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2.08.04
전쟁 속에서: 민족주의, 제국주의, 세계정치 ②
번역 | 김진영 정책교육국장
민족과 민족주의
우리는 “N-단어”가 이제 다시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놓여, 집단학살적 폭력, 불관용과 배제의 망령을 제기하는 한편, 역사적 행위자를 정의하기 위한 궁극적인 기준으로서 “민족형태”의 명백한 소거 불가능성(irreducibility)을 재고하도록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N-단어(N-word)는 알파벳 N으로 시작하는 흑인 비하 용어들을 완곡하게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여기에서 발리바르는 이에 빗대어 마찬가지로 N으로 시작하는 민감한 주제인 “민족”(nation)을 N-단어라고 부르고 있다. “nation”은 문맥에 따라 “국가”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민족”의 뜻으로 쓰였다.] 우크라이나 측은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 “민족적” 통합과 자치 정신에 의해 분명히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러시아의 “민족주의” 담론과 동일선에서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민족 국가들의 – 인정 여부가 많은 우발적 상황에 달려있지만 - “주권”을 신성시하는) 국제법에 대한 존중에 따라 힘의 불균형과 비대칭적인 위치를 지적하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양자가 표방하는 정치적 대의의 문제입니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일부 극단주의 단체의 실제와, 1941년 이후 나치즘에 맞선 “대조국전쟁”[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 중의 독소전쟁을 가리키는 표현]의 가상(imaginary)을 악용하는 러시아의 선전은 [현재] 우크라이나 정권을 “나치즘”의 부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전시하는 것은 현 러시아 정권입니다.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에서부터, “주인 민족”으로서 “러시아인”의 역사적 사명과 우월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담론의 전개에 이르기까지요. 여기서 저는 두 가지 상관적(correlative) 공리를 도출합니다. 첫째, 민족주의가 없는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민족형태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결정하지 않는 한(사실 사회주의 전통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큰 조류였습니다), 민족주의가 반동적 이데올로기 그 자체라며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둘째로, 역사의 서로 다른 장소와 순간에서, 민족주의의 변동과 민족형태의 구체화(avatar)는 상호적입니다. (주로 해당 민족이 연루된 전쟁에 의해 결정되는) 민족의 역사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의미와 성격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이는 결국 민족을 반대 방향으로 밀어냅니다. 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비율, 즉 “민족주의”라는 단일한 이름 아래 민족주의의 대립적인 형태들이 이루는, [어떤 민족주의는 억압적 성격이 우세하고, 어떤 민족주의는 저항적 성격이 우세한] 불균등한 균형 상태들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에 답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그보다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이 전쟁 과정 속에서 무엇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제출할 가설들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가설들은 매우 빠르게 반박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고려해 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정치적 성향과 그 정치적 효과를 둘러싼, 골치 아픈 질문은 우크라이나 민족국가(nation-state)의 제도에서 (다언어주의에서 시작하는) “다문화주의”의 위상에 관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민중(demos) 대 종족(ethnos)의 대립이라는, 현재 정치사회학에서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범주를 차용하여, 저는 우크라이나와 그 이상적인 정체성이 “종족 국가”에서 “시민 국가”의 방향으로, 혹은 종족에 대한 민중의 승리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현재의 애국적 저항의 성격과 연결된 “낙관적” 시나리오를 구상하려 합니다. 이는 침략자의 예상과 다르게 진행된, 주목할 만한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우크라이나어 사용자, 러시아어 사용자라는]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두 “언어 공동체”(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두 공동체가 크게 겹친다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이 이중언어 구사자라는 것을 뜻합니다)는 애국적 저항에 함께 참여했고, 자신을 독립된 우크라이나 민족국가의 이상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정적인 사실로 보입니다. 비록 우크라이나 내 여러 지역에서 이와 반대되는 힘도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요.
여기에서 이데올로기 담론의 패턴을 빠르게 우회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우크라이나 민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러시아 제국주의 측에서는 몇몇 모순이 존재합니다(이 모순들은 [서로 모순되는] 각 주장의 신봉자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 힘을 합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한 담론은 단일한 “러시아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인과 그들의 언어는 [“러시아 세계”라는 나무에서] 서로 이어진 가지들 중 한 갈래에 불과하다는, 종교적, 언어적 역사에 뿌리를 둔 계보학입니다. 상징적으로는 키예프[키이우]에서 모스크바로의, 주요 도시의 “이전”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을 아우르는 동슬라브족 최초의 나라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지역을 중심으로 882년 건국된 키예프 공국(키예프 루스)이다.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 공국이 무너진 뒤, 동슬라브 사회의 주도권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옮겨갔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다른 지역의 식민지 담론과 더 유사한 또 다른 담론은, “우크라이나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열등한 인종 또는 “역사가 없는 사람들”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틀 속에서 통합되고 교육 받은 경우를 제외하면요. 이 두 담론은 우크라이나에서 민족주의적 서사가 어떻게 반대로 구성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서사는 우크라이나 민중/민족의 지속적인 존재를 주장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무엇보다도 추구해 온 그들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러시아 제국에 대한 저항과 거의 동일합니다. 이 서사는 키예프를 수도로 하는 중세 왕국 "루스"와 현대 국가의 부흥 사이를 잇는 신화적 연속성을 구성합니다. [루스와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이의] 이러한 사회적 형성 속에는 완전한 이질성과 불연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의 상징적 현시들(“코사크” 공국들, 1917년 이후 혁명기 동안의 공화주의 “라다”)을 통해 루스와 현대 우크라이나가 연결됩니다. [“코사크” 또는 우크라이나어로 “코자키”는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지역 등에 흩어져 살던 슬라브계 군사민족 집단을 가리킨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나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맞섰던 코사크의 역사는 현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다”는 우크라이나어로 “평의회”, “의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막을 내린 직후 수립된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는 1918년 1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선포한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의회도 “베르호브나(최고) 라다”로 불린다.] 물론 그 연속성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소거"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언어 공동체에 기초한 실질적인 정체성이 있다는 생각과 함께 갑니다. 제 목표는 (세계의 다른 민족 신화들과 매우 유사한) 이 서사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지역에서 과거의 유산이 실제로 복잡한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라는 이름 자체가 보여주듯[우크라이나라는 국호는 ‘변경’, ‘경계’를 뜻하는 고대 동슬라브어 낱말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해석에 반대하기도 한다.], (수세기에 걸쳐 유동적인 경계 안에 위치해 온) 우크라이나는 접경지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문화적, 집단적 “소속감”은 다원성과 혼합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물론 폭력과 사회 갈등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경쟁하는 제국들(또는 왕국들) 사이에서 찢겨져, 분할과 패권적 통치권으로의 편입, 강제 이주와 외래인들의 유입으로 인한 인구학적 혁명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량학살도 겪었습니다. (20세기에는 2번의 집단학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볼셰비키가 기근을 통해 농민들을 몰살한 것이고, 두 번째는 나치가 집단 처형과 죽음의 수용소를 통해 유태인을 몰살한 것입니다…) [첫 번째 학살은 ‘홀로도모르’라고 불리는 1930년대 초반 대기근으로, 스탈린 정권이 급속한 농업집단화 추진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취한 정책들, 즉 무리한 곡물 징발량을 할당하여 겨울용 식량과 다음해 파종할 씨앗까지 징발한 것, 아사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신속한 공업화의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곡물 수출을 중단하지 않은 것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가 우크라이나 내 유태인 150만 명의 대부분을 학살한 것을 가리킨다.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할아버지의 형제들과, 증조할아버지도 이때 살해되었다고 알려진다.] 제가 조금 전에 지적했듯이, 핵심적인 현상은 인구 대다수의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의] 이중언어 구사입니다. 이것은 교육을 받은 오늘날 중산층을 탄생시킨 소련의 학교 시스템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가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민중의 전투력을 뒷받침하는 애국 정신의 발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민족적 서사가 아니라(또는 이 서사만이 아니라), 종족적 공동체와 구별되는 시민권의 개념을 만들어 낸 2013~2014년 마이단 혁명의 민주적 발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의 일부입니다. [(유로)마이단 혁명은 당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의 개입에 따라 유럽연합 가입 추진을 전면 중단한 것에 반발하여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일컫는다. 야누코비치 정권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에 대한 친러 성향 주민들의 반발과 러시아의 개입 확대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의 발발로 이어졌다.] 이 민주적 발명은 분명 순수하지 않습니다. 종파적 책략, "올리가르히"들과 부패 정치인들에 의한 조작이 침투했으며, 심지어 무장 민병대 사이의 폭력적 대립으로도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이단 혁명은 대중적인 민주적 반란임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권위주의(또는 “포스트민주주의”)로 향해 가던 지역적 경향이라는 배경을 보면요. [푸틴 통치하의 러시아를 비롯하여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우크라이나 주변 국가들에서 권위주의가 강화되어 온 흐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확실히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독재 정권이 마이단 혁명을 더는 용인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혁명은 부패에 대한 비판과, 서유럽 민주주의 체제(이것도 “올리가르히”적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 다원주의의 여지를 남겨놓습니다)의 공식적인 가치로 향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러시아 연방 시민들에게도 모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힘들이 상황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힘은 전쟁 그 자체입니다. 특히, 전쟁은 국가로서의 러시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어를 대상으로 하는 러시아 혐오(루소포비아)를 풀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요. 이는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우크라이나 시민 자신에 대한 혐오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알 수 없는, 미래에 정치적으로 결정적일 것은 이 대립이 어떻게 진화하나입니다.
지정학과 초국가적 공간
마지막으로, 저는 우크라이나라는 “접경지” 위에서 교차하는 여러 이질적인 정치적 공간들이 있다고 봅니다. 그 정치적 공간을 검토하면서 현재 중첩되고 과잉결정되는 여러 “전쟁들” 각각의 논리를 살펴보면, 이 “전쟁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다시 말하고자 합니다.
이 상황에 내재된, 그리고 전쟁 자체에 의해 더욱 커진, 근본적인 역설에서 시작합시다.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들은, 특히 제국(또는 과거의 제국을 부활시키려는 정치적 실체)에 맞서 싸우고 있다면, 자신들의 주권을 주장하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민족주권은 언제나 “제한된” 주권으로(심지어 매우 힘 센 민족들에도 그러하고, 작은 민족들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민족들에 의해 인정되고 동맹 체제에 통합되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절정기[냉전기]에는, 세계가 경쟁하는 “진영들”로 나뉘었기 때문에, 민족주권은 대체로 형식적인 자치권이 되었습니다. 비록 양 진영에서 똑같은 양식은 아니었지만요. 이 상황은 오늘날 재현되고 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는 그런 상황은 절대 사라진 적 없다는 것을 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이 증명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지형도가 바뀌었고, [제국주의 시대의 절정기와는] 다른 지정학적 세력 관계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지요. 오늘날 드러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군사동맹, 즉 미국이 세계에 대한 자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패권을 행사하는 서방 제국주의 구조에 편입되어야만 스스로를 방어하고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라는 "유사 연방적" 구조의 회원국이 되어야만 (자유주의적 의미에서) 민주적 가치를 확고히 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권의 실질적인 내용으로서 의존성을 발생시키는 이 두 과정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구별이 불가능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전쟁 자체가 나토 멤버십이라는 방패(여기에서도 미국이 압도적으로 지배적입니다) 아래서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군사적 통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요. (냉전 종식 이래로) 가까운 과거에는 정치와 군사가 분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정치와 군사가] 다시 단일 과정의 쌍둥이 얼굴로 등장합니다. (세계 무대에 “진영” 논리를 다시 설치하고 제가 “유럽 내전”이라고 부른 것의 해결을 무기한 연기하는 파괴적인 결과와 함께요.)
이 현상은, 처음부터 (러시아는 이를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번 전쟁은 (몇몇 신보수주의[네오콘] 신봉자들이 계획한대로) 구 공산주의 경쟁자를 “밀어내려” 한 나토의 공격적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한, 러시아의 선전을 정당화합니까?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토가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지배한 유라시아 지역의 정치 공간을 “포위하는” 정책을 가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애당초 나토는 군사적으로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느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지금 파괴하고 있는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푸틴 정권과 타협하거나 그 요구에 굴복하는 것은, 더 큰 집단(ensemble)에 대한 의존을 통한 독립의 획득이라는 역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반면에, 민주주의 국가[우크라이나]가 보았을 때, 퇴행적인 독재 제국[러시아]에 다시 삼켜지느냐, 아니면 불평등을 양산하고 영속시키기는 하지만 참여 협상을 위한 규칙을 세워놓은 연합[유럽연합]에 참여하느냐는 완전히 비대칭한 문제이리라는 것 또한 제게는 확실해 보입니다. 여기에서 제국주의의 현대적 형태와 정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합니다. 이는 각 제국주의가 강요하는 종속의 형태들을 구별하는 것 또한 포함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자체를 위해, 우크라이나인들의 "독립전쟁"의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날 정치적 통합이 복원된 [북미와 유럽의] 대서양 “진영”으로의 군사적 통합과 완전히 동일시되거나 군사적 통합에 종속되지 않을 가능성을 따져보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 자체의 전략적 발전에 달려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어느 쪽이 “승리”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어느 쪽이 평화 또는 휴전을 협상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어떤 해결책이 양측의 여론에 의해(여기에 러시아 민중의 여론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지지되거나 용인되는지에 따라서요.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이제부터 이야기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군사동맹 간의 지정학적 충돌의 수준이나, (중국이 결정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세계 제국주의의 새로운 지정학적 재편 문제를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마지막 문제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제가 조금 전에 “세계전쟁”이라기보다는 “세계화된 전쟁”의 “혼합적 성격”으로 개념화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전쟁은 결정적으로 경계와 한계(frontier)에 대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종류와 층위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국경은 보통은 국가가 실현하는 동료 시민(co-citizen) 공동체로의 포섭과 배제의 규칙을 정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지구라는 행성과 인류를 각 “지역”으로 나누는 “세계적 분할선”이 있습니다. 이는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 헤게모니, 불균등한 발전과 자본주의가 서로 다른 형태로 지역화한 것의 결과입니다. 세계의 영토와 인구가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로 나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노스는 주로 북반구에 집중된 부유한 국가들을, 글로벌 사우스는 주로 남반구와 적도 일대에 집중된 개발도상국들을 가리킨다.] 분명히, 이 분할은 세계 각지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 주로 퍼진 인식, 즉, 이 전쟁은 “북반구 제국주의들” 간의 전쟁이며 아마도 심지어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비록 여전히 가장 강력한지 아닌지 질문할 필요가 있지만) 바로 미국이 벌이는 “대리전”이라는 인식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것은 이 분할이 여전히 현실적인(그리고 중대한) 반면, 또 다른 “세계적” 현상과 복잡하게 결합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재앙이 여기서 결정적입니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경계를 옮기고 뒤엎는 현상입니다. 특히, 자연 경관을 엄청나게 파괴하는 대가로, 거주 가능 지역과 불가능 지역 사이의 경계, 그리고 어디까지가 착취 가능한 지역인지의 “한계”에 대해 그렇게 합니다. 전쟁은 여기에, 결코 덜 파괴적이지 않은 새로운 현상을 더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식량 부족과 기근이 발생할 가능성, 또는 심지어 큰 공산이 있습니다. 충분한 농작물도, 높은 가격으로 희소한 자원을 사기에 충분한 화폐 비축량도 없는 이 지역들은 대부분 글로벌 사우스에 위치합니다. 이것은 재앙의 구체적 형태로, 우리는 무기를 더 많이 생산하고 사용함으로써 여기에 환경적 영향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생태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정세에 대한] 개입에서, 서로 독립적인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인의 자유를 파괴하는 전쟁이며, 다른 하나는 생태계로서의 지구를 파괴하는 전쟁입니다. 저는 이 두 전쟁이 "혼합적" 의미에서 하나의 "일반화된" 전쟁 상태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전망은 암울하고, 집단적으로 대응할 역량은 제한적으로 보입니다.
저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좌파의 전통에 속하는 광범위하고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평화주의, 반제국주의 레퍼토리의 본질적인 부분인 국제주의라는 관점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평화주의는, 특히 유럽 시민의 관점에서, 인권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이미 그랬듯이, 모순된 위급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국제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지만, 위험할 정도로 무장해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범죄적 침략과 대량 살상으로 고통 받는 민중을 "무조건" 지지해야만 하며, 그들에게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압제자에 승리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푸틴 정권이 곧 러시아 민중은 아니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치 정권이 곧 독일 민중과 같지 않았듯이, 부시나 트럼프 행정부가 곧 미국 민중과 같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러시아 혐오와 싸우고, [러시아 체제] 내부에서부터 이 침략에 저항하고 있는 러시아 반체제세력에 최대한도의 연대를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핵무장 반대 운동을 재개해야 합니다. 더 일반적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 질서의 개념을 되살리기 위한 모든 기회를 모색해야 해야 합니다. 민족의 독립성과 민중의 상호의존성[각 민족 차원에서는 독립의 권리를 포함하여 완전한 자결권을 누리되, 민중은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서로 의지하는 구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력, 지배, 제재보다는 집단 안보에 기초한 세계 질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