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호 | 2016.10.30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
백남기 농민 진단서 논란을 되돌아 보며
검찰과 경찰이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재신청을 포기했다. 백남기투쟁본부의 표현대로 상식의 승리이자, 고인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함께 싸운 국민들의 승리다. 사필귀정이라지만, 정말 어렵게 역사가 제대로 된 길로 한 걸음 내딛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들켜버린 박근혜 정권은 당장 하야하라는 국민들의 분노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끝끝내 사망진단서를 수정하지 않은 서울대병원 또한 너무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면서 이 정권과 함께 순장될 상황이다.
물대포의 위험성
물대포의 위험성, 즉 물대포가 살인까지 가능한 무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영국은 물대포가 의학적으로 인체에 어떤 해를 미치는지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국가다. 2000년대 초 북아일랜드에서의 물대포 사용을 위해 내무부에서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 물대포의 의학적 영향에 대해서 연구를 맡겼고 보고서가 2004년 발간되었다(이하 2004년 보고서).(1) 그 후 새롭게 업데이트된 내용을 보강한 보고서가 2013년에 제출되었다(이하 2013년 보고서).(2) 2013년 보고서는 테레사 메이 영국 전 내무부 장관이 2015년 7월 15일 의회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물대포 사용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2013년 보고서에서는 물대포로 인해 사망한 사례를 소개했다. BBC에 의하면, 2012년 탄자니아에서 한 명이 물대포에 의해 사망하고(3) 2013년 터키에서도 물대포를 맞고 넘어진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4) 아쉬운 점은 두 곳의 정치적 상황 상 자세한 자료는 입수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만 터키의 경우 희생자가 물대포에 맞고 넘어지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아래 영상).
저자는 물대포가 격렬한 시위 도중 사용되기 때문에 곤봉이나 화학물질등과 함께 사용된다고 하며, 이 경우 다른 무기로 인한 외상과 물대포로 인한 외상을 구별하기 어려워 의사들이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보고서에서는 산업현장이나 농장에서 쓰는 비슷한 형태의 고압수로 인한 부상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농장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2006년 미국 오레곤주의 한 농장에서 42세 남성이 농업용 스프링클러가 분사한 고압수에 의해 뇌손상을 입어 사망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사인을 두개내 외상(Intracranial trauma)으로 결론지었다.(5)
한편 물대포의 위력에 대해서 경찰을 비롯해 각종 언론사, 극우단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는데 결과가 완전히 상반되게 나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하지만 실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경찰이 故 백남기 농민을 향해 분사했다고 이야기한 수압 14~15바(bar)라는 조건만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물대포의 위력은 수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2004년 보고서에 의하면 물대포가 야기하는 부상의 정도는 운동량에 비례한다. 고압수의 운동량을 뜻하는 단위인 세정력(Cleaning Units)은 수압과 토출된 물의 양을 곱한 값에 비례한다.(6) 즉, 같은 수압이라도 물이 얼마나 쏟아지느냐에 따라 그 충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2013년 보고서에 의하면 상용화된 물대포의 토출량은 초당 20리터다. 15바에 맞춰서 세정력을 구해보면 셀프세차장 고압수의 10배에 해당하는 위력이다. 결국 실제 시위진압용으로 사용되는 물대포는 수압과 토출되는 물의 양을 모두 고려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4년 보고서에서는 독일의 한 시위참가자가 물대포에 맞고 갈비뼈가 부러진 사례가 소개된다.
진단서 논란, 의학은 과연 자율적인가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된 또 다른 쟁점은 진단서 논란이었다. 명백히 의사협회의 사망진단서 작성원칙을 어겼고, 서울대 의대생과 동문, 전국의 의대생이 이를 지적하는 성명서를 냈고, 결국 의사협회까지 사망진단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권력의 편에 서지 말고, 오직 환자의 편에 서라고 요구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라고 했다.
백선하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아무런 “외압이 없이”, 오직 자신의 “양심에 근거해” 병사라는 진단을 내렸고 사망진단서 작성은 의사 고유의 권한이므로 고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말 외압이 없었는지는 최순실처럼 누가 컴퓨터를 버리지 않는 이상 지금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망진단서가 철저히 자율적이고 의학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는 현대 의학이 멈춰선 곳, 현대의학의 모순이다.
평소에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의학적 판단과 의료행위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작동한다고 체감하기는 어렵다. 의료인들은 자신들의 전문적 지식에 입각해 환자들의 개인적 질병을 해결한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분석의 틀을 개별적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복수의 신체들, 그리고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차원까지 확장해보자. 그러면 의학은 지배계급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입하고 재구성해온 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학의 정당화 기능
모든 질병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생겨난다. 예컨대 결핵균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발병하는 것은 그 중 10%에 불과한데, 발병에 가장 중요한 인자는 영양부족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결핵에 잘 걸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결핵에 걸렸을 때는 약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가난도 해결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결핵을 치료할 때 가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는 자신의 질병이 가난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의학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분명히 질병의 사회적 요인을 말하던 의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체제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되었다. 지배계급은 질병의 책임을 전부 병원체(예컨대 결핵균)에만 돌리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의학교육을 개혁한 플렉스너는 당시 과학적이지 않다고 간주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과학적 의학 교육만을 남겼다. 배제당한 것들 중에는 질병의 사회적 요인도 있었다. 록펠러재단과 카네기재단은 플렉스너의 의학교육 개혁에 거액의 돈을 투자했고, 이후 의대생들은 질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소에서만 찾게 되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본은 세균학과 약리학 등 사회적 요소가 배제된 기초의학에만 정치적으로 투자했다.(7)
결국 오늘날의 현대의학은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된 학문이다. 자체의 고유한 논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고유한 논리의 형성조차 의학을 둘러싼 사회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미국의 광부들은 탄광에서 일하면 폐가 망가진다고 오래 전부터 말해왔지만, 의학계는 1960년대까지 탄광 노동으로 인한 진폐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의사들은 의학적 증거가 은폐되었거나 나중에 드러날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8)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균학이나 약리학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거나 질병 치료에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결핵약은 제대로 복용한다면 분명 결핵이 낫는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병이 가난이 아니라 결핵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환자의 가난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재발하거나 다른 형태의 감염성 질환에 걸린다. 결국 반쪽 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치료 중심·생물학적 설명 중심의 현대 의학은 질병을 발생시킨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병에 걸린 개인의 고통을 해결함으로써 현재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열사의 죽음을 헛되게 했던 ‘비정치적 부검들’
백선하 교수는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이 소견서를 요청했을 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소견서 발급을 거부했다.(9) 정작 그가 ‘비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사망진단서는 검찰의 부검 영장 신청의 근거로 사용되었고, 공권력 책임 회피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가 이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만약 누군가 또다시 물대포로 인해 사망한다면, 거기에는 의사인 백 교수의 비정치적 태도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의학 자체는 정권과 자본의 지배 기능에 기여하도록 발전해왔다. 의료인이 환자를 돌볼 때는 약자인 민중의 편에 서겠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환자의 고통을 개인적인 요인으로만 돌리게 된다. 자신이 비정치적이고, 객관적이라 믿으면 믿을수록 더욱 그렇게 정치적으로 활용되어 버린다.
부검은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이들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 의사 오연상과 부검의 황적준의 의로운 역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비정치적 부검’으로 열사의 죽음을 헛되게 만든 적이 더 많다.
1995년 장애 노점상 이덕인씨는 폭력적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망루에 올랐다. 그는 온몸에 피멍이 들고 양손이 포승줄로 결박된 상태로 인천 앞바다에 떠올랐다. 유족 동의 없는 강제부검의 결과는 익사였다. 1991년에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씨가 병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한 남성이 사망일에 그를 찾았다는 증언이 있었고 옥상문은 쇠창살과 열쇠로 잠겨 있었지만 경찰의 강제 부검 결과는 투신자살이었다. 2005년 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에게 구타당한 전용철 열사는 이틀 후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부검 결과 구타와 상관없이 넘어져서 생긴 손상이라고 했다.(10)
민중과 함께 한걸음 더
많은 의대생과 의사들이 사망진단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을 밝혔다. ‘사망진단서가 틀렸다’라는 자신의 의학적 합리성과 양심에서 출발했지만, 한 가지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숨막힐 것처럼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인 의료 사회에서 당당히 발언하기 위한 용기다.
그렇게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랬던 의사가 바로 체 게바라였고, 살바도르 아옌데였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3·1운동 당시 경성에서 구금된 학생들 중에는 의대생이 제일 많았으며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1호에 저항한 최초의 학생 시위는 서울대 의대 시험 거부 사건이었다.(11) 현대 의학은 지배계급의 통치성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누구보다 구체적 고통을 직면하고 거기에 대응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공간에 있는 의사를 포함한 많은 의료인들은 사회적 모순을 바라보게 된다.
부검은 중단되었으나, 역사는 더욱 전진하길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살인진압에 대한 사과는커녕,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포함한 책임자 수사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지 않다. 민중의 분노는 커져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드러나며 최순실 구속조사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재벌이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돈을 받아먹으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민중의 삶은 고된 노동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고, 한반도는 시시각각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는 그런 민중을 배제하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는 민중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의학적 합리성과 양심에서 한 발 더 나아가자. 지금 여기의 대중운동과 함께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자.
물대포의 위험성
물대포의 위험성, 즉 물대포가 살인까지 가능한 무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영국은 물대포가 의학적으로 인체에 어떤 해를 미치는지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국가다. 2000년대 초 북아일랜드에서의 물대포 사용을 위해 내무부에서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 물대포의 의학적 영향에 대해서 연구를 맡겼고 보고서가 2004년 발간되었다(이하 2004년 보고서).(1) 그 후 새롭게 업데이트된 내용을 보강한 보고서가 2013년에 제출되었다(이하 2013년 보고서).(2) 2013년 보고서는 테레사 메이 영국 전 내무부 장관이 2015년 7월 15일 의회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물대포 사용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2013년 보고서에서는 물대포로 인해 사망한 사례를 소개했다. BBC에 의하면, 2012년 탄자니아에서 한 명이 물대포에 의해 사망하고(3) 2013년 터키에서도 물대포를 맞고 넘어진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4) 아쉬운 점은 두 곳의 정치적 상황 상 자세한 자료는 입수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만 터키의 경우 희생자가 물대포에 맞고 넘어지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아래 영상).
저자는 물대포가 격렬한 시위 도중 사용되기 때문에 곤봉이나 화학물질등과 함께 사용된다고 하며, 이 경우 다른 무기로 인한 외상과 물대포로 인한 외상을 구별하기 어려워 의사들이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보고서에서는 산업현장이나 농장에서 쓰는 비슷한 형태의 고압수로 인한 부상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농장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2006년 미국 오레곤주의 한 농장에서 42세 남성이 농업용 스프링클러가 분사한 고압수에 의해 뇌손상을 입어 사망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사인을 두개내 외상(Intracranial trauma)으로 결론지었다.(5)
한편 물대포의 위력에 대해서 경찰을 비롯해 각종 언론사, 극우단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는데 결과가 완전히 상반되게 나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하지만 실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경찰이 故 백남기 농민을 향해 분사했다고 이야기한 수압 14~15바(bar)라는 조건만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물대포의 위력은 수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2004년 보고서에 의하면 물대포가 야기하는 부상의 정도는 운동량에 비례한다. 고압수의 운동량을 뜻하는 단위인 세정력(Cleaning Units)은 수압과 토출된 물의 양을 곱한 값에 비례한다.(6) 즉, 같은 수압이라도 물이 얼마나 쏟아지느냐에 따라 그 충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2013년 보고서에 의하면 상용화된 물대포의 토출량은 초당 20리터다. 15바에 맞춰서 세정력을 구해보면 셀프세차장 고압수의 10배에 해당하는 위력이다. 결국 실제 시위진압용으로 사용되는 물대포는 수압과 토출되는 물의 양을 모두 고려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4년 보고서에서는 독일의 한 시위참가자가 물대포에 맞고 갈비뼈가 부러진 사례가 소개된다.
진단서 논란, 의학은 과연 자율적인가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된 또 다른 쟁점은 진단서 논란이었다. 명백히 의사협회의 사망진단서 작성원칙을 어겼고, 서울대 의대생과 동문, 전국의 의대생이 이를 지적하는 성명서를 냈고, 결국 의사협회까지 사망진단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권력의 편에 서지 말고, 오직 환자의 편에 서라고 요구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라고 했다.
백선하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아무런 “외압이 없이”, 오직 자신의 “양심에 근거해” 병사라는 진단을 내렸고 사망진단서 작성은 의사 고유의 권한이므로 고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말 외압이 없었는지는 최순실처럼 누가 컴퓨터를 버리지 않는 이상 지금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망진단서가 철저히 자율적이고 의학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는 현대 의학이 멈춰선 곳, 현대의학의 모순이다.
평소에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의학적 판단과 의료행위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작동한다고 체감하기는 어렵다. 의료인들은 자신들의 전문적 지식에 입각해 환자들의 개인적 질병을 해결한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분석의 틀을 개별적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복수의 신체들, 그리고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차원까지 확장해보자. 그러면 의학은 지배계급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입하고 재구성해온 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학의 정당화 기능
모든 질병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생겨난다. 예컨대 결핵균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발병하는 것은 그 중 10%에 불과한데, 발병에 가장 중요한 인자는 영양부족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결핵에 잘 걸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결핵에 걸렸을 때는 약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가난도 해결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결핵을 치료할 때 가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는 자신의 질병이 가난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의학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분명히 질병의 사회적 요인을 말하던 의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체제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되었다. 지배계급은 질병의 책임을 전부 병원체(예컨대 결핵균)에만 돌리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의학교육을 개혁한 플렉스너는 당시 과학적이지 않다고 간주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과학적 의학 교육만을 남겼다. 배제당한 것들 중에는 질병의 사회적 요인도 있었다. 록펠러재단과 카네기재단은 플렉스너의 의학교육 개혁에 거액의 돈을 투자했고, 이후 의대생들은 질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소에서만 찾게 되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본은 세균학과 약리학 등 사회적 요소가 배제된 기초의학에만 정치적으로 투자했다.(7)
결국 오늘날의 현대의학은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된 학문이다. 자체의 고유한 논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고유한 논리의 형성조차 의학을 둘러싼 사회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미국의 광부들은 탄광에서 일하면 폐가 망가진다고 오래 전부터 말해왔지만, 의학계는 1960년대까지 탄광 노동으로 인한 진폐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의사들은 의학적 증거가 은폐되었거나 나중에 드러날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8)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균학이나 약리학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거나 질병 치료에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결핵약은 제대로 복용한다면 분명 결핵이 낫는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병이 가난이 아니라 결핵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환자의 가난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재발하거나 다른 형태의 감염성 질환에 걸린다. 결국 반쪽 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치료 중심·생물학적 설명 중심의 현대 의학은 질병을 발생시킨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병에 걸린 개인의 고통을 해결함으로써 현재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열사의 죽음을 헛되게 했던 ‘비정치적 부검들’
백선하 교수는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이 소견서를 요청했을 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소견서 발급을 거부했다.(9) 정작 그가 ‘비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사망진단서는 검찰의 부검 영장 신청의 근거로 사용되었고, 공권력 책임 회피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가 이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만약 누군가 또다시 물대포로 인해 사망한다면, 거기에는 의사인 백 교수의 비정치적 태도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의학 자체는 정권과 자본의 지배 기능에 기여하도록 발전해왔다. 의료인이 환자를 돌볼 때는 약자인 민중의 편에 서겠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환자의 고통을 개인적인 요인으로만 돌리게 된다. 자신이 비정치적이고, 객관적이라 믿으면 믿을수록 더욱 그렇게 정치적으로 활용되어 버린다.
부검은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이들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 의사 오연상과 부검의 황적준의 의로운 역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비정치적 부검’으로 열사의 죽음을 헛되게 만든 적이 더 많다.
1995년 장애 노점상 이덕인씨는 폭력적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망루에 올랐다. 그는 온몸에 피멍이 들고 양손이 포승줄로 결박된 상태로 인천 앞바다에 떠올랐다. 유족 동의 없는 강제부검의 결과는 익사였다. 1991년에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씨가 병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한 남성이 사망일에 그를 찾았다는 증언이 있었고 옥상문은 쇠창살과 열쇠로 잠겨 있었지만 경찰의 강제 부검 결과는 투신자살이었다. 2005년 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에게 구타당한 전용철 열사는 이틀 후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부검 결과 구타와 상관없이 넘어져서 생긴 손상이라고 했다.(10)
민중과 함께 한걸음 더
많은 의대생과 의사들이 사망진단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을 밝혔다. ‘사망진단서가 틀렸다’라는 자신의 의학적 합리성과 양심에서 출발했지만, 한 가지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숨막힐 것처럼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인 의료 사회에서 당당히 발언하기 위한 용기다.
그렇게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랬던 의사가 바로 체 게바라였고, 살바도르 아옌데였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3·1운동 당시 경성에서 구금된 학생들 중에는 의대생이 제일 많았으며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1호에 저항한 최초의 학생 시위는 서울대 의대 시험 거부 사건이었다.(11) 현대 의학은 지배계급의 통치성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누구보다 구체적 고통을 직면하고 거기에 대응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공간에 있는 의사를 포함한 많은 의료인들은 사회적 모순을 바라보게 된다.
부검은 중단되었으나, 역사는 더욱 전진하길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살인진압에 대한 사과는커녕,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포함한 책임자 수사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지 않다. 민중의 분노는 커져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드러나며 최순실 구속조사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재벌이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돈을 받아먹으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민중의 삶은 고된 노동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고, 한반도는 시시각각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는 그런 민중을 배제하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는 민중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의학적 합리성과 양심에서 한 발 더 나아가자. 지금 여기의 대중운동과 함께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자.
주
1) Defence Science and Technology Laboratory UK. Medical implications of the use of vehicle mounted water cannon (Issue 2.0). Dstl/TR08591 Issue 2. 2004.
2) Defence Science and Technology Laboratory UK. The medical implications of vehicle-mounted water cann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Ziegler Wasserwerfer 9000 (WaWe 9) system. DSTL/TR74621 V1.0. 2013.
3) Death reported in a BBC Monitoring Service news feed received 27th June 2013. Source of the report is The Citizen Website (a Tanzanian newspaper), Dar es Salaam.
4) “Britons warned to steer clear of Turkey after riots rock Istanbul.” MailOnline, dated 1st June 2013: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334284/Turkeyriots-Britons-warned-steer-clear-unrest-demonstrations-rock-Istanbul.html (accessed 17th July 2013).
5) Ranch Worker Killed by Pressurized Water Striking Eye. NIOSH FACE program: Oregon Case Report 06-OR-025. www.cdc.gov/niosh/face/stateface/or/06or025.html (accessed 17th July 2013).
6) 고압수 바로 알기. (http://perfectshine.tistory.com/349);
What is Cleaning Units - PSI - GPM - Nozzle Size and More.(http://www.powerwash.com/articles/what-is-cleaning-units-psi-gpm-nozzle-size-and-more.html)
7) 비센트 나바로 외. 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 공감. 2006.
8) 비센트 나바로 외. 현대자본주의와 보건의료. 한울. 1989.
9) 진명선 외. 주치의가 정치적 이유로 소견서 발급 거부. 한겨레21. 2016년 10월 11일.
10) 신나리 외. 시신에 대한 슬픈 오마쥬. 참세상. 2016년 10월 25일.
11) 최규진.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궤적과 사회의학연구회. 한울아카데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