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2.05.20
자결권과 우크라이나 전쟁
역자 해설
필자 타라스 빌로우스(Тарас Білоус/Taras Bilous)는 우크라이나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 활동가로, 우크라이나 사회비평저널 《커먼스》(Спільне/Commons) 필진으로서 전쟁과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글들을 쓰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발발 직후인 2월 25일, <키이우로부터 서구 좌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국제 독립언론 플랫폼 《오픈 데모크라시》에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서구 좌파 일각이 반서방 ‘진영주의’에 빠져, 러시아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권위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꺼릴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돈바스 전쟁 개입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리아 활동가 레일라 알 샤미가 2018년 쓴 ‘바보들의 반제국주의’란 표현을 인용하는데, 알 샤미는 서방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반대하지만 러시아와 이란의 개입은 무시하거나 심지어 지지한 서구 사회운동 일각의 활동은, 결국 시리아에서의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이 표현을 썼다. 한편 빌로우스는 2014년부터 내전 중인 돈바스 지역 출신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한 가족 안에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지자와 푸틴 지지자, 사회주의자가 공존하는 돈바스의 복잡한 정치지형도 소개한다.
2022년 5월 8일 《오픈 데모크라시》에 실린 이번 글은 지난 글의 후속 글로,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을 소재로 했다. 젤렌스키 정부와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는 많은 결점이 있으나 푸틴으로부터 지켜낼 가치는 충분하다면서,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과 주변 활동가들의 경험을 소개한다. 2014년 마이단 시위 이래로 우크라이나 시민사회, 특히 페미니즘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과 2019년 젤렌스키 정부 출범 이후의 상황으로 우크라이나 극우파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고도 설명한다.
그는 우크라이나 민중은 2014년부터의 경험으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이 전쟁에서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 어떠한 타협을 이룰 것인지 결정할 권리는 우크라이나 민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미러 간 분쟁이란 측면이 있다고 해서 이 전쟁을 ‘대리전’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며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저항이라는, 스스로의 분명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좌파들이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쿠르드족의 반IS 투쟁을 지지했듯, 이번에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서 반식민지운동도 추축국이 아닌 연합군을 지지했듯,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향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주변 구소련 국가들에서 어떠한 진보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며.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하는 시도의 성공은 전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며, 세계 좌파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할 것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
타라스 빌로우스의 글은 세계 좌파의 우크라이나 지지를 호소하며 그 방도로 러시아에 대한 더 강력한 경제 제재, 러시아산 원유·가스 금수 조치,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명확히 주장하고 있어, 상당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이 벌써 3달 가까이 진행되며 전망과 해법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입장을 숙고할 필요를 고려하여 번역 소개한다.
* () 안은 원문에 있는 설명, [] 안은 맥락 이해를 위해 역자가 추가한 설명이다. 글 중간의 링크들은 원문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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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달 전 <키이우로부터 서구 좌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때, 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충격과 우크라이나 좌파의 목소리를 통해, 서구 좌파들이 그들의 접근법을 다시 숙고하게 되기를 기대했다. 불행히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구 좌파들의 우크라이나 전쟁 분석에서, 우크라이나인은 그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희생자들이다. 마땅히도 존중받아야 할 여러 소망을 지닌 주체라기보다 말이다.
물론, 모든 좌파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의 좌파 정당들은 우크라이나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지원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 사회주의자 사이에서도 일부 진전이 있다. 그러나 심지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회주의자의 공동성명조차도, 충분한 사람들에게 군사 지원의 필요성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내게 좌파들을 설득할 기회를 한 번 더 달라.
정의의 전쟁?
흔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고, 왜 그렇게 많은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가? 세계의 다른 무력충돌들은 이렇게 자주 무시되고 있는 반면에?
나는 다른 분쟁들이 충분히 주목 받지 못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내가 이전에 썼던 것처럼, 유럽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비해 훨씬 더 잘 대해준 것은 인종차별 때문이다. 지금은 이주 정책을 비판하고, 모든 난민을 더 잘 도와야 한다고 지적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하지만 이 전쟁의 잠재적인 결과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데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이 전쟁 이전에] 세계가 핵전쟁의 위협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간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인정하건대, 우리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국내외 정책에 대해 많은 불만을 열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형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조차 아니다. 여기 우크라이나에서 모든 신임 대통령은 비공식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권력을 축적하려고 하고, 의회는 위헌적인 법을 통과시키며,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종종 침해된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노동권을 축소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는 다른 동유럽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이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심지어 러시아에서 온 몇몇 무정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영토방위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가기구 자체를 싫어한다. 그들은 (내가 그랬듯) 시위로 인해 경찰에 반복적으로 구금된 바 있고, 일부 외국 출신 무정부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보안기관의 추방 시도를 맞닥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에 나갔다. 여러분은 그들이 ‘진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동유럽에 대해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를 우리가 알고 있다고 가정해볼 수도 있다.
나는 사회주의자다. 나는 당신이 모든 방어적인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결정은 [전쟁] 참여자들에 대한 분석, 전쟁의 사회적 본질, 민중의 정서, 더 넓은 맥락과 [전쟁의] 여러 다른 결과에 따른 잠재적인 후과에 따라야 한다. 만약 우크라이나를 파시스트 군사정부가 통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러시아의 선전에서 나오는 그대로였다면, 나는 여전히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했겠지만, 군대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립적인 빨치산 투쟁을 이끄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다른 침공들, 예를 들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침공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탈레반이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위해 싸워야 옳았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완벽과는 거리가 먼 민주주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준(準)파시즘 정권으로부터 지켜 낼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용어들[파시즘]을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 2014년 [돈바스에서] 전쟁이 시작된 후, 푸틴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우크라이나에서 인기를 끌었을 때, 나는 이런 관점을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푸틴 정권은 점점 더 권위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적이 되었고, 러시아의 반전운동이 패배한 후, 그러한 변화는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 그레그 유딘과 일리야 부드라츠키스와 같은 러시아 좌파 지식인들은 러시아가 파시즘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무력충돌에서, 외교와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민족 간 갈등의 경우 종종, 국제주의자들은 한쪽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복잡했던 2014년 돈바스 전쟁과 달리, 현재 전쟁의 성격은 사실 단순하다. 러시아는 공격적인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인민해방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무수한 요인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해야만 진보적인 변화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만약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것이 군사적 도움을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원해야 하는 주된 이유이다.
우크라이나 극우파
여기서, 일부 독자들은 다른 질문을 할지 모른다. 우크라이나 극우파는 어떠한가? 이 주제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논쟁에서, 한쪽은 항상 극우파의 낮은 선거 득표율과 의회 내 대표성 부족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사법당국으로의 침투와 활발한 거리 시위 참여를 통해 극우파가 우크라이나 정치에 불균형한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옳지만, 논쟁의 양측은 극우파의 불균형한 영향력이 그 자체의 힘보다는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와 우크라이나 국가의 취약함에 크게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자주 무시한다.
극우파의 존재감은 동유럽 전역에서 느낄 수 있지만, 그 역학관계는 나라마다 다르다. 2000년대 후반, 러시아 극우파는 폭탄 테러, 집단학살(pogrom), 그리고 다른 치명적 공격들로, 거리에 테러를 풀어놓았다. 2010년 모스크바 마네즈나야 광장 폭동 이후 러시아 정부는 극우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극우파들은 국외로 도피하거나 투옥됐다. 일부는 그들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우크라이나로 갔다. 우크라이나의 억압적 국가기구는 러시아보다 훨씬 힘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국가 권력의 상대적인 취약함은 우크라이나에서 대중 시위가 성공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비교해보면, 벨라루스에서는 시위자들이 자의적인 구금이나 고문을 당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러시아가 지원하는 보안기관이 살인적인 탄압을 행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극우파의 힘은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때, 이들의 운동은 거리에서 존재감을 강화함으로써 선거에서의 실패를 벌충했다. 그러나 2014년 마이단 혁명 이래로 자유 시민사회의 발전은 거리 정치에서 힘의 균형을 변화시켰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극우파와 다른 정치세력 사이에 항상 명확한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익 급진세력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부상으로 인해 점차 변화하고 있다.
게다가, 작년 7월 벨라루스 무정부주의자 알렉세이 볼렌코프의 추방에 맞선 성공적인 캠페인, 그리고 그 몇 달 후 극우파로부터 키이우 중앙 포딜 지구를 지켜낸 사례들처럼, 키이우의 거리에서는 반파시즘 운동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젤렌스키가 2019년 집권한 이후, 수년간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항하는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극우파와 자유주의자의 연대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군사 자원민병대인 극우 아조프 운동과 밀접한 관계였던 내무장관 아르센 아바코프가 7월에 사임한 후, 국가기구는 극우파를 더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고,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많은 요인에 달려 있다. 지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극우파의 참여는 2014년에 비해 뚜렷하지 않은데, 한 가지 분명한 예외는 아조프 연대다. 그러나 모든 아조프 전사가 극우 출신은 아니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가방위대와 국군의 일원로서 군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아조프 연대는 우크라이나 저항세력의 단지 작은 부분일 뿐이다. 지금 전쟁이 돈바스 전쟁 때와 같은 정도로, 극우파의 부상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시민에게 주된 위협은 국내 극우파가 아니라 러시아의 점령군이다. 이는 심지어 집시나 성소수자와 같이(이들은 지금 우크라이나 저항세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극우파의 공격을 자주 받아온 집단들에도 사실이다. 그리고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게도 그러하다. 크렘린[러시아 정부]의 선전은 위선적으로 돈바스 주민들을 이용해 침략을 정당화했다. 러시아는 이 지역의 도시들을 파괴하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에 입대하기 위해 기나긴 줄에 서는 반면, 러시아가 통제하는 돈바스 지역에서는 남자들이 길거리에서 붙잡혀 강제 징집되고, 훈련 없이 총알받이처럼 전투에 던져진다.
제국주의 간 충돌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반대하는 또 다른 흔한 주장은 이것이 서구와 러시아 사이의 대리전이라는 것이다. 모든 군사적 충돌은 다층적이며, 현재 대립의 구성 요소 중 하나는 제국주의 간 충돌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이 전쟁을 대리전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면, 세계의 거의 모든 무력충돌은 대리전이다. 이 용어를 놓고 논쟁하기보다는, 서방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의존도를 분석하고 양 제국주의 진영의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IS에 대항한 영웅적인 전투에서 미국의 대리인이었다고 한다면, 우크라이나는 그에 비해 훨씬 덜 서방의 대리인이다. 하지만 대리인은 꼭두각시가 아니다. 대리인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는, 현장의 행위자들이다.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리고 쿠르드족이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좌파들이 시리아 북동부 로자바에서 싸우는 이들을 지지했듯이, 좌파들은 우크라이나 민중을 지지해야 한다. 무력 충돌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정책은 현장의 상황을 분석한 데에 기초해야 한다. 제국주의 세력이 어느 한쪽 혹은 다른 쪽을 지지하냐에 따라서라기보다 말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일부 좌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간 충돌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이용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또한 제국주의 간 충돌이었다. 이는 그 전쟁에서 양쪽 다 지지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렇지 않다. 제국주의 간의 갈등은 그 전쟁의 오직 한 차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반식민지운동 지도자들이 2차 세계대전 동안 자신들의 식민지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인도국민회의(INC)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찬드라 보스는 나치 독일과 협력하기까지 했다고 이전에 썼다. 그러나 또 다른 인도 반식민지운동 지도자 자와할랄 네루의 발언 또한 언급할 가치가 있다.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충돌에서, 우리는 명확히 후자의 편에 서야만 한다.”
또한, 거의 틀림없이 인도국민회의의 가장 좌파적인 일원이었던 M.N.로이가, 추축국에 맞선 연합군의 전쟁을 의회 지도자들 중 가장 일관성 있게 지지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로이가 갑자기 영국 제국주의를 지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듯이,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도국민회의는 1885년 설립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인도의 주요 정당이다.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인도국민회의의 일원으로서 반영국 독립운동을 지도했다. 찬드라 보스는 인도국민회의 대표, 일본 제국의 지원으로 수립한 자유 인도 임시정부의 국가주석을 지냈다.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국민회의 대표, 독립한 인도 공화국의 초대 총리를 지냈으며 그의 딸 인디라 간디도 3대 총리가 되었다. M.N.로이는 인도의 마르크스주의자로, 멕시코공산당을 창당하는 등 해외에서 활동하다 귀국하여, 인도국민회의의 급진화를 목표로 인도국민회의에 합류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다른 나라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력을 지지하고, 더 강력한 제재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 금지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많은 제재는 러시아의 군수산업을 약화시키고 모스크바가 계속적인 전투를 수행할 능력을 저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좌파들은 또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 제재를 지지해야 하는데, 이는 푸틴이 전쟁을 끝내도록 경제적 압력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스스로 망신을 당함으로써 교훈을 얻었을 수 있다. 이제 러시아도 교훈을 얻어야만 하며, 그 교훈은 강력한 것일수록 더 좋다. 전쟁에서의 패배가 혁명을 불러일으킨 일이 여러 번 있다. 러시아 혁명이 한 예다. 1856년 크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후, 러시아 제국에서는 농노제가 마침내 폐지되었다.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직후 일어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패배하는 것은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 푸틴이 여전히 권좌에 있는 한, 러시아와 대부분 구소련 국가들에서 진보적인 변화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서방 국가들은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급진좌파들이 잘못된 이유로 이러한 국가들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침공 이후에도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러시아에 무기를 계속 팔았다는 점을 비판해야 한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좌파가 아니라 서방 정부들에 있다. 그러나 상당수 좌파는 상황을 더 좋게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어리석게도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수년 동안 갈등이 들끓는 돈바스에서 살아 왔다. 우리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고, 우리는 전쟁이 길어지면 계속 고통 받을 것이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며, 죽음과 파괴를 막기 위해 어떤 타협을 해야만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 [즉,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에] 동의하고 있다. 나는 왜 많은 좌파가 서방이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 정부보다] 더 제국주의적인 접근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까지, 크렘린은 진지한 양보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우리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들의 영토 정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전쟁이 장기화되고 희생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지원의 부족이야말로 상황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수 있고, 그 승리는 세계 좌파가 옹호해야만 할 것이다. 러시아가 승리하면, 강제로 국경을 다시 그은 선례를 만들어 전 세계를 3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나는 주로 돈바스 전쟁의 영향과, 자본주의를 극복해야만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개입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러한 미래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좌파가 이 전쟁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이는 좌파에 불명예를 안기고 좌파를 소외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