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 2023.02.15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①,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답습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의 정당 지배야말로 정치개혁의 대상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본선의 막이 올랐다.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대표 후보와 최고위원 후보 컷오프 명단이 지난 2월 10일에 발표됐다. 본선에 오른 당 대표 후보는 김기현, 안철수, 천하람, 황교안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본선이 시작됐음에도, 후보 개개인의 비전과 정책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 개입 논란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윤심’ 후보 당선을 위한 개입
거슬러 올라가면 이준석 전 대표가 시작이었다. 성접대 의혹과 무마 시도, 이에 대한 윤리위의 징계는 해석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할 여지가 있었을지 모르나, 이른바 ‘체리따봉’ 사건은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드러낸 결정적 계기였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과 호흡을 맞추며 함께 갈 당 대표를 만들기 위해 당에 개입하는 현재의 모습들을 보면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대표를 쫓아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준석 전 대표가 징계로 대표직에서 내려온 뒤 당 대표 선거 일정이 정해지자 곧바로 유승민 전 의원 주저앉히기가 시작됐다. 유승민 전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자 당 대표 선거 규칙을 당원 100%로 바꾸고, 이것도 모자라 결선투표제까지 도입했다.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선출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당시 나경원, 주호영 후보가 단일화 불발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었다. 결국 당심에서 불리한 유승민 전 의원은 출마를 포기했다.
그 뒤,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지지율이 1위에 오르면서 그녀의 출마 가능성이 점차 커졌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겸 외교부 기후환경대사직을 제안했을 당시에도 직을 제안한 이유가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당 대표 선거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출마 의지를 접으라는 의미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런데 1월 들어 지지율이 상승해 1위를 기록하자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 출마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부터 이른바 ‘윤핵관’의 공격이 시작됐다. 출산 시 대출탕감 정책에 대해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자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저출산고령사회워원회 부위원장직을 사임한다. 윤 대통령은 처음에는 서면으로 사직서를 받지 못했다며 사직처리를 하지 않다가 나경원 전 원내대표 측에서 서면 사직서를 제출하자 1월 13일, 부위원장직과 기후대사직까지 해임 처리한다. 이후 장제원 의원은 “박해를 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전형적 약자 코스프레”,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며 비판을 이어갔고, 급기야 50여 명의 초선의원이 연판장을 돌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계속된 당 내부의 공격에 결국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1월 25일 당 대표 출마를 포기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소위 ‘비윤’ 후보를 하나씩 정리하고 난 뒤에도 김기현 후보는 1위 자리를 확실히 굳히지 못했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가 1위를 달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안철수 후보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박수영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인수위 시절부터 윤 대통령이 안철수 후보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이진복 정무수석은 윤-안 연대라는 말에 대해 안철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동급인 줄 아느냐며 질타했다. 이에 안철수 후보가 윤핵관을 비판하자 대통령실은 재차 윤핵관, 윤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훼방이라 공격했다. 결국 안철수 후보가 지적한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서면서 일단락됐으나, 컷오프 발표 이후 김기현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당선되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능성이 커진다며 공격을 이어갔다. 김기현 후보는 2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수습했고, 대통령실도 대통령을 전대에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유감을 표명했으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높게 나온다면 이와 같은 공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비윤’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을 주저앉혔음에도 계속해서 유력한 경쟁상대가 등장하고 있다. 즉 대통령 측이 이렇게까지 힘을 실어주고 있음에도 김기현 후보는 1위를 완전히 굳히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대통령의 당에 대한 개입, 윤심 의원들의 독주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이번 컷오프에서도 드러났다. 당 대표 후보 천하람과 최고위원 후보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 등 ‘친이준석계’로 분류되는 후보 전원이 본선에 진출했다. 민심도, ‘당심’도 대통령이 이처럼 강하게 당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되묻고 있는 셈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한계를 답습하는 윤석열 대통령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렇게까지 당에 개입하는가. 《시사저널》의 2월 10일 기사(「‘윤석열 신당설’의 실체 추적... 尹의 소신은 중대선거구제”」)는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이나 중대선거구제 제안에 주목한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윤 대통령은 “다음 총선은 내가 치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당과 대통령이 혼연일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은 특히 이준석 대표와의 극심한 갈등 이후에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동시에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역시 기득권 세력으로 보고, 일정한 물갈이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특정 계파를 공천에서 학살하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지는 않고, 이를 잘 헤아리는 대표가 당내 시스템을 통해 교통정리를 잘해주기를 바란다. 또한 이런 맥락에 중대선거구제 도입도 고려한다. ‘공천 학살’이라는 거친 방식이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라는 제도적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물갈이’를 할 수 있다고 본다는 뜻이다. 즉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해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정국을 주도할 수도 있고, 이를 여당 내부 세력 재편이나, 나아가 세력 확장의 기회(야당 일부와 시민사회 세력을 흡수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이 아무리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방식 자체가 정치개혁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현재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곧 여당 총재고, 여당 총재가 곧 공천권을 휘두르는 후진적인 방식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은 (또는 강력한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리더십을 보완하기 위한 정당 재편을 반복해왔다. 김영삼 대통령 당시 1996년 총선을 앞둔 신한국당 창당, 김대중 대통령 당시 2000년 총선을 앞둔 새천년민주당 창당, 노무현 대통령 당시 2004년 총선을 앞둔 열린우리당 창당, 박근혜 비대위원장 당시 2012년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 창당 등. 이른바 ‘삼김시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가 저문 후,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로서 공천권을 행사하는 제도가 사라졌지만, 물밑에서는 여전히 대통령의 당에 대한 개입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심, 문심, 윤심이나 친박, 친문, 친윤 등등의 표현은 이런 현실을 방증한다. 즉 윤 대통령도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
당정분리 실천의 실패: 제왕적 대통령제의 내재적 한계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정당 지배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없었는가. 매우 강한 의미에서 ‘당정분리’를 시도했던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정치개혁을 회고해 보면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신당을 창당하고 여당에 대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핵심 기조는 기득권을 타파하고 권한을 분산한다는 것이었다. 당 총재직을 폐지하고 그와 같은 역할을 더는 대통령이 맡지 않게 되었고, 원내정당과 원외정당을 구분해 당 대표의 권한을 분산했다. 부패의 온상으로 평가받던 지구당을 폐지하고 지역구에서 지역민들에 의한 후보선출이 가능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했다. 요약하면 ‘대통령=여당총재=공천권 행사’라는 등식의 고리들을 깨고자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제도적 변화 외에도, 당무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정무수석실을 폐지하고 나중에는 정치특보까지 폐지했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은 기대했던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큰 혼란이 이어졌다. 당과 청와대가 분리되자 여당, 즉 열린우리당이 독립적으로 기능하기보다는 관계 자체가 단절되어 정책혼선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책임 공방으로 여당 내부에서 갈등이 야기되었다.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정당이 국정과 정책결정에서 소외되어 유사 이래 제일 힘없는 여당이 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채 4년도 존속하지 못하고 해산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경험은 한국 정치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의 채널이 형식적으로 사라진다고 하여 여당의 자율적 기능이 자동적으로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단핵(單核)적 정치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는 정당의 기능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과 정당 기능 정상화의 충돌
그리고 정당의 기능정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그 권한을 국회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은 의회입법이 기본 질서다. 의회가 모든 입법 권한을 가지며 대통령은 거부권으로서 견제할 뿐이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 입법의 전통이 강하다. 이런 전통은 최근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의 구도에서도 드러난다. 국회가 최종 검토를 할 테니 정부가 안을 마련해오라는 식이다. 그런데 대의기구인 의회가 입법권을 가지기 때문에 당연히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국회가 입법으로서 안을 만들고 정부가 집행하는 게 입법부, 행정부 본연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 입법이 관습화된 정치문화로 잔존하면서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계속해서 역량이 저하된다. 그러니 정부 입법을 뒷받침하는 ‘거수기’가 되거나 발목잡기로 정국을 마비시키는 훼방꾼이 되는 양극단 사이에서 진동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회로 권한을 이전해 그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대선 전부터 언급하고, 이러저러한 개혁을 위한 시도를 한 것은 사실이나 (청와대 이전, 도어스테핑, 민정수석 폐지 등등) 그 성과가 지금까지도 불분명할뿐더러, 그것만으로 개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오히려 막강한 대통령의 힘을 무기로 당에 전횡적으로 개입하는 행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에 역행하는 행태만 매우 뚜렷이 나타날 뿐이다.
윤 정부, 한국 정치를 오히려 후퇴시키려는가
종합해보면, 윤 대통령 측이 무엇을 염두에 두었든 간에, 현재 보이는 정당 개입은 의회와 정당 기능의 정상화라는 정치개혁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에 반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덧붙여, 윤 대통령이 제안한 중대선거구제도 어떤 장기적 비전과 목표에 입각해 추진하느냐에 따라 매우 상이한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의석을 나눠서 독식하기 위해 담합하여 중대선거구 구획을 짜내면 진보정당이나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가로막는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회와 정당 기능의 정상화라는 정치개혁의 장기적 비전이나 로드맵이 없을뿐더러, 제안한 ‘정치개혁’ 방안조차 기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담합으로 귀결된다면, 윤 정부의 ‘개혁’은 한국 정치를 오히려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 정당의 공천구조가 지닌 문제점을 다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