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호 | 2013.11.22
누가 이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는가?
반복적인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부른 비극
보건복지부의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수동연세요양병원(이하 수동병원)에서 환자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3차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순조롭게 회복하던 중 수동병원으로 전원한 후 한 달 만에 사망했다는 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정황이 있는 점 등 단순한 사고로 보아 넘기기 쉽지 않다.
그런데 수동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수동병원의 문제는 이미 2011년 환자에 대한 폭언, 구타,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한차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감독 기관인 질병관리본부가 사건을 축소·은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은 좁게는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나아가서 HIV 감염인이 겪고 있는 차별과 인권침해라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이 사건을 사회화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래 글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미란 회원이 기고한 것이다.
소리 없이 사라진 에이즈 환자
친구가 있었다.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결핵 때문에 생긴 복막염으로 소장이 터져 급히 수술을 받았다. 배 위쪽에 인공항문을 달아서 밥을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하지만 친구는 이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의사에게 인공항문을 때어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걸리겠냐며 빨리 회복하고 싶어 했다. 의사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능하다고 했고, 친구는 라면과 핫바를 사먹을 만큼 회복되었다.
병원에서도 퇴원을 하고 외래진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친구는 갈 곳이 없었고 혼자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을 안내받아 가게 되었다. 한시름 놓았다. 수동병원에 입원하는 날, 당분간 수액 치료가 필요하다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하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당부를 전했다. 그런데 수동병원 의료진은 “수액을 맞아야 한다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재차 요구했지만 수액이 없다고 했다. 좀 찜찜했지만 달리 갈 곳이 없는데다 여기도 병원인데 뭔 일이야 있겠지 싶었다. 수동병원으로 간 후 6일후 세브란스병원에 둘이서 외래진료를 다녀왔다. 의사는 친구에게 잘 협조해 준 덕분에 건강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일주일쯤 후에 친구의 안부를 물으러 수동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친구는 그곳에 없었다. 이미 친구의 장례식이 치러진 후였다.
그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수동병원에 간지 14일 만에 소리 없이 사라진 에이즈 환자. 그의 지인은 그가 죽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고, 이별을 나눌 시간도 갖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동병원측에 물으니 ‘질병이 깊어 사망에 대해 예견이 된 분’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지인도,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를 간병했던 분도 그가 사망이 예견된 상태이거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사망하기 며칠 전에 호흡곤란이 생겨 세브란스병원에 보내달라고 말했지만 수동병원은 환자의 요구를 묵살했다. 왜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환자의 어머니가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 병원측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수동병원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이동하려면 응급차 비용이 30~50만원 발생하는데 보호자가 협조하지 않는 환자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필요하다고 했던 수액 치료는 왜 하지 않은 것인지, 환자 본인이 응급한 상황이라 호소하면서 큰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음에도 의료적 조치에 대한 결정을 가족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동병원에 있었던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만났다. 1년 넘게 입원했었던 환자는 “거기가 병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요양원인줄 알았다”라고 했고, 간병인으로 일했던 분은 “원장님이 의사였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환자는 “입원할 때 의사를 한 번 만난 후로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수동병원 홈페이지에는 ‘한국 가정의학의 대부’를 포함한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진료하고 있다고 소개되어있는데 왜 에이즈 환자들은 그곳이 병원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가? 환자들은 간호사들이 있긴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 많이 혼내고 감시했다”고 했다. 건물 밖으로 못 나가게 했으며, 특히 다른 병동 환자들과 마주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에이즈’란 말은 금기어였다고 한다. 다른 병동과는 달리 에이즈 환자 병동의 불은 밤 9시면 모두 꺼졌다.
수동병원은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이다. 다른 요양병원에서는 거의 100% 에이즈 환자를 거부한다. 이 서글픈 현실 탓에 보건복지부는 2010년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시작했고, 수동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으며,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3년이란 시간이 흐를 수 있었을까?
‘유일한’ 병원이라는 함정
국가에이즈관리사업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이하 모니터단)은 2011년 수동병원에서 요양 중인 에이즈 환자들이 간병인에 의해 폭언, 구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모니터단은 ⑴의료인이 해야 할 에이즈 환자 요양 업무의 상당 부분을 간병인들에게 맡긴 점, ⑵에이즈 환자에 대한 요양 및 진료를 소홀히 한 점, ⑶에이즈 환자의 요양보다 병원수익을 우선시하는 정황을 알게 되었다. 간병인들은 40분으로 정해진 식사시간동안 환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자신도 밥을 먹어야 해서 물에 만 밥을 떠밀다시피 먹여야 했고, 환자 한 명당 하루에 2번 배정된 재활치료 스케줄을 처리하기 위해 환자를 윽박지르고 때리기도 했다. 욕창환자의 드레싱과 썩션 등 치료 행위 뿐아니라, 사망한 에이즈 환자의 염도 간병인들이 했다. 수동병원은 에이즈 환자의 병실을 간병인이 청소하도록 했는데, 병원의 다른 곳의 청소는 청소노동자가 하고 있었다.
모니터단은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결핵관리과에 엄정한 조사와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으나, 질병관리본부는 도리어 모니터단에게 사건확대의 책임을 추궁하며 함구를 강요했다. 수동병원은 폭언, 구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간병인을 해고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으려 했고, 성폭행 피해자의 아들에게 “문제제기할 거면 나가라. 가만있으면 간병비를 돌려주겠다”고 협박하여 입을 막았다.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들은 수긍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면서 질병관리본부는 인권침해사건의 원인을 병원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간병인들의 복무규율과 인성의 문제에서 찾고, ‘직무윤리교육 및 복무규율 강화 등 직원 관리’를 철저하게 하도록 지시했다. 여기에 더해 간병인을 포함하여 국가에이즈관리사업에 참여하는 HIV 감염인 활동가들의 활동자격으로 정신과적 검사와 상담을 강요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에이즈감염인’에게만 돌리며 무사안일의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사건의 원인이 에이즈감염인의 인성 및 정신과적 문제에 있다고 단정한 질병관리본부의 태도는 스스로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당연시 한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병원 운영상의 문제와 질병관리본부의 관리감독 부재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직무윤리교육 및 복무규율 강화 등 직원 관리 철저’라는 질병관리본부의 지시는 환자 치료 방치, 환자의 자기결정권 무시, 차별과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수동병원은 인성교육을 빌미로 예배를 강요했고, 간병인들에게 일상적으로 환자감시를 지시했다. 다른 병동의 환자를 만나거나 ‘에이즈’에 대해 얘기한 환자에게는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징벌’했다. 수동병원은 간병인과 환자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일체 밖에서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
HIV 감염인들은 ‘지정된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환자와 간병인들은 “해주는 것 없이 환자를 눕혀놓기만 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챙기는” 병원을 보고 화가 났지만 ‘유일한’ 병원이라서 말을 못했다. ‘유일한’ 병원을 지켜내기 위해 에이즈감염인은 차별과 인권침해를 참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일한’ 병원은 가기 어려운 병원이었다. 처지가 더 어려운 환자는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없거나 정신질환·알콜중독이 있는 에이즈 환자는 그 병원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환자는 이 모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그 ‘유일한’ 병원에 있을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여기기도 한다.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찾아갈 가족도, 집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안주하는 환자도 있다. 병원 안이 지옥인지 병원 밖 세상이 지옥인지 분간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유일한’ 병원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에는 새로운 요양병원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를 존중하는 병원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언제쯤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을 지정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올까? 그리고 병원이 아니라 집이 필요한 환자들이 병원에 갇히기를 자청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우리는 수많은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런데 수동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수동병원의 문제는 이미 2011년 환자에 대한 폭언, 구타,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한차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감독 기관인 질병관리본부가 사건을 축소·은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은 좁게는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나아가서 HIV 감염인이 겪고 있는 차별과 인권침해라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이 사건을 사회화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래 글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미란 회원이 기고한 것이다.
소리 없이 사라진 에이즈 환자
친구가 있었다.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결핵 때문에 생긴 복막염으로 소장이 터져 급히 수술을 받았다. 배 위쪽에 인공항문을 달아서 밥을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하지만 친구는 이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의사에게 인공항문을 때어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걸리겠냐며 빨리 회복하고 싶어 했다. 의사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능하다고 했고, 친구는 라면과 핫바를 사먹을 만큼 회복되었다.
병원에서도 퇴원을 하고 외래진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친구는 갈 곳이 없었고 혼자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을 안내받아 가게 되었다. 한시름 놓았다. 수동병원에 입원하는 날, 당분간 수액 치료가 필요하다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하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당부를 전했다. 그런데 수동병원 의료진은 “수액을 맞아야 한다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재차 요구했지만 수액이 없다고 했다. 좀 찜찜했지만 달리 갈 곳이 없는데다 여기도 병원인데 뭔 일이야 있겠지 싶었다. 수동병원으로 간 후 6일후 세브란스병원에 둘이서 외래진료를 다녀왔다. 의사는 친구에게 잘 협조해 준 덕분에 건강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일주일쯤 후에 친구의 안부를 물으러 수동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친구는 그곳에 없었다. 이미 친구의 장례식이 치러진 후였다.
그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수동병원에 간지 14일 만에 소리 없이 사라진 에이즈 환자. 그의 지인은 그가 죽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고, 이별을 나눌 시간도 갖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동병원측에 물으니 ‘질병이 깊어 사망에 대해 예견이 된 분’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지인도,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를 간병했던 분도 그가 사망이 예견된 상태이거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사망하기 며칠 전에 호흡곤란이 생겨 세브란스병원에 보내달라고 말했지만 수동병원은 환자의 요구를 묵살했다. 왜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환자의 어머니가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 병원측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수동병원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이동하려면 응급차 비용이 30~50만원 발생하는데 보호자가 협조하지 않는 환자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필요하다고 했던 수액 치료는 왜 하지 않은 것인지, 환자 본인이 응급한 상황이라 호소하면서 큰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음에도 의료적 조치에 대한 결정을 가족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동병원에 있었던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만났다. 1년 넘게 입원했었던 환자는 “거기가 병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요양원인줄 알았다”라고 했고, 간병인으로 일했던 분은 “원장님이 의사였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환자는 “입원할 때 의사를 한 번 만난 후로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수동병원 홈페이지에는 ‘한국 가정의학의 대부’를 포함한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진료하고 있다고 소개되어있는데 왜 에이즈 환자들은 그곳이 병원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가? 환자들은 간호사들이 있긴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 많이 혼내고 감시했다”고 했다. 건물 밖으로 못 나가게 했으며, 특히 다른 병동 환자들과 마주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에이즈’란 말은 금기어였다고 한다. 다른 병동과는 달리 에이즈 환자 병동의 불은 밤 9시면 모두 꺼졌다.
수동병원은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이다. 다른 요양병원에서는 거의 100% 에이즈 환자를 거부한다. 이 서글픈 현실 탓에 보건복지부는 2010년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시작했고, 수동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으며,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3년이란 시간이 흐를 수 있었을까?
‘유일한’ 병원이라는 함정
국가에이즈관리사업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이하 모니터단)은 2011년 수동병원에서 요양 중인 에이즈 환자들이 간병인에 의해 폭언, 구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모니터단은 ⑴의료인이 해야 할 에이즈 환자 요양 업무의 상당 부분을 간병인들에게 맡긴 점, ⑵에이즈 환자에 대한 요양 및 진료를 소홀히 한 점, ⑶에이즈 환자의 요양보다 병원수익을 우선시하는 정황을 알게 되었다. 간병인들은 40분으로 정해진 식사시간동안 환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자신도 밥을 먹어야 해서 물에 만 밥을 떠밀다시피 먹여야 했고, 환자 한 명당 하루에 2번 배정된 재활치료 스케줄을 처리하기 위해 환자를 윽박지르고 때리기도 했다. 욕창환자의 드레싱과 썩션 등 치료 행위 뿐아니라, 사망한 에이즈 환자의 염도 간병인들이 했다. 수동병원은 에이즈 환자의 병실을 간병인이 청소하도록 했는데, 병원의 다른 곳의 청소는 청소노동자가 하고 있었다.
모니터단은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결핵관리과에 엄정한 조사와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으나, 질병관리본부는 도리어 모니터단에게 사건확대의 책임을 추궁하며 함구를 강요했다. 수동병원은 폭언, 구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간병인을 해고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으려 했고, 성폭행 피해자의 아들에게 “문제제기할 거면 나가라. 가만있으면 간병비를 돌려주겠다”고 협박하여 입을 막았다.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들은 수긍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면서 질병관리본부는 인권침해사건의 원인을 병원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간병인들의 복무규율과 인성의 문제에서 찾고, ‘직무윤리교육 및 복무규율 강화 등 직원 관리’를 철저하게 하도록 지시했다. 여기에 더해 간병인을 포함하여 국가에이즈관리사업에 참여하는 HIV 감염인 활동가들의 활동자격으로 정신과적 검사와 상담을 강요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에이즈감염인’에게만 돌리며 무사안일의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사건의 원인이 에이즈감염인의 인성 및 정신과적 문제에 있다고 단정한 질병관리본부의 태도는 스스로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당연시 한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병원 운영상의 문제와 질병관리본부의 관리감독 부재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직무윤리교육 및 복무규율 강화 등 직원 관리 철저’라는 질병관리본부의 지시는 환자 치료 방치, 환자의 자기결정권 무시, 차별과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수동병원은 인성교육을 빌미로 예배를 강요했고, 간병인들에게 일상적으로 환자감시를 지시했다. 다른 병동의 환자를 만나거나 ‘에이즈’에 대해 얘기한 환자에게는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징벌’했다. 수동병원은 간병인과 환자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일체 밖에서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
HIV 감염인들은 ‘지정된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환자와 간병인들은 “해주는 것 없이 환자를 눕혀놓기만 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챙기는” 병원을 보고 화가 났지만 ‘유일한’ 병원이라서 말을 못했다. ‘유일한’ 병원을 지켜내기 위해 에이즈감염인은 차별과 인권침해를 참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일한’ 병원은 가기 어려운 병원이었다. 처지가 더 어려운 환자는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없거나 정신질환·알콜중독이 있는 에이즈 환자는 그 병원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환자는 이 모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그 ‘유일한’ 병원에 있을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여기기도 한다.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찾아갈 가족도, 집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안주하는 환자도 있다. 병원 안이 지옥인지 병원 밖 세상이 지옥인지 분간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유일한’ 병원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에는 새로운 요양병원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를 존중하는 병원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언제쯤 에이즈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을 지정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올까? 그리고 병원이 아니라 집이 필요한 환자들이 병원에 갇히기를 자청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우리는 수많은 물음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