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2.08.08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과 정책적 함의 ①

사회진보연대
미국의 헤드라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올해 3월 (전년 동월 대비) 6.6%, 4월과 5월 각각 6.3%, 6월 6.8%를 기록했다. 여기서 헤드라인 PCE는 가격변동성이 높은 식품, 에너지를 포함한 물가지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PCE는 같은 기간 3월 5.2%, 4월 4.9%, 5월 4.7%를 기록해 다소 하락하는가 싶더니 6월에 다시 4.8%를 기록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지난 40년 동안 최고치를 연거푸 경신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성격, 향후 전망, 정책적 처방전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검토하면서,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러한 인식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루겠다.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성격

 
먼저, 원인을 둘러싼 논쟁에서 초점은 주된 요인이 수요압박이냐, 아니면 공급압박이냐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문제는 아닌데, 두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 감소와 동반하는 반면, 수요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 증가와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수요측 요인에 비해 훨씬 더 나쁜 뉴스라는 사실을 우리가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을 떨어뜨리고 실업을 악화하는 반면, 중앙은행이 직접적으로 통제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각각의 요인을 살펴보자. 우선 공급측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노동공급의 감소: 코로나에 대한 공포, 조기 은퇴, 이민의 감소, 학교폐쇄 등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는 노동시장 참가율을 낮추거나, 자연실업률을 올리거나, 또는 양자 모두의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여기서 자연실업률이란 인플레이션을 가속하지도 감속하지도 않은 상태로 노동시장이 균형을 이룰 때의 실업률을 뜻한다. 자연실업률이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정을 전제로 이론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실제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추정치에 도달하면 ‘완전고용’을 달성했다고 간주한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자연실업률이 상승했다는 주장은 매우 중대한 정책적 함의를 지니는데,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다룬다.)
  • *코로나 창궐에 따른 강제 직장폐쇄
  • *코로나 봉쇄에 따른 연쇄효과: 즉 공급망 문제, 해운과 국경통과의 중단.
  •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에 따른 비용 상승과 교역중단: 이는 유로 지역에도 얼마간 영향을 미쳤다.
  •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상품가격 상승.
  • *코로나 기간 동안 소비자수요가 대면서비스에서 상품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생산능력이 제약에 부딪치고, 상품가격 상승과 공급망 중단에 기여했다.
  • *일부 중앙은행의 경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신뢰성이 떨어졌다: 특히 신흥시장에서는 그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올리거나 산출을 줄였다.
 
가장 중요한 수요측 요인은 다음과 같다.
  • *팽창적 재정정책: 2020년과 2021년,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정책이 동원되었다.
  • *통화정책의 완화: 2020년 일부 국가에서는 통화정책도 완화했다. (통화정책의 변화에 따른 환율변동도 물가상승 문제에서 고려할 수 있는데, 환율은 수요와 공급 양자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자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품의 가격이 상승하여, 국내상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수입상품의 공급을 줄인다. 또한 한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은 곧 다른 국가의 통화가치 상승을 의미하므로 서로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의 통화지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대규모 유동성이 주로 금융권의 초과지준 형태로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동성이 민간부문에 직접 공급되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열었다. *출처, 한국은행, 「최근 인플레이션 논쟁의 이론적 배경과 우리경제 내 현실화 가능성 점검」 (2021.7.20.)
 
그렇다면 공급측 요인과 수요측 요인이 둘 다 엄존하는데, 어느 요인이 더 지배적인지 계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가.
 

수요/공급 요인에 대한 계량적 분석

 
샌프란시스코 연준은행의 아담 샤피로는 「공급과 수요는 얼마나 많이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가」(2022.6.21.)라는 글에서 수요/공급 요인을 분리하여 계량하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간단한 수요공급 곡선을 떠올려보면, 수요가 증대하면 거래되는 수량과 가격이 모두 상승하고,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과 수량이 모두 감소한다. 즉 수량과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면 공급이 증대하면 수량은 증가하나 가격이 하락하고, 공급이 감소하면 가격은 상승하나 수량이 감소한다. 즉 수량과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
 
그는 PCE를 구성하는 100개 이상의 상품과 서비스 범주를 활용하여, 공급과 수요 각각이 추동하여 가격이 변화한 범주와, 무엇이라 판정하기 어려운 범주를 구분한다. 보통 공급이 추동하는 범주에는 식품, 가계소비품(식기, 리넨, 종이제품)이 들어가고 수요가 추동하는 범주에는 자동차 관련 제품, 중고차, 전기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특히 2021년, 2022년 코로나 기간에 예외적인 가격변화를 보여준 범주를 열거해 보면, 공급추동의 경우(즉 공급이 감소한 경우)는 신차, 연료, 수리 서비스가 두드러진다. 반면 수요추동의 경우(즉 수요가 증가한 경우)는 가정 내 소비품, 예컨대, 가구, 의류, 장난감, 비디오장비, 취사도구가 뚜렷하고, 또한 팬더믹 이후에는 다시 문을 연 레스토랑, 박물관도 포함된다.
 
이를 종합해보면, 최근 12개월 인플레이션과 팬데믹 이전 10년(2010-2019) 평균을 비교할 때, 공급추동은 2.5%p 더 높고, 수요추동은 1.4%p 더 높다. 즉 공급추동이 최근 12개월 인플레이션의 절반 이상을, 수요추동이 1/3 정도를 기여했다. 코어 PCE 인플레이션을 보면, 패턴이 얼마간 비슷하지만 공급과 수요 양 요인이 각각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전년 동월 대비 헤드라인 PCE 인플레이션을 공급추동, 수요추동, 모호함으로 나누어 기여분을 측정한 그래프: 파란색은 수요압박이 기여한 부분, 연두색은 공급압박이 기여한 부분이며 노란색은 모호한 부분이다.
 
그래프를 통해서 인플레이션 추이가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2020년 전반기부터 나타난 인플레이션율의 하락은 수요 요인의 감소 때문이었다. 또한 2021년 3월부터 시작한 인플레이션율의 상승은 주로 수요 요인의 증가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경제활동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고, 미국구제계획(1.9억 달러에 달하는 바이든 행정부 경기부양 계획)이 2021년 3월에 제정되어서 수요요인을 더 강화했다. 이러한 요인은 델타 바이러스와 관련된 감염확산으로 인해 2021년 여름에 약화되기 시작했지만, 델타 바이러스가 누그러진 가을에 재부상했다.
 
반면 공급요인은 2021년 4월에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약간 늦은 반응을 뜻한다. 그 후로 공급측 인플레이션은 상승한 채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가속화는 식품과 에너지 공급의 혼란 탓으로 돌릴 수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된 부분도 포함된다. 무엇이라 판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부분도 적지 않다.
 
요약하면 수요측면이 아닌 요인이 2/3를 차지한다는 말인데, 이는 앞에서 말한 이유로, 경제 전체를 볼 때 매우 나쁜 소식이다.
 

선진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비교 분석

 
그렇다면, 미국 말고 다른 국가의 인플레이션은 어떤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조셉 가뇽은 「주요 나라마다 인플레이션 내력은 서로 다르다」(2022.6.30.)라는 글에서 위에서 소개한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을 분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의 상황을 비교한다.
 
그는 전체 경제에 적용되는 고전적인 공급-수요 그림을 그려서, 가격수준 즉 인플레이션은 수직축으로 측정하고 실질 국내총생산(GDP) 즉 경제성장은 수평축에서 측정한다. 물가가 하락하면 지출이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하면 지출이 감소하기 때문에 수요곡선의 기울기는 아래로 기운다고 가정한다. 또한 물가가 상승하면 생산을 촉발하고 물가가 하락하면 생산 의욕을 꺾기 때문에 공급곡선의 기울기는 위로 솟는다고 가정한다.
 
실질 GDP와 GDP 물가 평면에서 공급곡선과 수요곡선: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이 축소됨에 따라, 예상했던 것보다 2022년 물가는 더 오르고 GDP는 더 내려갔다.
 
위의 그림에서 굵은 선은 2019년 12월에 시점에 2022년에는 이럴 것이라고 추정한 미국의 공급-수요 곡선이다. 이때의 물가와 실질 GDP를 100으로 잡는다. 점선은 가장 최근인 2022년 6월의 추정치다. 점선의 교점을 보면, 2019년 말의 예상에 비해 물가는 5.0% 더 높고, 실질 GDP는 1.4% 더 낮다. (수평축을 통해서 공급/수요곡선의 이동거리를 각각 측정하면) 수요는 예상보다 3.6% 더 많고, 공급은 예상보다 6.5% 더 적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해서 미국과 유로지역, 영국, 일본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표] 2019년 예측치에 대비할 때,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나타난 누적 편차 (단위: 퍼센트)
  실질 GDP GDP 물가 수요 공급
미국 -1.4 5 3.5 -6.5
유로 지역 -2.4 3.8 1.4 -6.2
일본 -3.3 -2.5 -5.8 -0.9
영국 -2.4 5.9 3.6 -8.3
 
일단 실질 GDP라면 측면에서 보면 미국, 유로지역, 일본, 영국 중 어느 누구도 코로나 경기침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다만 그래도 미국이 가장 나은 편이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상보다 높다. 영국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미국, 유로지역 순이다. 심지어 일본은 추정치(즉 코로나 이전 추세)보다 2.5% 더 낮다. 인플레이션 요인 중 수요충격(수요증가)을 보면 미국과 영국이 두드러지게 크다. 유로 지역은 약간 양의 값을 지니며, 일본은 현저하게 음의 값이다. 공급충격은 모든 경제에서 음의 값이며(모든 경제에서 공급이 감소했다), 일본의 공급 감소가 제일 적고, 영국의 공급 감소가 제일 크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과 영국이 수요충격이 두드러지게 큰가. 첫째, 코로나 위기가 발발한 2020년에 미국과 영국은 통화정책을 확연히 완화한 반면, 유로지역과 일본에서는 통화정책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둘째, 모든 국가가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패키지를 실행했으나 미국의 재정패키지는 가계에 대한 직접 이전이 컸고, 가계는 그 이전액을 지출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가계가 팬데믹 동안 지출을 삭감했다.
 
영국은 공급충격이 가장 큰데 브렉시트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브렉시트에 따라 무역이 제한되고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성장을 늦추고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미국과 영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실질 GDP 성장률이 높고,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며, 수요충격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유로지역은 실질 GDP 성장률이나 인플레이션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수요충격도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유로 지역은 수입품, 특히 에너지 수입품이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긴축적 통화정책을 쓰더라도 미국보다는 온건하게 접근할 수 있다. 나아가 일본의 경우는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 즉 나라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경제정책이 각각 다르게 실행되어야 한다.
 

공급요인이 중요하더라도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서 공급충격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하느냐는 쟁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공급감소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2007-9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 의장을 맡았던 벤 버냉키는 그렇더라도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1970년대를 다시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2022.6.14.)라는 글에서 “공급제약이 완화되기를 기다리면서도, 연준은 수요의 성장을 느리게 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의 감소를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수요충격의 영향도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에 따라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가격인상→임금인상→가격인상’이란 식으로, 인플레이션이 자기영속적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즉 중앙은행이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모습을 보이면, 대중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대 인플레이션이란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뉴케인지언 이론은 인플레이션의 장기추세가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에 의해 결정되며, 장기추세와의 괴리는 경제의 유휴수준(slack), 수입품 가격변화나 특이한 충격에 따라 나타난다고 본다. 따라서 뉴케인지언 이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처방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버냉키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 셈이다.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인가, 정부의 물가통제인가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유가 인상을 비롯해 비용요인(공급요인)에 의해 물가가 급상승했던 1970년대와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반되었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귀결되었다. 왜 그랬나. 버냉키는 1970년대의 경우, 중앙은행이 적극적 대응을 피했고, 의회와 행정부가 나서서 직접적인 물가통제를 시도했으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1968년 닉슨 대통령이 당선된 후, 1970년 8월 민주당 의회는 행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안정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닉슨은 대통령에게 가격-임금통제 권한을 부여한 이 법에 의거하여 1971년 8월 포괄적인 임금-가격 동결을 단행했다. 미국에서 전쟁시가 아닌 평화시에 최초로 이뤄진 동결책이었다. 90일간에 걸쳐 강제적으로 일반적인 가격, 임차료, 임금, 봉급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이 지난 후, 11월부터는 임금-가격 동결은 중지되었으나, 이를 통제하기 위한 조직이 구성되었다. 가격과 임차료에 관해서는 7명의 공공위원으로 구성된 가격위원회가 구성되고, 임금에 대해서는 기업가대표 5명, 노동자 대표 5명, 공공위원 5명이 참여하는 삼자임금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임금상승률은 5.5% 이내로, 인플레이션은 2.5% 이내로 묶는 게 목표였다.
 
최초 임금-가격동결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으나, 동결이 풀리자마자 억눌렸던 가격과 임금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가격위원회나 삼자임금위원회가 아무리 위로부터 다시 억누르려고 해도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가격위원회와 삼자임금위원회는 생계비위원회로 대체되었고, 현실에 맞추어 정책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가격통제를 완화,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1974년 4월, 경제안정법도 폐기되고 생계비위원회도 가격 모니터링이라는 기능만 남김으로써 사실상 문을 닫았다. 정부의 가격통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길을 연 셈이었다. 1980년대 볼커의 충격요법이 적용된 후에야 인플레이션이 끝났고, 매우 길고 깊은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버냉키는 지금은 1970년대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다르기 때문인가. 첫째, 옛날에도 인플레이션은 매우 인기가 없었으나, 1970년대 당시에는 이자율을 올려서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는 연준의 성향이 극심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했다. 존슨 대통령은 매우 인기가 없는 베트남전쟁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을 숨기기 위해,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라고 연준에 압력을 가했다. 1972년 닉슨은 재선을 앞두고 경기하강을 참지 않겠다고 연준에 분명히 밝혔다. 닉슨이 사임한 후로도 의회는 반인플레 정책을 피하라고 연준에 압력을 가했다. 1978년 의회는 실업률 목표를 3%로 설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반면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대하여 백악관과 의회, 양자의 지지를 받는다.
 
둘째, 인플레이션의 원천과 연준의 책임에 대한 인식도 결정적으로 다르다. 1970년대 연준 의장 번스는 비용인상 이론을 신봉하며, 인플레이션이 일차적으로는 대기업과 노동조합 때문에, 즉 경기하강 때에도 그들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해서 가격과 임금을 올림으로써 발생한다고 믿었다. 연준은 이런 힘에 대항할 능력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자율 인상의 대안으로 행정부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해달라고 닉슨을 설득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버냉키의 말을 종합해보면, 공급부족, 비용인상과 같은 공급측 요인의 상대적 중요성이 크더라도, △직접적인 가격-임금통제는 실행가능성이 없고, △수요를 감소시키고,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승을 꺾는 한결같은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대중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야말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는 최악의 상황을 낳을 것이라는 인식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한 가지 문제를 덧붙이자면, 한국의 노동자운동 내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인상보다 가격통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자들도 꽤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임금상승을 요구하기도 한다. 즉 가격통제를 하자면서도 임금상승은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정부가 물가통제를 실시할 때라면 어김없이 임금통제도 반드시 동반되었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다.) 코로나 경기침체 때에도 큰 폭의 이윤마진을 남긴 소수 대기업은 가격을 인상하지 않더라도 임금상승을 감내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경제 전반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이 정부에 물가통제를 요구하면서 임금만 예외로 하자고 주장하는 게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는 전쟁도 아닌 조건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물가통제, 임금통제 그 자체가 성공을 거두기 매우 어렵다는 버냉키의 역사적 분석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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