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3.05.31
건설노조와 건설산업 바로 알기②: 건설현장 불법하도급의 실체와 정부의 헛다리 짚기
《사회운동 포커스》는 건설노조와 건설산업이 최대의 화두가 된 지금 건설산업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것인지, 그 구조 속에서 건설노조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인지, 정부의 탄압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건설노조 활동가의 글을 3부에 걸쳐 연재한다. 정부와 자본, 일부 언론이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고 건설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1부 ‘건설노조와 건설산업 바로 알기①: 한국 건설현장 제도화에 앞장서 온 건설노조(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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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 2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도급사가 건설노조보다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시물을 올린 데 이어 5월 11일 민당정 협의회에서 당정은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이제는 불법하도급과 임금체불 등 건설사의 불법행위도 잡아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와 관계없이 건설사들이 자행하는 불법하도급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설사가 스스로 개과천선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정부가 이를 강제할 의지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토부는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불법하도급을 아래와 같이 6가지 유형으로 나눈 뒤, 노무비 지급률, 퇴직공제부금 납부율, 전자카드 발급률이 낮아 불법하도급이 의심되는 508개 현장에 대해 향후 100일 동안 집중단속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1. 무자격자 하도급: 팀장(오야지)에게 재하도급
2. 일괄하도급: 도급 금액의 80% 이상을 직접 시공하도록 한 규정 미준수
3. 전문공사 하도급: 도급받은 전문공사를 발주자 승인 없이 하도급(합법적으로 재하도급이 가능한 경우)
4. 다단계 하도급: 전문건설업체가 발주자 승인 없이 다른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
5. 소규모 하도급: 종합건설사가 10억 미만 공사를 재하도급
6. 상호시장 하도급: 종합공사를 받은 전문건설업체가 발주자의 승낙 없이 공사대금의 20%를 초과해 하도급
그런데 위 6가지 유형을 보았을 때, 모두 심각한 문제인 것은 맞지만 불법하도급이 발생하는 구조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고, 특히 건설노조와 관련하여 가장 쟁점이 되어 왔던 ‘대형현장 골조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법하도급은 논외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체면상의 단속실적이야 올리겠지만 소위 1군 원청 건설사(현대건설, 대우건설 등)나 그 밑에서 일하는 골조업체들은 건드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대형 건축현장 골조공정의 불법하도급
2번~6번 유형의 경우 건설사업자등록증이 있건 없건 건설사가 불법적으로 다른 건설사에 재하도급을 줘서 두 개 이상의 건설업체가 관여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런 유형은 주로 감시가 소홀한 작은 현장들에서 발생한다. 아파트 같은 대형 현장은 조합원들과 입주예정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 아예 제3의 업체를 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전문업자를 전문건설업체의 이사로 올리는 방법이다.
대형 공사에 입찰을 넣는 전문건설업체들은 유령회사까지는 아니어도 상시로 시공능력을 보유하지는 않는다. 수주를 못 하고 있으면 그런 인력을 보유하는 게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체들은 수주하고 나서야 시공능력이 있는 업자를 구하고 이사로 올린다. 이렇게 하고 공사 후에 얼마나 남겨 먹는지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면 법적 감시망을 피해 갈 수 있다. 회사에 전속된 인원이 직접 시공하는 업체들도 꽤 있지만 어쨌든 철근, 타설 등 일부분이라도 외부 이사를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에 따라 성과급이 아니더라도 각종 대금을 통한 돈세탁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많다.
그리고 이사는 공사를 여러 파트로 쪼개서 이를 시공할 팀장(십장/오야지)을 구해 재하도급을 준다. 1번 유형에서 말하는 팀장 수준에서의 불법하도급이 바로 이 부분을 말한다. 팀장은 도급금액 안에서 자기 식구들에게 일당을 지급하고 남은 돈을 취하기 때문에 일당은 적게 주고 더 빨리 공사를 마치게끔 노동강도를 높인다. 불법하도급을 논할 때 전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적폐가 바로 이 팀장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불법하도급이 아니고서는 구직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골조업체,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방관하는 원청사의 문제는 정부 대책에 담겨있지 않다.
건설노조는 이런 형태의 불법하도급을 현행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로 그게 직고용 원칙에 입각한 고용교섭이다. 조합원이 고용되면 단협이 적용되고, 노조의 힘으로 근로기준법을 지키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팀장인 조합원을 포함해 모두가 일한 날수만큼 임금을 받는다. 팀장이 팀원들을 무리하게 작업시킬 이유가 없어진다. 불법하도급의 가장 큰 문제가 예산삭감으로 인해 인건비, 안전관리비, 자재비 등을 과도하게 아끼게 된다는 것인데, 고용교섭으로 직고용을 쟁취하면 거기서 가장 큰 몫인 인건비를 적정선에서 지급하게 되고, 노동조합의 역할들로 인해 안전관리비도 더 지출하게 되니 실질적으로 불법하도급이 무력화된다. 과거 십장, 오야지였던 사람들까지 조직해서 진짜 팀장 노동자로 만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고용을 쟁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 건설노조는 그렇게 도급받은 이사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이 교섭에서 내놓는 대표적인 요구가 ‘고용은 해줄테니 도급단가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타설이사와 따로 교섭하던 펌프카 노동자들이 최소한 골조공정을 총괄하는 사람과 교섭하겠다고 투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는 타설은 모르니까 교섭할 수 없다고 답한다.
실제로는 성과급으로 위장된다고 하지만 이런 교섭내용 자체가 불법하도급을 인정하는 것임에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원청에 교섭이 이런 식이니 와서 좀 보라고 하면 철저하게 거부하고 불법하도급은 없다고 말한다. 원청사무실 바로 밑에 있는 회의실에서 노조와 이사가 직고용인지 도급인지를 두고 싸우고 있는데 원청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원청이 상황을 아는 것으로 됐을 때 법적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컨대 국토부는 불법하도급 팀장을 잡겠다고 하면서 다시 건설노조를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 노조 내에 아직 직고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직종이 많기 때문이다. 노조는 도급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팀 단위로 조직해서 투쟁을 통해 직고용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해왔으니, 새로 조직된 공정의 팀들은 당연히 아직 내부에 도급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어진 기간 내로 작업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일하면 되는 공정들이 많은데, 직고용해서 근로기준법대로 하는 것이 맞는지 도급단가를 올려서 실질적인 소득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맞는지 등 상용직 기준의 노동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여러 쟁점이 있는 상황이다. 마땅히 노동자들과 건설사가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제도를 구축해야 하는 영역이고, 당장은 도급금을 팀 내에서 공정하게 분배하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팀들 중 악질팀장들이 많고 이들을 단속하는 일을 중요하지만, 정부의 본심이 노조탄압을 향하고 있다면 불법하도급을 명분 삼아 노조의 제도개선 노력을 무위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불법이 난립하는 토목공정과 방치된 건설기계노동자
사람보다 장비로 일하는 토목공정은 임금이 아니라 임대료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작은 현장이건 큰 현장이건 문제가 더 심각하다. 토목공정의 주축인 굴착기와 덤프트럭 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현장에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들어간다. 이때 건설기계노동자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표준임대차계약서(이하 ‘표준계약서’)를 쓰고 건설기계대여대금지급보증(이하 ‘지급보증’)을 가입해야 하고, 토목업체는 계약서와 보증서의 사본을 원청에 제출해야 한다. 심지어 공공발주 공사인 경우 발주처에서도 이 절차를 확인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몇몇 훌륭한 업체나 심지 굵은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표준계약서와 지급보증서가 전혀 작성되지 않는다. 원청이나 공공기관 발주처는 이런 의무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건설노조에서 원청들을 찾아다니면서 역할을 촉구하면 공무담당자는 그런 제도가 있었냐며 놀라는 경우가 많다. (1군 건설사들도 다르지 않다.) 공공기관 발주처들도 대부분 제도를 모르는데, 건설업에 전문성이 없을 수밖에 없는 교육청, 구청 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LH에서조차 이행되지 않는다.
업체가 계약서 작성을 거부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모든 것이 문서화 되면 회계 조작으로 중간에 돈을 떼먹기도 어렵고(이는 불법하도급 대금을 챙기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체불이 생겼을 때 문서상 증거가 남아버려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불이 지급보증제도로 해결되는 경우 보증주체가 해당 건설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버리기 때문에 업체는 지급보증도 회피한다. 원청 입장에서는 장비계약을 철저히 관리해서 문제가 안 생기도록 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연대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토목공정의 불법하도급도 역시 전문업자를 기본으로 끼고 가는데, 그다음 단계는 중기사무실이다. 중간업자가 덤프, 굴착기 기사들에게 현장을 주선해 주면서 중간수수료를 떼는 것이다. 개인에게 정상적으로 임대료를 준 뒤에 지입료를 돌려받거나, 아예 업자가 대신 계약서를 써서 임대료를 받은 뒤에 수수료를 떼고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굴착기가 땅을 파서 덤프에 싣는 것은 건설업이지만 덤프가 흙을 나르는 것은 건설업으로 분류되지 않아서 운반업체에 합법적으로 재하도급을 줄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국토부가 의심현장을 선정한 기준이 모두 ‘근로자’와 관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토목업체들은 다루지 않겠다는 것인지 우려가 든다. 더 큰 문제는 건설기계관리법을 개정해서 장비를 점거하거나 점거의 도구로 사용한 경우 자격박탈 등 엄벌하겠다는 입법계획이다. 장비기사들이 현장에서 체불이나 안전사고 책임 떠넘기기 등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대응하는 교과서적인 방법이 바로 장비를 현장 안에 세워놔서 작업을 못 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은 현장들의 불법하도급을 잡을 수 있을까
감시가 더 소홀한 작은 현장들은 국토부가 분류한 모든 유형이 낭자한 공간이다. 서울의 한 빌라 현장에서 전문업체 3개가 낀 다단계하도급으로 굴착기 대금이 체불되는 사건이 있었다. 현장 관리자로 돌아다니던 사람을 원청에서는 A업체(최초도급) 소속인 줄 알았고 굴착기 기사는 C업체(최종도급) 소속인 줄 알았다고 한다. 상황을 조사해서 국토부 공정건설지원센터에 신고하니 돌아온 답변은 증거가 부족하니 더 모아오라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2021년 9월에 신고센터가 설치되면서 2022년 7월까지 11개월간 232건의 신고(원청갑질 등 포함)가 접수됐지만 단 15%만이 영업정지, 과태료, 검찰송치 등의 처벌을 받았다. 국토부에서는 이걸 두고 신고가 많이 들어와서 인력이 모자랐다고 했는데, 누가 봐도 현실에 비해 적은 신고 건수다. 국토부가 100일 동안 보여주기식 실적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바다에 돌 하나 던지는 효과일 것이다. (경찰 특진을 100명 정도 걸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노동자의 힘으로 현장에서 불법하도급 무력화해야
건설노동자들은 인력이건 장비 기사건 일자리를 구하는 게 중요하지 불법하도급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법하도급 때문에 일당(임대료) 2-3만 원 깎이더라도 일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체불이나 안전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공사가 끝날 때까지 불법하도급을 문제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용이 안정되지 않는 한 건설노동자가 스스로 불법하도급을 신고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건설업에 몸담은 모든 사람은 현행 제도 수준에서 법으로 불법하도급을 잡을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진정 신고와 조사라는 방법에 진심이라면 차라리 자진 신고하는 팀장들에게 면책을 약속해서 신고를 유도하고 윗선을 잡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대안은 하도급이 내려오건 말건 예산을 적정수준 아래로 깎을 수 없도록 만들어서 재하도급의 유인을 없애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설노조에서는 직고용과 임단협에 기반해 적정한 임금(임대료)과 노동강도를 지키고자 한 것이고, 이전 정권에서는 많은 연구자가 제안했던 적정임금제/기능인등급제를 추진했다. 적정임금제는 직종과 숙련에 따라 일당을 고정해서 국적이나 조합원 여부와 관계없이 같은 숙련으로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게 하여 고용차별의 유인을 제한하는 것이고, 기능인등급제는 그 숙련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예산삭감에서 파생되는 부실시공문제 역시 직접 시공하는 노동자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건설사의 노조탄압은 비조합원 도급팀을 장려하는 형국이고, 전문건설업체들이 학을 떼는 적정임금제/기능인등급제는 현 정부 들어 진전이 없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처벌을 조금 강화하겠다는 것 이상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지켜만 보면서 단물만 빨아먹다가 공기가 급해지면 하도급사에 온갖 불법작업을 강요하고 있는 원청건설사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진정 건설현장을 양성화해서 노동자와 입주자의 권익이 보장되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면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