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호 | 2018.05.19
삼성바이오 의혹은 박근혜의 적폐이자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의 실체
규제완화·재벌특혜 중심의 창조경제, 규제완화·금융거품 중심의 혁신성장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뜨겁다. 지난 5월 1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조치사전통보서를 삼바에 보냈다. 삼바 측은 금감원 결론에 불복하고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최종적 판정은 5월 17일 열릴 감리위원회와 이어 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서 내려진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젠의 관계
분식회계 문제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바이오젠 콜옵션 행사 여부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 가치 고평가이다. 쟁점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삼바와 에피스, 바이오젠의 관계부터 알아보자. 삼바는 바이오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에피스는 바이오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바이오젠은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이다. 에피스는 삼바의 자회사다. 삼바와 바이오젠이 합작투자해서 에피스를 설립했다. 그러나 에피스의 지분은 대부분 삼바가 가지고 있고, 바이오젠은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수량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기 전까지는 삼바가 에피스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삼바가 에피스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에피스는 삼바의 종속기업’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에피스 지분을 약 50%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삼바는 에피스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배력을 잃는 것이다. 이를 ‘에피스가 삼바의 관계기업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삼바는 2015년 말,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회계처리를 변경했다. 회계규칙상 종속기업 관계에서 삼바는 가지고 있는 에피스 주식을 시가로 평가할 수 없다. 취득 당시 가격인 2,900억 원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관계기업으로 회계처리가 변하게 되면 삼바는 가지고 있는 에피스 주식을 시가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삼바는 에피스의 시가가 4조 8천억 원이라고 추산했다. 이런 회계기준 변경으로 인해 삼바는 4년 연속 적자에서 탈출했으며, 단숨에 2조 원 가까운 순이익을 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논란의 두 가지 쟁점
첫 번째 콜옵션 쟁점은 간단하게만 살펴보겠다. 삼바 측은 에피스의 시가가 증가하면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가능성’이 충분히 높았기 때문에 회계처리를 변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5월 15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콜옵션과 관련해서는 분식회계가 맞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삼바 기자회견 자료와 다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콜옵션 행사를 먼저 요청한 쪽은 삼바였다. 2015년 7월에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의향을 밝혔다. 그러나 협상이 실패했고, 바이오젠은 삼바 측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만약 바이오젠의 통보 시기가 2015년 말 이전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삼바는 15년 말에 콜옵션 행사 철회 사실을 알고도 회계처리를 변경한 것이다. 고의적 분식이다. 통보 시기가 15년 말 이후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2016년 이후의 회계처리가 고의적 분식이 된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두 번째 쟁점은 바로 에피스 기업 가치 고평가 의혹이다. 앞서 언급한 한겨레 기고 글에서 전성인 교수는 에피스 가치가 고평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삼바 가치가 부풀려지고 제일모직이 가진 삼바 주식가치도 부풀려진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추산된 삼바의 높은 시가를 정당화해준다는 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자.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되었다. 이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수적인 절차였다. 합병 과정에서 1주당 주식가치 비율이 제일모직 1, 삼성물산 0.35로 책정되었다. 여기에 대해 삼성물산 주주였던 헤지펀드 엘리엇 등이 제일모직 가치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을 22.24% 가진 대주주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가진 게 거의 없었다. 만약 제일모직 주식가치 비율이 높게 책정되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당시 삼성물산 1대 주주는 10.15%를 가진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은 가치 비율 논란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에 찬성했고, 합병은 이루어졌다.
전성인 교수의 한겨레 기고글 중 제일모직 가치를 평가한 국민연금 보고서 부분을 살펴보자. 국민연금리서치팀, ISS, 딜로이트(안진), KPMG(삼정) 4개 기관이 가치를 평가했다. 국민연금 평가액 기준으로 제일모직 전체 가치 20조 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6조 5천억 원으로 추산된 삼바 주식의 시가다(전체 삼바 시장가치 14조 원에 제일모직 지분율 46.3%를 곱하면 6조 5천억 원이 나온다).
2015년 7월 당시 4개 기관이 추산한 삼바의 시장가치를 비교해보자. ISS는 3조 원, 국민연금은 14조 원, 삼정은 18조 원, 안진은 19조 원이다. 2015년 9월에 발간된 3분기 통합 삼성물산의 분기 연결감사보고서에 의하면 삼바의 시장가치는 6조 8,500억 원에 불과하다. 똑같은 기업을 두고 낮게는 3조 원, 높게는 19조 원까지 최대 6배의 가치 평가액 차이가 났다. 고평가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에피스 회계처리 변경이 주목받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통합 삼성물산 측에서 고평가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회계처리 변경을 통해 삼바의 시장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에피스 가치가 취득가 2,900억 원에서 시장가 4조 8천억 원이 되면 덩달아 에피스를 자회사로 가진 삼바 가치도 올라간다. 물론 그래도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추산했던 14조 원이나 안진이 추산했던 19조 원에는 크게 미달한다.
기업 가치 고평가, 삼성바이오에피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에피스 가치 고평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삼바가 2015년에 에피스의 기업 가치가 4조 8천억 원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에피스가 개발하던 바이오의약품의 판매허가 ‘가능성’ 때문이다. 2015년 기준 에피스는 매출액이 고작 239억 원이었지만 ‘가능성’에 근거해서 기업 가치를 4조 8천억 원으로 추산했다. 현재 대다수의 바이오기업들은 매년 적자를 내지만, 신약 개발 성공의 ‘가능성’에 근거해 기업 가치를 고무줄 늘이듯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부분의 바이오기업은 일정 부분 가치가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바이오기업이 과대평가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무형자산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무형자산에는 물리적인 실체는 없으나 이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미래에 경영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에 얼마만큼 수익이 날 지는 미지수다. 예컨대 간암을 완치시키는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제약 기업을 가정하자. 회사 측은 미래에 신약이 가져올 수익을 감안하여 이 신약 개발 기술을 1조 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 도중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든가, 개발했는데 효과가 별로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기술을 100만 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신약이 개발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수익을 무형자산이라고 하며 회사의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은 사실 회계원리 상 맞지 않다. 엄격하게 따지면 기술 밖에 가진 것이 없는 바이오벤처 기업들은 자산 항목에 써넣을 것이 없어서 투자자들한테 투자를 받기 어렵다.
고평가된 기업 가치를 현금화하는 두 가지 방법
여기서 국가가 등장한다. 국가는 특허권을 강화하여 무형자산에 법적 가치를 부여한다. 특허를 받은 기술은 무형자산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또 코스닥과 같은 모험자본시장에 상장된 기업에 대해서는 재무제표 작성의 원칙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는다. 본래 연구개발비는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축적하는 기업도 있다. 예컨대, 올해 1억 원을 들여서 연구를 하면 작년까지 1억 원이었던 기술의 가치를 올해 말에는 1억 5천만 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이런 기업들에게 회계원칙을 보수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관리감독도 하지 않는다.
기술이 특허를 통해 자산화되면 생기는 여러 결과들이 있다. 첫째, 기술을 독점할 수 있다. 둘째, 특허 기술을 빌려주고 받는 로열티 수입이 생긴다. 셋째, 특허와 같은 무형자산은 가치평가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금융투기의 대상이 된다. 이런 결과들은 특히 주식시장과 결합될 때 극대화된다.
바이오기업이 주식을 발행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거래하게 되면 두 가지 효과가 강해진다. 첫째, 인수합병이 활발해진다. 상대 기업과 험난한 협상을 하는 대신,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확보하면 바로 인수합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무형자산을 매개로 주식 값이 고무줄처럼 변동한다. 주식은 빌려준 돈과 달리 만기나 가격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가격 변동성이 매우 높다. 가격은 기업 가치평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바이오기업은 기업 가치가 무형자산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주식 가격변동성이 매우 크다. 예컨대 신약 판매 허가를 받게 되면 며칠 사이에도 가격이 두세 배 뛸 수 있고, 신약 개발이 중단되면 가격이 0으로 수렴할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바이오기업들은 고평가된 무형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이를 현금화하기 쉽다. 방법은 두 가지다. 인수합병과 주식 거래다. 인수합병부터 살펴보자. A기업이 실제로는 100만 원짜리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A기업을 인수하는 B 기업이 그것을 1억 원이라 믿으면 1억 원에 팔 수 있다. B 기업은 그 기술을 1억 원 주고 샀으니 1억 원짜리라고 재무제표에 적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 주식 거래도 마찬가지다. B 기업이 사실은 그 기술이 2억 원짜리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고 가정하자. 그 날로 그 기업 주식 가격이 폭등한다. B 기업 주주들은 주식을 팔아 2억 원 이상의 수익을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금융거품이 폭발한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경제가 둔화되는 조짐이 보이고, IT·바이오 등 신기술의 경제적 가치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나스닥 주가지수는 2000년 3월부터 1년간 57% 폭락했다. 이 기간 동안 주식시장에 발생한 손실은 4조 2,000억 달러로, 미국 GDP의 42%에 달한다. 1929년 이래 최대 규모다(쁠리옹, 2006: 70).
다만 삼바 분식회계의 동기와 관련해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삼성은 고평가된 주식을 현금화하기 위해 에피스 가치를 부풀린 것은 아니다. 이재용의 경영승계라는 재벌기업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둘러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 에피스, 삼바, 나아가 통합삼성물산의 가치를 부풀렸던 것이다.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문재인의 혁신성장의 내용이 동일한 역사적 이유
앞선 이야기와 같이 바이오기업이 고평가되고, 주식시장을 통해 고평가된 가치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네 가지 역할을 짚어보자. 첫째, 특허권을 강화해 무형자산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 둘째, 느슨한 회계처리를 용인해주고 관리감독을 약화시킨다. 셋째,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주식시장을 활성화한다. 넷째, 국가가 나서서 신기술의 높은 가치를 긍정해준다. 국가가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 필연적으로 금융 거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데는 경제적·역사적 맥락이 있다. 이런 흐름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은 1970년대 산업이윤율이 저하되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금융세계화와 지적재산권 강화가 그것이다. 금융세계화는 세계 모든 국가의 금융을 자유화시킨 후 금융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금융자산의 가치가 실물자산 가치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윤종희, 2015: 471). 지적재산권은 미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을 특허를 통해 자산화 한다는 뜻이다. 기술 중에서도 산업적 가치가 높고 상업화되기 쉬운 기술이 주목받는데, 대표적인 두 개 분야가 IT와 바이오다.
미국의 이런 수익 창출 모델을 김대중 정부가 지식기반 경제발전 모델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 이 경제발전 모델은 판본은 조금씩 변화했지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가 꾸준히 계승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창조경제였고,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혁신성장이다. IT와 바이오 같이 첨단기술과 무형자산 중심 기업이 집중 육성되며, 이를 위해 규제완화가 단행되고 주식시장이 활성화된다.
다만 차이는 있다. 박근혜는 재벌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해주고, 문재인은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해준다는 사실이다. 삼바 논란은 두 정권의 경제정책의 한계와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례다. 삼바는 재벌기업이지만, 수익 창출 구조는 벤처기업에 가깝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삼바를 위해 보건의료제도와 금융제도를 뜯어고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바가 주력하는 의약품인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의약품 가격 정책이다. 현재 약가를 책정할 때 비용효과성 등을 고려해 제약회사와 약가협상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한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약가협상 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해 주고 있다. 또 삼바는 설립 이후 4년간 적자였지만 이례적으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되었다. 2015년 7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다양한 경영성과를 수용하겠다고 하면서 상장기준을 변경했다. 이렇게 변경된 기준으로 상장된 기업은 삼바 밖에 없다. 삼바는 이런 특혜에 힘입어 시가총액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고평가되었다는 사실이 이번 금감원의 발표로 드러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과 인력을 가진 것은 대부분 재벌기업이다. 중소벤처기업에게 기술과 인력이 없는데, 이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금융투기를 조장하는 행위다. 특히 바이오기업의 경우 가치가 과대평가되지 쉽다. 이 때문에 코스닥 지수는 문재인 집권 이후 크게 상승했으나, 이를 이끄는 건 대부분 가치가 과대평가된 바이오기업들이다. 금감원이 에피스 가치가 고평가되었다고 공식 인정하는 순간, 바이오기업 주가는 떨어지고 코스닥 시장은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세계화에 기초한 혁신성장 정책은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을 이뤄낼수 없다
몇 년 전 테라노스라는 기업 관련 이슈가 미국을 뒤집어놓았다. 이 기업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혈액 몇방울로 26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혈액진단키트를 개발 중이었다. 이 제품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2014년에 90억 달러까지 치솟는다. 그러나 2015년, 사실은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테라노스의 기업기치는 0으로 떨어졌다.
이 에피소드는 금융세계화가 도리어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과학기술 발전의 주체가 되어야할 대학에서는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까지 광범한 상업화가 발생한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는 사장되고 연구능력이 뛰어난 교수들은 스톡옵션을 받아 주식부자가 되려고 대학을 떠난다. 벤처붐과 코스닥시장 활성화는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만 낼뿐 과학기술 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은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 순수 기초과학보다는 금방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주가지수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이번 삼바 논란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이 잠정 결론 내린 에피스 고평가를 공식 인정하는 순간, 혁신성장 정책에 큰 타격이 오기 때문이다. 김대중부터 시작된 금융세계화와 지적재산권 중심의 경제발전 모델은 몇 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계승되어 왔는데, 개혁·진보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이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새로운 위기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참고문헌
쁠리옹 (2006), <신자본주의>, 경남대학교 출판부.
윤종희 (2010), <현대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역사와 지식권의 제도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논문.
윤종희 (2015), <현대의 경계에서>, 생각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