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2022.12.01
새로운 판을 여는 투쟁, 교육공무직본부의 끝없는 도약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김용정 사무처장, 정경숙 부본부장을 만나다
11월 25일 여의도 일대는 하루 파업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의 들뜬 행렬로 빼곡히 채워졌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학교비정규직노조로 구성된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17개 시도 교육청 간의 집단교섭이 결렬된 후 성사된 첫 파업이었다.
코로나 이후 첫 대규모 파업 집회를 개최한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의 감회는 남다를 터. 이날 교육공무직본부 주최의 <새로운 판을 여는 총파업 대회> 역시,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져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대회는 조합원들로 구성된 난타가 ‘사랑의 트위스트’에 맞춰 북을 치면서 흥겹게 시작됐다. 대회 중반에는 모두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이제는 엄마의 파업 이유를 이해한다는 딸의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산재 판정을 받고 사망한 동료에게 쓴 편지가 낭독되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민중가요 ‘길 그 끝에 서서’를 힘차게 함께 부르는 모습까지, 내내 연둣빛 물결의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단상과 애드벌룬에는 ‘임금체계 개편’, ‘교육복지 강화’가 나란히 걸렸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혼란 속에서도 묵묵히 학교를 지켰던 이들이 가리킨 노동 현장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압축한 구호일 것이다. 그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김용정 사무처장과 정경숙 부본부장을 11월 29일,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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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종을 넘어 한 번 더 단결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안”을 내놓기까지
올해 집단교섭에 관해 묻자, 두 분 모두 올해 교섭의 핵심의제로 임금체계 개편요구안을 지목했다. 현행 교육공무직 임금체계는 2개 유형과 기타 유형으로 직종 간 임금 테이블이 분리되어 있고, 직종별로 각종 수당의 적용 여부나 액수가 서로 다르다. 체계적인 기준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채용했던 문제가 얽히고설켜 온 것이다. 이에 노동조합이 먼저 문제해결에 나섰다. 교육본부직본부는 올해 ‘교육공무직 독자(단일)임금체계’라는 명칭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했다. 전 직종의 기본급을 통일시키면서 근속수당을 포함해 임금 구조를 단순화하고, 이후 ‘통합기본급’과 ‘공통수당’을 핵심으로 단계별로 인상한다는 것이 골자다.
임금인상이나 수당쟁취가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이 파업 요구안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두 분과 교육공무직본부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교육공무직본부는 ‘보조’라는 이유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최저임금 이하의 처우를 받던 학교 비정규직을 사회의 전면에 드러내고, 급식비, 명절휴가비, 근속수당 등 임금항목을 차례로 ‘만들어내는’ 명쾌한 투쟁을 진행해 왔다. 또한, 지역별로 학교별로 다른 주먹구구식 임금이 아닌, 전국적으로 같은 임금체계 적용을 요구하고 쟁취해왔다.
(정경숙 부본부장) “예전에는 학교장이 책정한 대로 임금을 받다 보니 어느 지역에는 급여를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한참 못 미치는 사람도 있고, 게다가 시간제로 받는 사람도 있었죠. 이렇게 한 직종을 놓고 봤을 때도,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 수준이 다른 거죠. 그래서 전체 교육공무직의 임금 틀부터 제대로 만들자는 요구를 하게 됐어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장이 아닌 교육감을 사용자로 규정하고, 교섭과 투쟁도 각 지역교육청을 상대로 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성과도 있었지만, 이후 지역 간 격차라는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지역이 아닌 전국 수준으로 교육공무직의 임금체계를 통일하고 상향 평준화를 위해 17개 시도 교육청과의 집단교섭을 요구했고, 2017년에 집단교섭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단교섭을 시작한 이후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이 성과를 내며 일정한 궤도에 오르자, 이번에는 직종 수당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 내 직종 간 분열이 가시화되고, 사측이 이를 악용하여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조건을 바꾸고 다시 한번 단결을 확대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해보자 제안한 것이 이번에 ‘독자(단일)임금체계’가 등장한 배경이 되었다.
(김용정 사무처장) “매해 집단교섭을 하지만 올해는 요구안부터가 이전과 다른 집단교섭이었어요. 우리 노조 사상 최초로 임금체계 개편요구안을 냈거든요.”
(정경숙 부본부장) “사실 직종 간 이기주의가 있는 편이에요. 사측에서 각인시킨 효과죠. 그 결과 내 직종 일에는 목숨을 거는데, 다른 직종 일은 나는 모르는 네 일이 됐어요. 앞으로 더 잘 싸우기 위해서, 단일임금은 우리 단결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급식노동자 폐암 문제, 산재 인정 이후 노동조합의 과제
2019년 수원에서 한 조합원이 폐암이 걸려 산재 승인을 받기 전까지, 급식노동자들은 아이들 밥하는 일이 폐암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급식노동자들에게 익숙한 산재는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정경숙 부본부장) “노동강도가 굉장히 세요. 압축 노동이라 생각해요. 저녁에 집에 가면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팔이 저려서 잠을 못 잤으니까. 방학엔 정말 병원 투어를 해야 돼요. 그 기간은 내 몸을 다시 만드는 기간이죠. 물리치료를 받고 쉬어야 다시 학기 중에 일할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7~8시간 내내 15~20kg이 드는 재료들을 옮기니까, 하루에 코끼리 한 마리를 들었다 놓는다는 말 그대로죠.”
그래서인지 급식실 내 연기가 자욱해도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후드로 환기가 잘 안되면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는 정도의 조치만 했다. 반지하나 지하에 급식실이 있어 이마저도 불가능한 곳이 수두룩했다.
(정경숙 부본부장) “하루에 1,600명분 음식을 튀기려면 3시간을 꼬박 서 있어야 해요. 그런데 솥단지가 워낙 크니까, 솥에 거의 온몸이 빠질 정도로 일하는데, 그 연기를 다 마실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솥을 닦으려면은 아주 독한 세제를 쓸 수밖에 없거든요. 친환경 세제 같은 걸 쓰려면 팔이 남아나지 않아요. 온 힘을 다해서 3~4배로 문질러야 하니까, 차라리 더 독한 세제 냄새를 맡는 걸 택하고 말죠.”
결국 전국적으로 65명 정도가 폐암 산재 신청을 했고, 그중 40~50명 정도가 산재로 인정받았다. 현재도 16명이 절차를 진행 중이다. 충격적인 결과에 현재 급식노동자들은 폐 CT를 찍는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정경숙 부본부장에 따르면, 대략 100명 중 1~2명꼴로 폐암 ‘매우 의심’ 소견이 나오고, 또한 100명 중에 10명 정도는 폐 결절이 커서 재검 소견을 받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정경숙 부본부장) “그래서 다들 두려워해요. ‘뭐 나오면 어떡하지.’ 하면서요. 그런데 폐 CT도 노동조합에서 고용노동부나 교육부에 폐암이 이렇게 계속 나오는데 뭔가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하게 된 거죠. 폐 CT 찍는 건 올해 한정이거든요? 정부는 결과 취합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교육부, 교육청, 고용노동부 모두 깜짝 놀랐을 거예요. 이 정도로 많이 나왔을 거라 생각을 안 했을 테니까요. 급식노동자 전체가 다 폐 CT를 받은 것도 아닌데도 이 정도에요. 앞으로 더 많이 나오겠죠. 폐 CT를 정례화시키는 게 일단의 목표고요. 폐 결절 재검이나 폐암 산재 판정을 받은 분들에 대한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폐암을 막기 위한 예방 조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환기시설을 제대로 설치하라고 재작년부터 요구했지만, 아직도 계획이 없는 교육청들이 태반이다.
(김용정 사무처장) “작년에 급식실 환기시설을 의원들이랑 같이 가서 본 날이 있었어요. 후드앞에서 휴지를 들어보면 흔들려야 하는데, 안 움직이더라고요.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거죠. 심각한 상황입니다. 급식실이 반지하나 지하에 있어서 창문 환기가 아예 어려운 경우도 많거든요.”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내년에 겨우 2개 학교에만 환기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냈다. 환기시설을 비롯한 급식실 현대화 요구가 엉뚱하게 ‘넓은 급식실’로 모양을 바꿔 추진된 경우도 있었다. 동선이 길어져 노동강도는 더 올라갔다. 정경숙 부본부장은 이를 노동자들의 의견 청취가 안 되어 벌어진 탁상공론의 대표적인 예라며, 교육감들이 하루만, 아니 단 10분이라도 학교에 와서 급식 노동을 체험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경숙 부본부장) “또 우리 선생님들이 요구하는 게, 배치기준과 대체인력이에요. 일반기업이나 공공기관보다 배치기준이 너무 높아서 문제에요. 제일 심한 곳은 160명당 1명이 배치되죠. 대체인력도 문제인데, 연차나 병가를 쓰고 싶어도 내가 없으면 동료들이 고생하니까 눈치 보게 돼요. 상을 당해도, 아침에 대체를 구하느라 새벽부터 노동자들 톡방은 정신이 없어요. 요즘은 신규 입사자가 3개월을 못 버티고 나가고, 구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사람은 부족한 상황인데요. 저희는 전담 대체인력을 채용하고 그분들을 거점학교에 배치해서 휴가자 공백을 메꿀 수 있게 하라고 요구하는데, 몇몇 지역 외에는 전혀 의지가 없어 보여요.”
끊임없는 투쟁으로 달라진 풍경도 있다. 급식실에서 얻은 폐암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던 예전에 비하면, 요새는 조리 흄, 환기시설 등 급식실에 만연한 발암 환경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산재 인정은 비교적 쉬워졌다. 하지만 김용정 사무처장은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한 한 걸음을 겨우 내디뎠을 뿐이라 본다. 각 현장에 근본적인 예방조치가 시행될 때까지, 노동조합의 감시와 투쟁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것이다.
“교육공무직본부가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교육공무직본부 투쟁의 역사를 함께해 온 두 사람은 이번 파업이 벌써 9번째다. 어쩌면 익숙해지고 무뎌질 만도 한데, 이번 해 파업과 투쟁을 바라보는 소감이 어떤지 물었더니 대번에 “앞으로 할 게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무지 지친 기색이 없다.
(김용정 사무처장) “이번 파업의 경우에도 노동조합으로 항의 전화가 많이 왔어요. 더러우면 (파업하지 말고) 딴 직장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싸움이 우리만을 위한 것은 아니에요. 일단, 훗날의 자녀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고요. 저희 싸움의 영향을 다른 회사들도 받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전 문제도 정말 중요해요. 급식뿐 아니라 청소도 위험한 노동환경 문제가 있어요. 단순히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 투쟁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전 그게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정경숙 부본부장)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런데 학교 안에 문제가 많아요. 지방교육재정도 줄인다고 하죠. 그런데 왜 젊은 세대가 아이를 안 낳겠어요. 제 딸도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대요.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곳에 맡길 수 있게, 교육과 복지가 학교 안에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파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학교 안에 교육복지를 강화하자는 거고 그걸 우리가 하겠다는 얘기에요. 교육공무직본부가 해야 할 일이 저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이제 교육공무직본부는 차별의 피해자가 아닌, 학교의 주체로 노동자들을 자리매김하며 ‘교육복지’ 강화를 기치로 투쟁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돌봄대란’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학교라는 공간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수업만이 아니라, 급식, 돌봄, 상담 등 학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효율적이고 정책효과가 높은 복지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시기마다 나오는 선심성 복지 정책과는 다른, 학교와 돌봄 현장에 입각한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 발전하기 위해, 지금 교육공무직본부는 또 한 번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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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직본부는 12월 1일 시도 교육청과의 교섭을 재개하고, 신학기 파업을 바라보며 다시 투쟁 국면을 전환할 계획이다. 임금체계 개편, 교육복지 강화를 기치로 걸고, “학교에서 세상으로” 새로운 길을 닦는 교육공무직본부의 올해 투쟁이,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