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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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을 위하여", 그 기만적인 문구를 걷어치워라

5.20 중산서민층 지원대책 발표에 부쳐

사회화와노동 편집팀


지난 20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중산층 육성 및 서민생활 향상 관계장관회의'에서 '중산서민층 지원대책'(이하 지원대책)을 확정했다고 한다. 이에 맞추어 건설교통부는 서민주거안정대책을, 보건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내실화 방안을 발표함으로써 지원대책의 구색을 맞추었다. 덧붙여 재정경제부는 하반기 물가상승률을 3%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수일 내로 대통령 직속의 '농어민·농어촌 특위'가 농어촌 문제에 대한 보고를 진행, 그에 따른 종합적인 대책도 마련한다는 계획도 있다. 이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곧 있을 지자체 선거를 앞둔 선심 정책이라는 것이 주를 이룬다. 김대통령의 세 아들의 비리 연루 사건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가운데 김홍걸이 구속되었으며, 노무현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지자체 선거가 임박해있는 상황은 이번 지원대책이 선거용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지원대책은 서민주거안정, 물가상승억제, 농어민 소득보전, 비정규직·외국인 근로자 보호를 그 골자로 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국민임대주택 100만 가구 건설, 주택구입 자금 융자에 대한 세제혜택, 농업정책자금 금리 인하, 2003년부터 비정규직의 국민연금가입 자격 확대,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실시 등이 그 실내용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9개월 남았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향후 10년의 계획, 2003년 도입 등의 문구는 실소를 자아낸다. 발표된 대책의 실현가능성은 둘째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그 기만성과 반민중성에 분노치 않을 수 없다. 결국 현재까지 진행해온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속에서 죽어나는 민중들의 불만을 허구적으로 포장하여 관리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의 민생안정 대책이 의미하는 것


99년이었던가. 김대중 정권은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중산서민층 대책의 총기조를 발표하며 '제3의 길'이니 '중도좌파의 노선'이니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다. 또 있다. 작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당총재직을 사퇴할 때 남은 임기 동안 민생안정에 주력하겠다며 청와대와 내각을 연계하는 '중산층·서민 대책을 위한 특별기구'를 구성한다고 요란을 떨었다. 그러나 이들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답시고 무엇인가를 발표할 때면, 언제나 그 이면에 정국 주도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을 걸고 온 국민을 동원했으나 위기극복의 성과는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대량으로 자행된 정리해고로 노숙자와 실업자가 넘쳐나고, 비정규직이 급증했으며, 빈민 1000만의 시대에 돌입했던 그 시기에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라는 기만적인 정책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을 관리하고자 했다. 작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내분이 심화되고, 그를 수습하지 못하는 김대중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국정에 주력하겠다는 이유로 당 총재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책 마련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총재직 사퇴에 대한 명분을 세웠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소위 중산층·서민 대책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권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명분 세우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관성 있게 관철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남한경제가 성공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는 금융거품의 팽창일 뿐. 실상 위기극복실패의 효과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으로 돌아갔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증가하는 불안정노동과 장기실업자, 강화된 노동강도, 공적 책임이 축소되고 시장에 팔리는 복지제도와 급증하고 있는 가계 빚, 커져만가는 소득격차와 하락하는 생활수준 등. 이 모든 것이 증명하듯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은 민중 생존의 위기를 발판삼아 초국적 자본과 재벌에게 이윤을 집중시켜주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김대중 정권이 아무리 '중산층·서민을 위한 정부'라 자임해도 실제로는 결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할 수 없고,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국가는 결코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 아니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이란 민중들의 불만을 적절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권은 허울좋은 민생안정 대책을 내놓고, 효율성과 경쟁력 논리를 들이밀어 민중들을 분할·관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리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요구에 맞춰 민중들의 삶을 옥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산적 복지'를 필두로 한 지난 5년의 중산층·서민 대책이라는 것의 속내이며, 이번 지원대책이 담고 있는 핵심이다.


지원대책, 누구를 지원하는가?


지원대책은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현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민중들에게 전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담고 있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대책은 '보호'가 아니라,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라는 불안정한 노동을 그 상태로 계속 유지하면서 더욱 착취를 강화하겠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번 회의에 노동부가 제출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의 내용은 1~3개월 일하는 임시직, 월 80시간 이상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들에게 국민연금을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1/4이 월평균 5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생활한다고 한다. 1~3개월, 월80시간이라는 숫자에서도 보이듯이 현재 국민연금 확대적용 대상인 임시직, 시간제 노동자들은 매우 단기간의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의 임금 수준은 매우 낮다. 노동자의 최소 생계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노후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그들의 논리는 무엇인가. 지금 당장 먹고 살 문제가 절박한 사람들에게 실질임금을 보전하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일단 연금부터 가입하고 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주식시장 부양을 위한 투자자금으로 운용되고 있고, 금융의 지속적인 팽창을 위해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의 생계수단인 임금마저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요는 최소생계비의 보장은 커녕, 비정규직의 몇 푼 안 되는 임금까지 금융시장의 부양을 위해 투자자금으로 긁어가겠다는 노골적인 자본의 요구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노동부가 제출한 비정규직 보호 대책은 지난 5월 6일 노사정위 비정규직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합의된 내용의 세부사항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제출되었다. 노사정위의 합의는 비정규직의 숫자를 줄이기에 급급한 말장난으로 비정규직과 '취약근로자'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분류기준은 고용형태가 된다. 이에 따르면 고용형태는 정규직이지만 고용이 불안정하고 근로기준법상의 보호, 사회보험의 혜택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은 '취약근로자'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청난 노동강도, 그리고 상시적인 해고의 위험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이며, 문제의 핵심은 고용형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불안정해지고 있는 노동 자체이다. 비정규직과 취약근로자를 구분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무엇인가? 결국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하에서 심화되고 보편화되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그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 착취의 강화를 고용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문제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취약근로자가 마치 다른 사안이고 서로 다른 요구를 가진 것처럼 구분하는 것이며, 어떻게든지 비정규직 숫자를 줄여보겠다는 기만적인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근로감독 강화 방안에 대한 합의도 문제다. 지금까지 근로감독 방안이 없어서 비정규직의 현실이 그렇게 비참했던 것이 아니다. 작업장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불법 파견 등의 문제를 고발하면 오히려 고발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당하고, 쫓겨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근로감독에 있어서도 내실있는 현장에서의 근로감독, 노동조합의 근로감독 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사정위 합의에서는 현행의 근로감독관을 증원하고, 노사정위 중앙에 감독활동을 지원하는 기구를 설립할 것처럼 실효성 없는 안을 내놓고 있다. 노동부는 이번 관계장관회의에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노사정위의 합의 내용을 입법화할 것이라 한다. 기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롱하는 합의라고 분노를 사고있는 안을 그대로 보호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는 노동부는 직무유기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노사정위의 합의 내용으로는 결코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없고, 오히려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외면한 채, 더욱 더 강도 높은 착취로 비정규직을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이주노동자들에게 족쇄를 채워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관계장관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언급을 했다. 이미 25만을 훨씬 넘어선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기존의 산업연수생 제도만을 고집하며 외면하던 정부가 작년 말부터 준비하고 있던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 위한 포석을 던진 것이다. 이에 맞추어 노동부는 관계장관 회의에서 기존 산업연수생 제도를 개선하고 6월말까지 새로운 고용허가제를 도입할 것이라 보고했다. 정권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연수생 신분이 아니라 노동자의 신분으로 인정하여 노동법에 근거한 각종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명동성당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을 각오하고 25일째 <집회결사의 자유 쟁취와 추방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권이 말한대로라면 이들은 왜 지금까지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가 제시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관리와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고용해지의 권한은 사업주에게만 주어지고,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탈방지와 퇴직적립금 제도로 사업장 변동의 자유조차 없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장을 옮길 수 없고, 1년 단위의 계약 갱신과 고용해지의 권한을 가진 사업주들의 횡포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지금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 폭행과 폭언, 산업재해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감금시키지 않는다는 것일 뿐, 족쇄를 채워서 가두지 않는다는 것일 뿐, 한 사업장에서 떠날 수도 없이 고용주에게 마음대로 휘둘리며 착취당하는 그들의 삶이 그 옛날 노예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노동자로 인정해주겠다는 허울 아래,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 3권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고용허가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지원대책인가. 실상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한 착취의 대가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중소기업주들을 위한 대책이라 불러야한다. 차라리 금융세계화에 종속적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몸부림 속에 불안정노동을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대책이라고 불러야한다.


'대책'인지, '우롱'인지?


다시 99년의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많은 민중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제시된 '생산적 복지'는 결코 민중 생존의 최소 안전판인 복지제도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복지는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며, 자립과 자활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구조조정의 희생양인 저소득층을 '게으르고 무능해'서 자활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자기계발에 매진하여 경쟁력을 키우면 잘 살 수 있다는 헛소리가 '생산적 복지'로 둔갑해, 구조조정으로 삶이 파탄난 민중들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몰아붙이며 관리통제하고, 조금은 살 만한 사람에겐 더욱 더 경쟁에 매진할 것을 부추겼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생산적 복지의 외화물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독소조항과 까다로운 수급권자 규정 등으로 시행 1년만에 이미 3명의 수급권자의 목숨을 앗아간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한편 농어민 소득보전에 대한 대책은 국민을 우롱의 극치를 보여준다. 역대 정권을 통해 계속 대물림되어 온 농업 말살 정책은 온 나라 농민들을 어마어마한 빚더미로 몰아넣었다.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농산물 시장이 대폭 개방된 이후, 고추, 참깨 등의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자살하는 농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4월 18일 쌀산업종합대책을 발표하였고, 쌀값 하락을 유도하여 쌀 생산량과 쌀재배 면적을 줄여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4년 WTO 쌀 재협상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쌀 시장 개방을 준비하는 조치인 것이다. 농업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농민을 지원하는 직접지불제를 시행하겠다는 대책을 내세웠으나 직접지불제에 배당된 예산 비중이 전채 농업예산의 2.9%로 아주 낮아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농업을 살리려는 장기적인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기만적인 농어민 소득보전 대책을 내놓았다. 생존의 유일한 수단인 농업 기반을 붕괴시키고 나서, 농민들에게 농수산 정책자금의 금리를 1%포인트 낮춰주고, 자녀들의 학비를 면제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가진 것 다 빼앗아가는 강도가 100원 줄테니 걱정말라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서민을 위하여', 그 기만적인 문구를 걷어치워라


서민을 위한다는 립서비스는 하반기 대선일정을 고려한 집권여당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최근 대선후보들은 자신이 진짜'서민'이라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상고를 나와서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를 해봐서 서민이고, 호화 빌라에 살면서도 시장을 다녀서 서민이고, 온갖 금융비리에 연루된 정치꾼들이 '서민을 위하여'란 말을 하고 다니고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몰아쳤던 정리해고의 칼바람 속에 떨어보지 않고서, 정규직과 똑같은 시간,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한 달에 5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아 한숨 쉬어보지 않고서,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살림을 꾸리느라 여기저기 빚을 내야하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서 함부로 '서민을 위하여'라 말할 수 없다. 이 암울한 현실을 온 몸으로 버텨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민중들은 끝끝내 그 기만의 소리를 걷어치울 것이다.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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