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호 | 2013.04.05
“노바티스 패소! 환자들의 승리!”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전세계적 연대투쟁이 초국적제약회사의 특허정책에 제동을 걸다
2011년 가을부터 대법원 변론이 있을 거라고 했고, 그 후 계절마다 손꼽아 기다렸다. 막상 4월 1일 판결예정이란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4월 1일 짬을 내서 인도활동가들의 페이스북 계정을 보았다. 몇 초 동안 아는 영어 단어를 찾으려고 마우스휠을 마구 굴렸다. 델리에이즈감염인네트워크(DNP+) 대표 룬 겡에이(Loon Gangte)의 명쾌한 문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인도 대 노바티스 3:0." 일단은 살았다 싶었다.
나는 노바티스에 원한(?)이 많다. 로슈에도 원한이 많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에이즈감염인을 비롯한 환자들의 투쟁소식을 접하다보면 초국적제약회사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원한이 쌓인다. 우리도 한 번쯤은 한방 먹이고 싶었다. 게다가 이 건은 인도산 제네릭(복제약)을 먹고 있는 전 세계 인구의 10%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인도의 공익변호사집단(Lawyers Collective) 활동가인 카얄 바드와지(Kajal Bhardwaj)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소식을 기다리는 전 세계의 환자와 활동가들에게 퍼 나르고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회견 끝났다. 술마시기 시작...”이란 글을 남겼다. 2005년 이후 가장 맛있는 술일 것이다. 나도 덩달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밤을 샜다.
글리벡을 매개로 한 인도특허법 소송의 경과
2002년 봄 노바티스가 인도에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을 출시하고 1년이 지날 무렵 인도의 10개 제약회사가 글리벡과 똑같은 약을 세상에 내놓았다. 2003년 당시 인도에서 글리벡의 한 달 약값은 2,667달러였던 반면 제네릭은 89~267달러였다. 인도 암환자지원협회(Cancer Patients Aid Association)는 제네릭 회사로부터 89달러에 구입하여 환자들에게는 22달러에 공급하고 있었고, '낫코'라는 제약회사는 한국 환자들에게 글리벡과 똑같은 약 '비낫'을 1달러, 글리벡의 1/20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인도 제약회사들이 글리벡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인도의 특허법 때문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했고, 그 결과 의약품에 대해서는 제법특허만 인정되어 인도 제약회사는 초국적제약회사와는 다른 제법으로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함에 따라 인도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이행해야했기 때문에 2005년 특허법을 개정하여 의약품에도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유예기간인 1995~2004년까지 독점판매권과 특허신청목록을 실행해야 했다. 즉 1995년 이후 해외에서 특허를 받은 약에 대해서도 최대 5년 또는 인도에서 특허를 받을 때까지 독점판매권을 인정하도록 했고, 10년간 특허신청을 받은 후 2005년 특허신청목록을 공개했다. 2003년 12월 노바티스가 글리벡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획득하고 다수의 인도제약회사들이 제네릭 생산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백혈병환자들이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마침 2004년 1월에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4회 세계사회포럼에 글리벡공대위의 몇몇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한국에서의 글리벡투쟁 사례를 발표하였다. 한국활동가의 발표는 인도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특허신청목록이 공개되자 노바티스가 1998년 글리벡에 대한 특허신청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암환자지원협회는 글리벡에 특허를 주어서는 안된다며 사전이의신청을 했고, 2006년 1월 첸나이 특허청은 인도특허법 제3(d)조에 따라 글리벡 특허신청을 반려하였다. 노바티스는 고등법원과 특허심판원에서도 거듭 패소하자 글리벡 특허 거절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 인도특허법 제3(d)조의 해석에 대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그 최종 결론이 4월 1일 나온 것이다. 판결은 이마티닙 메실레이트의 베타결정형 즉 ‘글리벡’이 이마티닙이나 이마티닙 메실레이트에 비해 인도특허법 제3(d)조를 충족시킬 만큼 효과의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고, 따라서 특허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바티스 소송, 초국적제약회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에 제동을 걸다
글리벡의 주요약효성분은 이마티닙으로, 여기에 메실레이트와 같은 염을 붙이고, 베타결정형을 취하여 흡습성이나 열역학적 안정성 면에서 더 좋게 만든 것이다. 이마티닙은 1990년대 초에 미국오레곤암재단에서 드루커 박사팀이 개발한 것으로, 1993년 제약회사 시바-가이기(1996년 시바-가이기와 산도스가 합병하여 노바티스 설립)가 이마티닙과 이마티닙 메실레이트에 대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특허출원을 했다. 그리고 1997년에 노바티스는 이마티닙 메실레이트(베타결정형)에 대해서도 특허출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제약회사들은 하나의 약에 하나의 특허만 거는 것이 아니라 염, 결정형, 이성질체 등으로 기존 의약품에 ‘사소한 변화’를 주어 계속 특허를 건다. 이러한 방식으로 특허기간을 연장함으로써 제네릭 생산을 막고 높은 약값을 유지하려는 행위를 에버그리닝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번 노바티스 소송의 결과는 초국적제약회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이 인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의미가 있다.
‘세계의 약국’을 지켜내기 위한 전세계적 연대투쟁의 승리
이번 소송은 초국적제약회사의 특허독점에 맞선 싸움이자 ‘세계의 약국’을 지켜내기 위한 전 세계 환자, 활동가들의 싸움이었다. 인도 제약회사들은 전 세계 제네릭 매출량의 20%를 공급고 있으며 전 세계인구의 10%가 인도산 제네릭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에 공급되는 에이즈 치료제의 90%,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의 50%가 인도에서 공급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도는 건강권과 특허권이 대립하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며, 초국적제약회사의 소송과 미국·유럽연합 등 외부의 압력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소송은 초국적제약회사의 특허권와 환자의 건강권이 대립되는 다양한 이슈들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인도산 제네릭을 먹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환자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보건의료단체, 에이즈운동단체, 지적재산권 관련 단체 등이 수년에 걸쳐 노바티스에 대한 항의시위와 국제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전 세계 환자들과 활동가들이 벌인 연대투쟁의 승리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인도특허법이 다른 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5년 인도특허법이 개정되어 의약품에도 물질특허가 도입되었지만, 전 세계의 환자, 활동가들의 연대투쟁의 결과로 공중보건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인도특허법에 담기게 되었다. 강제실시, 사전·사후이의신청제도, 제3(d)조가 대표적이다. 노바티스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던 인도특허법 제3(d)조는 1995년 이전에 개발된 약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치료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적응증, 새로운 제형, 새로운 조성을 가진 약일지라도 특허를 얻지 못하도록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2011년 발간한 ‘에이즈치료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의 유연성 활용하기’는 태국의 강제실시, 인도의 특허법 제3(d)조 등을 성공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여러 국가들이 인도특허법의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다. 2012년 5월 아르헨티나는 인도특허법 제3(d)조와 유사한 엄격한 특허적격성 기준을 포함하는 새로운 특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필리핀 또한 비슷한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에이즈운동단체인 치료행동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과 국경없는의사회가 인도특허법을 모델로 특허법을 개정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보츠와나는 인도를 모델삼아 사전이의신청을 수용했다.
남겨진 과제: 자유무역협정과 강제실시권의 향방
하지만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 있다. 인도정부와 유럽연합은 4월 15일 장관급 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려고 한다. 6년에 걸친 협상을 4월 안에 끝내려는 이유는 다른 지역간 무역협정들의 진행상황과 2014년 예정된 인도 총선거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었던 의약품 자료독점권은 협정문에서 빠졌지만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인도 행정부·사법부에게 특허권의 집행을 우선시하고 제네릭 경쟁을 효과적으로 막도록 요구한다. 국경조치는 인도산 제네릭을 다른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고,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초국적제약회사의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의 입안, 법의 제정, 판결 등이 있을 경우 인도 정부에 대해 소송을 걸 수 있는 권한을 투자자에게 부여한다. 인도-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막아내야 한다.
또다른 중요한 쟁점은 강제실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특허의약품 강제실시권은 전쟁, 국가비상사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등에서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제네릭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다. 물질특허가 도입된 이상 특허권을 전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세계의 약국’을 유지하고 인도 민중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후적인 대처방안으로 강제실시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2012년 3월 12일 인도에서 최초로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허락됨에 따라 낫코는 간암, 신장암 치료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97%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에는 인도제약사 BDR이 백혈병치료제 ‘스프라이셀’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했으며, 인도정부가 3가지 항암제에 대한 강제실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인도정부는 초국적제약회사와의 약가협상에 의존할 것인지 강제실시를 확대할 것인지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다.
2013년 2월 27일 인도 화학약품부의 의약품부서는 특허약의 가격협상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주된 권고내용은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고 특허의약품에 대한 약가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특허의약품에 대한 가격통제정책의 마련은 처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약가협상을 통해 약값이 결정된 특허의약품은 강제실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의약품부서는 약가협상을 통해 약값이 정해지고 정부가 수용하면 그 가격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강제실시의 조건 중 하나인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인도특허법 제84(b)조)에 따른 강제실시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노바티스에 원한(?)이 많다. 로슈에도 원한이 많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에이즈감염인을 비롯한 환자들의 투쟁소식을 접하다보면 초국적제약회사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원한이 쌓인다. 우리도 한 번쯤은 한방 먹이고 싶었다. 게다가 이 건은 인도산 제네릭(복제약)을 먹고 있는 전 세계 인구의 10%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인도의 공익변호사집단(Lawyers Collective) 활동가인 카얄 바드와지(Kajal Bhardwaj)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소식을 기다리는 전 세계의 환자와 활동가들에게 퍼 나르고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회견 끝났다. 술마시기 시작...”이란 글을 남겼다. 2005년 이후 가장 맛있는 술일 것이다. 나도 덩달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밤을 샜다.
글리벡을 매개로 한 인도특허법 소송의 경과
2002년 봄 노바티스가 인도에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을 출시하고 1년이 지날 무렵 인도의 10개 제약회사가 글리벡과 똑같은 약을 세상에 내놓았다. 2003년 당시 인도에서 글리벡의 한 달 약값은 2,667달러였던 반면 제네릭은 89~267달러였다. 인도 암환자지원협회(Cancer Patients Aid Association)는 제네릭 회사로부터 89달러에 구입하여 환자들에게는 22달러에 공급하고 있었고, '낫코'라는 제약회사는 한국 환자들에게 글리벡과 똑같은 약 '비낫'을 1달러, 글리벡의 1/20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인도 제약회사들이 글리벡과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인도의 특허법 때문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했고, 그 결과 의약품에 대해서는 제법특허만 인정되어 인도 제약회사는 초국적제약회사와는 다른 제법으로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함에 따라 인도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이행해야했기 때문에 2005년 특허법을 개정하여 의약품에도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유예기간인 1995~2004년까지 독점판매권과 특허신청목록을 실행해야 했다. 즉 1995년 이후 해외에서 특허를 받은 약에 대해서도 최대 5년 또는 인도에서 특허를 받을 때까지 독점판매권을 인정하도록 했고, 10년간 특허신청을 받은 후 2005년 특허신청목록을 공개했다. 2003년 12월 노바티스가 글리벡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획득하고 다수의 인도제약회사들이 제네릭 생산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백혈병환자들이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마침 2004년 1월에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4회 세계사회포럼에 글리벡공대위의 몇몇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한국에서의 글리벡투쟁 사례를 발표하였다. 한국활동가의 발표는 인도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특허신청목록이 공개되자 노바티스가 1998년 글리벡에 대한 특허신청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암환자지원협회는 글리벡에 특허를 주어서는 안된다며 사전이의신청을 했고, 2006년 1월 첸나이 특허청은 인도특허법 제3(d)조에 따라 글리벡 특허신청을 반려하였다. 노바티스는 고등법원과 특허심판원에서도 거듭 패소하자 글리벡 특허 거절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 인도특허법 제3(d)조의 해석에 대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그 최종 결론이 4월 1일 나온 것이다. 판결은 이마티닙 메실레이트의 베타결정형 즉 ‘글리벡’이 이마티닙이나 이마티닙 메실레이트에 비해 인도특허법 제3(d)조를 충족시킬 만큼 효과의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고, 따라서 특허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바티스 소송, 초국적제약회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에 제동을 걸다
글리벡의 주요약효성분은 이마티닙으로, 여기에 메실레이트와 같은 염을 붙이고, 베타결정형을 취하여 흡습성이나 열역학적 안정성 면에서 더 좋게 만든 것이다. 이마티닙은 1990년대 초에 미국오레곤암재단에서 드루커 박사팀이 개발한 것으로, 1993년 제약회사 시바-가이기(1996년 시바-가이기와 산도스가 합병하여 노바티스 설립)가 이마티닙과 이마티닙 메실레이트에 대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특허출원을 했다. 그리고 1997년에 노바티스는 이마티닙 메실레이트(베타결정형)에 대해서도 특허출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제약회사들은 하나의 약에 하나의 특허만 거는 것이 아니라 염, 결정형, 이성질체 등으로 기존 의약품에 ‘사소한 변화’를 주어 계속 특허를 건다. 이러한 방식으로 특허기간을 연장함으로써 제네릭 생산을 막고 높은 약값을 유지하려는 행위를 에버그리닝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번 노바티스 소송의 결과는 초국적제약회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이 인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의미가 있다.
‘세계의 약국’을 지켜내기 위한 전세계적 연대투쟁의 승리
이번 소송은 초국적제약회사의 특허독점에 맞선 싸움이자 ‘세계의 약국’을 지켜내기 위한 전 세계 환자, 활동가들의 싸움이었다. 인도 제약회사들은 전 세계 제네릭 매출량의 20%를 공급고 있으며 전 세계인구의 10%가 인도산 제네릭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에 공급되는 에이즈 치료제의 90%,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의 50%가 인도에서 공급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도는 건강권과 특허권이 대립하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며, 초국적제약회사의 소송과 미국·유럽연합 등 외부의 압력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소송은 초국적제약회사의 특허권와 환자의 건강권이 대립되는 다양한 이슈들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인도산 제네릭을 먹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환자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보건의료단체, 에이즈운동단체, 지적재산권 관련 단체 등이 수년에 걸쳐 노바티스에 대한 항의시위와 국제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전 세계 환자들과 활동가들이 벌인 연대투쟁의 승리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인도특허법이 다른 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5년 인도특허법이 개정되어 의약품에도 물질특허가 도입되었지만, 전 세계의 환자, 활동가들의 연대투쟁의 결과로 공중보건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인도특허법에 담기게 되었다. 강제실시, 사전·사후이의신청제도, 제3(d)조가 대표적이다. 노바티스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던 인도특허법 제3(d)조는 1995년 이전에 개발된 약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치료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적응증, 새로운 제형, 새로운 조성을 가진 약일지라도 특허를 얻지 못하도록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2011년 발간한 ‘에이즈치료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의 유연성 활용하기’는 태국의 강제실시, 인도의 특허법 제3(d)조 등을 성공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여러 국가들이 인도특허법의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다. 2012년 5월 아르헨티나는 인도특허법 제3(d)조와 유사한 엄격한 특허적격성 기준을 포함하는 새로운 특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필리핀 또한 비슷한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에이즈운동단체인 치료행동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과 국경없는의사회가 인도특허법을 모델로 특허법을 개정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보츠와나는 인도를 모델삼아 사전이의신청을 수용했다.
남겨진 과제: 자유무역협정과 강제실시권의 향방
하지만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 있다. 인도정부와 유럽연합은 4월 15일 장관급 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려고 한다. 6년에 걸친 협상을 4월 안에 끝내려는 이유는 다른 지역간 무역협정들의 진행상황과 2014년 예정된 인도 총선거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었던 의약품 자료독점권은 협정문에서 빠졌지만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인도 행정부·사법부에게 특허권의 집행을 우선시하고 제네릭 경쟁을 효과적으로 막도록 요구한다. 국경조치는 인도산 제네릭을 다른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고,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초국적제약회사의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의 입안, 법의 제정, 판결 등이 있을 경우 인도 정부에 대해 소송을 걸 수 있는 권한을 투자자에게 부여한다. 인도-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막아내야 한다.
또다른 중요한 쟁점은 강제실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특허의약품 강제실시권은 전쟁, 국가비상사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등에서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제네릭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다. 물질특허가 도입된 이상 특허권을 전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세계의 약국’을 유지하고 인도 민중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후적인 대처방안으로 강제실시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2012년 3월 12일 인도에서 최초로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허락됨에 따라 낫코는 간암, 신장암 치료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97%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에는 인도제약사 BDR이 백혈병치료제 ‘스프라이셀’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했으며, 인도정부가 3가지 항암제에 대한 강제실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인도정부는 초국적제약회사와의 약가협상에 의존할 것인지 강제실시를 확대할 것인지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다.
2013년 2월 27일 인도 화학약품부의 의약품부서는 특허약의 가격협상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주된 권고내용은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고 특허의약품에 대한 약가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특허의약품에 대한 가격통제정책의 마련은 처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약가협상을 통해 약값이 결정된 특허의약품은 강제실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의약품부서는 약가협상을 통해 약값이 정해지고 정부가 수용하면 그 가격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강제실시의 조건 중 하나인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인도특허법 제84(b)조)에 따른 강제실시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본 글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및 ‘정보공유연대 IPLeft’에서 활동하는 권미란 회원이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