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1.02.08
코로나19 사태와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후퇴, 한국은 예외인가?
지난 2월 2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자회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2020 민주주의 인덱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민주주의 지수를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정부의 기능, 정치참여, 정치 문화, 시민의 자유 등 5가지 범주를 종합해 산출하는데, 2020년 세계의 민주주의 지수는 5.37로 2006년에 이 지수가 처음 발표된 이래로 최저점수를 기록했다. 원인은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듯 코로나19 대유행이었다.
범주별로 보았을 때, 정부의 기능과 시민의 자유 범주에서 지수 하락이 두드러졌다. 코로나19 방역 실패와 정부 기능에 대한 불신, 봉쇄조치와 봉쇄로 인한 자유의 제한이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났다. 나아가 보고서는 포퓰리즘 정권, 권위주의 정권이 코로나19 대응을 명분으로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반대 의견을 검열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몇 가지 더 살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민주주의의 후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존재했던 추세라는 점이다.
세계의 민주주의 지수 추세는 2015년 5.55로 최고점에 도달한 이후 5년간 지속해서 하락했다. 이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상징되는 스트롱맨 정치 또는 우파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크게 확대됐다. 코로나19는 민주주의 후퇴의 촉매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후퇴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국제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전문가 중 64%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가 3~5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주주의 지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정치참여는 계속해서 상승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정치참여의 증가가 곧 민주주의의 발전과 동의어는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 미국 대선이었다. 이번 미국 대선은 역사적인 투표율을 기록했으나,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그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미국 민주주의는 도리어 여러 점에서 상처를 입었다. 포퓰리즘 정치 속에서 시민의 정치참여는 국민주권의 이상이 아니라, 결과에 불복하는 정치적 전쟁으로 타락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세계의 민주주의 후퇴에서 한국은 빗겨서 있을까. 보고서는 대만을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로 극찬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중국, 싱가포르 등과 묶어서 평가했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격리하는 데 다른 나라보다 유능했다. 4.15 총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총선은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앞서 봤듯 높은 정치참여가 곧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 위기를 등에 업고 총선에서 크게 승리한 민주당은 각종 부패 비리, 입법 폭주, 사법 방해 등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1월 래리 다이아몬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관련해 몇 가지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자신을 민주적이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사법부 독립, 검찰 독립, 정보사회 독립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반대자들과도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다. …(중략)… 단순히 많은 참여자가 있고 풀뿌리 정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적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야당의 권리, 비판의 권리, 반대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화하면 안 되는 중요한 정부 기관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의 인터뷰는 최근 여러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민주 독재’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코로나19 위기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는 정부 여당의 폭주를 시민들이 비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