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호 | 2012.11.30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 지금이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국회는 더 늦기 전에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민생에는 임기란 없다며 끝까지 일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욕이 민중들에게 재앙이 되고 있다. 임기 초부터 추진하던 영리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의료관광 활성화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마지막 법적 절차인 경제자유구역법 시행규칙을 공포했고,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을 발표하며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의료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하여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30일 김용익 의원, 11월 2일 박원석 의원이 각각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이 보건의료체계에 불러올 악영향을 막는 것을 목표로,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을 「의료법」에 따른 비영리법인으로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영리병원 허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논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계류되어 있다.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개정안이 지식경제위원회 논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에는 지식경제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이하 검토보고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각 위원회에 소속된 전문위원은 회부된 안건의 타당성과 문제점, 개선방안 등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하여 해당 위원회 위원들에게 배부하고 회의장에서 구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김호성 지식경제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검토보고서는 이번 개정안의 핵심내용을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금지하는 것으로 보고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제출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 경제자유구역내 영리병원 개설과 관련하여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기에 논의가 필요하다.
- 한미 FTA 위반의 소지가 있다. 보건의료서비스가 유보항목이기는 하지만,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규정된 의료기관․약국 등의 설치는 유보항목의 예외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의료기관이나 외국인전용 약국을 개설하는 것을 금지할 경우 한미 FTA 위반의 소지가 있다.
- 김용익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에 대하여 내국인 대상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므로 적절하지 않다.
- 김용익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이 필요하다면 영리병원이 아니라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 개설하도록 하는데,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것은 국민 건강 증진에 위해가 된다.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은 한미 FTA를 위반하는가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에 반대하는 검토보고서의 논리들은 대부분 설득력이 부족하다. 반대를 위한 억지논리이거나 영리병원을 허용하자고 하면서 ‘국민의 보편적인 건강 증진’을 들먹이는 등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장은 사실관계에 어긋날 뿐 아니라(개정안은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을 설립하도록 하는데, 이는 영리병원을 금지할 뿐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02년 제정 당시 경제자유구역법에서 외국의료기관의 진료대상자를 별도 규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검토보고서는 영리병원 허용을 주장하면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언급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검토보고서에서 새롭게 등장한 논리는 개정안이 한미 FTA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검토보고서는 ‘보건의료서비스가 미래유보 항목에 포함되기는 하였으나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의료기관, 약국 및 이와 유사한 시설의 설치 등에 대해서는 예외이므로, 외국인이 의료기관이나 외국인전용 약국을 개설하는 것을 금지할 경우 한미 FTA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은 외국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한미 FTA 위반이라고 볼 수 없으며, 현재 내국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때에도 영리병원 설립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내국인 대우 조항을 어긴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검토보고서의 주장과 달리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을 금지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한미 FTA의 조항은 투자자국가제소 제도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병원이 설립된 상황이라면 영리병원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이 없으므로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하더라도 한국 정부를 제소할 투자자가 없다. 현재 상황에서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에 걸림돌이 없는 것이다.
한미 FTA는 오히려 개정안이 시급히 통과되어야하는 이유이다. 영리병원을 허용한 경제자유구역법을 되돌리려면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병원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화된 이후에는 제소당할 것을 각오하고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개정을 추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의 속내: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이 아닌 영리병원 허용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은 영리병원 문제와 무관하며, 외국인의 정주여건개선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던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취지는 너무나 많이 왜곡되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2002년 제정 당시에는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을 허용하였으나 수차례 개정되면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였을 뿐 아니라 영리병원 허용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영리병원이 왜 꼭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한 번도 없었다.
이후 정부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몇 차례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였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법제도의 미비로 인해 영리병원 현실화가 힘들다는 평가에 따라 경제자유구역법을 추가로 개정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으나 사회운동의 반대와 영리병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올해 들어 정부는 결국 여론 수렴이나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우회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 및 시행규칙 제정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영리병원 문제를 일방적으로 관철시켰다.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이라는 이유 치고는 너무나 간절하고 일방적인 방식이다.
영리병원 허용 및 의료민영화와 관련한 정부의 말 바꾸기는 한미 FTA 관련 쟁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부는 줄곧 영리병원 문제는 한미 FTA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왔고,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결정권은 한미 FTA가 체결되더라도 여전히 한국 정부에 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된 지금, 영리병원을 금지하는 방향의 개정안이 상정되자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으므로 불가하다며 정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영리병원에 대한 정부의 다양한 입장은 모두 핑계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으며, 어떻게든 국내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정부는 이미 제한된 지역에서 영리병원을 우선 허용한 후 일반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2009년 한 토론회에서 준정부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은 ‘의료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등을 위해 … 영리의료법인, 의료채권제도, 경영지원회사를 통한 경영효율성 증대 및 부대사업 확대’가 필요하며 ‘영리의료법인의 도입 방법은 사회적 논란의 최소화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등 제한된 지역에서 시범적 허용 후 허용지역을 확대하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와 함께 영리병원 설립을 주도하는 것은 삼성자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업계 최대 규모인 삼성생명-삼성병원을 중심으로 민간보험활성화-영리병원 도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삼성은 최근 의료기기회사·제약회사를 인수·설립하는 등 보건의료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며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의료민영화’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송도국제병원 역시 삼성이 주도하여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삼성을 위시한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보건의료를 재편하려는 의료민영화 정책인 것이다.
지금이 한국 보건의료의 파국을 막아낼 마지막 기회다
경제자유구역내 영리병원은 그간 정부가 추진해오던 의료민영화 정책의 핵심중 하나이며, 영리병원을 국내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정부 및 자본의 계획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한 이번 개정안은 이번에 지식경제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2013년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진정 국민의 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한미 FTA 위반을 운운하며 영리병원 존속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검토보고서의 주장과 달리 개정안은 한미 FTA 위반이기 때문에 통과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FTA 위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최대한 빨리 개정되어야 한다. 이번에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이 실패하고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이 현실화된다면, 보건의료와 국민건강에 큰 악영향이 발생하더라도 되돌리기 힘들다. 한미 FTA 때문에 영리병원 허용을 되돌리기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이 개설되지 않은 지금이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할 마지막 기회이다. 한국 보건의료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