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3.02.15
전국민중행동 규약 개정을 반대한다
합의 정신 파괴는 민중운동의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오는 2월 15일, 2023년 제1차 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전국민중행동은 규약 개정을 예고했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표결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함으로써 합의제 방식으로 운영하지 않아도 되도록 변경하고, ‘공동대표단’이 “일상사업과 당면현안 투쟁을 의결한다”는 문구를 추가해 공동대표단이 전국민중행동의 운영을 좌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합의제 운영원리를 배척할 것인가?
공동투쟁체(이하 공투체)가 합의제 운영을 기본 원리로 채택한 것은, 공투체 자체가 서로 다른 이념·노선과 성격을 지닌 단위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며 공동의 활동을 추구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참여 조직 간 공동의 목표에 대한 조율, 공동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설립·운영·존속될 수 없는 조직이 공투체다.공투체에서 합의제 운영을 중시하는 것은, 합의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공고히 하고, 공동의 활동을 통해 ‘민중운동의 정치적 단결’이라는 소기의 정치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다. 합의제 운영이 무시되면 정치적 성과는커녕 공투체 운영 자체가 곤란해지고, 도리어 분열을 촉진한다.
과거에도 일부 자민통 그룹은 다수파의 승자독식을 추구하는 패권적 운영으로 진보정당의 분화(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와 상설 공투체의 쇠퇴(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국진보연대 불참 결정, <한국진보연대 출범, 이대로는 안 된다!>(2007.09.11) 참조)를 초래한 바 있다. 그 후 정치적 불신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민중운동 내에서 사안별 연대체(공투체)를 광범위하게 꾸리는 것조차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전국민중행동 규약에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표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과거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공동대표단으로 위임할 수 있는 조직인가?
더 큰 문제는 공동대표단이 일상 사업과 당면현안 투쟁을 의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는 합의제 운영원리를 완전히 배척하는 것이다. 목적하는 바가 다른 단체들 사이에서, 그것도 정치·사회적 쟁점을 이슈로 하는 투쟁에서, 조직의 입장을 다른 조직으로 위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결정과 집행은 공동대표단이 하고 다른 참가단체는 사실상 이름만 걸라는 것인데, 이런 운영원리를 수용할 정치·사회단체가 어디 있는가?
전국민중행동은 상설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단체가 아니다. 공동의 목표, 공동의 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투쟁체다. 정치적 단결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우선시하면, 원심력만 강화될 뿐이다.
전국민중행동 규약 개정을 반대한다
전국민중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의견대립이 첨예한 상태다. 지난 2월 8일에 열린 전국민중행동 토론회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상징하는 국제 정세의 지각 변동, 최근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등을 이해하는 민중운동 내의 입장 차이가 심대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토론회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전세계 평화운동이 견지해 온 반핵의 관점에서 북핵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자민통 그룹의 활동가들은 북미 양비론조차 위기의 본질을 가릴 뿐이라며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사회운동포커스 <사회운동의 엇갈린 시대인식>(2023.02.10.) 참조)
이런 시점에 전국민중행동이 합의제 운영을 완전히 무효화하는 규약 개정에 나서는 것은, 공투체 내에서 다수파와 다른 목소리를 결코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에 다름 아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전국민중행동 규약 개정에 단호히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