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호 | 2014.03.17
의사 집단휴진, 그 의미와 과제
지난 3개월 간 쟁점이 되어온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의사들의 집단휴진이라는 사태까지 만들어 냈다. 3월 10일 대한의사협회는 하루 집단휴진을 단행했다. 주로 의원급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개원의와 수련병원의 전공의들이 참여했다. 이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 만의 의사 집단행동이다. 지난 해 정부가 발표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과 원격의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정책으로 의료 서비스가 양극화될 수 있다"며, “의사로 하여금 환자가 아닌 투자자를 위한 진료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휴진에 대해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불법적 집단행위로 규정하며 엄정하게 대처할 것임을 선포했으나 이는 의사들의 더 큰 반발을 낳았다.
의사들의 이번 집단행동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이 얼마나 재벌만을 위한 정책인지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병원 자본을 대변하는 병원협회는 의료민영화 정책에 찬성입장이다. 의사들은 이미 큰 병원의 실질적인 자본가가 된 의사부터 대학병원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감내하는 전공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의학을 연구해 환자들의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문가라면 자본의 배만 채울 것이 분명한 의료민영화는 반드시 반대하고 저지해야 할 문제다.
의사를 자본의 꼭두각시로 전락시킬 4차 투자활성화 대책
철도민영화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작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라는 또 다른 민영화 카드를 내밀었다. 이 대책은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허용, 부대사업 범위 대폭 확대, 병원 인수합병, 법인약국 허용 등 보건의료 부문에서 자본의 이윤추구를 보장해주는 전면적 규제 완화 정책이다.
의료기관의 부대사업목적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것은, 자회사를 통해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고 그 수익을 의료기관 바깥으로 빼낼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영리병원과 같은 효과를 만들 것이다. 병원들로 하여금 과잉진료 및 비급여 진료의 확대를 통한 수익 추구를 가속화시켜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를 증가시킬 것이다. 또한 영리를 추구하는 진료 행태는 환자의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서비스의 질도 나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의사 역시 병원의 영리추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PD수첩에도 보도된 한 척추질환 전문 네트워크 병원은 실질적인 소유주가 명목상 원장인 의사들을 돈벌이로 내몰고 있었다.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도 값비싼 수술을 제안하도록 하며, 수술 건수에 따라 의사들의 성적을 매기는 등 네트워크 병원은 의사들을 돈벌이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병원에서 양심적인 진료를 고집하는 의사는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영리가 목적인 투자자가 ‘갑’이 되어 수익성 목적의 진료를 의사에게 강요한다면, 의사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의사들의 진료행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1)에 따르면, 1997~2004년 미국의 공보험인 메디케어의 전체 약제비가 47% 증가하는 동안 항암제 비용은 무려 267%나 증가하였다. 미국에서는 항암제 처방에 따른 의사의 경제적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약값 마진이 큰 항암제일수록 처방되는 경향도 뚜렷하였다. 의사는 과학적 판단뿐 아니라 경제적 이해에 따라 행동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었다(서리플연구통재인용).
의료기관의 부대사업목적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은 병원의 노골적인 수익성 진료의 강요를 통해서든 의사의 경제적 이익의 충족을 위해서든 결국에는 진료의 영리적인 성격을 심화시킬 것이다. 보건의료체계가 영리목적의 자본에 의해 장악되어 재편될수록 의학적 지식에 따른 의사의 자율적인 진료는 서있기 힘들 것이다. 또한 병원 간 인수∙합병 속에 이루어지는 경영 정상화를 명목으로 하는 구조조정 속에서 의사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허울뿐인 원격의료 수정안
의사들에게는 또 다른 재앙인 원격의료가 기다리고 있다. 정부 측은 원격진료를 통해 만성질환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며, 의료접근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각종 전제조건을 달면서 원격의료를 포장하고 있지만 원격의료의 본질적 문제점은 똑같다. 원격의료는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강화하고 민중의 의료비 부담을 높여 IT, 의료기기 재벌기업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의료민영화다.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동네의원 간의 무차별적 경쟁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일차의료의 정체성 혼란과 영리화를 더 부추길 것이다.
동네의원을 대표하는 의사협회의 반대가 계속되자, 12월 10일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수정안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이는 생색내기 식의 미봉책에 불과했다. 수정안에 나온 보완책들을 보면 첫째, 원격의료만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차단하겠다고 하나 시범사업에서 있었던 상급 종합병원 중심의 원격의료 구축 계획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보건의료체계 왜곡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둘째, 주기적인 대면진료 의무를 규정한다는 조항은 굳이 비싼 의료기기를 사용해 원격의료를 병행할 필요를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안전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초진이 가능한 질환과 진료가능한 의사를 제한적으로 규정한다 하였으나 애초에 신체진찰도 없이 초진을 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넷째, 병원급 이용에 관한 환자 범위와 관련해서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란 단서를 붙임으로써 얼마든지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만성질환의 특성상 6개월의 시범사업으로 평가가 불가할뿐더러, 보건의료경제학자들은 기존 연구들조차 2년 미만의 것들이기 때문에 신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정책에 대한 의사들의 반대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의료민영화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대다수의 국민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시민단체들 역시 ‘의료민영화 저지 100만 국민 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 의료민영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확대를 외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엔 의사들마저 집단휴진으로 정부의 반대 전선에 나서며 이러한 흐름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대정부투쟁을 선포하며 내세운 첫 요구안은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정책’ 반대이다. 이 요구안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이다. 이는 의료계가 빠른 속도로 자본의 영향력 아래에 재편되어 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의사들이 늘고 있음을 반영한다. 거대해지는 병원자본을 비롯한 보건의료자본의 존재 속에 의사도 결국 자본의 통제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의사들은 정부의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정책 반대 입장과 이에 대한 철회 요구를 끝까지 견지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적정한 진료 조건의 보장에 대한 의사의 정당한 요구이고, 결국 이 요구는 민중들의 건강권 보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의사들이 수가 인상과 경제적 이익 등 단기적이고 협소한 방식으로 정부와 협의점을 찾는 것에 안주한다면, 의사협회의 대정부 요구는 그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스페인에서는 노동조합, 환자, 지역주민, 의료인을 포함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15개월에 걸친 투쟁을 통해 의료민영화를 막아내었다. 자본과 정부에 대항하는 힘든 싸움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투쟁만이 의료민영화를 막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와 언론들의 공세적인 도덕적 비난으로 의사들이 고립되었던 과거를 떠올려보자. 이 땅의 의사들도 스페인의 사례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Epstein AJ, Johnson SJ. Physician response to financial incentives when choosing drugs to treat breast cancer. Int J Health Care Finance Econ. 2012;12(4):285-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