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3.02.23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 성명
1년 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사망했고, 우크라이나 곳곳이 폐허로 변했으며 기간시설이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매일 폭력에 직면하고 있다. 침략군인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무려 18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나, 그럼에도 러시아는 적어도 2022년에 징집한 30만 명의 “운명이 결정될 때까지는” 전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곧 전쟁이 2023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우리는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이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이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러시아 시민의 반전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아래와 같이 밝힌다.
모든 국가의 명목상 동등한 권리와 모든 국가의 공동이익으로서 무력 위협으로부터의 자유를 명시한 전후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 시민에 대한 위협이다. 우리는 이를 단호히 규탄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합쳐서 8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인 희생을 낳았다.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고자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설립된 국제연합(UN)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국가가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평등하며, 그러므로 무력이나 강제로 주권을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UN 헌장 서문). 약소국이라고 해서 강대국의 침공을 받거나 식민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전후 국제질서는 이보다 후퇴해서는 안 될, 현대 정치의 준거점이다. 이는 강대국들이 표면적으로나마 무력이 아니라 규칙을 사용하도록 했고, 불완전하나마 핵무기의 확산을 막았다.
서방 강대국들이 이러한 질서를 위선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정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변 국가들에 대한 자국의 ‘세력권’ 보장과 세력권 안에서의 자의적인 기준 적용을 주장하는 것으로, ‘위선’을 지적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 자체를 해체하려는 시도다.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생존권역)을 주장한 나치를 연상시키는 러시아의 침공은 역사를 1945년 이전으로 되돌린다. 사회운동은 이를 단호히 규탄해야 한다. 우리의 지향은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어야 하지, 모든 규범의 파괴라는 역사적 퇴행일 수 없다.
전후 국제질서의 확립에는, 타국의 억압과 개입에 대해 저항하고 분리·독립을 결정할 수 있는 무조건적 권리로서 ‘민족자결권’을 주창한 레닌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준거로 삼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의 침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
레닌은 모든 민족은 단순한 자치권이 아니라, 분리·독립하여 다른 국가와 평등한 지위를 가지는 새로운 국가를 이룰 권리,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레닌은 ‘이혼의 자유’ 없이 남녀의 관계가 평등할 수 없다는 것을 예시로 들며, 분리·독립이 권리로 보장되지 않는 관계는 호혜평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민족을 뛰어넘은 노동자연합 사회라는 궁극적 지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각 민족이 온전히 평등할 때만, 민족이라는 범주를 뛰어넘은 연합이 비강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의 자기결정권은 무조건적인 기본권이며, 민족의 배타적 부흥을 꾀하거나 다른 민족을 탄압할 자유가 아니라, 억압과 개입에 맞설 자유다.
레닌은 1차 세계대전이란 정세 속에서, 세계대전과 이를 촉발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식민지 쟁탈 경쟁에 저항하는 것과,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은 같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를 넘어 전 세계 피억압민족으로부터 반향을 얻었다. 서방 세계도 이러한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4개조 평화원칙’에 민족자결을 포함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주민투표를 거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고, 이후 30여 년 동안 민족자결에 기초한 전후 국제 질서 속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아왔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민족자결권의 주체라는 것은 명확하다. ‘서방 제국주의와의 협력’과 같은 자의적 기준으로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1945년 이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은 정당하며, 세계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이를 지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결정적 원인은 권위주의적 장기 통치의 정당성을 마련하고, 러시아 시민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변국들의 탈권위주의 흐름을 억제하고자 한 푸틴의 통치전략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구소련 국가 중 러시아 다음으로 큰 국가이자, 주변국 중 민주주의적 제도가 가장 발전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을 지속해왔다. 우크라이나의 2004~2005년 오렌지혁명은 푸틴의 대내외정책에 변화를 가져왔고, 2013~2014년 유로마이단 운동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 개입으로 이어졌다.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서 유로마이단은 우크라이나 사회가 탈러시아화, 반부패,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은 러시아 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고, 대러시아 애국주의, 유라시아주의에 의존하는 푸틴의 권위주의 통치에 즉각 위협이 되었다. 푸틴은 이를 억제하는 동시에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다시 한번 ‘영토 회복’으로 통치력을 제고하기 위해 침공을 감행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 진보적 전망 확대를 위한 우크라이나 민중의 투쟁을 지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에 대한 논의는 스스로의 미래와 투쟁 방식에 대한 우크라이나 민중의 선택을 고려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철군’보다 ‘즉각 휴전’을 우선시하며 우크라이나군의 군사행위 중단을 촉구하나, 우크라이나 민중이 이러한 시나리오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현재 시점에서, 분단으로 이어질 항복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내어주고 휴전하는 안에 대한 반대가, 모든 여론조사에서 절대다수로 드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입장은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항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직간접적 지배는 현재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와 인권 탄압이 우크라이나에도 강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전쟁 중 우크라이나군에 가담했거나 좌파 운동과 연관된 시민들은 생명의 위협에마저 놓일 수 있다. 이는 좌파·노동조합·페미니스트·유인·성소수자와 같이, 억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그룹들이 적극적인 항전에 나서는 배경이 되었다. 러시아는 이미 무력을 통해 주변국의 권위주의를 지원해왔다. 1994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퇴진 위기에 처하자, 푸틴은 벨라루스에 러시아군을 파견하였으며 경제 지원을 실시했다. 2022년 1월, 토카예프 정권의 요청으로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무력 진압에도 러시아군이 투입되었다.
따라서,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일반론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완전히 철군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정부가 통치하느냐, 우크라이나의 일부분이 러시아의 점령 통치를 받는 식으로 분단이 되느냐,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적용되고 민주적 정통성이 부재한 친러 정권이 수립되느냐는 우크라이나 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효과가 심대하게 다르다.
폭력 발생에 대한 책임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양자에게 동등하게 지울 수도 없다. 러시아는 주권국가를 침략한 것이며, 도시 전체를 섬멸하거나 민간인 밀집 지역을 폭격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침략에 맞서 타국 점령 하의 영토를 수복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 영토와 러시아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즉, 양측의 명분과 군사 행위의 양상이 뚜렷하게 비대칭적이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기존 국제질서의 붕괴와 군비증강, 폭력의 발호가 가속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은 중요하다.
전 세계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저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현상 상태를 바꾸고, 심지어 영토를 병합하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세계 각지의 권위주의, 팽창주의 세력에 비슷한 군사적 모험을 부추길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를 인정하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 사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지 못하고, 이것이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이어지는 일이 현실화한다면, 세계는 힘 대결의 시대로 빠르게 회귀할 것이다.
◆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은 정당하다. 우크라이나 민중은 러시아의 억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으며, 세계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이를 지지해야 한다.
◆ 러시아는 즉각 철군하라!
이 전쟁은 러시아가 UN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침해한 명백한 침공으로, 어떠한 사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러시아의 즉각적인 철군과 점령 중단을 요구한다.
◆ 러시아는 핵 위협을 즉각 중단하라!
러시아의 핵무기 실전 사용은, 이는 인류의 생존과 전후 질서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는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급기야 푸틴은 개전 1주년을 앞둔 2월 21일, 미러 간 핵무기 감축 협정인 ‘뉴스타트’(신전략무기감축협정)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도발적인 언사와 핵전력 기동훈련으로 세계에 핵 위협을 가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핵군축 논의에 임해야 한다.
◆ 우크라이나의 외채를 탕감하라!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요구인 ‘우크라이나의 외채 탕감’을 지지한다. 소련 해체로 인한 혼란과 경제 정책 실패를 경험해 온 우크라이나는 국제금융기구들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요구나 채권국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통해 이미 1조 달러(1,280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은 막대한 재건 비용을 고려해서라도 외채 탕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