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2.12.27
요동치는 세계경제, 민주노조 운동의 역할과 과제는?
12월 22일 <등촌동 워크숍①> 참관기
2022년 하반기, 코로나19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엔데믹(풍토화)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치명률도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 전 세계는 고물가-고금리-저성장 시대라는 또 다른 방식의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 시행한 재정 정책과 양적완화라는 경제적 응급처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 2022년 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과 맞물려 순식간에 고물가-고금리 국면으로 돌변했다.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요동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우리는 2023년을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 노동자의 단결을 향한 사회운동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인가? 지난 22일 사회진보연대 공공운수노조 회원모임 주최의 공개 워크숍에서 “요동치는 세계 경제, 민주노조 운동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한 내용을 소개한다.
세계 경제에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은 2022년 한 해의 정세를 개괄하면서 워크숍 발제를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1월 0.25%에서 12월 4.50%로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전 세계 국가가 차례로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로 인한 자본 유출을 우려해서다. 지난 30년간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왔던 일본마저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한다는 신호를 보였다. 월드컵 우승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아르헨티나는 기준금리를 연 75%로 인상하였지만, 그럼에도 살인적인 물가상승은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 역시 세계적 경제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역사상 첫 전월세 역전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영국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역대 최단기(44일)로 사임한 사태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세계 경제위기에서 예외인 국가는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리즈 트러스 내각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긴축 정책과 상반되게 대규모 감세 및 에너지 지원금 지급정책을 시행했다. 정부의 이러한 모순된 정책으로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30년 만기 영국 국채금리는 폭등한 반면, 파운드화는 폭락하는 등 영국 경제는 파산 직전까지 몰린다. 영국 중앙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여 위기를 겨우 수습했지만, 영국 경제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더해, 부동산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가 심각하다. 지방정부융자기구(LGFV)가 지방정부 부동산 등을 담보로 인프라 사업에 투자한 부채의 규모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에 물린 지방정부 부채 문제는 중국의 또 다른 뇌관이자,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핵심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미중 패권대결로 탈세계화되던 공급망의 붕괴를 가속화하여, 세계 경제를 고물가-고금리 위기로 더욱 몰아넣었다.
질서가 무너지다: ‘40년’과 ‘70년’의 붕괴
이러한 정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재영 국장은 최근 정세를 ‘40년 전 시작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붕괴’와 ‘70년 전 시작된 2차 세계대전 이후 질서의 붕괴’로 진단했다. 세계경제는 1970년대를 정점으로 한 뒤, 이윤율이 저하하는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이윤 회복을 위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대응했다.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실물경제보다는 주식시장(2000년대 닷컴버블), 부동산 시장(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금융시장의 확대와 버블의 붕괴를 반복해왔다.
그런데 최근의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위기는, 2008년 이후 대규모 양적완화로 간신히 버텨오던 세계경제가 또다시 무너졌으며 이를 역전시킬 마땅한 수단이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협력을 바탕으로 수립된 국제 질서, 전쟁 억제 체제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전쟁은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동아시아에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위기 양상에 대한 전망: 2023년 세계경제
문제는 현재의 경기침체 양상이 주류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성장-침체-성장 패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 후퇴 이전의 성장률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며, 장기침체 국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도 제한적이다. 한재영 국장은 1930년대와 같은 방식, 즉, 전쟁을 통해 자본이 위기 극복을 시도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그저 기우는 아닐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3년 세계경제를 전망하는 데에 있어 어떠한 부분을 주요하게 짚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급증하는 국가부채를 전 세계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저성장-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한 한국은 노동자 내 양극화 심화, 가계부채 및 부동산 침체, 25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한 연간 무역적자, 한계기업 확대로 우려되는 고용불안 등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좀처럼 밝아질 기미가 없는 경제 정세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노동자운동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이어졌다.
관련하여 발제자는 현 시기 민주노조 운동은 ‘경제위기로 자본주의가 붕괴하면 무정부 상태가 되고, 민중권력 쟁취로 혁명의 그날이 가까워진다’ 식의 관념을 답습하지 말고,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기도 했던 ‘궁핍화’(노동자 간 적대가 심화되고 관계가 파탄으로 치닫는 상태, 야만과 타락)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과제와 다섯 가지 제안
요동치는 세계경제 정세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민주노총의 역대 경제위기 대응에 대한 평가를 발본적으로 시작해보자. 경제위기 시기 자본과 지배계급은 노동시장 재편을 위해 전략적인 공세에 나선다. 하지만 한재영 국장은 지난 시기 민주노총의 경제위기 대응은 기업의 울타리 안에 갇혀 호황기에 적합했던 투쟁 방식을 반복했던 것은 아닌가, 미조직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민주노조로 거듭나는 혁신의 계기를 유실한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졌다. 80년대 경제성장기의 노동자운동과 단절을 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며, 해외 사회운동의 사례에서 불황기 노동자운동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경제위기 시기 대정부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여 제도를 개선하고 한시적 해고금지 요구 등을 쟁취한 이탈리아노총의 사례, 물가가 치솟는 경제정세를 고려하여 임금협약을 체결한 독일 산별노조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처럼 다른 방식의 투쟁의 사례를 만드는 것, 초기업 초업종 투쟁의 실험이 계속될 필요가 있다는 워크숍 참가자들의 의견도 있었다.
경제위기 시기 실질임금 방어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이례적인 경제위기 시기에는 기업별 대응을 넘어서는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하나는 전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하락을 막는 투쟁, 조직된 노동자의 역량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을 방어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위기 시기 노동시장 재편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총연맹, 산별노조 차원의 계획이다. 경제위기에 더욱 취약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을 함께 방어하는 보편적 요구를 제시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면서 한국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형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운동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발제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1) 위기 시기 더욱 벌어지는 노동자 내부 격차 축소를 위한 임금투쟁 방안과 총연맹 역할을 정립하자. (2) 위기 시기 미조직,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입 방안을 마련하자. (3) 거시경제의 제약을 고려하여,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보장의 우선순위 요구를 정선하자. (4) 중장기 경제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대안을 모색하자. (5) 대안적 경제체제를 위한 연구와 토론에 역량을 쏟자.
각각의 과제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경제 정세를 더욱 깊이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겠다는 참가자의 의견도 제출되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 문제를 노동자 운동이 자기 과제로 삼아 대응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노총도 요동치고 있는 상황을 진중하게 인식하고, 현 시기에 적합한 사회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을 이어가자는 제안도 덧붙여졌다. 낡은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대안은 요원한, 혼란과 야만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토론과 실천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공공운수노조 회원모임이 주최하는 <등촌동 워크숍>은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1차 워크숍 발제문과 발표자료(PPT)는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 공개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