당 시절에는 여당을 비판하기 위해 노동운동의 편에 서지만, 여당이 되면 노동운동을 배반하고 심지어 침묵시키며 권력 유지에 집중합니다. 민주당은 전태일의 친구가 아니라 등골을 빼먹는 사기꾼이라 불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