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199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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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론자의 민영화 딜레마

김성구
경제위기 하에서 공공부문을 개혁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급진적으로 추진해 온 정부의 민영화정책이 실은 공공부문의 개혁과는 관계없이 재벌과 외국자본에게 공기업을 팔아 넘기려는 술책임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이것은 민영화 대상기업을 인수하려는 재벌들과 외국자본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할 뿐 아니라 남아있는 공기업들에 대해서도 관료주의적 통제와 낙하산 인사, 비효율과 부패를 척결하려는 개혁은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처음부터 정부는 진정으로 공공부문을 개혁할 의지를 갖지 않았고 공공부문의 폐해에 대한 대대적인 비난은 민영화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또 공공부문의 노동자를 짤라내고 노동규율을 강화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공세일 따름이었다.
민영화정책의 결과 특히 외국자본의 지배가 급속하게 확장됨으로써 초국적자본으로의 종속 심화라는 국민적 우려가 증대되었고 민영화정책은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제도권 언론에서도 이런 논조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은행의 지배가 주목할 만한 것이었는데 주지하다시피 서울, 제일은행 등이 외국은행으로 넘어가고 주택은행의 주식 절반 이상이 이미 외국인에게 돌아갔으며 외환, 국민, 한미은행 등은 합작은행으로 전락되었다. 주요 기간산업도 마찬가지다. 포항제철의 외국인지분의 증대도 놀라우며 한국중공업 등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기간산업중의 기간산업이라 할 한국전력의 분할 민영화 또는 해외매각 계획 등이 그러하다. 민영화정책이 심각하게 국부의 해외매각을 초래함으로써 민영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반신자유주의, 반민영화 전선을 대중적으로 확장,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차제에 민영화의 쟁점을 해외매각의 문제로 전화하여 해외매각이 문제이지 민영화는 괜찮다라는 식으로 민영화를 변호하는 주장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여 그 기만성을 폭로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은 민영화 자체에 있는 것이지 해외매각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민영화의 문제가 해외매각이라는 관점에서 크게 부각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해외매각으로 이어지지 않는 민영화란 곧 재벌에게로 공기업을 매각하는 것을 의미할 따름인데 그렇다면 외국자본에게 매각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재벌에게 매각하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반민영화전선을 구축하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즉 반해외매각이냐 반민영화냐라는 문제로 갈릴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한다면, 민영화가 해외매각으로 이어짐으로써 증대되는 국민적인 우려와 반대를 민영화 일반의 문제로 해소해서 해외매각의 부정적 효과들이 가져올 반대와 저항의 큰 동력을 반민영화전선을 강화하는데 동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간과할 수 없는 오류이지만, 민영화의 문제를 해외매각의 관점에서만 비판하고 재벌에게 매각되는 문제는 용인한다면 그것 또한 중대한 오류인 것이다.
재벌에게로 매각된다는 민영화의 이 핵심쟁점을 논쟁 속에서 왜곡하고 재벌에게 그 길을 사실상 열어주는 데에는 우리나라의 이른바 재벌개혁론자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이들은 재벌에게로의 민영화는 반대한다고 하면서 국민주나 우리사주 방식의 민영화를 선전함으로써 진보진영에서 민영화 수용론을 확산시켜 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민영화는 결국 재벌에게로의 민영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재벌진영의 민영화론과 4촌간의 협력자가 아닐 수 없다. 민영화정책이 가져온 해외매각의 장래에 있을 심각한 결과를 우려하면서 이들 중 일부는 공공연히 해외매각 위주의 민영화를 비판하고 이른바 국민주 또는 우리사주 방식의 민영화를 제창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모순된 주장이며 뒤집어 말하면 그들의 민영화론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취약하고 파산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논자들의 경제개혁과 민영화의 이론적 근저에는 선진자본주의(특히 독일형 자본주의, 이른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이 상정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형의 국가의 자본들이 한국의 공기업을 인수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도 없고 반대해서도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론적으로 일관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선진국 자본에 의한 공기업 인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선진국 자본의 지배하에 선진국형 기업지배구조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감히 이런 입론을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한국에서 공기업의 민영화가 그들이 말하는 선진국형 소유지배구조 또는 국민주나 우리사주 방식의 민영화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은밀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는 이들이 외국자본과 대항하는 민족자본의 이름으로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이론적 근거에서 외국자본과 민족자본을 차별해서 이해하는가를 묻고 싶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본의 국적성을 문제로 하는 이론에 입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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