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0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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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북방한계선의 진실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남측의 태도가 문제의 원인이다

편집팀
우리는 지금 다시 한번 전쟁의 광기와 마주하고 있다

지난 29일 서해교전이 발발하자 국방부는 북측이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이하 NLL)을 침범, 악랄한 선제 기습공격을 가해 아측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하면서, 북측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모든 언론은 1999년 이른바 '연평해전'을 떠올리며, 북의 보복, 북미 대화를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책동, 북한 군부의 독단적 행동 따위를 내세우며, 의도된 도발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3일 뒤, 일부 언론이 연평도 꽃게 잡이 어부의 증언을 바탕으로 국방부의 주장에 반하는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유래 없는 꽃게 흉년 탓에 수많은 꽃게잡이 배가 풍부한 어장을 찾아 이전부터 월선하기 시작했으며, 당일만 해도 남한 해군의 단속을 무시하고, 50여 척의 꽃게 잡이 배가 집단적으로 월선했고, 이것이 북한군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북의 의도된 도발이라는 주장은 사태를 왜곡하는 허구적인 주장이 되고 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남한 정부가 미국과 일본 정부에 이번 사태를 우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신중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했다는 외신이 전해지고 있다.
국론 분열로 비추어질 정도로 지금 당장 이들이 서로 타협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들 모두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남한 고속정이 침몰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이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바로 북한은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퇴거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뒤다. 중요한 교전지역에서 패퇴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한, 이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은밀하게 감추는 공동의 문제가 있는데, 북측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남하한 것이 '왜 정전협정 위반인가'이고, 또 하나 남측이, 그것도 어선이 북방한계선보다 남쪽에 있는 어업 통제선을 넘어섰다고 '왜 북한군이 자극되는가'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의 문제인데, '북방한계선의 실체가 무엇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방한계선의 실체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놓고 정전 협정할 당시 교전 당사자들이 합의한 것은 서해 5도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 통제 하에 둔다는 사실(정전협정 2조 13항)뿐이고, 구역과 관련해서는 황해도-경기도 도분계선과 한강하류에 위치한 민간선박 자유 항해 구역만을 합의했을 뿐이다(1조 5항, 2조 12항). 따라서 서해에는 5도를 잇는 경계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어떤 군사경계도 의미가 없으며, 심지어 정전협정은 이마저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2조 13항 주). 결국, 정확한 분계선은 평화협정에서나 가능했지만, 아직까지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지금까지도 서해의 군사분계선은 확정적이지 않은 셈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군사분계선이 등장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북방한계선, 즉 NLL이다.

NLL은 미국이 1958년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군의 작전 통제선(Operational Control Line)일 뿐인데, 이 한계선은 한국해군선박은 물론 어선도 통제했다. 이는 당시 군 기밀사항이어서, 일반인에게 이 분계선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96년 이양호 국방장관이 "북방한계선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북한측이)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고 말하면서 한판 소동이 일자 일반인에게 조금씩 알려진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을 맺을 당시부터, 이승만은 정전에 반대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국전쟁 휴전을 이미 공약으로 내걸었던 상황이었고, 이승만의 북침 통일 주장은 설사 그것이 정치적 수사라 할지라도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이 내전으로 나아가 동북아 전체로 확전될지도 모를 부담스러운 행동이었다. 이 무모한 주장에 미국이 대응한 것은 크게 네 가지인데, 첫째, 한·미 방위조약을 체결(북한의 군사공격이 있을 경우 '제한적' 범위의 군사적 지원과 보호를 약속)하고, 둘째, 한국군 증강 종합계획을 실시하며, 셋째, 남한 전후 복구 및 부흥을 위해 경제를 원조하고 마지막으로, 서해에서 한국 해군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바로 이 마지막, 군사분계선이 없는 지역에서 한국 해군의 임의 행동(북침)을 규제하려고 만든 작전 통제선이 바로 NLL이다.
한편에서 NLL은 다른 의미도 있는데, 바로 NLL이 '클라크라인'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정전 당시 '클라크' 미군 총사령관은 정전협정에서 중국과 북한이 미국의 조건을 따르도록 강제적인 압박 수단으로 두 가지를 행사하는데, '핵 위협'과 '해상 봉쇄'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해상 봉쇄'를 위해 미국은 국제법상의 합법성을 얻으려고 유엔총회에 승인을 요청하지만, 유엔총회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때 설치한 해상봉쇄선이 바로 '클라크라인'이다. 그리고 '클라크라인'은 정전협정 2조 15항(해안봉쇄금지)에 따라 53년 8월 27일 폐지된다. 따라서 여러 관변학자의 주장대로 NLL이 '클라크라인'을 계승한 것이라면, NLL은 미국(남한)이 북한을 상대로 시위하는 해상봉쇄선이 된다. 만일 NLL이 실재하고 이에 입각해 군사행동을 벌인다면 해주항을 포함한 북한 황해도 연안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에, 봉쇄 당하는 입장에서는 군사행동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결국 NLL의 존재 자체가 양쪽 모두에게 언제라도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NLL은 소극적으로 보자면 50년대 남측의 도발을 막으려는 미국의 작전 보호구역을 확정하는 작전 통제선이고, 적극적으로 보자면 북한 서해 해상을 봉쇄하는 작전 통제선이다. 전자의 입장에서 이를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면, 후안무치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후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면, 군사력을 동원해 (서해안만이라도) 북을 해상 봉쇄하겠다는 것인데, 말 그대로 불을 지고 화약고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둘 다 정전협정 위반(제5조 부칙, 제2조 15항)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미군이 이곳을 분쟁지역으로 설정한 것은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이었고, 이후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파국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이런 군사작전 통제선이 어떻게 군사분계선으로 둔갑할 수 있는지 논거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북이 그동안 별다른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고, 따라서 실효성의 원칙에 따라, NLL이 군사 분계선이라는 것이다. 과거 50여 년 간 북이 서해 5도 영해를 수 십 차례 넘나들었던 행위를 남의 '권리취득시효 주장'에 맞서 '소멸 시효의 중단' 혹은 '권리행사의 연속'으로 본다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닐 뿐더러, 이를 논외로 한다 해도 임의적으로 구상한 군사 작전 통제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주장할 수 없다. 일각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예로 들며 북이 이미 시인했다며, 이처럼 NLL 군사 분계선문제에 대해 북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거기에서 합의된 내용은 '쌍방'이 서로 인정한 해역에 한해서다. 그 해역은 앞서 설명한 대로 한강하구를 둘러싼 지극히 제한된 구역일 뿐이고, 그 밖의 경우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추후 다시 합의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결국,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나 이에 관한 한 별다른 입장차이가 없는데, 차이가 있다면 보수주의자 같으면 북의 침묵과 남한과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어 군사 분계선을 기정 사실로 하려 한다면, 자유주의자는 북의 동의와 협약을 통해 군사 분계선을 기정 사실로 만들겠다는 심산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다음을 공유한다. '재발할 경우 강력히 응징'

이 양상은 최근 들어 더더욱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1999년 서해교전에서 남측이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켰을 때 미국은 이 행동이 정전협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명백한 군사도발이라는 사실을 알고 침묵을 지켰다. 당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특별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않던 북이 2002년 북미대화를 앞두고, 월드컵으로 세계적인 이목이 주목되는 이때, 수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군사 도발을 감행했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에 미국은 동조하여, 북미 대화를 취소하는 등, 북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스스로 NLL이 군사분계선이 될 수 없음을 더 잘 알고 있는 합동참모본부조차 교전수칙 재검토를 예비하면서 서해상의 작전지침을 3단계로 줄이고 있다. 여기에 정국은 치욕적인 패전에 대한 책임 운운하며 승패만을 잣대로 서해교전을 보려고 한다. 한편에서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편에서는 분쟁지역에서 교전수칙을 강화하겠다고 하니, 한결같이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는 대재앙을 보고야 말겠다는 심사인 것이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 같은 흐름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어떤 이유로도 NLL을 확정하거나 기정 사실로 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NLL 존재 자체가 재앙의 씨앗이다. 서해교전을 둘러싸고 해법이 있다면 오직 이 뿐이다. 이것만이 한반도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말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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