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3.04.26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의 문제점

진보정당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정치방침은 실패한다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76차 임시대의원대회가 4월 24일 킨텍스에서 열렸다. 재적인원 1,856명 중 1,200명 가까이 참석했고, 안건으로는 2023년 총파업기금 조성 건, 규약 개정 건, 민주노총 정치방침 및 총선방침 수립 건이 상정되었다. 높은 관심을 끈 정치방침‧총선방침 안을 두고 대의원들은 두 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을 통해 대의원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고, 집행부가 추진하는 선거연합정당이 어떤 문제를 낳을지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의미

 
정치방침 안건 논의에서 한 대의원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무엇인지 각자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정치세력화란 국회의원 몇 명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이 정치적 방향성을 수립하여 정치 지형을 바꾸는 것이다.”
 
사회운동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논의에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없어서 문제’라는 단순한 인식의 위험성을 항상 지적했다. 이런 인식이 노동자운동 혁신을 위한 포괄적 논의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대의원 발언은 바로 그러한 지점을 상기시켰다. 과거의 평가를 망각한 채 정치세력화를 노동자의 요구를 받아줄 국회의원 만들기로 단순화하여, ‘모두가 뭉쳐서 의석수 하나라도 차지하자’라는 식으로 논의가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연합정당을 지지하는 대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현장의 요구안을 마련해도 누구 하나 관심 가지고 법안으로 통과시키는 국회의원이 없어서 힘 있는 진보정당이 절박하다.’ ‘민주노총만 다 합치면 국회 20석은 당선시킬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야 한다.’ ‘현장에 탄압이 강해 진보대연합정당이 너무 절실하다.’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주장에는 선거연합정당으로 의석수를 채우자는 바람만 있을 뿐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어떤 이유로 위기에 빠졌는지에 대한 진단은 없다.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 분당,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철회로 파국을 맞으며 한 순환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민주노총이 조합원 수가 120만 명을 돌파하며 외형적으로 성장한 데 도취해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노동자운동의 문제를 직시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토론이 부족한 만큼 정치세력화에 대한 반성적 평가 역시 부족하다.
 
 
 

정치세력화, 계급대표성을 상실한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부터 성찰해야

 
지금 민주노총은 위기다. 민주노총의 조직률은 약 6% 정도로 낮고, 전체 노동자 를 대변하지 못해 대중적 지지가 취약하다. 정치세력화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단지 진보정당의 의석수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진보정당의 낮은 지지율도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없거나 진보정당이 통합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보편적 노동자 대중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조직된 조합원만이 아니라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등 분절된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하고, 사업장 단위의 교섭·투쟁을 넘어서서 단결의 범위를 확대해야 노동자계급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연대임금·연대고용을 통해 노동자 간의 격차를 축소하는 데 나서야 한다.
 
진보정당 역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어떤 대의원은 진보정당의 지향이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조합원들이 막상 선거가 되면 민주당으로 쏠린다. 단일한 진보정당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 개 진보정당 지지율을 합쳐도 두 자릿수를 넘지 못한다. 진보정당이 얘기하는 의제에 공감 못 하고, 그들에게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대의원은 “네 개 진보정당이 하나로 대통합을 이루려면 노동자들에게 제시할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합원이 가정으로 돌아가 식구들을 설득할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진보정당 대통합 이전에 설득력 있는 방향성 제시가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대의원은 “단일화한다고 진보정당을 찍겠는가. 최근에 윤석열 정권이 민주노총을 때려서 지지율을 올렸다. 그런데 때리는 정부가 아닌 맞는 우리(민주노총)를 싫어하는 게 국민 정서다. 이 정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정치세력화의 첫걸음이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 창당에서 산파 역할을 했지만 수십 년 지났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때처럼 민주노총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라고 했다. 진보정당이 대중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하는 것이 정치세력화의 시작임을 강조한 것이다.
 
 

반복된 실패,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논쟁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 안은 번번이 부결되었다. 하지만 왜 실패가 계속되었는지에 대한 진단은 부족하다.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운동의 역사를 복기하며, 오늘날 답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지금까지 반복된 실패를 넘어설 수 있다.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운동의 전성기라 일컫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이 당선됐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노동조합 대중운동과 진보정당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실행 가능한 정책 대안’ 마련과 입법 활동에 주력했다. 반면 조합원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항상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원내정당 지향을 강화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상층부와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에 몰두했다.
 
한편 당 내부에서는 패권주의적 행태가 나타났다.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당권 장악을 위한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또한 이들은 당내 선거에서 1인 다표제를 도입하여 당직·공직을 독식하기도 했다.
 
노선상의 갈등도 본격화했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북핵을 자위권으로 인정하는 자주파의 인식을 두고 당내에서 갈등이 촉발되었다. 게다가 남한 내부의 정치 동향과 민주노동당 내부 주요 인사에 대한 인적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북한에 보낸 일심회 사건이 터지면서 민주노동당은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2008년 2월 3일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원장이 혁신안을 제출했으나 자주파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결국 민주노동당은 분열되었다.
 
이후에도 분열과 통합은 반복되었다. 2011년 (진보신당으로 분당하고 남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에서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가 모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분열의 원인을 성찰하지 않고 노선상의 차이를 무시한 채 이루어진 합당은 다시 비극으로 이어졌다. 2012년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과열되면서 부정선거 사태가 발생하고 급기야 당내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지면서 진보정당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후 2016년 민주노총 정책대대에 제출된 민주노총 정치전략 안에서는 “이전 시기의 ‘패권적 당 운영’, ‘상층 중심과 현장 대상화’, ‘의회주의와 대리주의’ 등 오류와 편향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라는 내용이 언급되었다. 물론 당시 정치전략 안에도 북핵 문제 등 변화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비롯해 통합진보당의 비례경선 부정선거와 폭력 사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정치전략 안의 반성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치방침 논의에는 이 정도 수준의 반성마저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이 제시한 진보대통합 안의 치명적 문제는 과거 진보정당이 왜 분열했는지를 복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초래한 패권주의 문제를 어떻게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 북한의 핵 위협이 심화한 정세에서 통합된 당의 입장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진보대통합 안은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 단지 선거연합정당 건설의 필요성만 강조할 뿐이다.
 
2012년 이후 민주노총 신규조합원이 급증하면서 다수 조합원과 대의원은 이러한 역사를 알기 어렵게 되었고, 민주노동당 설립과 분열의 과정을 직접 경험한 조합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고 해서 반복된 실패가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만 커질 뿐이다.
 
 

해결되지 않은 북핵 인식 문제와 패권주의 문제

 
진보정당 분열이라는 오답 노트를 살펴보지 않고 진보대통합이라는 시험을 다시 치르는 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이번 임시대대 정치방침 논의에서는 과거 민주노동당 분열의 역사를 돌아봐야 했다. 단결의 당위만을 앞세운 민주노총 집행부 안과 달리, 진보대통합의 한계를 지적한 대의원들의 발언도 있었다.
 
한 대의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정치위원장이 발제하신 것 중에 민주노동당의 역사가 나오지 않았다. 왜 여기 나와서 장시간 토론하는지, 민주노동당이 왜 세워졌고 왜 해산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역사적 과정이 설명이 안 되었기 때문에 안타깝다. 단순하게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단결하지 못하는지 평가해야 한다. 그것 없이 억지로 단결하는 건 민주노동당을 분열시킨 패권주의에 빠지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과 합의 정신이다. 그러나 이 안건이 (임시대의원 대회에) 상정된 것 자체가 합의정신이 없는 것이다.”
 
다른 대의원도 패권주의 문제를 지적했다. “왜 진보정당이 네 개로 분열되었는지 평가와 분석이 안 되어 있다. 2008년 분당이 되었을 당시 저도 당원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왜 분열됐을까 원인을 분석하지 않으면 다시 출발할 수 없다. 그냥 단결하자, 대연합정당 만들자는 건 옳은 말이지만 2008년 분열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반되는 행동이 없다면, 대의원대회 결의로 유효한 정치방침으로 수립될 수 있을까. 저는 회의적으로 본다. 그 당시 분열의 골이 워낙 깊었다. 여기 계시는 대의원 동지들도 그냥 표결하자고 한다. 하지만 2008년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분열 원인은 패권주의였다. 솔직히 얘기해야 한다. 패권주의로 가는 순간 정치방침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8월까지 논의한다는데, 충분히 열어놓고 합의할 때까지 논의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분열의 또 다른 쟁점이었던 북핵 인식 문제에 대한 입장도 지적되었다. “민주노동당 분당을 돌아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북핵 문제가 민주노동당 분당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였지만, 정작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 반대입장을 내지 못했다. 진보대연합 정당은 북핵에 대해 역사적인 평가도 진전된 논의도 없어 보인다. 정당 간 차이를 존중하면서 연합정당을 만든다면, 민주노동당 분당의 쟁점이었던 북핵과 평화에 대한 입장은 적어도 민주노총 강령에 근거해야 한다. 진보대연합 정당은 북핵을 포함한 모든 핵무기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민중과 함께 정치세력화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노총 강령에 따라 북핵 문제를 일관되게 반대하고 정세인식의 차이를 좁혀야 함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역사에 대한 성찰 없는 민주노총 정치방침

 
이번 임시 대의원대회는 아쉬움이 큰 자리였다. 민주노총과 정치세력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는 발언도 있었지만, 진보정당 분열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은 채 국회 입성의 필요성만을 강조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양경수 위원장은 임시대대 개회사에서 ‘부족함은 위원장의 몫으로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정치세력화 추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과 폭력사태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역사를 망각한 채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해선 안 된다.
 
패권주의로 얼룩지고 노선토론이 가로막혔던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등으로 실추한 진보정당의 위상을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오류에 답해야 한다. 북핵에 대한 노선을 어떻게 결정할지, 역사적 패권주의는 어떻게 극복할지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이번 임시 대의원대회가 8월에 개최할 대대에서 정치방침을 의결한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다. 양경수 위원장은 대의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이를 바탕으로 중집에서 논의기구를 만들어 8월까지 안건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를 확정하지 않고 시기만 특정한 것은 여전히 문제다. 향후 논의기구를 구성해 8월까지 정치방침안을 마련한다고 한다면, 진보정당 분열의 역사를 숙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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