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2.08.03
전쟁 속에서: 민족주의, 제국주의, 세계정치 ①
번역 | 김진영 정책교육국장
역자 해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된 직후 인터뷰에서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니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통해, 가장 절대적으로 시급한 것은 푸틴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이 치를 대가를 감수하면서라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경제 제재나 우크라이나의 무장저항 지원은 전쟁을 장기화할 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흐름, 대표적으로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쟁이 110일 가량 이어진 시점에서 그가 발표한 이번 글 또한 전쟁 발발 직후에 낸 입장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중첩된 성격에 관한 심화된 분석을 제시한다. (분량이 많아 두 번으로 나눠어 소개한다.) 이 글은 발리바르의 2022년 런던 이론 비판 여름 학교 발표(6월 13일)에 기초하여, 6월 29일 우크라이나 사회비판저널 《커먼스》에 실렸다. 2009년에 창간된 《커먼스》는 경제, 정치, 역사, 문화를 다루는 우크라이나 좌파 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이 글에서 발리바르는 지금의 전쟁이 네 가지 다른 수준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순서대로 ① 베트남 전쟁, 알제리 전쟁 등의 민족해방전쟁과 비견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 ② 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되어 냉전 종식을 겪고도 끝나지 않은 ‘유럽 내전’, ③ 세계의 많은 부분이 비대칭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세계화된 전쟁’, ④ 핵전쟁이라는 절멸의 위기가 될 가능성이다. 그런데 그는 이 중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펼쳐지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 할 즉각적인 긴급성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러시아가 부정해 온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이며, 현재 우크라이나 민중은 범죄적 전쟁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벨기에 《Le Vif》 지와의 인터뷰(5월 26일)에서도, “우크라이나 독립전쟁”인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민중이 무력으로 저항하여(résister par la force), 가능하면 승리하고, 적어도 짓밟히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이 과거에 쓴 전쟁에 대한 서술은 특정한 단기 정세, 즉 9.11 사건과 이라크 전쟁 시기에 쓰인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데, 유일하게 현재에도 맞는 것은 “전쟁 상황은 중립을 유지할 가능성을 없앤다”는 문구라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주장을 보충하기 위해 민족과 민족주의 문제에 관한 검토로 나아간다. 먼저, 그는 민족형태에 ‘소거 불가능성’이 있으며 ‘민족주의 없는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민족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다. 이를 전제했을 때, 적어도 현 시점에서 러시아 민족주의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양상은 매우 다르다는 데 주목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 민족주의는 국내에서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국외에서는 우월한 “주인 민족”으로서 주변 민족들을 지도할 사명을 주장하는 제국주의적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푸틴 본인이 그 예다. 반면, 전쟁 속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어 구사자 대 러시아어 구사자라는 종족적 구별을 넘어, 진정한 “우크라이나 시민” 또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민족주의가 작동하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현재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다. 2013~2014년의 마이단 혁명은 그 단초로, 우크라이나 민중이 부패 반대와 서유럽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시작하는 계기였다. 발리바르는 이것이 러시아에 미칠 영향에 대한 푸틴의 두려움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동기였을 수 있다고 시사한다.
그 다음으로, 발리바르는 민족주권의 역설을 제기한다. 한 민족이 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들에 의존하는 것, 즉 동맹 관계 속에 소속되는 것을 통해 다른 민족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강력한 민족들에조차 예외가 없었다. 즉, 그 어떠한 외부세력과의 연계도 일절 없는 ‘순수한’ 민족주권 추구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서방 제국주의 구조에 편입되어야만 지켜질 수 있다는 현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라는 자유주의적 구조에 편입되어야만 민주주의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현실에 반영된다. 여기에서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은, ‘제국주의’라고 하더라도 각 제국주의가 부여하는 종속의 형태와 정도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푸틴 독재 정권이 통치하는 러시아와 함께 가느냐, 아니면 불평등을 양산하는 구조이긴 하나 적어도 정치적 다원성과 협상의 규칙이 존재하는 유럽연합과 함께 가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정치적 결합이 서방 군사동맹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 필연적이지 않다. 이는 이 전쟁 자체의 향방, 즉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며 어느 편이 승리할 것이냐와 관련이 깊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편이, 군사동맹의 강화 추세를 저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한편, 발리바르는 ‘세계화된 전쟁’이라는 규정을 통해, 세계 제국주의의 새로운 지정학적 재편 이상을 시야에 두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와 환경 재앙을 심화시키고, 부유한 북반구와 빈곤한 남반구라는 분할선에 따라 후자에 식량 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로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침략과 대량 살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무조건” 지지해야만 한다. 러시아 체제 내부에서부터 이 침략에 저항하고 있는 러시아 반체제세력에 최대한도의 연대를 보여야 한다. 반드시 핵무장 반대 운동을 재개해야 하며, 민족의 독립성과 민중의 연대, 집단 안보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한 모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 () 안은 원문의 설명이며, [] 안은 역자가 추가한 설명이다. 굵게 처리된 부분은 모두 원문에서 기울임체로 강조된 부분이다. 링크도 원문에 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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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검토할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즉답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심지어 많은 경우, 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배우고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도움으로 답을 찾아나서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그 전에 질문 자체에 대한 올바른 공식을 찾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보편적 이해(interest)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의 현재, 우리의 집단적인 미래, 세계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관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점점 더 그럴 것입니다. 이 전쟁에 대해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이며, 전쟁의 결과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속에 있습니다. 내 동료 산드로 메자드라가 확고한 평화주의 선언문에 썼듯이, 우리는 “전쟁으로부터 이탈”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즉시 제안된 모든 형태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좁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무슨 전쟁일까요? 이마저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지난 2월에 러시아 군대에 의해 침략당한, 명확한 영토와 인접한 지역들을 넘어, 전쟁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격렬함과 우크라이나를 넘어, 아마도 전 세계에 미칠 전쟁의 영향에 관한 중요한 질문들은 전쟁이 전개되고 계속해서 성격이 바뀌는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제도적이고 집단적인 실천으로서) 정치가 전쟁 속에서, 그리고 전쟁 이후에 (“이후”란 것이 있다면) 취할 수 있는 형태들에 관해 우리가 세울 수 있는 가설도 이러한 질문들에 달려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유명한 문장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질문은 전쟁 속에서 어떤 정치가 지속될 수 있는가, 그리고 전쟁이 그 여파 속에서 정치의 조건과 내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음 3개의 주된 테마를 설명할 것입니다. 첫째, “전쟁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또는, 현재의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가? 둘째, 이 전쟁은 어떻게 민족주의의 기능과 “민족형태(nation-form)” 자체의 형성을 재정의하는가? [발리바르는 현대의 주된 국가형태가 도시 국가나 제국이 아니라 민족국가라는 점에 주목하며 민족형태의 국가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셋째, 이 전쟁은 여러 갈등과 행위자들이 구성하는 세계적 구조에서 몇 가지 정치적 공간을 어떻게 접합하는가.
전쟁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첫 번째 부분에서 제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각기 다른 수준에서 작동하고 분쟁의 각기 다른 양식(modalities)을 강조하는 몇 가지 “격자망”(grid)을 연속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면, 현재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본질적으로 다차원적입니다. 전쟁은 서로 다른 리듬의 여러 “무대”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와 지리에 따라 우리가 위치한 장소(예를 들어, 유럽 시민으로서)에서 우리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개입을 이끌면서, 전쟁의 “이해관계”(stake)에 대한 정치적 평가에서 어느 측면을 우선시할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이 결정은 전쟁의 요인들과 그러한 요인들의 접합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기초할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의 전제에서 자동적으로 추론될 수 없는, 주관적인 결정이 될 것입니다.
저는 전쟁이 네 가지 다른 수준에서 동시에 전개된다고 믿습니다. 이를 드러내려 시도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전개되는 수준을 드러내기 위한] 몇 가지 예비 전제(preliminary)는 갖추어져 있습니다. 첫째, 모든 전쟁의 성격은 교전국들의 목적에 따라 확실히 달라지지만, 이는 사실 교전국들의 의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집단적 제도(통상적으로, 국가)의 정치적 구성, 그리고 이 제도들이 어떠한 역사적 조건에 처해 있냐에 따라 정의됩니다. 이것은 두 번째 예비 전제로 이어집니다. 전쟁에는 많은 “유형”이 있습니다. 비교하는 것은 유용합니다. 특히 비슷한 행위자들이 연루된 전쟁들이라면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들, 2000년대 초반 체첸 전쟁,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등이 그런 측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예들입니다... 하지만 비교는 본질적으로 반증 사례로서 작용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새로운 전쟁은 전쟁의 새로운 형태입니다. 그리고 셋째, 전쟁에서는 “기동전”과 “진지전”의 국면이 이어지며, 그에 따라 힘의 균형이 변화합니다. 이와 같이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것은, 대체로 [교전 세력 간] “경계선”의 변형에 상응합니다. 그러한 경계선 내로 힘 균형의 변화가 억제됩니다. 이 전쟁의 경우,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낸 초기 국면 이후,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동부 방어선에 대한 살인적인 공격으로 교착되어, 2014년의 [돈바스 전쟁의] 출발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전황을 보아야만, 모든 “지정학적” 차원이 가시화됩니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첫 번째 정의는,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민족의 독립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로 인해, 이 전쟁을 (알제리 전쟁, 베트남 전쟁과 같은) 20세기의 반제국주의 해방 전쟁이나, 심지어 초기 현대 국가들이 영국, 스페인,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분리되며 형성된 것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소련의 “연방 공화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 정식으로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러시아의 침략을 국제법의 위반으로 명백히 특징짓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전쟁에서] 한쪽은 침략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선전(propaganda)은 수세기 동안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영토가 속해 있었고,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선언한 민주적 원칙들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시대에도 계속 존재했던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인들은 현재 독립전쟁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이 승리한다면 이후에 [우크라이나] 민족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파괴와 고통을 대가로 이뤄집니다.
태평양에서부터 폴란드 국경, 심지어는 그 너머까지 아우르는 ‘유라시아’ 공간에서 제국의 지배가 지속되었다는 것, 특히 러시아 혁명의 영향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이 전쟁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단계에서 검토하게 됩니다. 힘의 불균형(그리고 파괴)이 거대하며, 중요한 구조적 차이들이 있지만,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이 독립전쟁도 공산주의 이후의 전쟁 범주에 속합니다. 이러한 전쟁들은 유럽의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그리고 이 국가들의 “다민족 정치” 실패가 결국 오로지 적대적 민족주의들(나아가 과격한 신자유주의 “본원적 축적” 정책으로 악화된)을 강화한 데에서 나왔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한 세기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전쟁은 단지 유럽 민중, 유럽 민족국가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유럽의 권력 구조와 동맹관계와 겨루는, 유럽의 전쟁일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된 유럽 내전의 비극적 역사의 연속, 혹은 새로운 에피소드입니다. 유럽 내전은 10월 혁명으로 재구성되었고, 그 다음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서 나치즘의 부상과 유럽 도처의 파시스트 동맹 네트워크, 그로 인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냉전과 “철의 장막”이 찾아왔고, 이는 1989년 무너졌습니다. 이 역사는 정권 교체, 국가의 파괴와 복원, 인종청소와 대학살, 그 자취가 아직도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전체주의적 지배로 가득 찬 비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전쟁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지는 “총력전”(total war)과 수백만 명의 탈출(exodus)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지만, 덜 놀라운 것이 됩니다. 이것은 근본적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라고 가정하는 바람에 너무나 쉽게 잊혀 온, 현존하는 패턴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정의는 전쟁을 삽입할 수 있는 범위를 즉시 더욱 넓히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20세기 유럽의 전쟁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에 “중심적” 위치를 부여한, “세계전쟁”(world war), 혹은 “세계전쟁들”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전쟁은, 그보다는 “세계화된 전쟁”(globalized war)이라고, 아니면 “혼합적”(hybrid) 성격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된 전쟁”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정치 구조, 인구가 비대칭적 방식으로 이 전쟁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전쟁의] 직접적인 교전국들이 이들에 지원을 제공하는 세계적 동맹의 일부이며, “대리전”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이번 분쟁에 대한 중국의 모호한 태도를 고려하면, 이것은 특히 “서방 측”에 있어 더욱 사실입니다. [서방으로부터] 무기와 정보가 끊임없이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면, 모든 미덕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공격에 저항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방은 러시아에 “경제 전쟁” 또한 걸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과거 식민지 전쟁에서 그랬듯)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서방도 전쟁에 관여하는 것을 부인하면서도 “제재”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 옥수수 등 농산물의 수출 봉쇄, [대러]제재가 세계 경제에 끼친 파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 적도 인근의 개발도상국들] 인구의 기근 조짐을 불러오는 극적인 식량난 가능성을 연다는 사실입니다. 이들도 이제 “전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버려 둘 수 없는, 말하자면 [이번 전쟁 분석의] 여백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떠오를, 전쟁의 네 번째 결정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핵전쟁이 될 가능성입니다. 이 충격적인 문제는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독일에서 논란을 일으킨 최근 글에서 제기했습니다. 많은 논평가는 전쟁에서의 핵무기 사용이 러시아 정권의 “공갈협박” 수단이라고 믿습니다. 다른 이들은 러시아의 침략은 “핵우산 아래의 식민지 전쟁”이라고 제시합니다. [러시아 핵무기의 존재가] 다른 측(나토 아래 단결한 서방 연합)에 [우크라이나에 줄 수 있는] 도움의 규모와 개입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요점을 놓쳤습니다. “극단으로의 부상” 가능성은 (전쟁이 한쪽의 분명한 우위로 끝나지 않는다면) 총력전에서 절대로 배제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냉전 시기에 귄터 안더스 또는 에드워드 톰슨이 옳게 강조했듯, 핵무기의 존재(그리고 그 규모)는 정치적 정권과 지도자들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재앙적인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톰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멸주의”는 [지금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귄터 안더스(1902~1992)는 독일-오스트리아의 철학자다. 안더스는 평생에 걸쳐 반핵운동에 동참했는데, 그가 1956년에 출간한 『인류의 진부화』는 반핵운동에 중요한 저작이 되었다. 이 책은 인류가 창조와 파괴에 쓸 수 있는 기술력과, 그 파괴의 정도를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사이에 괴리가 커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에드워드 톰슨(1924~1993)은 영국의 역사가다. 영국의 대표적인 반핵평화단체 ‘핵군축캠페인’(CND)에서 활동했고,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잡지 《뉴 레프트 리뷰》의 전신인 《뉴 리즈너》를 창간했다. 냉전 속에서 미국과 소련 양 체제가 핵무장과 군비경쟁을 강화하는 ‘절멸주의’를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톰슨은, 서유럽과 동유럽 시민의 연대를 통해 미국과 소련 핵무기 양자에 반대하여 ‘비핵유럽’을 달성할 것을 기치로 한 ‘유럽핵군축’(END)을 설립했다.]
따라서, 우리는 판단에 있어서 이 이질적인(그럼에도, 독립적이지 않은) 차원들에 어떻게 우선순위를 매길 것인지 결정할 필요로 돌아왔습니다. 제 입장은, 취약한 입장이란 것을 저도 알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펼쳐지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 할 즉각적인 긴급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독립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명백히 이것은 [러시아로부터] 부인당한,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민중은 대규모의 범죄적 전쟁의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패배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을 것이며, 국제 질서에 파괴적인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지가 맹목적인 지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민족주의 문제와 세계적 공간과 분쟁의 지정학에 관한, 제 토론의 남은 두 부분으로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