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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9
정세강연 < 흔들리는 국제질서, 위협받는 평화 >
우크라이나와 대만 위기로 보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시사점
지난 7월 3일 백승욱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강연 <흔들리는 국제질서, 위협받는 평화>가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의 주최로 다섯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강연에는 온오프라인 포함 50여 명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위기로 보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시사점’을 부제로 하는 이번 강연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기획되었다. 강연은 크게 세 가지 쟁점을 다루었다. 얄타 체제에 기원한 국제질서와 그 붕괴로서 우크라이나 침공, 세계질서에서 이탈해 도전자 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중국과 대만 위기, 그리고 한국과 사회운동에의 제언이다. 이 글에서는 백승욱 교수의 강연내용과 질의응답을 소개한다.
얄타체제와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해 최근 국제정세를 ‘신냉전’이라고 해석하는 의견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서방국가 및 한국, 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들과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 사이 대립을 2차 대전 이후 냉전에 유비한 해석이다. 백승욱 교수는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한 현재 국제질서의 변동을 신냉전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가 얄타 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침공과 대만 위기와 같은 사건을 얄타체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징조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냉전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신냉전이라는 접근이 오늘날 국제정세 구도를 분석할 때 유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위기 국면에서 러시아 내 통치 구심이 약해지고, 러시아 정권이 우크라이나의 탈권위주의 흐름에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위협을 느낀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얄타체제의 단일 세계주의 지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자유주의권과 사회주의권으로 냉전으로 이해하지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던 얄타 구상은 공산권을 포함한 통합된 국제질서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또 탈식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통합적 세계경제에 기초한 민족경제의 수립을 지향했다. 이는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네 경찰국(빅4)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 체계로 부분적으로 이어졌다. 얄타의 합의였던 반식민주의와 영토확장전쟁 반대는 오늘날 (표면상으로나마) 전쟁억제와 다자주의 외교질서로 계승되었다. 다만 루스벨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트루먼이 강경한 반공주의 정책을 전개하며, 루스벨트의 단일 세계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 사이, 곧 두 세계 사이 분할을 뜻하는 트루먼의 ‘자유 세계주의’와 냉전으로 변질되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합의로 형성되었던 국제질서는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함께 붕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화는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를 지연하며 강력한 금융적 통합으로 구심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실패하며 원심력이 확대되고, 각 국은 통치를 위한 내적 구심 강화로 선회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 ‘도전자’ 국가들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백승욱 교수는 도전자 국가를 기존 질서로 편입되지 못하고 충돌하면서 내적 구심을 강화하는 국가로 정의한다. 20세기 히틀러의 독일이 대표적이다.)
백승욱 교수는 이러한 규정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대만 위기는 “20세기질서의 수립자들(미국, 소련, 영국, 중국) 내부에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본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명백한 영토 확장 전쟁이라는 점에서 냉전시기 갈등과도 구분된다.” “동-서 대립이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러시아는 전쟁 지역이 과거 자기 영토의 일부라고 해석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치 내전인 듯이 규정한다. 이 같은 러시아의 내전 논리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입장과도 유사하다.)
백승욱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러시아나 사회운동 일각에서 주장하는 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 내 나치세력 소탕 등 침공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중심 정치세력이 나치와 연관되어 있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국민의 보호가 목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극우 세력은 우크라이나 외 유럽 지역에 훨씬 많으며, 자국민 보호를 근거로 침공을 정당화한다면 2차 대전 시기 일본의 침공행위도 모두 정당화된다고 지적했다. 또 나토의 동진으로 위협을 받는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이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거절된 상황에서 근거가 부족하며,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에 대한 침공은 아닌 만큼, 그것을 명분으로 드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푸틴 정권의 통치력 저하와 우크라이나에서 탈권위주의 흐름으로 인한 레짐 체인지에 대한 경계가 침공의 동기라고 설명했다.
세계질서에서 이탈하는 도전자 중국
백승욱 교수는 또 다른 도전자 국가로 중국을 든다. 중국은 냉전이 신자유주의로 대체되던 시기 금융완충지대를 구축하며 제조업 국가로 탈바꿈해 적응에 성공했다. 이 같은 전략은 상당 기간 성공적이었지만 세계경제의 핵심으로 진입할수록 곤란이 커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이를 ‘신창타이’(新常態, 신상태)라고 부르는데, 저성장, 저소비, 저수익률이 중국의 뉴노멀이 되었다는 뜻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국 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세계경제로 편입될수록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외부와의 통합성이 커졌다. 이는 당의 통치력과 신뢰성을 흔들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2021년, ‘제3차 역사결의’를 발표했다. 역사결의는 지난 백 년 동안 단 세 차례만 발표된 비상례적 선언인데, 당의 기본 목표나 운영상의 중대한 변화를 추진할 때마다 등장했다. 제3차 역사결의에서 중국공산당은 내적 구심을 강화하기 위한 당의 방향을 제시한다. 핵심은 시진핑 체제의 강화와 ‘수세적 예외주의’다.
제3차 역사결의는 중국현대사를 ‘두 개의 백 년’으로 구획하며, 새로운 백 년을 이끌 방안으로 시진핑 체제를 제시한다.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의 전면적 영도”로 당 중심으로 결집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룬다는 것이 골조다. 그런데 역사결의는 시진핑 사상에 매우 강한 중요성을 부여하지만, 시진핑 사상을 뜯어보면 ‘중화민족’을 강조할 뿐 마땅한 내용이 없다. 중국공산당은 이론적 공백을 당의 무오류성을 강조하면서 규율중심의 엄격한 지도·통제로 대체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시진핑 체계는 통치력과 국제정세 양 측면에서 불안정성을 확대한다. 당 중심의 지도와 시진핑의 권위가 강화되고, 이견이 봉쇄될수록 통치 리스크가 중앙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은 지도력 강화를 도모할 다른 성과를 찾으려 들 것이며, 대만과의 양안 통일이 고려할 수 있다.
3차 결의에서 주목할 또 다른 특징은 수세적 예외주의다. 여기서 예외주의란 자국에서 적용되는 논리가 다른 국가들에서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보통 예외주의란 자국이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특별한 나라이며,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이나 규범, 관습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국가라는 관념을 뜻한다.) 그런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목표로 하는 3차 결의는 예외주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부흥의 주체는 인민과 구별되는 중화민족이며, 오로지 시진핑 사상으로 달성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리를 타국이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수세적’이라는 표현은 자국의 논리를 타국에 설득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자국에 대한 외부의 개입도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중국이 서구적 보편주의로 해석될 수 없는 예외적 지역이기 때문에 서방이 중국에 간섭하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백승욱 교수는 지난 5월에 발표한 논문, 「중국공산당 역사결의를 통해 본 시진핑 체제의 성격」에서도 3차 결의에 담긴 수세적 예외주의를 짚었다.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 실현하고 2050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수립하겠다는 (3차 역사결의의) 목표는 여타 세계를 설득하고 협조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추진되면서 강한 내적 통제를 동반한 영토적 ‘온전성’에 집착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는 “시진핑의 백 년은 영국에 빼앗긴 홍콩과 일본에 빼앗긴 대만을 수복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거론해왔다”며 “올 가을 시진핑의 삼연임을 앞두고 대만에서 군사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미사일 공격부터, 공수부대를 통한 군사기지 통제, 섬으로의 출입통제 등 다양한 수준과 방식으로 군사행동을 충분히 전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사회운동에 대한 제언
백승욱 교수는 앞으로 한국사회의 대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선 국제정세를 대하는 원칙에 대해 “(얄타를 폐기하는) 도전자 국가의 논리에 동의할 수는 없다. 러시아, 중국 등 도전자 국가들은 특정한 정체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서 군사적 위기로 확장되지 않도록 중국에 분명한 반대를 표해야한다고 보았다. 백승욱 교수는 또, “한국은 그동안 객관적 분석 없이 의지만 앞세우는 ‘의지’ 외교로 일관했다”고 비판하면서, 한국사회의 대응이 역사적·정치적 분석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지정학적 위기를 한반도 ‘통일대업’이 열리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오히려 “대만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북한의 핵개발 재개, 미국 내 위기가 동시에 발생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만 위기와 관련하여서는 “(한국의 사회운동도) 중국에 대해 ‘노’라고 말해야” 대만과 중국 내부에서 군사위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오늘날 국제질서의 붕괴와 도전자 국가의 등장을 사회주의 변혁의 계기로 여기기도 한다. 혹은 자유주의 서방국가 간 갈등에 불과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백승욱 교수는 러시아 혁명 시기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질문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며 사회운동이 국제질서의 붕괴를 호재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백승욱 교수는 “세상이 바뀌려면 난리가 나야 하고 그러면 새로운 질서가 나타난다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라며, “대란대치(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린다)가 대안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국가 간 갈등일 뿐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오늘날 세계가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사회주의가 경합하며 착근시킨 결과”라며 사회주의자도 그 토대 위에서 대안을 모색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질서를 쇄신해서 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자유주의와의 치열한 토론과 경쟁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견되는 진영적 사고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질서의 동요와 우크라이나, 대만 위기 등 현 상황을 혁명정세로 낙관하거나 진영 대결로 협소하게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질의응답 및 토론
강연 질의응답 시간에는 동아시아 정세와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당일 강연에 참석한 한 참석자는 “북한에서 봤을 때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이 나가는 길과 대만침공이 상당한 위험으로 인식될 수 있다. 북한의 고민이 있을 듯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백승욱 교수는 “대만 위기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것이며, 북한은 이런 정세를 위협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또, “(러시아, 중국의 군사행동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며 제재를 약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정세가 요동칠수록 북한에는 유리한 국면이 열릴 수 있으며, 특히 대만 위기 때 북한이 취할 자세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한 참석자는 한국의 외교정책과 관련하여 “한미일, 러중북 중 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흘러가는데, 어떤 분석과 주체적 외교가 가능할 것”이냐 물었다. 이에 백승욱 교수는 “독일의 메르켈, 일본의 아베와 다르게 한국의 정치는 외교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국제정세의 변동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하여서는 “다양한 다자주의적 시도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특히 결정적으로 일본 문제를 어떤 분석과 의지로 풀어나갈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본 정치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날 강연은 20세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만든 국제질서와 변동을 살폈다. 이런 관점에서 국제질서를 깨고 자국 내 결집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을 분석하고, 우크라이나침공, 대만위기의 위험성을 확인하였다. 또 국제정세에 대한 한국과 사회운동의 엄밀한 인식과 고민이 필요하며, 특히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질문이 다시금 부상하는 국면임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