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건강과 사회
| 2021.03.24
공공병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아니라 개선이 필요하다!
공공의료를 위해 예타 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대응하려면 공공의료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는 가운데,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병원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020년 11월 4일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참여연대 등 173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삐뽀삐뽀 공공의료119 기자회견에서는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무회의를 통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며 공공병원 확충에 있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주요 요구안으로 내세웠다.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지역의료원 등 공공병원 설립이 필수적이지만 경제성과 수익성만을 잣대로 한 예비타당성조사가 방해물이라는 것이 근거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 대해 정부 투자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이다. 재정건전성 뿐 아니라 국가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 여겨지지만 의료시설과 같이 ‘공공성을 띤’ 사업에 한해서는 예타 면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는 과연 경제성만을 내세워 의료의 공공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제도일까? 이 글에서는 먼저 예비타당성조사를 둘러싼 동향을 확인하고 예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확인한다. 그 후 의료시설 설립의 경우 어떻게 적용되는지 분석함으로써 공공의료시설 설립에 있어 예타의 필요성을 검토한다. 결론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요구가 되기 어렵다. 공공의료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일이 절실한 지금 요구해야 할 것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둘러싼 정치
먼저 예타 면제를 둘러싼 정치적 지형을 확인해보자. 문재인 정부는 예타 면제에 특히 적극적이다. 이번 정부 들어 113개 사업, 95조 4281억 원 규모의 예타가 면제되었다. 박근혜 정부 25조, 이명박 정부 61조보다 더 큰 규모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까지 합치면 100조가 넘을 예정이며, 이는 역대 최초다. 최근 공공병원에 대해서도 예타 면제가 이루어졌다. 복지부는 12월 13일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대전 동부권, 부산 서부권, 경남 진주권 의료원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것을 밝혔다.
민주당은 입법에 힘쓰고 있다. 2020년 10월 12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공공병원 설립 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토록 하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12월 9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공공보건의료기관의 개설 및 운영 관련 사업의 예산을 편성하는 경우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영 병원을 건립해 공공병원을 확충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가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정책에 활용되고 있다는 논란도 많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위에 제출된 보고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안정성, 시공성, 운영성, 경제성 등 7가지 항목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서인 국토부가 가덕도특별법 검토보고서를 통해 반대 의사를 밝힐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는 공항 입지를 가덕도로 확정하고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입법했다.
예타 면제가 정치적 의도로 활용되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면 공공병원만을 예외로 두기는 어렵다. 의료 수요도 적고 정책상 우선순위도 떨어지는 곳에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의 요구로 공공병원이 설립되는 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예타 면제가 아닌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비타당성제도란?
우선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자체를 검토해 보자.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1999년부터 공공투자사업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정부 재정이 투여되는 대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책적, 기술적 타당성에 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근거다. 수요가 없거나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 추진될 때 생기는 국가재정의 압박요인을 없애고 사업비 증액과 사업계획 변경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국가재정법 제38조 및 시행령 제13조에 따라 기획재정부장관 주관으로 실시되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에서 총괄하여 수행한다. 국가재정법상 예타의 대상이 되는 사업은 다음과 같다. 의료시설 부문 사업의 경우 [1.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에 해당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국가재정법 제38조)
1.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2.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14조제1항에 따른 지능정보화 사업
3. 「과학기술기본법」 제11조에 따른 국가연구개발사업
4. 그 밖에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 및 관광, 환경 보호, 농림해양수산, 산업ㆍ중소기업 분야의 사업
단 예외적으로 다음 사업에 관해서는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국무회의를 통해 면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예타를 면제할 수도 있고, 정부가 의지를 발휘해 특정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라는 요구 역시 가능한 것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국가재정법 제38조)
1. 공공청사, 교정시설, 초ㆍ중등 교육시설의 신ㆍ증축 사업
2. 문화재 복원사업
3. 국가안보와 관계되거나 보안이 필요한 국방 관련 사업
4. 남북교류협력과 관계되거나 국가 간 협약ㆍ조약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
5. 도로 유지보수, 노후 상수도 개량 등 기존 시설의 효용 증진을 위한 단순개량 및 유지보수사업
6.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3조제1호에 따른 재난(이하 “재난”이라 한다)복구 지원, 시설 안전성 확보, 보건ㆍ식품 안전 문제 등으로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
7. 재난예방을 위하여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은 사업
8. 법령에 따라 추진하여야 하는 사업
9. 출연ㆍ보조기관의 인건비 및 경상비 지원, 융자 사업 등과 같이 예비타당성조사의 실익이 없는 사업
10.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 사업목적 및 규모, 추진방안 등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수립되었고,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업
예비타당성조사는 경제성 평가, 정책성 평가, 지역균형발전 평가를 종합하여 이루어진다. 경제성 평가는 비용-편익 분석을 기본으로 한다. 사업 시행에 따라 장래에 발생할 비용과 편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하여 비용/편익 비율이 1보다 큰 경우 경제적 타당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정책성 평가는 사업 추진여건,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정책효과 등 경제성 평가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고려하여야 할 평가요소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지역균형발전 평가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상위의 정책목표를 사업에 반영하기 위하여 낙후지역에 파급효과가 큰 사업에 대해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이상의 세 영역에 대한 분석 결과를 종합(AHP 분석)하여 사업의 추진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도출한다. 종합 과정에서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간의 상대적 중요도를 판단해 가중치를 설정한다. 의료시설의 경우 건설사업으로, 비수도권의 경우 경제성 30~45%, 정책성 25~40%, 지역균형발전 30~40%의 가중치를 부여받는다. 수도권의 경우 경제성 60〜70%, 정책성 30〜40%의 가중치를 부여받는다.
예타 마지막 단계에서는 종합평점을 근거로 사업시행 대안과 사업미시행 대안 간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정책담당자에게 제시할 정책제언을 도출한다. 사업시행 대안이 사업미시행 대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종합평점(0.5 이상인 점수)을 얻으면 사업의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상이 예비타당성조사의 일반론이라면 의료시설 사업의 경우에는 각 과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타를 총괄하는 기관인 KDI가 2011년 제출한 <의료시설부문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표준지침>(이하 ‘지침’)을 바탕으로 이를 알아보자. 또한 최근 10년 이내에 시행된 의료시설 예타인 마산의료원 신축사업(2011)과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2014)을 예시로서 확인해 보자.
의료시설의 경제성 평가
의료시설 예타에서 경제성 평가는 비수도권의 경우 30~45%, 수도권의 경우 60~70%의 비교적 큰 가중치를 갖는 항목이다. 예타 면제를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예타가 경제성과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병원이 조사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공공의료기관은 수익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경제성을 평가해 설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를 잘못 이해한 주장이다. 의료기관이 주민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도 경제성 평가에서 편익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타의 비용-편익 분석은 기업 등에서 기준으로 삼는 재무성 분석과는 달리 사회적 관점 또는 국민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타에서의 편익은 ‘병원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아닌 ‘사업으로 인한 사회적·국민경제적 효용가치가 어떠한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공공의료시설이 담보해야 할 기능 중에는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이 있다. 응급 외상 환자를 살렸을 때 병원이 적자를 본다고 가정하면 재무성 평가의 기준에서는 응급의료서비스로 인한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 그러나 예타 경제성 평가에서는 응급 외상 환자가 살아남아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이 있다면 이를 편익으로 산출한다. 즉 응급 외상 환자를 살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사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에서 가점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지침은 ‘의료시설의 경우 편익이 대부분 비정형적이기 때문에 비정형적인 요소들을 정량화하여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것이 편익 추정의 또 다른 관건’이라고도 밝히고 있다. 지침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을 비롯해 편익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의료시설부문 사업 편익의 유형
- KDI, 의료시설부문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표준지침 연구
1. 기존에 원거리 의료시설을 이용해야 했으나 인근의 신규 의료시설을 이용하게 되면서 얻게 되는 시간 절감과 교통비 절감 편익
2. 양질의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인한 응급환자의 사망률 감소에 따른 경제적 가치
3. 신규 의료시설 이용에 따른 건강개선 효과
4. 의료시설 사업에 포함된 의료기술개발, 진료서비스의 질적 수준 및 연구능력 향상
5. 월등한 진료시설 이용으로 인한 진료, 투약, 주차탐색 시간 절감으로 만들어지는 생산성 증가
아래 표에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예타에서 산정한 편익의 사례가 드러나 있다.
마산의료원 신축사업예비타당성조사(2011)를 예시로 편익 산출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자. 조사에서는 응급의료서비스 제공, 장기요양병상 증설, 전염병 관리에 따른 편익을 산출한 바 있다. 지역응급의료센터 설립에 따른 편익은 연 60.02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이는 2006-2010년간 해당 진료권의 응급사망자 평균 수인 158명과 적절한 응급치료가 제공되었을 때의 사망예방률인 6.7%를 종합한 것이다. 장기요양병상 증설에 따른 편익은 연 10.34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장기요양병상 46병상을 증설했을 때 연간 약 368명의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장기요양환자의 평균 재원일수가 45.6일이며, 만성질환자 1인의 요양의료서비스로 인한 가치가 연간 2248만 원임을 고려한 것이다. 결핵관리사업의 편익은 10.63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결핵환자를 격리수용한다면 최소 10배의 추가적 결핵 감염을 막을 수 있음은 근거로, 추가 감염자 수와 감염자 연간 치료비용, 사망으로 인한 비용을 종합해 도출되었다. 그 외에도 쯔쯔가무시증 예방조치에 대한 편익을 0.62억 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감염 위험이 있는 농가에 ‘쯔쯔가무시증을 예방하는 데에 얼마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직접 조사하고 진료권 내 농가 수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도출하였다.
이처럼 의료시설 예타의 경제성 평가는 의료시설의 공공성에 해당하는 요소를 구체적인 편익으로 계량화하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평가를 제대로 했다는 전제하에, 의료기관이 경제성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응급외상환자를 살리거나 지역의 감염병 위험에 대응하는 등 사회적 편익이 발생하는 계획을 제대로 제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경제성 평가에 매몰되어 공공성을 등한시할 수 있다’는 비판은 과도한 주장이다.
의료시설의 정책성 평가, 지역균형발전 평가
의료시설 예타의 정책성 평가는 비수도권의 경우 25~40%, 수도권의 경우 30~40%의 가중치를 가지며 정책일치성, 사업수용성, 일자리 효과, 환경성, 안정성, 재원조달 위험성 등을 평가한다. 의료시설 사업에서는 정책일치성이 제대로 평가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침에서는 정책성 평가에서 ‘건립하고자 하는 보건의료시설이 공공의료의 확충을 위하여 그 동안 정립된 관련계획과 정책의 방향성과 합치하는가’를 주요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다. 예컨대 다음 계획과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즉 정책성 평가에서는 ① 해당 의료시설 사업이 기존의 공공의료 관련 정책방향과 부합하는지, ② 해당 의료시설이 공공의료 시스템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 예비타당성조사(2014)를 예시로 보자. 조사에서는 사업의 추진 경위로 ‘에볼라, 사스 등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재난대응병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부지를 이전하여 확장해야 함’이 제기되었다. 그에 따라 정책성 평가에서는 상위계획으로서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10-2020)에서 ‘국가가 감염질환관리, 인구집단 건강관리 등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음’을 근거로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였다. 단, 보고서에서는 ‘종합적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의 현대화 사업은 어느 정도 정책방향과 일치하나, 이전과 관련한 상위계획이 명확하지는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이 꼭 국가중앙의료원 확장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발표한 공공의료 발전 로드맵인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에는 공공병원 신축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디에 공공병원이 설립되어야 하는지, 설립된 공공병원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시도한 적 없다. 정부의 공공의료 로드맵이 미흡한 현실 속에서 정책성을 평가할 예타까지 면제된다면, 공공의료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공공병원의 양적 확대만이 이루어질 우려가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의료시설 예타에서 비수도권의 경우 30~40%의 가중치를 가진다. 인구증가율, 인구당 의사 수, 노령화지수, 재정자립도 등을 종합해 지역낙후도지수를 책정하고 사업이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계산한 뒤 낙후된 지역에 파급효과가 큰 사업에 가점을 부여한다. 의료취약지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병원 설립 요구의 핵심 근거 중 하나였다. 이러한 주장은 취약지역일수록 지역균형발전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예타에 반영되는 셈이다.
예타 면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를 요구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타를 면제하는 것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병원 설립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면제를 요구한다. 하지만 앞서 검토한 것처럼 예비타당성조사는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해당 의료시설이 공공의료 체계 내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특히 한국은 일본에 이은 OECD 2위의 병상 과잉 국가다. 2017년 급성기 병상 기준으로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7.14로, 일본에 이어 2위이며 OECD 평균 3.67의 약 2배다. 과잉병상은 과잉의료의 수단이 되는 점을 고려할 때, 공공병원과 병상을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먼저 공공의료가 어떤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대응이 공공병원 예타 면제의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예타를 면제해서 지금부터 공공병원을 많이 지은들 코로나19 대응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민간의료기관이 84%에 달하지만 감염병통제법을 통해 민간병원의 협조를 이끌어내고 감염병 치료를 효과적으로 수행한 대만의 사례를 참고할 때, 공공의료 시스템 속에서 민간병상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역량이 더 중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공병원의 수 역시 국가적 공공의료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전체 시스템에 대한 더 넓은 고민과 해법이 필요하다.
지금 예타와 관련해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평가 기준을 개선하라는 요구다. 현재 의료시설 부문 예타 기준에는 감염병 대응을 평가하는 항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의료시설 사업계획에 감염병 관리가 있을 경우 경제성 평가나 정책성 평가의 일부로 평가하는 정도다. 그러나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최근의 코로나19 등 신종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공공의료시설이 국가적 감염병 사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아졌다. 그에 따라 의료시설 예비타당성조사 평가기준에도 감염병 관리 역량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시민사회의 개입지점 역시 여기에 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라는 단순한 해법 대신 구체적인 토론을 통해 공공의료 강화의 실제 내용을 밝히고, 예비타당성조사 평가기준을 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참고문헌
KDI. 마산의료원 신축사업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 2011.
KDI. 의료시설부문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표준지침 연구. 2012.
KDI.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보고서. 2014.
KDI.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의 이해. 2016.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예비타당성조사제도 운영의 현재와 미래.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