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2.02.26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의 목소리

올렉 보드로프

역자 해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러시아의 대규모 병력이 우크라이나 동부, 북부, 남부 국경에 일제히 진격한 지 하루 만에 수도 키예프가 포위되었다. 침공 첫날 이미 우크라이나인 사상자만 최소 450명 이상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거점 및 공항 등지에 대한 폭격을 포함한 러시아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사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주 내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었으며, 한국도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푸틴의 전쟁’을 거부하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즉각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러시아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중에서도 매우 뜻 깊다.
 
2월 25일, 러시아의 올렉 보드로프는 세계 20여 개국에 지부를 둔 국제 평화운동단체 ‘월드 비욘드 워’(World Beyond War, 전쟁 너머의 세계) 웹사이트에,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현지의 상황과, 러시아 내에서 진행 중인 반전 서명운동에 대해 기고했다. 이 글을 번역하여 여기에 싣는다. 영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올렉 보드로프는 러시아 핀란드만 남부해안 의회 회장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평화운동과 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2019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냉전 종식의 상징인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를 선언하고 러시아가 이를 뒤따르려 할 때에, 미러 양자가 중거리핵전력조약,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을 연장하고,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핵 군축 협정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미국-러시아 활동가 공동선언에 참여했다. 그는 체르노빌 참사 직후 조사를 위해 파견된 소련 과학자 출신으로서, 소련 핵실험들이 낳은 민간인 피폭과 환경오염의 참극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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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반전 시위. [출처: ABC News]
 
 
아래에 영어 번역문을 실은 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멈춰라!” 서명운동은 러시아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레프 포노마레프가 작성한 것이다. 이 서명운동에는 모스크바 시간 기준 2월 25일 오후 4시 현재, 나를 포함하여 50만 명이 넘는 러시아인이 서명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대피한 핵발전소 직원들을 위해 건설된 우크라이나 슬라보티츠 시의 알렉산드르 쿠프니에 따르면, 체르노빌 핵시설은 지금 벨라루스의 방사능 오염지역을 지나 들어온 것이 분명한 러시아 탱크들로 둘러싸여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관리하는 직원들은 출근을 허락받지 못해, 동료들과 교대하지 못하고 있다. 슬라보티츠 시 주민에 따르면, 슬라보티츠-체르노빌 통근 전철이 벨라루스 영토를 통과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이다.
(역주: 슬라보티츠에서 체르노빌로 가는 직선 경로는 벨라루스를 지나게 되어 있다. 철로도 이러한 경로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멈춰라!” 서명운동

2월 22일, 러시아군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진입했다.
2월 24일 밤, 우크라이나 도시들에 대한 첫 공격이 이루어졌다.

온갖 계층의 러시아인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에 대한 단호한 거부와, 이 전쟁이 러시아에 얼마나 치명적일 지에 대해 말해왔다. 지식인에서부터 퇴역한 장군들, 발다이 포럼의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역주: 발다이 포럼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문가 회의체로, ‘러시아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린다.)

똑같은 감정이 여러 다른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공포 말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인한 공포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푸틴은 러시아와 그 밖 세계의 모든 이성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이 전쟁을 위해 치를, 의심할 여지없이 끔찍한 대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작전의 시작을 명령했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인 수사는 이것이 ‘자기방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속일 수 없다. 독일 국회의사당 화재 사건의 진실은 결국 폭로되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한 폭로가 필요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명백하다.
(역주: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에 화재가 났을 때, 당시 집권당인 나치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방화로 몰아붙이고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좌파 지식인들을 대규모로 체포한다. 이 사건은 총리 히틀러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수권법' 통과를 비롯한, 나치 독일 정권 완성의 계기가 된다.)

평화를 지지하는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금 시작된 전쟁을 멈추고 이것이 전 지구적 규모의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행동한다.
- 우리는 러시아에서 반전운동의 형성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모든 평화적인 형태의 반전 시위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 우리는 러시아군이 군사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주권국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에서 즉각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적대행위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모든 사람, 정부 당국에 의존하는 러시아 언론들이 호전적이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선전을 하도록 한 모든 사람들을 전범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들에게 천벌이 내리기를!

우리는 모든 분별 있는 러시아인에게 호소한다. 여러분의 행동과 말에 미래가 달려있다. 반전운동의 일원이 되어 전쟁에 반대하자. 적어도, 정부 당국이 자행하는 비열한 행태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나라와 러시아 국민을 자신들의 범죄 도구로 만든 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러시아에 존재했고,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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