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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7호 | 2018.05.25

[건강보험③] 건강보험 호주머니 터는 의료산업 자본

보건의료팀
건강보험 연재의 지난 글 ‘건강보험 약화 부르는 보수언론의 공포마케팅’에서는 의료비 지출을 전망할 때 보건의료체계의 변화라는 정치적 변수를 무시하고 고령화나 기술적 요인만 반영하는 것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행위임을 밝혔다. 또한 재정 부담에도 국가와 자본의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아봤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의 건강보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떻게 자본의 이해가 관철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특히 병원과 민간의료보험, 제약·의료기기 자본이 건강보험 정책에서 어떻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이해관계

문재인 정부는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며 이른바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의 중점은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이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은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저수가 상황에서 비급여를 급여화하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며 대규모 집회를 열고 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학적 비급여·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등의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비급여 손실분만큼 저수가 영역의 적정수가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급여범위를 초과하는 치료에 대해서는 예비급여로 둔다고 밝혔다. 예비급여는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비급여에 급여(30~40퍼센트)보다 높은 본인부담률(50~90퍼센트)를 적용하면서 일단 급여화하고, 3~5년 후 평가를 통해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민중의 의료비 부담의 가장 큰 원인인 비급여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해법에는 의료부문 자본들의 이해관계가 관철되고 있다. 대형병원, 제약·의료기기 자본, 민간의료보험 자본은 문재인 케어를 내심 반기고 있을 것이다. 한편 의사협회는 반대하고 있지만 실제로 문재인 케어를 넘어서는 더 나은 비급여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의 최대 수혜자, 제약·의료기기 자본

보건복지부는 새롭게 도입되는 신의료기술 행위는 급여 또는 예비급여로 편입해 비급여 발생을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현재 신의료기술이 시행되려면 3가지 절차를 거쳐 2가지 효능을 입증받아야 한다. 먼저 식약처에서 물리·화학적 안전성과 유효성(건강 증진 효과가 있는지)을 검증하고 품목허가를 내준다. 이 과정에서는 임상시험 환경이나 실험실 환경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이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NECA)에서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임상적이라는 말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시행될 경우에 나타날 장·단기적 효과를 평가하고 부작용이 없는지 검증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해 급여와 비급여로 구분한다.

그런데 신의료기술 중에는 안전성과 유효성은 있지만 기존 의료기술에 비교해 효과가 낫지 않으면서 비용만 더 비싼 게 있다. 이런 기술을 비용효과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봇수술이다. 대부분 질환에서 복강경 수술보다 효과는 좋지 않으면서 비용은 훨씬 비싸다. 예비급여는 이러한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신의료기술까지 급여대상으로 편입해주겠다는 것이다. 3~5년 뒤에 평가한다고 하지만 한번 편입된 항목들은 퇴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국민들의 부담은 높아지면서 국가재정으로 제약·의료기기 자본을 지원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가 발표된 후 증권가에서는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와 같은 신의료기술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주식 애널리스트는 2014년 7월부터 2년에 걸친 임플란트 급여 단계별 시행 후 국내 임플란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사실을 지적하며, 예비급여도 비슷한 효과를 가질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 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혁신성장 정책으로 보건의료산업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따라 이미 건강보험정책에도 제약·의료기기 자본의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대형병원과 의사

지난 12월 10일 의사들이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집회를 했다. 이들은 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을 파탄 낼 것이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리고, 의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해관계 단체들과 협의 테이블을 만들어 논의를 시작했고, 비급여 급여화로 인한 손실을 저수가를 조정해 총 규모를 보장해주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대형병원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대한중소병원협회가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가 비급여를 줄이기 위해 선택진료비 대신 ‘의료 질 평가지원금’을 주려고 하는데 그 기준이 대형병원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형병원, 중소병원, 동네 의원으로 이뤄진 의료기관 간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병원은 입원 위주, 의원은 외래 위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지만 각 의료기관은 자기들이 잃은 손해보다 더 큰 보상을 원한다. 이 과정에서 대형병원과 의원 간의 힘의 차이는 확연하다. 건강보험 재정의 상당액이 대형병원으로 다시 쏠리게 될 것인데, 그에 따른 의원의 불만을 덜어주려면 수가도 전반적으로 올려줘야 한다. 결국 국민만 전체 건강보험 재정을 더 부담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문재인 케어의 기획자, 민간의료보험 자본

그렇다면 민간의료보험 자본은 문재인 케어를 어떻게 볼까? 흔히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고 이로 인해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축소될 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민간보험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험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예비급여 정책을 적극 제안한 바 있다. 통념과 달리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공동 작품에 가까운 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가 허용했던 실손의료보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손의료보험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의료비를 많이 지출할수록 손해가 많아진다. 비급여가 너무 줄어 실손보험시장이 축소되지 않으면서도, 손해를 줄이려면 비급여를 표준화하고 총량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민간의료보험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이 바로 예비급여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도 선별급여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의약분업 개혁과 같은 모순을 반복할 것인가

보건의료산업 내 다양한 자본들이 서로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하기 위해 건강보험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각 자본의 요구를 통제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큰 문제가 있다. 전부 다 돈을 달라고만 하는데, 대체 누가 돈을 주느냐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일부 강화될 수 있으나 정작 그 부담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될 수 있다. 더 큰 건강보험료 부담으로.

2000년 의약분업은 의사·약사·정부 간의 타협 과정에서 의료수가와 조제수가의 인상, 상품명 처방, 대체 조제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애초의 안과는 상당히 달라진 타협안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타협안 때문에 의약품 리베이트로 대표되는 음성적 약가 마진 통제와 의약품에 대한 보장성 강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시행 이후 오리지널 약 처방의 증가와 의약품 가격 관리 실패로 인해 약제비가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민중의 의료비 부담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제약자본과 민간의료보험은 더욱 성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같은 결과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보다 담대한 개혁 정책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의사협회와 담합을 하면서 제도를 후퇴시키는 행태를 보면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오히려 건강보험 가입자인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는 빠져 있다. 그나마 가입자의 정책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조차 파행적 운영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건강보험의 건강보험 보장성과 보험료,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 정책 결정 구조와 그 결과물인 정책을 평가해볼 것이다.



(본 글은 월간 <오늘보다>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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