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2.09.30
푸틴의 ‘전쟁 동원’에 맞서는 러시아 반전운동
9월 21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동원령’을 선포하고, 1차적으로 예비군 30만 명의 징집 계획을 밝혔다. 러시아에서 18세~27세 모든 청년은 의무적으로 1년간 군복무를 해야 하며, 매년 봄·가을에 실시하는 징집을 기피하면 최대 2년 징역 혹은 무거운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특권층, 부유층이 뇌물을 써서 징병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푸틴 대통령은 군복무 경험이 있는 예비군 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한 동원령이므로, ‘부분적’ 동원령이라고 주장했다.
동원령 발표는 러시아 사회에 거대한 파문을 낳았다. ‘부분적’ 동원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이 무색하게, 동원령 발표 직후 튀르키예,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주변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가 매진되고 몽골, 조지아,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국경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징병 대상 나잇대 남성들의 ‘출국 러시’가 두드러졌다.
동원령이 내려진 지 일주일이 지난 현재, 우려대로 마구잡이식 징병이 이뤄지고 있다. 반전운동, 인권운동단체들에 따르면, 정부가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던 대학생, 군복무 미경험자도 전쟁터로 끌려가고 있다. 여성도 의사 등 전문 지식 보유자, 기술자는 징집 대상이 될 수 있다. 학교 교사, 직장 관리자들에게 입영통지서 배부를 맡겨, 학교, 직장에서 입영 통지를 받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경찰이 동원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구금된 남성들에게 즉석에서 작성된 입영통지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즉 입영에 동의하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일들도 있었다. 모든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제대로 된 군사훈련도 없이 1만 명 이상의 신규 징집자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배치되었고, 사망자와 투항자가 나오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러시아가 최소 10만 명을 이미 징집했다고 추정한다).
이에,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주요 도시를 포함한 러시아 전역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전쟁 반대, 동원 반대’ 시위와 징병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터져 나왔다.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것조차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고강도의 탄압으로 인해, 러시아 반전운동은 개전 초기 이후에는 대규모 시위 대신 ‘게릴라’ 전술, 선전전 위주의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동원령이 발표되자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으로, 모든 수단을 사용한 투쟁, 특히 주요 도심에서의 동시다발 시위 조직으로 전술을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을 때, 동원령 발표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동원 반대 시위는 이전까지 각지에서 물밑으로 진행되던 반전운동 흐름을 하나로 모으고 수면 위로 드러냈다. ‘전쟁 반대’를 통해서 페미니즘 운동, 노동운동, 소수민족 해방 운동, 학생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이 연결되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러시아의 반전운동이 러시아 내부에서부터 푸틴의 전쟁 야욕을 분쇄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와 세계의 반전 이니셔티브들
7월 7일, 러시아의 독립 인터넷 언론 《메두자》(Meduza)는 “우리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기사에서 ‘러시아와 국외의 가장 중요한 반전운동 이니셔티브들’ 24개를 소개했다. 차례대로, 미디어 파르티잔,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반전 병가’(病暇), 베스나(Vesna, 러시아어로 ‘봄’), 안티잡(Antijob), ‘저항 실천’, ‘양심의 부름’, ‘미디어 저항 그룹’, #깨어나라!(WakeUp!), ‘리맵’(reMap), ‘8번째 이니셔티브 그룹’, ‘자유 러시아의 깃발’, ‘러시아의 목소리’(TVOR), ‘크로니클스’(Chronicles), ‘평화, 진보, 인권’, ‘리셉션’(Priemnaya), ‘전쟁반대’(Nevoina), ‘안티워리어스’(Antiwarriors), ‘방주’(The Ark), ‘황금 열쇠’, 데모크라티야, 스모로디나, ‘검은 2월’, 퀴어 스빗이다. 이들은 여성, 청년, 노동, 인권운동, 학계, 성소수자 운동, 국외 디아스포라 공동체 등 다양한 부문에서 반전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 중 하나인 안티워리어스의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반전 이니셔티브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 참여하는 러시아인은 7월 초 기준으로 약 25만 명 규모로 추산된다.
현재 각지에서 ‘동원 반대’ 활동을 조직하는 데에도 이들 반전 이니셔티브의 역할은 주도적이며, 다양한 조직이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러시아어로 ‘동원’(Мобилизация)이란 단어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б→г) ‘무덤’이 되는데, 동원령 발표 직후 러시아 반전운동은 이를 활용하여 동원으로 전쟁에 끌려가는 것은 푸틴을 위한 죽음일 뿐이며, 남겨진 가족들에게 무덤만을 남겨줄 것임을 호소하였다. 이에 따라 “무덤 반대”라는 구호가 새겨진 포스터와 함께 전국 각지의 집결지와 집결 시간을 안내하고 시위를 조직했다.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베스나, 반전 병가, 검은 2월, 미디어 파르티잔 등은 공동으로 ‘집회 참가자의 안전을 위한 지침’을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인권단체 오베데인포(OVD-info)는 9월 27일까지 동원령 반대 시위 참가자 2355명이 경찰에 구금됐다고 집계했다. 반전운동은 이들에 대한 경찰의 구금, 폭력, 고문에 대해 항의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있으며, 시위 참가에 대한 벌금 부과가 개시된 상황에서 벌금을 대신 내주는 기금들도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집회의 자유가 극히 억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이러한 지원활동에 많은 역량을 투여하고 있다.
러시아 밖 세계 곳곳에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과 같은 러시아 반전 이니셔티브의 각국 지부가 있고, ‘방주’와 같이 국외 러시아인들의 반전운동을 규합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백청적색의 러시아 국기에서 전장의 붉은 피, 그리고 이 전쟁을 낳은 푸틴의 독재를 연상시키는 적색을 뺀 백청백기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제안되어 세계 각국 러시아인의 반전운동,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들은 동원을 피해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을 돕고 있으며, 동원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다. 동원령 발표 당일인 21일에만 미국, 영국, 터키,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체코, 키프로스, 오스트리아, 아르메니아 등에서 해당 국가 내 러시아 대사관이나 주요 거점에서의 집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단체들(‘Voices in Korea’,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한국 모임)이 9월 24일 오후 2시 주한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과 집회, 행진을 진행했다. 여기에 참석한 재한 러시아인 아샤 씨는 40대 이상에서는 전쟁 지지 여론이 높지만, 30대까지는 전쟁 반대 여론이 높다고 설명했다. 아샤 씨는 그러나 결국 전쟁에 나가 죽게 되는 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아니라 전쟁을 반대해온 젊은이들이라며, 구세대가 자식들에게 평화로운 러시아 대신 테러 국가 러시아를 남겨주는 선택을 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한 러시아인 소피아 씨는 이 전쟁을 통해 소수민족에 대한 러시아의 식민주의가 공개적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정부가 의도적으로 러시아 민족이 아닌 소수민족 지역의 주민들을 전쟁에 보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망한 사람들도 소수민족들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이 시작된 동원의 주요 대상도 소수민족들과 수도 모스크바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 사람들이며, 이것은 소수민족 청소, 학살이라고 규탄했다. 이날 집회에는 부랴트, 야쿠트, 고려인 등 러시아 내 소수민족 출신 시민들도 참가했다.
재한 러시아인 밀라 씨는 많은 러시아인이 동원령으로 인해 전쟁이 직접 자기 문제로 닥치고 나서야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한 것은 안타깝지만, 동원령이 러시아 반전운동의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들이 누적되어 이제 큰 영향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단계)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푸틴의 야망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아서라도, 반드시 침묵을 깨고 거리로 나와야만 하는 때라며 저항 행동을 촉구했다.
징병 거부 운동
징병 거부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러시아의 반전운동 역사에서 전쟁 동원 거부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90년대 체첸전쟁에 징집된 아들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전쟁 중단을 촉구하며 사상자 실태 파악, 불법 징집 폭로, 포로 석방과 유해 송환 지원 활동을 펼친 ‘병사 어머니회’는 오늘날에도 러시아의 대표적인 군인인권단체다. 동원령 발표 후 병사 어머니회를 비롯하여 ‘징집학교’, ‘양심의 부름’, ‘아고라’, ‘시민과 군대’ 등, 징병 거부와 관련된 정보와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단체들의 소식이 널리 공유되었다.
징병 대상이 되는 남성들을 위한 지침도 널리 공유되었다. 반전운동은 전국 징병 관련 시설의 전화번호 목록을 공유하며, “이 번호로 온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한다. 시민에게는 전화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사실을 홍보했다. 입영 전화나 입영통지서를 받은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과, 정부 기관들의 연락처를 제보할 수 있는 텔레그램 봇도 공유했다.
징병 관련 시설에 대한 방화도 이어지고 있다. 9월 21일~27일 보고된 것만 17건에 달한다. (2월 전쟁 발발 시점부터는 54건이다.) 이는 저항의 행동이기도 하지만, 러시아의 행정 전산화가 미진하여, 화재로 징병 대상자 서류가 불타면 실제로 징병 업무가 크게 지연되기 때문이다. 이에 9월 27일 모스크바 시 당국은 징병 관련 서류의 긴급 전산화를 시작하였다. 반전운동은 병무청 직원 및 징병과 관련된 일을 맡는 공무원들에게 “당신의 손에는 그저 이름들이 적힌 종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놓여있다. 당신의 작은 방해 행위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라며, 태업과 사보타주로 전산화 작업을 최대한 지연시킬 것을 촉구했다.
전선에 있는 군인들을 귀국시키기 위한 노력도 있다. 베스나와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9월 20일 ‘긴급 호소문’을 내어, 우크라이나 전선에 있는 러시아 군인들에게 “당신은 푸틴을 위해 죽을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러시아로 돌아오라”며, 지금이 전투 참여를 거부하거나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여 무사히 러시아로 돌아올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전투를 거부하거나 탈영을 시도하는 군인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법이 곧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21일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발표하기 직전 러시아 하원은 전투 거부, 명령불복종, 자발적 항복, 탈영 등 ‘군기 위반’에 대한 처벌을 징역 3년~10년 형으로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반전운동은 법률지원단체, 인권단체와 함께, 전투 거부, 항복을 택한 군인들을 구제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동원 반대 시위로 구금된 사람의 과반수가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여성들의 반전운동이 두드러지는 것에는,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전역의 페미니스트 단체, 개인이 힘을 모아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의 기여가 크다.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이 2월 26일 공개한 선언문은 세계 1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사회진보연대가 번역한 한국어 전문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선언문은 페미니스트들은 오늘날 러시아에 몇 안 되는 정치세력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오랜 기간 러시아 당국은 페미니즘 운동을 위험한 정치운동으로 여기지 않았고, 따라서 다른 정치 그룹에 비해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난 10년 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쌓아온 문화적 힘을 정치적 힘으로 전환하여, 전쟁과 가부장제에 대항할 때라고 선언했다. 독일, 미국,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조지아, 아르메니아, 체코, 한국, 벨라루스, 네덜란드, 세르비아, 리투아니아에서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의 세포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후로 지금까지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러시아 반전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8월 24일 발간된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6개월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든 러시아 사회에 전쟁의 현실과 참상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사미즈다트(과거 소련과 그 영향권의 국가들에서 검열을 피해 지하 출판한 출판물을 가리키는 말) 반전 신문인 《여성의 진리》(Женская правда)를 9호까지 발행했다. 수십 개의 러시아 도시에서 활동가들이 집집마다 이 신문을 배포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보고해왔다. 활동가들은 신문을 가족과 친척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는데, 오로지 이 신문을 통해서 전쟁에 반대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도 많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시를 포위 공격할 때에는, 마리우폴 시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최소 5000명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마리우폴 5000’ 캠페인을 벌여, 56개 도시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십자가를 850개 이상 설치하고,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에서 5000명을 죽였다. 이것은 ‘특별군사작전’이 아니라 전쟁이다.” 등의 설명으로 전쟁의 실상을 알렸다. ‘부차 학살’로 세계에 알려진 부차 지역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25일 동안 지하 감금된 상태로 러시아군에 지속적인 강간을 당한 것이 알려졌을 때에는, 전시 강간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러시아 정부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접속을 차단한 상황에서, 차단되지 않고 여전히 널리 쓰이는 메신저 앱인 ‘왓츠앱’을 통해 주고 받을 수 있는 반전 이미지들을 만들었다.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다방면에서 제공한다. 국가 폭력과 전쟁의 피해자들에 대한 전문 심리 상담, ‘반전 병가’, ‘안티잡’과 함께 설립한 반전 재단인 ‘안티펀드’를 통한 노동자 지원, 반전 활동으로 인해 구금된 사람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 러시아로 끌려온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지원 등이다.
전쟁과 민족 학살을 멈추라고 외치는 소수민족들
개전 초기에서부터, 징병이 러시아 연방 내 소수민족, 저소득층 거주 지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징병에 있어서의 ‘민족 차별’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인권운동은 부랴트 족이 사는 부랴티야 공화국에서는 전체 주민의 1/10가 징병된 마을도 있을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러시아 정부는 6천 명 가량으로 발표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실제로는 10배인 6만 명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출신 지역 분포만 보더라도, 부랴티야, 튜바, 북오세티야 등 소수민족 공화국 출신이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반면, 수도인 모스크바 출신자는 전체 85개 지역 중 가장 적다. 동원령이 내려진 지금은 소수민족을 집중적으로 징병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져, ‘인종 청소’나 다름없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원 반대 운동에서 소수민족 거주 지역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과거 체첸전쟁의 아픔을 겪었던 체첸은 어머니들이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징병 거부’ 운동 개시를 선포한 지역이다.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9월 21일 체첸 지역의 그로즈니 모스크 앞에서 열린 어머니들의 ‘징병 반대’ 집회를 소개하며, 한 참가자의 발언을 공유했다. “우리 모두 단결을 보여주어야 할 날이 왔다. 우리 자식들은 전쟁터에 죽으러 보내졌다. 내 모든 아들들이 우크라이나로 보내졌고, 그 중 둘이 이미 죽었다. 나 혼자서 이 모스크 앞에 섰다면 저들은 나를 겁주고 더 심한 짓도 했겠지만, 우리가 함께 서서 ‘우리 자식들은 소모품이 아니다’라고 외친다면 우리 자식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야쿠티야(사하) 공화국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이 광장으로 나와 야쿠트 민속 전통춤을 추면서 큰 원을 그려 경찰을 포위하는 시위를 하였다. 친정부적인 공화국 당국은 “이것은 반전 시위가 아니라 전쟁에 가는 남편, 아들들을 지지하며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춤”이라고 무마하려 했지만,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전쟁 반대”와 “민족 집단학살 반대”(Нет геноциду) 구호를 외치는 야쿠트 여성들의 모습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야쿠티야 공화국 의회도 푸틴 대통령과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어, 야쿠티야를 동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지금까지 야쿠티야에서 징병된 사람의 숫자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다게스탄 공화국에서도 9월 25일 무슬림 여성들을 포함한 군중이 거리로 나와 동원 반대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의 공중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계속되었다. 다게스탄 공화국 지역의 반전 활동을 조직하는 텔레그램 채널 ‘다게스탄의 아침’은 구독자가 12만 명이 넘는데, 9월 26일 징병 관련 시설 및 국가 기반 시설을 타격할 파르티잔(빨치산) 운동 참여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이들은 “경찰, 군인 또한 우리 편으로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인명이나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다게스탄의 아침’은 9월 30일에 다시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고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9월 25일은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다는 것을 역사에 보여준 날이었다. 30일은, 정부 당국이 우리를 두려워 할 차례다. 우리 자식들의 목숨이 달렸는데 집에만 있을 것인가?”
이러한 움직임들은 단지 동원령에 대한 반대로부터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들은 ‘러시아 민족’을 제외한 소수민족들(몽골계, 무슬림 등 러시아 주류와 인종이나 문화가 크게 다른 민족도 많다)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오래되었으며, 그것이 전시에 소수민족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차별적이고 무자비한 징병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쟁 초기부터 소수민족 활동가들은 다양한 전쟁 반대 서명운동, 공개서한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부정의한 전쟁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이들의 전쟁 반대, 동원 반대 시위는 민족차별 철폐, 자치권 확대, 각 민족 고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강조, 러시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주장 등과 점차 연결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저항
러시아의 반전 이니셔티브 중 노동 관련 조직은 ‘안티잡’과 ‘안티펀드’다. 2004년 이래로 블랙기업 정보 공유, 노동 상담, 체불임금 청구 지원 등을 해 오던 노동운동 플랫폼인 안티잡은 전쟁 발발 이후 반전 병가,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과 공동으로 ‘안티펀드’라는 반전운동 재단을 세워,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들, 전쟁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해고나 임금체불을 겪은 노동자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지원(무료 법률 상담, 노동조합 조직, 파업 지원 등)하는 활동을 해왔다. 노동권 침해가 전쟁과 국가의 경제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려왔다.
‘반전 병가’는 전쟁 초기부터, 노동자들이 전쟁에 항의하는 방편으로 우회적인 파업, 즉 단체 파업을 조직하기 어려운 개인도 참여할 수 있는 ‘병가’ 사용을 조직한 캠페인이다. 현재 안티펀드는 이를 확장하여, 동원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동원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집단 병가’를 조직하고 있다. 직장, 특히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징병 업무를 처리하기 좋은 대공장에서 입영통지서 배부가 이뤄지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에 반대하는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을 재택근무로 돌려 직장에서 입영통지서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고, 병무청에서 연락이 오면 직원들이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어 정확한 소재를 알 수 없다고 답하라고 지침을 주었다.
안티잡은 설령 동원당한 시민들이 귀환하더라도, 노동권과 생계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일단, 전쟁에 동원된 시민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이미 러시아 국방부는, 동원된 시민은 전쟁 이후에 원래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밝혔다. 동원된 시민은 러시아 연방군과 입대 계약을 맺으면서, 기존 직장에서의 노동계약이 종료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안티잡은 “정부는 참전에 대한 ‘넉넉한’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겠다고 하지만, 국경의 혼란을 보면 모든 사람이 그러한 약속에 안심하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청년,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청년들의 민주화 운동 단체인 ‘베스나’(봄)도 동원 반대 시위를 조직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구독자가 11만 명이 넘는 베스나 텔레그램 채널은, 시위 참가와 징병 거부를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다. 베스나는 2013년 설립되었는데,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월 25일 반전 캠페인을 시작하겠고 선포하고,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반전 시위들을 조직했다. 베스나는 ‘전쟁’이라는 표현조차 금지하는 ‘가짜뉴스 금지법’ 폐기와 푸틴 탄핵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공개적으로 벌여오기도 했다. 베스나 활동가는 “우리의 싸움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라며, 지금의 활동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권 교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쟁은 푸틴이 민중의 권력을 찬탈한 데 따른 증상이므로, 먼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만들어진 러시아 좌파 반전 매체 《포슬레》(러시아어로 ‘이후’라는 뜻) 웹사이트는 7월 14일, 대학생 활동가들의 대담을 게시했다. 여기에는 러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학생 반전 이니셔티브인 ‘학생반전운동’ (SAD, SAD는 러시아어로 ‘학생 반전 운동’의 앞 글자를 딴 것인 동시에, ‘마당’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모스크바 물리공과대학교’, 비야트카 주립대학교의 ‘비야트카의 속삭임’, 카잔과 노보시비르스크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로자’(뇌우), ‘튜멘 주립대학교 이니셔티브’가 참여했다.
이들은 왜 학생운동이 반전운동에 중요한 힘인지를 정리한다. 첫째, 많은 러시아인이 자녀나 나이든 부모의 안위를 우려하여 시위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 학생들은 가족의 안녕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지 않다. 둘째, 학생들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기구로 기능하는 교육기관에 속해 있다. 따라서 학생운동은 교육기관과 교류하여 이들을 견인하거나,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교육에 반대할 수 있다. 셋째, 대학은 극도로 원자화된 러시아 사회 속에서, 집단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에는 교실, 식당, 기숙사와 같이 많은 사람이 마주치는 큰 공용공간이 있고 학생들은 매일 이를 사용한다. 따라서 대학은 학생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결과적으로 정치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특별한 환경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학생운동에는 참고할 수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역사가 있다. 많은 나라에서 학생운동은 사회 변화에 크게 기여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학생들은 “우리의 시위는 완전히 새롭게 고안될 필요가 없다. 역사로부터 사례, 모델, 전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동은 전쟁 반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밑그림을 형성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활동 계획으로는 여러 도시와 대학의 학생들 간의 연결을 형성하여 운동을 확대하는 것, 기존의 노동조합, 학생회들에 참여하거나 새롭게 건설하는 것, 효과적인 시위 전술을 구사하기 위한 정보를 담은 지도를 만드는 것을 꼽았다.
푸틴의 전쟁 동원에 맞서는 러시아의 반전운동을 지지하자
러시아 각계각층의 반전운동은 러시아 사회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부족했기에 푸틴의 야욕이 쉽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부정선거 의혹, 집회에 대한 폭력적 진압, 야당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의문사 사건이 난무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다시 러시아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 시민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러시아 사회운동에 있어 민주화 요구와 전쟁 중단 요구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러시아에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미 7개월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후 세계질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푸틴 정부는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을 금지한 UN(국제연합) 헌장을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으며, 1945년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진지하게 위협하고 있다. 세계가 보편적 규범 없이 각자의 이해를 무력으로 관철하려 하는 시대로 퇴보하고, 그로 인한 더 큰 전쟁의 위험을 향해 갈 것인가, 아니면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대안적 국제질서를 모색할 가능성이 주어질 것이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 달렸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민중의 저항에 달렸다. 한국과 세계의 사회운동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침략을 멈추고 전쟁을 낳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체제를 바꾸려 하는 러시아 반전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