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1.22

교각살우의 위기가 아니라 족벌 경영을 개혁할 기회다.

이재용 재구속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교각살우의 위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구속에 대한 보수언론의 논평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부회장이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나,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반도체 경쟁을 지휘할 총수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소의 뿔을 바로잡겠다고 소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일부 언론은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건만 벌써 사면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으니 이 부회장 조기 석방을 위한 여론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심보다.
 
이 부회장 석방론의 근거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첫째, 총수가 없으면 수십조 원이 필요한 반도체 투자가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이 위험을 감당하면서 투자 결정을 하는 데는 제약이 크기 때문에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둘째, 국민의 공리(功利)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죄를 처벌해 얻는 정의의 이득보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경영할 때 얻는 국민의 이득이 더 크다고 보수언론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우선, 삼성전자 같은 세계 최상위 대기업의 이사회가 이병철의 손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회장이 된 이재용 씨보다 합리적 결정을 못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전의 오너 경영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왜냐면 이사회가 스스로 투자 결정을 하지 못한 이유가 족벌의 사익편취와 관련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바이오산업 투자나, 수십조 원 규모의 계열사 간 합병도 모두 이재용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었다. 지금 그 이유로 이 부회장이 감옥에 갇힌 것이다. 한국에서 오너의 과감한 결단은 사익편취와 관련된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이사회 주도의 경영이 과소 발전하는 폐단이 계속됐다.
 
다음으로 국민경제의 이득도 이재용 구속으로 얻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크다. 족벌이 피라미드형(또는 문어발식)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전형적인 중진국 또는 후진국형 기업 제도이다. 저소득 국가에서 선진국을 추격할 때 과감한 투자로 성과를 얻는 예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족벌의 사익추구 탓에 자원 배분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재벌 역시 1960~80년대 추격성장 시기에는 그나마 역할을 했지만, 혁신과 효율이 필요한 21세기에는 도리어 국민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도화된 경제에서는 당연히 대기업 주도 성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권 세습을 위해 족벌이 기업집단을 동원하는 체계는 이런 성장 전략과도 무관하다. 국가와 사회가 세밀한 제도로 기업집단을 감시하는 유럽식 모델과도 차이가 크다. 한국의 재벌은 국민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요컨대 이재용 구속으로 얻는 장기적인 국민의 이득이 단기적인 위험보다 크다.
 
정경유착과 사익편취의 상징인 이 부회장에 대한 처벌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한,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한국의 족벌 경영 세습에 대해서도 이제 제대로 제도적 개혁을 이뤄야 한다.
 
참고로, 이재용 구속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재벌의 불법, 편법 경영권 승계는 지금도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이다.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 경영권 승계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이에 대해 관망만 하고 있다. 심지어 산업은행은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오히려 도왔다. 민주당은 지난 국회에서 재벌개혁 3법(공정경제3법)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재벌개혁이란 이름으로 재벌 돕기에 나선 대통령과 민주당에 시민들이 엄중한 심판을 내릴 필요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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