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1.02.15
4월 보궐선거, 포퓰리즘을 심판하는 계기가 되어야.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 공약들에 대한 논평
4월 보궐선거가 포퓰리즘 정책 탓에 난장판이 되고 있다.
민주당 유력후보인 박영선 씨는 국유지에 아파트를 지어 평당 1천만 원의 공공주택을 내놓겠다는 ‘반값 아파트’공약을 제시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용으로 1조 원 기금을 마련해 임차료를 2천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주겠다는 정책도 밝혔다. 수직정원(공원을 수직으로 세우고 주택, 스마트 팜, 공공시설 등을 입주) 건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같은 건설 계획도 여럿 제시했다. 같은 당 우상호 씨는 코로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재난지원금 백만 원을 일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덮어 공공주택 16만 호를 짓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야권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안철수 후보는 손주돌봄 지원금을 1인당 20만 원 최대 40만 원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으며, 75만 호 주택 공급 계획도 이야기했다.
국민의힘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포퓰리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완전히 태도를 바꾼 것 같다.
‘나경영’은 이런 분위기를 집약해서 표현한다. 나경영은 국민의힘 유력후보인 나경원 씨가 대선 때마다 황당한 공약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허경영 씨와 비슷한 공약을 내고 있는 상황을 비꼰 말이다. 나 후보는 서울에서 결혼하고 출산하면 최대 1억170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허경영 씨의 출산 5천만 원 지원, 결혼 1억 원 지원, 주택자금 2억 원 무이자 대출 공약과 비슷한 것이다. 무상급식이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다 서울시장에서 사퇴했던 오세훈 씨는 8세 이상 전 시민을 대상으로 스마트워치 보급해 서울시가 건강관리를 행정적으로 담보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무상급식보다 더 과감한 무상 공약이라 하겠다. 부산에서는 가덕도 신공항과 함께 한일 해저터널도 건설하자며 민주당에 맞불을 놓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은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공론화되지 않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제출된 공약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이 과연 시민 복지에 도움은 되는 것일까? 아니 효과 이전에 현실성이나 있는 것일까?
소상공인, 노인, 결혼, 출산 지원금 등은 이미 비슷한 정책이 중앙정부에 의해 시행 중이다. 서울시가 이중 삼중으로 현금을 퍼주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시 재정 조건을 고려할 때 대부분은 현실성도 별로 없다. 국유지를 이용한 반값 아파트 공급은 당장 같은 당 의원들에게서 반박당하고 있으며, 수직정원, 고속도로 지하화 계획, 강변도로 위 아파트 건설, 한일 해저터널 등은 SF영화 같은 정책이라고 조롱받고 있다. 숫자만 난무하는 주택 공급방안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러 차례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고 평가받은 정책을 마치 처음 제시하는 것처럼 내놓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매표 행위라 불러도 과장이 아닌 포퓰리즘 정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배경에는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1차 전국민재난지원금’이 있다. 당시 민주당은 자신들이 승리해야 소득과 상관없이 최대 백만 원을 줄 수 있다고 대놓고 매표 행위를 벌였는데, 여야 모두 인정하듯 이 정책이 민주당 대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총선 패배의 원인이 재난지원금 같은 정책을 자신들이 선점하지 못한 것이라 평가하며, 총선 이후 기본소득 같은 각종 현금성 지원정책을 쏟아내기도 했다. 나경영 현상은 이런 평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총선의 학습효과로 말미암아 보궐선거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묻고 더블로 가”라는 식의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효율성과 실현 가능한 조건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는 선거공약은 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한다. 예로 총선 매표 행위로 실현된 1차 재난지원금은 정부의 엄청난 채무 부담을 고려할 때 피해계층 지원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DI는 1차 재난지원금의 3분의 1 정도만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앞뒤 가리지 않는 주택 정책도 마찬가지다. 의지만 앞세우다 역대 최악의 부동산 광풍을 일으킨 문재인 정부의 30여 번의 부동산정책이 단적인 반면교사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대선 전초전이다. 매표 경쟁으로 서울‧부산의 선거 당락이 결정된다면 내년 대선에서는 몇 배 큰 규모로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서울‧부산 시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이유이다. 포퓰리즘 공약들에 대해 매서운 비판이 있어야 하며, 그런 공약으로 당선되겠다는 후보들은 매몰차게 낙선시킬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