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호 | 2018.10.01
금융세계화의 관점에서 바라본 툴젠의 유전자가위 특허 논란
주식부자 과학자를 양성하는 혁신 없는 거짓성장 정책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특허 논란이 뜨겁다. 지난 9월 7일, 한겨레신문은 세금을 지원받아 만든 3세대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를 민간기업 ‘툴젠’이 가로챘다고 보도했다. 기사내용에 따르면 이를 주도한 인물이 유전자가위 연구자이자, 툴젠의 최대주주인 김진수 前 서울대 화학부 교수라는 것이다.
유전자가위 특허 문제를 둘러싼 문제는 절차적 문제와 구조적 문제가 혼재하여 있다. 절차적 문제는 특허 출원 과정과 서울대에서 툴젠으로의 기술 이전 과정에서 한겨레가 제기한 의혹들이다. 구조적 문제는 과학기술연구에 있어서 국가와 금융의 역할 및 개입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 맥락에서 사건을 조명하겠다.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번 유전자가위 특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혁신성장의 모순과 금융세계화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가져가서 주식시장에서 시세차익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혁신성장이 추구하는 본질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진수 단장과 툴젠의 사례는 모든 벤처기업이 꿈꾸고, 문재인정부가 권장하는 표준모델이다. 뿐만 아니라 1970년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이 추구해온, 금융세계화에 적합한 기업모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특허권을 강화했으며, 주식시장과 금융거래를 자유화하고 세계화했다.
그러나 이런 기업모델은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 없고, 주식시장에 거품만 형성시킨다. 재벌기업이 대부분의 기술을 독점하고 있고, 대학·연구소의 과학기술 수준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이 성공적인 기업모델로 자리잡아도 문제다. 특허는 수많은 이들이 기여해서 탄생한 과학기술에 독점권을 부여해 기술 확산을 막는다. 뿐만 아니라 특허권자에게 마치 지대(地代)와 같은 형태의 수익을 장기간 부여한다. 이 때문에 대학연구가 기초와 응용, 분야 막론하고 급속도로 상업화된다.
유전자가위 기술과 김진수 단장, 그리고 툴젠
유전자가위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 즉 DNA를 정확하게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정 부위를 자르거나, 삭제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할 수도 있다. 이 기술은 크게 세 가지 용도로 쓰인다. 첫째, 연구 용도다. 생물학 또는 의학 실험실에서 DNA를 정밀하게 조작하는 데 쓴다. 둘째, 질병 치료 목적으로 쓴다. 조작된 유전자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체에 주입할 수 있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배아줄기세포의 DNA를 조작하여 질병 유전자를 삭제하는 데 쓸 수도 있다. 물론 상용화 된 기술은 없고, 대부분 연구 단계다. 셋째, 식물이나 동물 유전자를 편집하여 유전자조작식품(GMO)를 만드는 데 쓴다.
2012년 개발된 3세대 유전자가위는 현재 3개 연구팀이 독자 개발을 주장하며 특허권 분쟁이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김진수 前 교수팀이다. UC버클리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팀과 MIT 장펑 교수가 이끄는 브로드연구소가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의 특허권을 놓고 분쟁 중이다.
김진수 박사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1년 개설된 국가연구기관이다. 김진수 단장은 1999년 유전자가위 기술 관련 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툴젠을 창업하고 2005년까지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는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툴젠의 이사를 겸임하였다.
2018년 8월에 한국투자증권이 작성한 기업현황보고서를 바탕으로 툴젠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툴젠은 코넥스 시장에 상장된 생명공학 벤처기업이다. 재무제표를 확인할 수 있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해 왔으며, 회사 운영비 및 연구개발비는 대부분 주식 발행을 통해 얻고 있다. 툴젠은 정부 기관 및 국내 연구기관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수요가 매출액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 연구계약 12개 중 9개가 정부 및 정부기관 예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툴젠의 주가는 2015년 초까지만 해도 만 원도 안 되었지만, 점차 상승하여 2017년 말 5만 원대까지 도달하였다. 2018년 초 주가가 급등하여 17만 원대까지 상승했다. 신규 계약, 유상 증자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문재인정부의 혁신성장 정책기조가 주가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허 가로채기 논란
유전자가위를 둘러싼 절차적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한다. 한겨레의 핵심 문제 제기는 다음과 같다. 2012년, 김진수 단장이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툴젠에 유전자가위 특허권이 돌아가도록 직무발명 신고를 거짓으로 했다는 것이다. 또 특허 출원을 할 때도 서울대에 보고부터 하지 않고 바로 툴젠 명의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학교는 1852만 원이라는 ‘헐값’에 유전자가위 특허를 툴젠에 넘겼다.
여기에 대해 서울대학교는 감사는 하겠지만 절차상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헐값’ 논란에 대해서는 기술이전 당시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한다. 툴젠 측도 역시 절차상 하자는 없었다고 반박한다. 또 김진수 단장이 2011년에 툴젠 주식 10만 주를 서울대학교에 기부했기 때문에 ‘헐값’이나 ‘가로채기’ 의혹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절차적 문제에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경찰 조사 결과나 서울대학교 감사 결과가 나와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식부자 과학자와 혁신 없는 거짓성장
설령 절차적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김진수 단장이 툴젠이라는 벤처기업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다. 주주에게는 주식 가격을 높이고 싶은 경제적 동기가 있다. 툴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툴젠은 현재 국가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에서 모든 형태의 기술을 이전해주었다. 또 툴젠은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각종 연구과제를 수주했다. 그 중에는 김진수 단장이 소속된 기초과학연구원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또 보건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 연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이 규제 완화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분야는 툴젠이 연구하고 있는 유전자가위와 줄기세포다.
국가의 지원은 툴젠의 주가 상승에 큰 기여를 했다. 규제가 완화될 때마다,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마다 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툴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바로 혁신성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의 핵심경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과학자나 기술자를 주식부자로 만들어준다. 그러면 주식부자가 되기 위해 창업하는 연구자가 늘어난다. 그 중에서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할 대박 벤처기업이 탄생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에는 이렇다 할 과학기술이 없다. R&D 투자 대비 기술수출액 비중은 OECD 중 28위이며, 연구원 1인당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논문 수 및 인용도는 33위다. 벤처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경제연구소에 의하면 한국 벤처기업 중 ‘세계 유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2012년 11.1%에서 2016년 0.7%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쏟아지면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사람도 주식부자가 되기 위해 벤처창업에 뛰어든다. 정부가 주가를 올려주면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만 챙기고 발을 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성장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아이카이스트’의 김성진 대표는 얼마 전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투자금 수백억 원을 가로챈 혐의다. 또 지난 8월에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한다면서 과대·허위 광고를 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네이처셀 라정찬 대표가 구속되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혁신성장 정책은 주식시장에 거품만 형성시킨다. 더불어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무리한 규제완화도 진행된다. 상승하는 주가지수는 단기간에는 경제 성장처럼 보이지만, 혁신 없는 거짓성장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어두고 가자. 툴젠의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벤처기업과는 다르게 실제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하는데 주식 거품과 규제완화만 가져오는 혁신성장 정책이라는 방법이 해답인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지식기반 경제’와 특허 장사
혁신성장 모델은 김대중 정부의 ‘지식기반 경제’ 모델을 계승한 것으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모두 공통적으로 추구한 경제정책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창조경제가 혁신성장과 동일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IT와 바이오 같이 첨단기술과 무형자산 중심 기업이 집중 육성되며, 이를 위해 규제완화가 단행되고 주식시장이 활성화된다. 지난 20년 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이 경제 모델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영향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미국, 유럽 등 중심부 국가의 산업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채택했던 경제발전 모델이 ‘3차 산업혁명’에 기초한 ‘지식기반 경제’였다. 구체적으로는 대학, 연구소가 직접 기업과 주식시장을 매개로 연구개발비를 조달하도록 했다. 이윤율 하락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이 악화되자, 대학과 연구소에 지원했던 천문학적인 금액의 연구개발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대신 베이-돌법 제정 등을 통해 정부지원을 통해 개발한 기술 특허를 대학이나 기업들이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78년 상원의원 베이와 돌은 연방정부 재원으로 개발된 기술에 대해 대학과 기업들이 특허를 획득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을 입법한다. 경제가 침체되고 연구 재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 법안은 큰 저항 없이 1980년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는 대학이 기술을 상업화하려 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방정부가 직접 또는 다른 기업을 통해 강제적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법 초안에는 특허로 발생하는 라이센스 소득 중 일부를 연방정부에 반환하는 조항이 있었으나, 통과 당시에는 삭제되었다.
대학과 기업은 이 법안을 계기로 특허를 무형자산화 해서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벌어들였다.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엄청난 금액을 과학기술 개발에 투자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미국 대학과 연구소의 과학기술은 독보적인 세계 1위다. 따라서 ‘지식기반 경제’가 일정 수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의 특성상 거품 형성은 필연적이다. 생명공학 기업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연평균 20개의 생명공학 기업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1980년 베이-돌법 제정 후에는 1980년에는 60개, 1981년에는 96개로 급증한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규모의 거품이 발생했다. 거품은 2000년 초 폭발했다. 이 기간 동안 주식시장에 발생한 손실은 4조 2000억 달러로, 미국 GDP의 42%에 달한다. 1929년 이래 최대 규모다.
남는 건 대학의 상업화와 규제완화 정책
혁신성장 정책에서 연구자에게 벤처창업을 유도하는 가장 큰 혜택은 주식거래를 통한 시세차익 확보다. 여기서 연구자에게 이익갈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익갈등이란 ‘연구 타당성, 환자 건강 등 일차적 이익에 관한 전문가적 판단이 경제적 소득 같은 부차적 이익에 의해 부당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나 조건’을 뜻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김진수 단장은 툴젠에만 유리하게 연구개발을 진행할 경제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이 툴젠 매출을 올려주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는 한겨레 보도는 경제적 동기만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의심이다. 물론 정확한 시시비비는 추후 서울대 감사와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야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가 연구자의 양심을 압도할 경우 공정한 연구개발보다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지식기반 경제’는 대학의 상업화를 가져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공학 분야다. 미국의 경우, 1993년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기금을 받은 상위 50개 연구대학에서 생명공학 분야 교수 2167명 중 43%가 3년 동안 연구비와 별도로 선물을 받았다. 이런 기업과 대학교수의 경제적 관계 맺기는 과학의 중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기업 후원을 받은 연구가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제출할 가능성은 후원 받지 않은 기업에 비해 네 배 이상 높다는 연구가 있다.
결국 대학은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상업화하기 쉬운 지식과 기술만 생산한다.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상당 부분 정부 지원을 통해 조달된다. 공적자금으로 생산한 지식과 기술은 특허를 통해 법인자본이 독점한다. 심지어 특허를 이용한 상품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공적 자금이나 연기금, 또는 개인투자자 자금으로 조달한다. 이는 상품개발비 중 상당 부분을 노동자의 임금 저축분에서 조달한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기업은 혁신적 상품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다. 그 손실 역시 국가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기술과 지식, 상품 이용에 대한 권리는 모두 법인자본이 가져간다. 이는 법인기업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는 토대가 되며 이윤과 지대(地代)를 축적하는 수단이 된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기술과 파생되는 혜택으로부터 배제된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에는 변변한 과학기술이 없기 때문에 한 명의 슈퍼스타 과학자가 출현하면 해당 연구에 필요한 모든 규제를 완화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열풍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유전자가위도 마찬가지다.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 규제 완화는 환자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로지 경제적인 목적에서 시행된다.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가위 특허 장벽을 낮춰서 보다 많은 연구진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게 더 낫다.
진정한 기술혁신을 원한다면 대학의 상업화, 주식 거품, 규제완화를 낳는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특허권을 상대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유전자가위 특허 문제를 둘러싼 문제는 절차적 문제와 구조적 문제가 혼재하여 있다. 절차적 문제는 특허 출원 과정과 서울대에서 툴젠으로의 기술 이전 과정에서 한겨레가 제기한 의혹들이다. 구조적 문제는 과학기술연구에 있어서 국가와 금융의 역할 및 개입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 맥락에서 사건을 조명하겠다.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번 유전자가위 특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혁신성장의 모순과 금융세계화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가져가서 주식시장에서 시세차익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혁신성장이 추구하는 본질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진수 단장과 툴젠의 사례는 모든 벤처기업이 꿈꾸고, 문재인정부가 권장하는 표준모델이다. 뿐만 아니라 1970년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이 추구해온, 금융세계화에 적합한 기업모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특허권을 강화했으며, 주식시장과 금융거래를 자유화하고 세계화했다.
그러나 이런 기업모델은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 없고, 주식시장에 거품만 형성시킨다. 재벌기업이 대부분의 기술을 독점하고 있고, 대학·연구소의 과학기술 수준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이 성공적인 기업모델로 자리잡아도 문제다. 특허는 수많은 이들이 기여해서 탄생한 과학기술에 독점권을 부여해 기술 확산을 막는다. 뿐만 아니라 특허권자에게 마치 지대(地代)와 같은 형태의 수익을 장기간 부여한다. 이 때문에 대학연구가 기초와 응용, 분야 막론하고 급속도로 상업화된다.
유전자가위 기술과 김진수 단장, 그리고 툴젠
유전자가위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 즉 DNA를 정확하게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정 부위를 자르거나, 삭제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할 수도 있다. 이 기술은 크게 세 가지 용도로 쓰인다. 첫째, 연구 용도다. 생물학 또는 의학 실험실에서 DNA를 정밀하게 조작하는 데 쓴다. 둘째, 질병 치료 목적으로 쓴다. 조작된 유전자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체에 주입할 수 있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배아줄기세포의 DNA를 조작하여 질병 유전자를 삭제하는 데 쓸 수도 있다. 물론 상용화 된 기술은 없고, 대부분 연구 단계다. 셋째, 식물이나 동물 유전자를 편집하여 유전자조작식품(GMO)를 만드는 데 쓴다.
2012년 개발된 3세대 유전자가위는 현재 3개 연구팀이 독자 개발을 주장하며 특허권 분쟁이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김진수 前 교수팀이다. UC버클리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팀과 MIT 장펑 교수가 이끄는 브로드연구소가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의 특허권을 놓고 분쟁 중이다.
김진수 박사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1년 개설된 국가연구기관이다. 김진수 단장은 1999년 유전자가위 기술 관련 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툴젠을 창업하고 2005년까지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는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툴젠의 이사를 겸임하였다.
2018년 8월에 한국투자증권이 작성한 기업현황보고서를 바탕으로 툴젠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툴젠은 코넥스 시장에 상장된 생명공학 벤처기업이다. 재무제표를 확인할 수 있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해 왔으며, 회사 운영비 및 연구개발비는 대부분 주식 발행을 통해 얻고 있다. 툴젠은 정부 기관 및 국내 연구기관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수요가 매출액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 연구계약 12개 중 9개가 정부 및 정부기관 예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툴젠의 주가는 2015년 초까지만 해도 만 원도 안 되었지만, 점차 상승하여 2017년 말 5만 원대까지 도달하였다. 2018년 초 주가가 급등하여 17만 원대까지 상승했다. 신규 계약, 유상 증자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문재인정부의 혁신성장 정책기조가 주가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허 가로채기 논란
유전자가위를 둘러싼 절차적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한다. 한겨레의 핵심 문제 제기는 다음과 같다. 2012년, 김진수 단장이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툴젠에 유전자가위 특허권이 돌아가도록 직무발명 신고를 거짓으로 했다는 것이다. 또 특허 출원을 할 때도 서울대에 보고부터 하지 않고 바로 툴젠 명의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학교는 1852만 원이라는 ‘헐값’에 유전자가위 특허를 툴젠에 넘겼다.
여기에 대해 서울대학교는 감사는 하겠지만 절차상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헐값’ 논란에 대해서는 기술이전 당시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한다. 툴젠 측도 역시 절차상 하자는 없었다고 반박한다. 또 김진수 단장이 2011년에 툴젠 주식 10만 주를 서울대학교에 기부했기 때문에 ‘헐값’이나 ‘가로채기’ 의혹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절차적 문제에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경찰 조사 결과나 서울대학교 감사 결과가 나와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식부자 과학자와 혁신 없는 거짓성장
설령 절차적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김진수 단장이 툴젠이라는 벤처기업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다. 주주에게는 주식 가격을 높이고 싶은 경제적 동기가 있다. 툴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툴젠은 현재 국가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에서 모든 형태의 기술을 이전해주었다. 또 툴젠은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각종 연구과제를 수주했다. 그 중에는 김진수 단장이 소속된 기초과학연구원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또 보건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 연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이 규제 완화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분야는 툴젠이 연구하고 있는 유전자가위와 줄기세포다.
국가의 지원은 툴젠의 주가 상승에 큰 기여를 했다. 규제가 완화될 때마다,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마다 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툴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바로 혁신성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의 핵심경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과학자나 기술자를 주식부자로 만들어준다. 그러면 주식부자가 되기 위해 창업하는 연구자가 늘어난다. 그 중에서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할 대박 벤처기업이 탄생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에는 이렇다 할 과학기술이 없다. R&D 투자 대비 기술수출액 비중은 OECD 중 28위이며, 연구원 1인당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논문 수 및 인용도는 33위다. 벤처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경제연구소에 의하면 한국 벤처기업 중 ‘세계 유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2012년 11.1%에서 2016년 0.7%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쏟아지면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사람도 주식부자가 되기 위해 벤처창업에 뛰어든다. 정부가 주가를 올려주면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만 챙기고 발을 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성장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아이카이스트’의 김성진 대표는 얼마 전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투자금 수백억 원을 가로챈 혐의다. 또 지난 8월에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한다면서 과대·허위 광고를 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네이처셀 라정찬 대표가 구속되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혁신성장 정책은 주식시장에 거품만 형성시킨다. 더불어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무리한 규제완화도 진행된다. 상승하는 주가지수는 단기간에는 경제 성장처럼 보이지만, 혁신 없는 거짓성장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어두고 가자. 툴젠의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벤처기업과는 다르게 실제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하는데 주식 거품과 규제완화만 가져오는 혁신성장 정책이라는 방법이 해답인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지식기반 경제’와 특허 장사
혁신성장 모델은 김대중 정부의 ‘지식기반 경제’ 모델을 계승한 것으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모두 공통적으로 추구한 경제정책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창조경제가 혁신성장과 동일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IT와 바이오 같이 첨단기술과 무형자산 중심 기업이 집중 육성되며, 이를 위해 규제완화가 단행되고 주식시장이 활성화된다. 지난 20년 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이 경제 모델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영향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미국, 유럽 등 중심부 국가의 산업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채택했던 경제발전 모델이 ‘3차 산업혁명’에 기초한 ‘지식기반 경제’였다. 구체적으로는 대학, 연구소가 직접 기업과 주식시장을 매개로 연구개발비를 조달하도록 했다. 이윤율 하락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이 악화되자, 대학과 연구소에 지원했던 천문학적인 금액의 연구개발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대신 베이-돌법 제정 등을 통해 정부지원을 통해 개발한 기술 특허를 대학이나 기업들이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78년 상원의원 베이와 돌은 연방정부 재원으로 개발된 기술에 대해 대학과 기업들이 특허를 획득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을 입법한다. 경제가 침체되고 연구 재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 법안은 큰 저항 없이 1980년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는 대학이 기술을 상업화하려 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방정부가 직접 또는 다른 기업을 통해 강제적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법 초안에는 특허로 발생하는 라이센스 소득 중 일부를 연방정부에 반환하는 조항이 있었으나, 통과 당시에는 삭제되었다.
대학과 기업은 이 법안을 계기로 특허를 무형자산화 해서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벌어들였다.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엄청난 금액을 과학기술 개발에 투자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미국 대학과 연구소의 과학기술은 독보적인 세계 1위다. 따라서 ‘지식기반 경제’가 일정 수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의 특성상 거품 형성은 필연적이다. 생명공학 기업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연평균 20개의 생명공학 기업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1980년 베이-돌법 제정 후에는 1980년에는 60개, 1981년에는 96개로 급증한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규모의 거품이 발생했다. 거품은 2000년 초 폭발했다. 이 기간 동안 주식시장에 발생한 손실은 4조 2000억 달러로, 미국 GDP의 42%에 달한다. 1929년 이래 최대 규모다.
남는 건 대학의 상업화와 규제완화 정책
혁신성장 정책에서 연구자에게 벤처창업을 유도하는 가장 큰 혜택은 주식거래를 통한 시세차익 확보다. 여기서 연구자에게 이익갈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익갈등이란 ‘연구 타당성, 환자 건강 등 일차적 이익에 관한 전문가적 판단이 경제적 소득 같은 부차적 이익에 의해 부당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나 조건’을 뜻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김진수 단장은 툴젠에만 유리하게 연구개발을 진행할 경제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이 툴젠 매출을 올려주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는 한겨레 보도는 경제적 동기만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의심이다. 물론 정확한 시시비비는 추후 서울대 감사와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야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가 연구자의 양심을 압도할 경우 공정한 연구개발보다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지식기반 경제’는 대학의 상업화를 가져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공학 분야다. 미국의 경우, 1993년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기금을 받은 상위 50개 연구대학에서 생명공학 분야 교수 2167명 중 43%가 3년 동안 연구비와 별도로 선물을 받았다. 이런 기업과 대학교수의 경제적 관계 맺기는 과학의 중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기업 후원을 받은 연구가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제출할 가능성은 후원 받지 않은 기업에 비해 네 배 이상 높다는 연구가 있다.
결국 대학은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상업화하기 쉬운 지식과 기술만 생산한다.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상당 부분 정부 지원을 통해 조달된다. 공적자금으로 생산한 지식과 기술은 특허를 통해 법인자본이 독점한다. 심지어 특허를 이용한 상품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공적 자금이나 연기금, 또는 개인투자자 자금으로 조달한다. 이는 상품개발비 중 상당 부분을 노동자의 임금 저축분에서 조달한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기업은 혁신적 상품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다. 그 손실 역시 국가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기술과 지식, 상품 이용에 대한 권리는 모두 법인자본이 가져간다. 이는 법인기업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는 토대가 되며 이윤과 지대(地代)를 축적하는 수단이 된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기술과 파생되는 혜택으로부터 배제된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에는 변변한 과학기술이 없기 때문에 한 명의 슈퍼스타 과학자가 출현하면 해당 연구에 필요한 모든 규제를 완화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열풍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유전자가위도 마찬가지다.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 규제 완화는 환자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로지 경제적인 목적에서 시행된다.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가위 특허 장벽을 낮춰서 보다 많은 연구진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게 더 낫다.
진정한 기술혁신을 원한다면 대학의 상업화, 주식 거품, 규제완화를 낳는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특허권을 상대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참고문헌
쁠리옹 (2006), <신자본주의>, 경남대학교 출판부.
윤종희 (2010), <현대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역사와 지식권의 제도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