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2.06.17
한국 안전운임제, 유례없는 제도 아니라 세계적 흐름을 선도하는 표준
[편집자 주]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6월 14일 마무리되었다.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확대 등의 논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윤석열 정부 첫 노동자 총파업으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화물차를 멈추고 거리로 나선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과 파업에 동참한 비조합원들은 결연하게 투쟁하며 안전운임제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알렸다. 화물노동자들의 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게 하고, 노동자의 생명과 시민의 안전을 함께 지키고, 화물운송시장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안전운임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안전운임제를 통해 화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도로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와 화주, 국민의힘이 이사실을 왜곡해 안전운임제가 ‘유례없는 제도’로 매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총파업 기간에 횡행했던 안전운임제 형해화를 위한 논리와 근거를 검토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안전운임제도의 지속을 위해 정부와 여야는 모두 마땅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거짓말 하나, 한국의 안전운임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도다?
정부와 여당, 화주단체들이 계속 뱉어내는 반대 ‘근거’ 중 하나는 안전운임제가 ‘유례없는 특이한 제도’라는 것이다. 이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이미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브라질, 캐나다(밴쿠버항만), 호주(뉴사우스웨일스주) 등 여러 나라에서 한국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최저운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각 나라의 도로운송 시장은 구조적 차이가 있어서 운임제에도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용회수와 모든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는 원칙에 근거해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의 적정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같다.
이 제도들 모두 강제성이 있는 최저운임을 결정하고,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 과태료가 부과한다. 전국 12개 품목에 적용되는 브라질의 최저운임제에서는 최저운임보다 낮게 계약할 경우 사업자가 최저운임과 실제 계약 운임 간 차액의 2배를 배상해야 한다.
1979년에 도입돼 가장 오래 시행하고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운임제(노사관계법 제6장)는 운임 위반 시 1회 최대 1만 달러, 2005년부터 운영 중인 밴쿠버 항의 경우 최대 50만 달러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최저운임 위반에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명시하는 한국 안전운임제(화사법 시행령)보다 엄격한 처벌조항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경우 최저운임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준수율이 높다는 점에서 현장 감시·감독 및 단속 제도가 아직 미비한 한국과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기도 하다.
거짓말 둘, 호주의 전국도로안전운임제도는 실패했다?
보수 세력과 화주단체가 퍼뜨리는 또 하나의 거짓말은 ‘한국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호주 전국 도로안전운임제도(Road Safety Remuneration System)가 실패했다’라는 것이다. 이 제도는 2012년 호주 의회를 통과했고 2013년부터 시행되었는데 2016년에 보수 정부의 날치기로 폐기되었다. 정부와 화주단체는 호주 도로안전운임제가 ‘실패했기 때문에’ 폐기되었다고 주장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은 국토부의 위탁을 받아 실시한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연구에서 충분한 조사 없이 이 결론을 내렸는데, 국토부와 화주단체는 확인 없이 교통연구원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교통연구원은 호주 정부가 안전운임제 폐지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의뢰한 PricewaterhouseCopper (PwC)의 연구용역 보고서(Review of the Road Safety Remuneration System, 2016)를 결론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연구용역 보고서의 배경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호주의 보수 자유·국민연합은 제도 도입 전부터 안전운임제의 개념 자체를 반대했고,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2011년에 PwC와 처음으로 계약을 맺었다. 집권 후 자유·국민연합 정부는 안전운임제 폐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PwC에 또다시 연구용역을 의뢰했는데 그 연구의 결과는 2011년 연구 결과와 근본적으로 같다.
교통연구원, 국토부, 화주단체 모두가 말하지 않고 있지만, 2016년 PwC 연구보고서는 안전운임제의 안전효과를 인정했다. PwC는 도로안전운임제 하에 결정된 최저운임과 관련 다른 근로기준들이 계속 시행됐다면 앞으로 15년의 기간 동안 화물차 사고가 2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PwC는 안전운임제의 운영비용을 크게 부풀려 ‘사회적 비용’이 사고 감소라는 편익보다 크다는 왜곡된 결론을 내렸다.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벨저 교수에 따르면 PwC는 제도 운영비용을 최대 8배로 과잉 평가했던 반면에 최저운임 실시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의 정신·육체적 건강 개선 효과, 화물노동자가 부모와 배우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확보된 시간 등 최저운임제에 따른 여러 사회적 편익을 누락해 편익-비용 개선을 완벽히 왜곡한 것이다.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호주
호주 연방 차원의 안전운임제 폐지는 호주 국민과 화물노동자의 입장에서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최근 호주 주(州) 수준에서는 안전운임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 2년 동안 뉴사우스웨일스의 최저운임제도의 적용 범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2022년 2월, 제도의 적용 범위는 택배와 플랫폼 배송부문까지 확대되었다. 퀸즐랜드주에서는 뉴사우스웨일스와 같은 강제력 있는 최저운임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이 곧 발의될 예정이다.
전국 수준에서도 안전운임제가 조만간 재도입될 전망이다. 5월에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어 집권한 노동당은 안전운임제의 재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당론에 따르면 정부는 ‘시급한 과제로, 공정한 운임과 노동조건을 포함한 안전 기준을 결정하는 독립기구를 중심으로 한 전국 안전운임제를 법제화할 것’이다. 이 안전운임제를 통해 결정되는 기준은 화주를 포함한 ‘공급망의 모든 당사자에 적용할 것’이며,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운수사업자와 노동자에게 지급되어야 하는 강제력 있는 운임 및 관련 노동조건’을 포함할 것이다. 지난 6년간 이해당사자 간 토론의 결과로 상당수의 호주 사업자단체들도 안전운임제의 재도입을 지지하고 있어 법제화는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도로운송 산업의 세계적 흐름을 선도하는 한국의 안전운임제
안전운임제가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강화되는 나라는 호주만이 아니다. 캐나다 밴쿠버항의 운임제도는 2005년에 처음 도입되어 지속해서 개선되어왔다. 2019년에는 제도의 운영과 단속 권한을 가진 독립기구가 설립되기도 했다. 브라질의 운임제도는 2018년 전국파업의 여파로 도입됐는데, 지난 4년 동안 운임모델이 점진적으로 발전했고 처벌조항이 강화됐다. 최근에 뉴질랜드, 벨기에에서도 도로운송 산업 이해당사자 사이에 안전운임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 수준에서도 안전운임제의 중요성은 인정받고 있다. 2019년에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운수사업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 관련 지침’은 운수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사고의 연관성을 근거로 한다. 이 지침은 △비용 회수와 전체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 △화주의 책임이라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계한 운임제도의 정부 시행, △노동조합–사용자-회주 참여와 준수를 주문하고 있다. 지침 제정 과정에서 한국 안전운임제는 모범사례로 참고되기도 했다.
안전운임제를 도입한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도입한 나라에서는 제도가 계속 보완되고 있고, 도입하려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 즉, 안전운임제 도입과 확산은 국제적 흐름이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그 흐름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한국 안전운임제는 ‘유례없는 특이한 제도’가 아니라 세계적 흐름을 선도하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