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2.12.23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비판
미래노동시장연구회 1차 권고안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는 노동 개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1차 권고안을 발표했고, 정부는 적극적인 수용의 입장을 표하고 있다. 12월 15일 있었던 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인기가 없어도 3대개혁(노동‧교육‧연금)을 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민의 힘은 연구회의 권고 방향 중 임금‧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하여 23년 상반기 입법을 예고했다.
“비스포크 시대와 노동법의 현대화”
권고안은 지난 6월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방향>을 보완하여 세부 정책을 제안하였다. 노동개혁은 노사정 각 주체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갈등의 영역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대화와 합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노사정의 이해를 조율하는 과정 대신, 담당 부서의 선 방향 제시, 후 정책자문 보완이라는 전형적인 국가주도 정책개혁의 방식을 택했다. 정책의 주요 내용은 우선적으로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화다.
먼저, 노동시간에 있어 연장근로의 주 단위를 폐기하고 월‧분기‧반기‧연 단위 총량 관리로 개편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하고, 적용대상도 확대한다. 탄력근로제는 사전확정 요건을 완화해 사후변경절차가 가능한 제도로 보완한다. 휴가제도에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했고, 장기‧단체휴가 등 활성화를 명시했다. 기존 근로기준법 상의 예외 규정도 확대하였다. 1차 산업 및 고소득 전문직과 비대면 근로에 적합한 별도의 노동시간 산정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임금체계 개편도 구체화했다. 연공급을 직무성과급으로 전환하는 방향 아래, 중소기업에도 임금체계를 구축하도록 지원하고, 업종별로 임금체계를 통일하기 위한 협의체를 운영‧지원한다. 미국의 사례를 따라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제공을 위한 ‘통합형 임금정보시스템’을 도입하여 직무표준과 적정임금 데이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별도의 사회적 대화기구(상생임금위원회)를 통해 임금격차 해소를 지원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한편,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자대표제의 변화를 동반한다. 취업규칙 변경 동의 주체에 대한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노동계가 요구해 온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언급하였다. 임금 산정 기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주휴수당과 통상임금 기준을 언급하며, 파견업종 확대와 최저임금 제도도 손보겠다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이러한 노동시장 개혁안의 총적 기조는 기존 노동법 제도의 ‘현대화’가 핵심이다. 오늘날 노동은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표준화 시대에서 개인 취향과 선택의 다양화 시대로 변모한 비스포크(맞춤생산) 시대”로 나아갔으므로, 노동의 개별화, 자율적 선택권을 부각한다는 것이다.
노동 유연화의 추가적 완비와 노조의 상대화
주 단위 12시간 연장근로의 최대 상한 범위 확대는 그동안 노조가 방어해 온 실노동시간 단축에 있어 심각한 퇴행이다. 연장근로 계산 기준을 권고안대로 확대하면 주 최대 69시간 노동이 사실상 가능하다. 2004년 주 40시간 도입 이후 법정주휴의 의무가 강제되지 않아, 주 68시간(휴일 근로 포함)의 장시간노동이 현실화했다. 그런데 연구회가 제시한 연장근로 개정은 이 당시보다 퇴보한 것이다.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장 노동시간 국가에 속하는 한국에서 연장근로에 대한 전면적인 확대 정책은,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약화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권고안은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 획일적 방법은 한계적이라 현행 제도를 근본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즉, 윤석열 정부는 이제까지 역대 정권이 해왔던 유연근로제의 부분적 확대를 넘어, 주 단위 연장근로 상한선에 대한 일반적 기준을 허무는 발상을 하고 있다.
권고안은 이러한 급격한 정책변화의 근거를 이렇게 진단한다. “근로시간 연장이 곧 임금의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등으로 일자리를 독점하고(62.7%) 여성과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듭니다. 여성이 일자리에서 배제되고(’21년 여성 고용률 51.2%) 경력 단절을 우려해 출산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장시간 근로 개선과 여성‧청년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을 위해 근로시간 활용 방식을 다양화하고 선택의 폭을 확장하여, 다양한 휴식과 장기휴일의 향유를 통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노동력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즉, 권고안은 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연장근로, 휴일근로)이 여성과 청년의 실업을 유발한다고 규정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여 이들의 취업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장근로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총량을 관리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이는 오히려 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모순을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1차 노동시장에서 확립된 장시간 노동 관행이 고용의 불안정성이 높은 2차 노동시장에 미칠 부정적 파급도 인식하지 않는다. 연장근로 총량관리제는 여성과 청년세대의 고용 불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어렵다.
또한 권고안은 미국의 O*NET과 같은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업별 노조가 교섭을 통해 결정하는 연공형 체계를, 시장이 직무별 표준 임금기준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는 직무급 방향으로 유인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미국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시장임금 조사가 핵심적인 임금 결정 요인이 된 것은, 사업장과 산업 차원에서 임금 교섭을 진행할 노동조합의 힘이 미약해서다. 한국처럼 연공서열적 임금체계가 이미 산업 표준으로서 암묵적인 전제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시장직무평가를 도입한다 해도 그러한 제도가 대기업노조의 임금체계 변화를 유인하기 어렵다. 또한 직무별 임금표준이 만들어진다 해도, 대기업 등 내부노동시장의 1차 분배를 조정하려는 합의가 없다면 중소기업과의 지불능력 격차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불가능하다. 임금 격차가 실질적으로 축소되려면, 대기업 등 연공체계가 굳어진 사업장 노조에서의 개별적인 변화가 아니라, 노조의 산업적 임금 정책을 전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초기업적 산별교섭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직무급제는 단순히 연공급의 반대말을 의미할 뿐,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위해 고임금 조정이나 임금 격차 축소를 실제로 실행하겠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대기업 임금 극대화 관행을 통제하고 조정할 당사자인, 산별노동조합 또는 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주체를 진지하게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단순히 자유경쟁 원리로만 움직이지 않듯, 시장이 사회적 직무평정을 결정할 수 있다는 발상은 한계적이다. 정부는 직무급이 좀 더 민주적이라는 명분만 반복적으로 선언하는 대신, 협상의 대상인 노조가 구체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직시하고 대화의 주체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오늘날 노동시장 이중구조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총노동 차원에서 조율된 산업별 초기업적 임금교섭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 역시 기업별 노조가 개별적으로 추구하는 임금 극대화 전략의 한계를 진지하게 성찰하여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대기업 노조가 1차 노동시장의 안정적이고 우월적인 구조를 방어하는 데 치중하지 않고, 산별노조와 총연맹 차원의 임금정책과 교섭권한의 강화에 힘을 실어야 가능하다. 노동시장 격차 축소의 핵심 열쇠는 노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권화를 심화시킬 근로자대표성
권고안 서문은 현재의 노동체제가 “지체된 제도, 지연된 개혁”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개혁은 노동자의 개별적 선택에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권고안은 노동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화 및 취업규칙 변경을 동의할 주체를, 과반노조에서 직군, 직종별 부분 근로자대표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강조한다. 이는 개별적 선택권과 집단적 노사관계를 대립시키며 노조를 상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오히려 한국 노사관계 발전을 지체시키는 핵심적 문제인 기업별 노조의 분권화 경향을 촉진할 뿐이다. 노동조건 합의의 주체를 해당 노동 분업의 구획으로 나누면, 기업별 노조 내에서도 분열이 심화될 것이며, 따라서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적 교섭은 시도조차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권고안 서문에서 언급된, “지체된 제도, 지연된 개혁”의 사례로 가장 적합한 것은 기업별 노사관계를 조율하는, 산업적 차원의 초기업적 교섭의 미비다. 정부는 노조가 현대적인 노동방식에 뒤처졌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산업구조 변화에서 노동을 대변할 수 있는 노조의 역할은 배제한다. 노동시장 격차 축소와 저인구‧저성장 시대 경제, 산업 정책에서 노조가 거시적 의제를 통해 개입을 할 수 있는 통로는 일절 차단했다. 한편, 힘의 불균형이 전제된 노사관계의 현실 속에서 직종, 부서별 개별 결정권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논리를 극대화하면, 결국 노동3권의 의미가 퇴색되고 노조의 존재 의미도 상대화될 수 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의 현대화에 역행하는 노조의 분권화 또는 노동3권의 무력화를 내재하는 결함이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격차,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은 산업별, 기업규모별 생산성 격차의 원인인 경제구조를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연구회는 이 문제를 이중구조의 내부노동시장에 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장기 저성장과 노동인구 감소라는 조건에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1차 노동시장의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를 추가적으로 완성하려 한다. 또한 권고안에 포함된 “60세 이상 고령자의 계속고용”의 의미는, 고령자가 정년 이후에도 노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고령화 위험을 상쇄하는 노동생산성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상의 노동개혁은 주로 내부노동시장에 포괄되어있는 노조운동과 상당히 갈등적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들은 사실상 노동시장 격차의 핵심 변수이자 1차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당사자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격차를 축소하려면, 노사 간의 첨예한 쟁점을 점진적으로 설득할 보편타당한 전략과 실현 가능한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노동시장 격차축소나 노사관계 현대화의 실현가능한 전략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방향이 아니라, 노조를 우회하는 개혁 방향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거나 노동운동의 일면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다. 노조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노동시장 변화를 만드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다.
노동조합은 스스로 노동시장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주체라는 사실을 책임 있게 인식해야 한다. 장기저성장 경제로의 진입과 인구구조의 변화라는, 오늘날 거시경제적 제약 속에 노조의 투쟁이 놓여있다는 정세인식이 필요하다. 기술 발전과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노동시장 제도가 변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노동자운동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정확히 비판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개혁과제를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초기업적 임금정책의 개발, 기업별 교섭체계를 조율할 수 있는 산별 교섭, 거시적인 총노동 정책을 만드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