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1.01.13
예고된 반란, 커져가는 분열을 마주하는 미국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친트럼프 시위대가 워싱턴D.C. 백악관 남쪽의 엘립스 공원에 집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불복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결집한 시위대에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할 것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갔고, 오후 2시 즈음에는 국회의사당 내부로 진입했다. 진입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국회 경찰 및 보안군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국회의사당 경찰 1인을 포함, 5명이 사망하고 수 십 명이 부상당했다. 바이든 당선자의 대통령 당선을 승인하기 위해 모였던 양당의 상원, 하원의원들은 시위대의 공격으로부터 일단 피신했고, 국회의사당 내의 시위대가 해산된 이후에 다시 모여 바이든 당선자의 대통령 당선을 승인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직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여겨진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까지도 시위대의 폭력적인 행태에 대해서 비판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폭동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인사가 줄줄이 사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이번 사태에 유감을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최근까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민주주의의 적들은 워싱턴의 끔찍한 장면을 보고 기뻐할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짓밟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치 이에 대답하듯이 중국의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당신들은 미국 관리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일부 언론이 홍콩에 대해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지금 미국에 대해서는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가?”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자부해온 미국, 게다가 민주주의의 핵심 기관인 국회의사당에서 발생했다. 그런 만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본 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짚이는 트럼프와 그 측근들의 호전적 선동의 문제를 살펴본다. 그리고 트럼프주의와 단절하지 못하는 공화당으로 인해 미국 국내의 분열이 큰 도전에 직면해있음을 이야기한다.
예고된 반란
대다수의 미국 언론은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11월 대선이 있기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결과 불복과 이러한 대통령의 행보에 맞춰 그의 지지자들이 폭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이러한 우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기간 내내 이어진 국민을 분열시키는 언사와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트럼프는 여성, 유색인에 대한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로 대표되는 인종주의적인 반이민 정책을 강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금융세계화 속에서 박탈감을 느끼던 미국의 저학력 백인 노동자층에게 특히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적이라는 데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 임기 3년 간 경제성장률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는 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이렇듯 크게는 백인 저학력 노동자 계층과 유색인을 단층선으로 미국은 심각한 분열 상태에 놓여있었다. 대규모 물리적 충돌에 대한 우려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11월 대선 직후에는 대규모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대선 직후부터 선거 사기에 대한 아무런 증거를 제출하지 못함에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유포했다. 그 결과 12월 첫 주에 실시된 미국 퀴니피악 대학의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 유권자의 77%가 11월 선거기간에 광범위한 선거사기가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45%가 지지했으며(반대 43%), 58%는 이번 시위가 평화적이었다고 응답했는데, 트럼프와 측근들의 선동이 지지자들에게 충분히 먹혀들었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또한 선거 후 몇 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소송을 통한 선거결과 뒤집기에 나서는 한편, 기자회견, 연설,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 대선 결과에 대해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소송에서 대부분 패배하는 가운데, 12월에 들어서자 그들은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을 표출하기 위해서 의회에서 선거인단 투표를 비준하기 위해 법이 정한 날인 1월 6일을 목표로 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반복적으로 워싱턴D.C.에서 있을 시위를 홍보했고, 선거 사기에 대한 게시글 역시 지속적으로 업로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에 따르면 선거일부터 1월 6일(현지시간)까지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200번 이상의 선거사기 게시물을 올렸다. 이 게시물들은 거의 350만 회 리트윗되었고, 900만 회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한편 트럼프의 측근들은 극단적인 폭력사태로 귀결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적극적인 행동을 요청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측근인 린 우드 변호사는 12월 9일, 친 트럼프 언론으로 알려진 NTD TV와의 인터뷰에서 “거리에서 곧 폭력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12월 14일,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 보좌관의 경우 보수매체인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군을 경합주에 배치하고 (즉, “제한된 계엄령”을 선포하고) “각 주에서 선거를 재시행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1월 6일 오전,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결집한 시위대에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고 특히 루돌프 줄리아니 변호사는 모인 군중들에게 ‘결투 재판’(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싸워서 이기면 무죄, 지면 유죄가 되는 재판의 일종)을 벌이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하고 충돌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이는 오랫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위대한 애국자들로부터 신성한 선거에서의 압승이 인정사정없고 악랄하게 박탈될 때 일어나는 일과 사건들”이라고 시위대를 동정하는 듯한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 그리고 지지자들은 사기로 점철된 대선 결과를 뒤집고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성스러운 행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싸워서 승리하여 모든 것을 얻거나 모든 자유를 잃는 선택지 속에서 그들은 싸우기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호전적인 행보를 보면 1월 6일의 사태는 대선을 전후한 시기부터 이미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제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트럼프주의 정당으로의 변모에 속도를 내는 공화당
이번 폭동 직후, 폭동 그 자체로 인한 충격과 폭동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내각 주요 인사의 대거 사임으로 인해 공화당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사건이 워터게이트 사건과 같이 하원의원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뿐만 아니라 당의 역사적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공화당 전국위원회 회의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 회의의 의장인 로나 롬니 맥대니얼이 국회의사당에 대한 시위대의 공격을 비난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포함해 그 어떤 연설자도 미국 정부에 대한 집단적인 공격을 선동하는 트럼프에 대한 암시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원들은 연이어 트럼프가 폭동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당내에서 계속해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내비쳤다. 네바다주의 여성위원인 미셸 피오레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내에서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세력이라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은 트럼프가 직접 선출한 맥대니얼 의장이 재신임됨으로써 명백해졌다. (물론 일부 의원들은 비공개적으로 대통령의 행동에 경악했다고 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면 보수진영에 대한 그의 열정이 식을 수도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대선분석부터 공화당이 트럼프주의 정당이 될 것인지에 대해 우려했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습득하고 점점 더 분열된 각자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세계 속에서 트럼프와 측근들이 유포한 거짓된 정보를 토대로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11월의 대선이 사기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어지는 맥락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에 대한 공화당 유권자들의 인식이 며칠 안에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폭스뉴스와 뉴스맥스 등은 이번 사태의 폭력성을 부정하지 않는 대신, 그 폭력을 자행한 사람들이 좌파, 안티 파시즘 운동의 구성원들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코노미스트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이번 폭동은 또 다시 트럼프 진영의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민주주의의 제도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가 여전히 그의 지지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공화당이 트럼프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반란이 오히려 그들의 파괴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해본다면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주의를 떨쳐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더욱 악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이번 사태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탄핵을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트럼프를 탄핵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의 조치는 지지자들로 하여금 트럼프가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는 예수로 인식되게 할 수 있다. 이번 반란을 보았을 때, 아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결국 유색인과 백인으로 대표되는 두 진영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당선 당시부터 국민적 통합을 강조해왔으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2020년 대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종정의가 주요 이슈가 되었다고 말한다. 2021년에도 두 상징적인 사건을 계기로 인종정의와 관련한 대립이 핵심적일 것으로 보인다. 조지아 주에서 라파엘 워녹 목사가 남부연합 주 상원선거에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당선된 사건과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반란, 이른바 ‘화이트래시’(Whitelash, 백인들의 반란)가 그것이다. 남북전쟁에서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깃발이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내에 다시 등장한 것은 이번 반란의 대립 지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전 세계가 우려했듯이 미국은 불과 몇 개월 만에 더욱 악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대선 직후, 민주당 내부에서는 좌파와 온건파 간의 대립으로 인한 분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이 다시 결집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안이 일단락되고 나면 내부갈등이 또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 자코뱅 매거진의 데이비드 시로타는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대선 불복 주장에 이어지는 쿠데타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음에도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무시해왔던 것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민주당 내부의 분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 내외부의 분열을 극복해야하는 데 더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극복해야하는 쉽지 않은 여정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