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2.08.09
장기침체, 또는 부채위기를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
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과 정책적 함의 ②
↵인플레이션 전망: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 아니면 스태그플레이션인가
그렇다면 금리인상은 어느 선까지 치고 올라가겠는가. 그에 따른 경기침체의 강도와 기간은 얼마나 되겠는가.
미국 의회조사국이 발표한 「미국 경제는 어디로 향하는가: 연착륙, 경착륙, 스태그플레이션?」(2022.6.28.)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경기침체도 없다는 의미의 연착륙이다. 이럴 경우 성장률은 완만하기는 하지만 양의 값을 보이고, 실업률 상승도 완만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는 하지만 경기침체가 동반된다는 의미의 경착륙이다. 2022년 1분기 미국경제의 성장률이 음의 값을 보인 후(마이너스 1.4%) 경착륙을 예상하는 경제학자들이 늘어났다. (게다가 의회조사국의 글이 발표된 후,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 0.9%로 나왔다. 경제적 정의상 ‘경기침체’란 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나오는 경우다.)
세 번째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를 동반하는 경우다. 이러한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어느 것이 점점 더 유력해지고 있는가.
연준 인사들 중에서는 7월 시점까지도 연착륙 가능성을 종종 언급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는 기업이 이미 많이 구인요청을 해놓은 상태인데, 앞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기보다는 구인활동을 중단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연착륙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수치를 보면 일자리 공석이 실업자당 1.9개까지 증가했다. 즉 실업자가 600만 명이고, 빈 일자리가 1150만 개였다. (뒤에서 언급할 서머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일자리의 매칭효율성이 갑자기 개선되리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석이 다소간 감소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실업이 증가할 것이며, 따라서 연착륙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5월 시점부터 “연착륙을 지금 당장 달성하기에는 상당히 어렵다”면서 연착륙 가능성에 대한 유보적인 톤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나아가,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부장관을 했던 래리 서머스는 연준의 표준적 견해보다 훨씬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서머스, 장기 침체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다
연준은 6월 15일 기준금리를 0.75%p 올린다고 발표하면서 경제전망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현재 6%를 넘는 수치에서 내년에 3%로, 2024년에 2%에 가깝게 내려갈 것이며, 실업률 중간값 예측도 5월 3.6%에서 상승해도 2024년 4.1% 수준일 것이다.
반면 6월 21일, 서머스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실업률이 5년간 5%를 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2년간 7.5%의 실업률, 5년간 6%의 실업률, 아니면 1년간 10%의 실업률을 겪어야 한다” “이러한 수치는 연준의 견해에 비하면 뚜렷하게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연준의장) 폴 볼커가 강행했던 가혹한 통화긴축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가 장기 침체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 두 가지 길로 갈 수 있는 공통적 요인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고 덧붙였다.
서머스는 자신의 계산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추측을 해보면, △서머스는 현재 실업률(3.6%)이 자연실업률(또는 물가안정실업률, NAIRU)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 위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머스는 자연실업률이 5%라고 가정한다. (코로나를 거치며 자연실업률이 올라갔다.) △인플레이션을 1%p 낮추기 위해 실업률이 몇 %p 올라야 하는가를 뜻하는 희생률(sacrifice ratio)을 2로 가정한다. 이는 역사적 추정치와 대체로 일치한다. △연준이 연간 2%라는 인플레이션 목표에 도달하려면 인플레이션을 2.5%p 낮춰야 한다고 간주한다. (2.5%p라는 수치가 너무 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변동성이 높은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측면에서 보면 타당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낮춰야 할 인플레이션율 2.5%p에 희생율 2를 곱하면 5%p다. △따라서 자연실업률 5%보다 5%p 더 높은 (1년간의) 10%의 실업률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또는 5년간 6%, 2년간 7.5%.)
어떤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실직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너무나 가혹하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진보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황폐화시킬 경기침체를 일으키는 일은 무모하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물론 실업이 초래할 노동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서머스의 설명과 예측이 잘못된 것이기를 희망해야겠지만, 희망과 현실은 구분해야 한다.
이러한 계산법이 아주 정교하고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세부적인 쟁점에 대해 거시경제학자들 간의 여러 긴긴 논의가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자연실업률 추정치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실업률 감소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등등),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서머스의 계산이 그렇다고 해서 미치광이의 주장도 아니고, 거칠기는 하지만 현실과 역사적 경험에 근거를 둔다는 사실에 있다. 실제로 서머스 본인도 이러한 계산에는 높은 불확실성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그러면서도 연준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접근법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연준의 현실 인식에 대한 매우 강한 경고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서머스, 바이든의 과도한 재정자극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리라 예상
사실 서머스는 지난해 2021년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 때에도 서머스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는 「재정자극 정책에 대한 나의 칼럼이 많은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 나의 답변이 있다」(2021.2.7.)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금융위기 당시 오마바 행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는 왜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가를 설명했다.
첫째,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재정지출 규모는 GDP 갭(실제 산출량에서 잠재 산출량을 뺀 값)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부양책은 GDP 갭을 세 배나 초과하는 규모로, 잠재GDP를 훨씬 더 초과하는 경기과열을 일으킬 것이다. (이는 2021년 3월에 발표된 인프라 투자계획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둘째, 공공투자와 같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효과가 큰 부문에 대한 투자보다는 개인 소득보전 비중이 높다. 그는 바로 이런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정책은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반론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첫째, 미국의 GDP 갭이 의회예산국의 추정치보다 더 클 것이다. 즉 바이든의 재정정책이 잠재산출량을 크게 초과하는 경기과열을 일으킬 정도는 아닐 것이다. 둘째, (실업률과 물가의 반비례 관계를 뜻하는) 필립스 곡선이 현재 평탄화되어 있다, 즉 실업률이 하락해도 물가상승이 미약하다. 따라서 크루그먼은 바이든의 재정정책이 결코 과도하지 않다고 심지어 그는 지난 해 3월 “바보나 정치꾼(즉 서머스)과 토론하는 일은 이상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며 서머스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 크루그먼이 올해 7월 21일 《뉴욕 타임스》에 「인플레이션에 관해서 내가 틀렸다」는 글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결국 2021년부터 이어진 인플레이션 논쟁에서 서머스의 예측이 더 타당하다고 판가름이 난 셈이기 때문에, 장기 침체나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서머스의 목소리에도 자연스럽게 힘이 실린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몹시 음울한 것이다. 첫 번째, 연착륙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이 강력히 대응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더라도 장기간, 큰 규모의 실업이 불가피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다. (즉 장기침체.) 세 번째, 최악의 경우는 중앙은행이 적절한 대응에 실패해 장기간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일이다. (장기 스태그플레이션.) 그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두 가지 나쁜 길 중에, 그래도 장기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장기 침체가 덜 나쁘다는 우울한 진단을 내놓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서머스가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재정정책(수요요인)이 이러한 상황을 촉발했다는 진단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서머스는 공급망 문제가 완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공급부족이 완화되어 중고차나 가솔린 가격이 하락한다면, 사람들이 다른 상품을 더 구매할 것이므로 물가상승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준 이사 월러의 예측대로 기업의 구직만 줄고 실업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금리인상과 부채위기: 루비니, 부채위기를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다
줄곧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여 닥터 둠(종말의 날)이라고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는 다른 각도에서 음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의한 부채위기라는 위험이 불안스럽게 다가온다」(2022.6. 29.)라는 글에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이고, 수요/공급요인이 혼합되어 있지만 점점 더 공급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경착륙, 즉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전제로 논의를 이어간다.
그가 제시하는 포인트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때, 과연 중앙은행이 매파적 결단, 즉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있다. 많은 분석가들은 매파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루비니는 중앙은행이 겁을 먹고 오히려 높은 인플레이션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왜 그런가? 세계 GDP에 대비할 때 민간, 공공의 부채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높다. 1999년 200%에서 2022년 350%로 상승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자율이 상승하면 대출이 많은 좀비 가계, 기업, 금융기관, 정부는 파산과 지불불능으로 빠질 것이다. (여기서 좀비란 죽었는데 산 것처럼 행동하는 자를 뜻한다. 곧 갚기 어려운 부채로 연명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즉 경기침체와 함께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중앙은행이 매파적 입장을 포기할 공산이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공급요인이 큰 상태에서 금리인상이 중단, 역전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있었지만 대규모 부채위기는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부채위기가 있었지만, 그 후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압력이 뒤따랐다.) 따라서 우리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과 2008년식 부채위기가 결합될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즉 금리인상이 중단, 역전되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부채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럴 때 중앙은행과 정부는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공격적으로 완화하기도 어렵고, 정부가 부채위기 상황에서 재정수단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최근 세계 각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이미 긴축적인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버블이 꺼지고 있다. 공모펀드와 사모펀드, 부동산, 주택, 밈 주식(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주식), 암호화폐, 스팩주(기업인수목적회사가 발생하는 주식) 등등 모든 게 그러하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가격은 하락하지만, 부채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상승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부채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신호다.
종합하면 서머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재정정책이 촉발한 수요요인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기저를 이루고 있으며 공급측 요인이 완화되더라도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려면 중앙은행이 단기적으로는 상당히 파괴적인 효과를 내더라도 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른 한편, 루비니는 부채위기의 폭발 가능성을 강조하는데, 중앙은행이 공격적인 정책을 써도 부채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중단, 역전하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어지면 부채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머스와 루비니, 어느 쪽이더라도 세계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다.
실제로 앞으로 상황이 서머스나 루비니의 예측대로 전개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준의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예측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우리가 그 위험성을 분명히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인플레이션, 현황과 전망
올해 6월 한국은행이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전년동기대비 4%를 웃돈 후 빠르게 상승하여 5월에는 5%를 넘었다. (보고서 발표 후) 6월에는 6.05%를 기록해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4분기 중 2% 중후반 수준을 나타내다가 4-5월 중에는 3% 초중반으로 나타났다. 공공서비스물가를 뜻하는 ‘관리물가’를 제외하면 근원물가의 상승률은 4-5월 중에 4% 내외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글에서 제시한 것처럼) 인플레이션을 요인을 수요요인과 공급요인으로 나누어 명확히 계량화해서 제시하지는 않는다. “공급측면뿐만 아니라 수요측면의 인플레이션 요인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정도로 표현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월의 6.05% 상승에서 근원품목과 에너지·식료품의 기여도가 각각 3%p, 3.05%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 근원 인플레이션이 높은 미국, 영국, 캐나다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또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서비스의 가격상승 때문으로 보는데, 이는 대체로 수요회복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한다. (가중치를 고려할 때 서비스가 근원품목의 69%를 차지한다. 서비스가 아닌 상품은 내구재(10.9%, 기타 공업제품(8%), 섬유제품(5.6%), 의약품(2%)으로 구성된다.) 비용측면에서는 전산업에서 명목임금 상승률이 올라갔고 (지난 해 4/4분기 5.2%에서 올해 1/4분기 7.2%), 제조업과 금융·보험업에서 특별급여도 증가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꼽는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하반기 4.6%, 연간 4.5%로 내다보았다. 그 요인으로 대외적으로는 △국제유가, 곡물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이어갔다는 점을 중요하게 본다. 대내적으로는 △금년 상반기에 GDP 갭률이 플러스로 전환되면서(즉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초과하면서) 수요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며, △일반인의 기대 인플레이션(1년 후 인플레이션 기대치)이 상승하고 △이에 동반하여 명목임금 오름폭도 커지며, △전기료·도시가스 인상도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한국의 인플레이션, 정책적 쟁점과 함의
지난 7월 13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한 번에 0.50%p 올리기로 발표했다. 한 번에 0.50%p를 내린 적은 있어도 올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었다. 이날 이창용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은행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때 질의 응답을 보면 무엇이 쟁점인지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물가상승이 국제 유가나 글로벌 공급 같은 외부요인의 영향이 더 커서 금리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질문이 있었다. 이는 공급요인이 커서 중앙은행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미국에서의 논쟁과 유사하다. 이 문제는 한국은행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문제로 보이는데, 올해 4월 한국은행 연구진은 「고인플레이션에 대응한 통화정책 운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글 중 일부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도 다시 실렸다. 이 글은 1970년대 미국과 독일 사례를 비교하는데, 결론은 “유가상승 등 비용충격 발생시에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안정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운영하는 게 중장기적 시계에서 긴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행의 분석에서는 공급측면뿐만 아니라 수요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한다.)
한편 이창용 총재는 “물가를 금리만으로 잡을 수는 없다”라는 표현보다는 “물가를 금리만으로 잡으려고 하면 그 비용이 너무 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비용이란 금리를 1%p 올리면 1년 내에 경제성장률이 0.2% 정도 하락한다는 뜻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보내더라도 가격-임금이 서로 마주보고 거세게 올라가는 물가상승 회오리 같은 일이 발생하면, 이를 억누르기 위해 더욱 강한 금리인상이 요구될 것이며, 경제성장률 하락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경제주체의 협력을 통해서 물가를 잡는 것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인위적인 가격-임금통제를 옹호하거나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고물가의 위험과 경기둔화의 위험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6%의 물가상승률, 4%의 근원물가상승률이 경기가 어떻든 간에 너무 높은 수준이고, 고물가가 고착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6%가 넘는 물가상승률이 계속되면 경기보다도 우선적으로 물가를 잡는 것이 경기에도 좋고 거시경제 운영에도 좋다”고 말했다. 즉 고물가가 고착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최악의 상황으로 간주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셋째,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감내할 수 있다고 보냐는 질문이 계속 나왔다. 이에 대해 그 수준을 절대적으로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고, 자본유출이 어떻게 나타나냐, 외환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구체적으로 관찰하면서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인플레이션 정책은 미국의 정책과 비교해볼 때, 정책적 틀이나 그에 동반되는 위험이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둘 다 뉴케인지언 거시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공유한다.) 첫째, 인위적은 가격-임금통제 정책을 실시할 여건도 없고,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둘째, 중앙은행이 적극적 대응책을 찾지 않을 경우, 고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위험마저도 상존한다. 셋째, 그렇다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중앙은행의 정책적 대응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는데, 만약 앞으로도 근원(코어) 인플레이션, 기대 인플레이션이 급속하게 올라가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큰 폭의 금리인상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 위험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넷째, 그럴 경우 경기침체를 넘어 부채위기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쟁점이다. 다섯 째, 한국의 경우는 미국과 달리, 한미 금리역전이라는 문제도 정책적 시야에 포함되어야 한다. 어디가 임계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금리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한국경제는 살얼음 위를 매우 조심조심 걷고 있는 형국이다.
마르크스 경제학과 인플레이션
마지막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검토하겠다. 쉬잔 드 브뤼노프는 『국가와 자본』(1976)에서 △중앙은행권(불태환 민족화폐)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이 정점에 서있는 현대적 화폐·신용체계와, △이를 기초로 한 케인지언 경제정책이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 편향’을 지닌다고 진단했다. 왜 그런가.
첫째, 현대적 화폐·신용체계에서는 개별 기업이 생산한 상품이 판매되고 수익을 남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은행이 자신이 보유한 예금을 기초로 기업에 신용을 공급한다. 또한 중앙은행은 은행이 보유한 예금을 중앙은행권과 교환해준다. 그런데 한 번의 예금과 대출이 다음 번의 예금과 대출을 낳는다. 대출을 받은 사람이 다시 예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복적 과정을 신용창조라고 부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얼마나 통화량이 증가했는가를 측정하는 게 통화승수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기업이 상품이 판매되지 않아 실현 위기가 즉각 발생할 위험을 시간적으로 뒤로 미루되, 인플레이션을 낳을 잠재력을 동반하게 된다.
둘째, 케인지언 거시경제정책은 공급과잉을 흡수하고 사회적 수요를 창출하고자 정부지출을 확대한다. 그런데 예산적자를 통한 국가의 지출은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미래의 조세수입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최종결제를 미래로 연기하는 셈이거나, 심지어 △예산적자를 더 확대함으로써, 즉 국가가 새로운 빚(국채)을 내서 과거의 빚(국채)을 갚는 부채누적을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최종결제를 무기한 연기하는 셈이다. 그런데 국채의 발행은 은행의 신용창조 과정에서 늘어난 통화량을 매개로 하거나, 심지어 중앙은행이 직접 화폐를 찍어 구매할 것이므로(국채의 화폐화) 인플레이션 잠재력을 지닌다. 즉 현재 발생할 위기를 정부의 적자재정과 정부지출을 통해 미래로 미룰 때, 인플레이션 위험을 동반하게 된다.
이를 종합하면, 한마디로 인플레이션은 위기의 연기, 분산이고, ‘미래로의 도피’다.
자본주의가 성장기일 때는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온건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 (1948-71년 사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연간 물가상승률은 평균 3%였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면 1970년대처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비화될 수 있다.
보통 1970년대를 ‘비용인상형’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1965-66년부터 미국에서 자본축적의 곤란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을 엄밀히 말하면, 비용이 인상되서 경제가 어려워진 게 아니라, 경제가 어려워져서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이 하락하고, 이윤유보를 통해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워졌는데, 이는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지표였다. 서방의 산업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 70%에서 1973년 49%로 감소했고, 1971년에는 20세기 이후 최초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미국이 자본축적에서 어려움을 겪자 이는 곧 달러지배력의 약화로 나타났다.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약화되자 미국 내부에서도 달러약화가 이어졌다. 즉 1973-4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10%를 상회해서 두 자리 숫자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1974년에 이르게 되자, 현재로부터 미래로의 도피, 즉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로도 실업률의 급상승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곧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시화되었다.
요약하면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며 위기를 미래로 연기하는 케인지언 경제정책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며, 생산성 하락이나 이윤율 하락과 같은 구조적 위기와 조우하면 물가인상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파괴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폭발할 수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도 이와 같은 틀로 접근할 수 있다. 2007-9년 금융위기로 대규모 수량완화 정책이 실시되고, 이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정책(테이퍼링)이 충분히 진행되기도 전에 코로나 위기가 발생해 다시금 대규모 재정정책이 실시되고 통화정책의 ‘정상화’가 지연되었다. 이는 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했다. 이때 강도 높은 통화긴축이 벌어지면 경기침체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기업의 생산성이 하락하고 이윤율이 하락하면 기업은 유보이윤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고 부채가 누적된다. 이때 금리가 올라가면 부채위기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서머스가 주장하는 장기침체나, 루비니가 예상하는 부채위기의 폭발 가능성은 케인지언 경제정책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위기 가능성을 분석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라는 틀을 통해서 그 의미를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