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21.09.17

광주의료원 설립은 시민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타당한 요구가 아니다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광주광역시가 광주의료원 설립에 열심이다. 지난 1월 광주의료원 설립 타당성조사 용역을 발주한 가운데, 4월 민관정 ‘광주광역시의료원 설립추진위원회’를 수립하였다. 7월 의료원 부지(서구 마륵동)를 확정하면서 15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에도 적극적이다. 광주광역시가 운영하는 시민제안플랫폼 <바로소통광주>에서는 광주의료원 설립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장이 1, 2호 서명자로 참여했다. 광주시는 마찬가지로 의료원을 시정과제로 내건 울산시와 예타면제를 공동목표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정부에 지방의료원 설립의 최대 난관인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의 행보에 광주지역 진보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도 동참하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국회 예결위에서 광주의료원 예타면제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캠페인을 벌였고, 정의당 이정미 대선후보도 광주의료원 예타면제에 의지를 밝혔다. 지난 2월에는 광주전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비롯해 열아홉 개 시민단체가 모여 <올바른 광주의료원 건립 시민운동본부>를 구성해 서명운동을 발의, 적극 홍보 중이다.
 
 
광주의료원이 광주시민의 건강권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상의 전제는 광주의료원 설립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근거를 살펴보자. 간단히 정리하면 광주광역시는 광주의료원을 통해 첫째, 광주시민의 건강권 확보(의료자원공급, 지역 공공의료체계 완결성 확보, 이용격차 해소, 안전망 강화, 만성질환 관리사업 등), 둘째,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 셋째, 헬스케어산업 발전, 이상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의료원은 시민의 건강권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공공의료원 설립으로 이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현재 광주의 의료자원과 공공의료체계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를 검증하려면 광주광역시 의료환경을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관련하여 광주광역시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올바른 광주의료원 설립 시민운동본부 출범 선언문>(선언문)을 참조하였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300 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의 90분 내 이용률이 7개 광역시 중에 가장 낮고, 30분 내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용률도 광역시 중 가장 낮다. (기준시간 내 의료기관 이용비율)
- 의료자원이 동구에 치우쳐있어 의료공급의 지역별 편차가 있다.
- 공공병원의 공공적 기능이 미약하고, 특정 1개 기관에 의존한다.
- 지역 병상공급 구조가 중소형 병의원이 중심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 법정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 등이 없어 감염병 및 재난응급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광주는 의료취약지다?
첫째, 기준시간 내 의료기관 이용비율(TRI)은 광주광역시에서도 드는 근거로, 지역주민환자의 총 의료이용량 중 기준시간 내 의료기관 이용량의 백분율을 의미한다. 기준시간 내 의료이용률이 낮을수록 취약하다는 의미다. 광주시와 시민단체는 광역시 중 값이 가장 낮다며 열악함을 강조한다.
 
출처 2020년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하지만 2019년 기준으로 광주의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TRI는 전국 평균 74.6보다 높은 83.3이며, 광역시/특별시 중에서는 울산 78.8, 세종 71.5 같이 더 낮은 시가 존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남은 47.5, 강원은 53.6으로 일반 도지역과 광역시급의 격차가 훨씬 크며 광역시 내의 격차는 크지 않다.
 
지역응급의료센터 TRI 역시 광주가 71.9인데, 전국 평균 60보다 훨씬 높고 울산의 60.4나 세종의 20.7보다 높은 수치이다.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 지정되는 더 중요한 응급센터인 권역응급의료센터 TRI는 광주가 88.5로 전국 평균 59.4보다 훨씬 높고 광역시 중에서는 대전 90.2, 서울 89.3에 이어 3위다. 여기서도 광역시를 제외한 전남, 충남 등 도지역과의 격차가 더 중요하다.
 
정리하면, 광역시만을 비교대상으로 열악함을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TRI 값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의료원은 전남, 강원 등 도지역에 필요하다고 보아야한다.
 
출처 광주의료원 설립 서명운동 홍보 카드뉴스, 바로소통광주
 
두 번째 근거는 지역별 의료격차다. 광주광역시는 카드뉴스, 보도자료 등에서 지역 내 격차와 지역별 격차를 혼용해서 인용한다. 지역별 격차를 주장하는 경우는 앞서 언급한 TRI를 근거로 하며, 지역 내 격차를 인용하는 경우에는 의료자원의 동구 쏠림에 근거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선언문>에서는 의료자원이 동구에 치우쳐있다며 지역 내 격차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광주광역시는 타 지역과 비교하였을 때 의료취약지인가? 광주지역 내 격차(광서-동남)는 심각한 수준인가?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실 김윤 교수팀은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눠 의료공급과 수요를 분석했다. 김윤 교수팀의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병원이 충분한 지역을 두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자급자족형과 의료중심지형이다. 자급자족형은 2차, 3차 병원이 모두 있고, 지역 내에서 의료를 충족하는 자체충족률이 높은 지역이다. 의료중심지형은 2차, 3차 병원이 모두 있고, 2차 이상 병원 병상 수가 자급자족형보다 높다. 자체충족률도 높지만, 외부 지역에서의 환자 유입률도 높다. 따라서 자급자족형과 의료중심지형은 공공병원 설립이 불필요한 지역이다.
 
광주는 광서(광산구, 서구)와 동남(북구, 동구, 남구) 두 개 중진료권으로 구분된다. 먼저 동남은 의료중심지형이다. 3차병원 2곳, 2차병원 1곳이 있으며 목포, 여수, 순천, 나주, 해남 등 전남권에서 환자가 유입된다. 광서는 2차 중심형-공급불균형형으로 분류된다. 2차병원은 있지만 3차병원은 없는 곳으로, 병원이 충분한 것은 아니나, 취약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보고서에서는 “대도시의 경우 인구수는 많으나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교통 환경이 좋아 분할한 진료권이 의료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큼.” 이라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공공병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도시는 지역 내부격차를 따지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광주 대진료권(광주광역시 및 목포, 순천, 해남 등)에는 3차병원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광주에 신규병원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순천, 목포 등의 2차병원을 강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이 경우에도 이미 존재하는 전라남도 순천의료원과 여타 2차병원의 강화를 우선 고려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요약하면, 광주광역시는 타지역과 비교했을 때 의료취약지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전남권역 내에서는 의료중심지로 역할하고 있다. 지역내부 격차는 대도시라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중요한 격차라고 보기 어렵다.
 
공공병원을 세워 비효율적인 병상분포를 개선하겠다는 오답
지역 병상분포가 비효율적이며, 공공병원의 공적기능이 미약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공병원 설립은 해답이 아니다. 김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공익적 민간병원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정부가 300병상미만의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여 해당 중진료권에서 2차병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며, 구체적으로 시설 및 장비 확충을 위한 장기저리융자, ‘공익적 민간병원 지역가산제’와 같은 수가 제도를 통해 지원한다. 공익적 운영을 담보할 수 있도록 1) 지역사회대표의 이사회 참여, 2) 필수의료서비스 제공 및 유지의무, 3) 감염병 및 재난시 대응을 위한 ‘감염병 관리기관’으로 지정 운영 등 요건을 갖추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병상을 효율적으로 재편하면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방식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광주는 이미 인구대비 병상수가 매우 많다. 2017년 기준 광주광역시의 총 병상수는 17,586개(요양병원, 한방병원, 특수목적병원 제외), 10만명당 병상수는 1,184개로 전국 2위, 특·광역시 중 1위다.
 
2017년 특·광역시 10만명당 병상수, 출처 KOSIS
 
병상수와 의료비는 비례관계에 있다는 점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201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OECD 국가들의 병상 수와 입원량·재원일수는 비례 관계를 보였다. 한국도 시도별 병상 수와 입원이용량의 상관관계를 따져봤을 때, 상관계수가 0.8을 나타냈다. (상관계수는 완전한 반비례 관계이면 –1, 완전한 비례 관계이면 1을 나타낸다.) 병상 수가 많은 시도가 입원량도 많고 재원일수도 길었다. 따라서 광주의료원으로 병상을 늘리는 것은 시민의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
광주시는 광주의료원 설립 근거로 감염병 관리 등 재난시기 대응역량 강화를 든다. 광주광역시에는 법정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 등이 없어 감염병 및 재난응급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애당초 광주의료원 주장이 처음 나온 배경에도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있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음압시설을 갖춘 감염병 전담 ‘광주의료원’”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올 3월 김종효 행정부시장은 “광주의료원 설립을 통해 재난상황이나 대규모 감염병 대응 역량을 키우고 공공보건의료지원단 및 감염병관리지원단 등과의 통합운영”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공병원이 부족해 코로나-19 대응이 어려웠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민간의료기관이 84%에 달하지만 감염병통제법을 통해 민간병원의 협조를 이끌어내고 감염병 치료를 효과적으로 수행한 대만의 사례를 참고할 때, 공공의료 시스템 속에서 민간병상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역량이 더 중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재난시기 공적의료 역할이 공공병원에만 전가된다면, 공공병원에서 일상적으로 담당하는 의료취약계층이 재난시기에는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민간병상을 적절히 동원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미 수차례 나온바 있으며,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하면서 저소득·취약계층 환자들이 곤란을 겪은 사례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의료공공성과 모순되는 헬스케어산업이라는 목표
광주시가 제출한 20대 대선 12대 공약과제에 따르면, 핵심공약과제 중 초지능형 헬스테크시티 인프라 마련의 하위 사업으로 광주광역시 의료원 설립을 꼽고 있다. 이 외에도 광주시는 의료·헬스케어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광주광역시 제20대 대선공약 중점사업
출처: 광주시, 제20대 대선공약 중점사업 20개 발표, 광주광역시, 210901
 
헬스케어 산업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는 공공의료원의 본질 자체와도 모순된다.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헬스케어산업은 당연히 공공성이 아니라 수익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광주광역시는 광주의료원이 AI 헬스케어 분야 기업 유치를 위해 테스트베드(Test-Bed)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거나 이미 존재하는 기술과 효과가 비슷하되 가격은 비싼 신의료기술의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다. 또,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윤만 따진다?
예타는 경제성과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하므로 공공병원은 통과할 수 없고, 따라서 예타를 면제해야한다는 주장은 어떨까. 공공의료기관은 수익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경제성을 평가해 설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를 잘못 이해한 주장이다. 의료기관이 주민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도 경제성 평가에서 편익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타의 비용-편익 분석은 기업 등에서 기준으로 삼는 재무성 분석과는 달리 사회적 관점 또는 국민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타에서의 편익은 ‘병원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아닌 ‘사업으로 인한 사회적·국민경제적 효용가치가 어떠한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공공의료시설이 담보해야 할 기능 중에는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이 있다. 응급 외상 환자를 살렸을 때 병원이 적자를 본다고 가정하면 재무성 평가의 기준에서는 응급의료서비스로 인한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 그러나 예타 경제성 평가에서는 응급 외상 환자가 살아남아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이 있다면 이를 편익으로 산출한다. 즉 응급 외상 환자를 살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효용이 있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에서 가점 요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예타와 관련해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평가 기준을 개선하라는 요구다. 현재 의료시설 부문 예타 기준에는 감염병 대응을 평가하는 항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의료시설 사업계획에 감염병 관리가 있을 경우 경제성 평가나 정책성 평가의 일부로 평가하는 정도다. 이 부분을 개선할 필요는 있다.
 
 
지금 광주에 공공의료원은 필요 없다
이상 광주광역시와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는 광주의료원 설립의 세 가지 근거를 따져보았다. 첫째, 광주는 의료취약지이며 의료격차가 존재한다는 주장. 주로 인용되는 기준시간 내 의료기관 이용비율에서도, 의료공급과 수요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광주광역시는 의료취약지가 아니다. 의료격차 역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과잉된 병상을 축소, 재편하는 것이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방향이다. 둘째, 감염병 등 재난상황에 역할하기 위해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 이는 공공병원 설립이 아니라 민간병상의 재편과 동원으로 해결해야한다. 셋째, 광주의료원으로 헬스케어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주장. 수익성을 추구하는 헬스케어산업은 의료공공성에 부합하지 않거나, 오히려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경제성만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면제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제도를 잘못 이해한 주장이다.
 
정리하면 광주시와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는 광주의료원 설립은 그 근거가 부적절하거나, 목표와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다. 광주의료원은 광주시민의 의료질 상승에도 보건의료 공공성 확대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시재정과 건강보험재정을 낭비하고, 의료비 상승을 야기할 것이다. 신중한 검토 없이 광주의료원을 건설한다면, 그렇게 지어진 의료원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병상과잉에만 기여한다면, 공공의료와 공공병원 무용론이 등장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광주의료원 설립을 지지했던 시민사회단체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광주의료원에 대한 철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해야한다. 필요하다면 공공의료원 설립에 반대해야한다. 물들어오니 노 젓자는 식의 태도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주제어
정치 보건의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