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0년 민주노총은 무엇을 해야 하나

2020년 노동자운동 전망

박준형 |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

2019년, “노동존중” 정책의 소진

 

2019년을 지나면서 “노동존중” 정책에 대한 노동운동의 기대는 모두 소진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상반기부터 탄력근로제 개악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노조법 개악을 추진했다. 내년 최저임금은 2.9%(240원)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되었고, 정부는 “취임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최근 도로 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이르러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은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단속 유예를 반복하며 무력화되고 있다. 그나마 의미 있는 법 개정은 고 김용균 사망을 계기로 한 산재법 개정과 직장 갑질 근절법('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근로기준법 개정)이었는데, 노조를 중심으로 한 집단법이라기보다는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한 개별법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민주노총은 2018년 하반기 정책대의원대회 논쟁에 이어 최종적으로 2019년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경사노위 불참을 결정했다. 민주노총이 빠진 채 진행된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노조법 개악안을 권고하면서 반발을 불렀고,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는 탄력근로제 개악 합의에 반대한 계층별 대표 3명을 배제하며 사실상 무너졌다. 경사노위 노동계 대표는 기존 계층별 대표와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한국노총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한국노총은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단속 유예 등에 반대하면서도 탄력근로제는 합의하는 등 민주노총과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지난해 "고용 쇼크" 논란에 이어 실업률 논란도 계속되었다. 취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늘어난 일자리 상당수가 60대 이상 고령층 일자리였다. 반면 30~40대, 특히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 2년간 감소했다. 올 하반기 고용지표의 일부 개선은 경기회복으로 인한 실제 고용개선이 아니라 정부의 고령자 일자리 공급 정책의 효과인 것으로 진단된다. 실제로는 지속적인 제조업 불황에 더해 생산가능 인구도 감소세로 나아가면서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제조업 고용위기 속에서 구조조정과 지역 갈등이 부각되었다. 조선업에서는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행된 가운데 최종적으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금속노조는 반대 투쟁에 나섰다. 광주, 군산 등지에서는 자동차 산업 유치를 위한 '지역상생일자리' 사업이 추진되었지만, 현대차지부를 중심으로 금속노조와 울산지역의 반발이 거셌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지역에서는 반대 입장에 대해 충분한 동의가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많은 쟁점을 낳았다. 지난해 말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고를 계기로 한 투쟁이 연말·연초를 거치며 진행되었고, 최근에는 불법 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모회사로 전환을 거부하고 있는 도로 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공동파업위원회’를 구성하여 7월 초 공동파업에 나섰다. 교육 공무직(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력이기는 했으나, 정규직 전환이 기관별 합의로 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반기 국립대 병원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같은 조건이 확인되고 있는데,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등 일부 사업장의 합의가 타 공공기관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기관별로 개별화된 교섭-투쟁-합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여러 기관 내부에서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청년 세대의 반발이 반복되고 있다.

 

경기침체·고용악화 및 노동정책의 전반적인 후퇴 속에서도 노동조합 조직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2017년 이후 약 30만 명 늘어 2019년 4월 기준 101만 4천 명을 넘어섰다. 전교조 및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노동자 조합원 인정 문제가 남아있지만, 2020년 이후에는 민주노총이 제1 노총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늘어난 조합원 상당수는 공공부문 노동자다. 민주노총 발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증가한 조합원 중 37.9%가 공공부문 노동자였다. 조직된 공공부문 조합원의 세 명 중 두 명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조직된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기존 정규직 조합원도 상당히 증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 내 공공부문 조합원의 비중은 더 높아졌다. 그런데 노동조합 조직률 증가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먼저, 조직률 증가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기침체·고용악화 및 노동정책 후퇴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공공부문에서 대거 조직된 점은 역설적으로 민주노총의 거시적, 계급적 대표성에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13%를 차지하지만, 민주노총 조합원 중 공공부문 노동자는 40%에 이른다.

 

정리하면, 2019년에 이르러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초기 구상이 완전히 무너졌으며, 노동정책이 노동운동의 기대와 어긋나면서 노정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노동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전략였던 사회적 협의 시도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흐름은 2020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노동정책 ‘후퇴’는 단순히 정권의 변심 탓이 아닌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현실 경제의 냉정한 법칙을 주관적 선의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불황이라는 객관적 조건조차 부정하면서 말이다. 물론 정책을 실현해보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부는 여론 움직임만 주목하면서 좌충우돌을 반복했다. 과학을 무시하고, 여론만 살피면서, 대중에게 기대를 주고 실패의 책임은 남탓으로 돌리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특징이다.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은 그 전형을 보여준다. 2020년에도 이런 정부의 특징이 변화될 조짐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노동시장 상황, 노동조합운동의 취약한 대안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파산은 노동운동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정책을 제대로 실현했다면 문제가 없었을까?

 

2019년을 지나면서 분명해진 한국 경제의 조건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민경제는 장기 저성장에 진입했고,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노동자 간 격차도 확대되었다. 여기에 더해 집권 세력의 무능과 결합한 국제적·지정학적 불안도 중요한 변수다. 문재인 노동정책에는 이런 객관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노동운동의 요구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지난 10월 촛불 3년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게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하라고 주문했다. 필자는 2020년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큰 위기는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파산이라는 조건보다 노동운동 스스로 객관적 정세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나아가서 무관심하다는 점에 있다고 판단한다.

 

최근 발표된 「2019년 하반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은 2020년 실업률을 올해(3.8%)보다 0.3%포인트 낮은 3.5%로 전망하고 있다. 여러 연구소는 2020년 경제성장률 역시 올해보다는 조금 나은 수준일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계속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전망이 조금이나마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정부가 일자리 공급을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2020년 예산에서도 공공일자리 예산이 상당히 증가했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하는 월별 고용 동향에서 고용률·실업률·취업자수 등 지표 대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정작 제조업은 지난 9월까지 18개월 연속으로 취업자 수가 줄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연령별 통계에서도 60대 이상 고령층 근로자와 18시간 미만 단기근로자 중심으로 고용이 확대되었지만, 40대에서는 고용률이 오히려 감소했다. 한마디로 노동시장의 펀더멘탈은 약화되는데 단기적 경기대응의 결과로만 고용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한계를 숨기고 고용지표 총량만 선전하고 있다. 보수언론에서 말하는 고용지표 ‘분식’(粉飾)이 완전 틀린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경기침체 시기에 정부가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이 때문에 진보성향의 경제전문가들은 더욱 공세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지지한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침체가 순환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라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도 한국 경제가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인구감소와 연구·개발 투자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일자리 공급 사업은 노인 등 취약계층과 고용위기 지역의 실업 대책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노동인구의 핵심을 차지하는 30~40대나 제조업 부문의 대책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2020년 경제성장률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 악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수출 제조업의 부진은 내수로 이어져 서비스 부문의 고용 부진으로도 파급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노동운동이 이러한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장기 관점의 변화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사실 주류 경제학은 구조적 위기 자체를 생각하지 못한다. 경제가 균형을 이루면 지속적인 성장이 달성된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이다. 하지만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선진국 경제가 균형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볼 수 있듯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는 근본부터 흔들렸다. 이윤을 위해 조직되는 경제와 그 경제의 법칙들을 변혁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끝낼 수 있다. 노동운동은 현안 해결을 넘어 긴 호홉의 대안들을 고민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변혁에는 미달하지만 위기의 고통을 경감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힘을 키울 수 있는 현실적 구조개혁 방안들이다. 노동조합이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개혁은 보통 산업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이다.

 

산업 정책적으로는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계 상황에 처한 부문을 축소하고 성장 가능한 부문에 투자를 확대하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이 과정에서 고용 조정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올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노동운동이 격렬히 반대한 것이나, 지역상생일자리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이런 맥락에서 되짚어 볼 수 있다. 정부·자본이 산업 구조조정 비용을 정리해고·비정규직 남용 등으로 노동자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도덕적으로도 정당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모두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경실련과 공조한 민주노총의 ‘재벌개혁(해체)’ 투쟁은 산업정책에 대한 고려 없이 대규모 기업집단을 해체하는 데 집중한다. 재벌들이 주도하는 주력 제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안을 함께 갖지 못하면 노동자에게 구조조정 부담을 전가하는 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저지조차 힘들 것이다.

 

노동시장 정책 또한 쟁점이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시간을 늘리고 고용을 유연화하려 하므로 노자 간 쟁점이 첨예하게 형성된다.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임금수준이 높은 재벌·공공부문의 정규직과 연공급을 통해 높은 임금을 보장받는 중장년층 노동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게 된다. 노동조합의 주력이 이들 사업장·세대라는 점에서 양대 노총과 산별노조는 임금극대화 전략을 별다른 대안 없이 수용한다. 국민경제가 장기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임금 격차라는 현실적 문제를 노동조합 스스로 해결해야 함을 간과하게 된다.

 

노동시장 정책을 보완하는 사회복지 정책은 기초생활보장 분야 예산 증액 등을 중심으로 확충되고 있다. 그러나 자연증가 예산이 상당하며,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공공 중심으로 개편하는 개혁은 미진하다. 그나마 재정지출 확대로 공공부문·사회복지부문 일자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은 이를 지지한다. 민주노총은 주로 참여연대와 함께 사회복지 정책을 마련하는데, 이들 논의에서는 국가책임(재정확대)을 강조하지만, 재정확대의 기반인 세입, 그리고 그 토대인 국민경제와 인구변화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에서 벌어진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둘러싼 논쟁에서 양대 노총은 현실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현세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즉, 현세대의 소득대체율을 충족할 만큼만 보험료율을 높이는 입장을 제시한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 논쟁에서는 사실상 현세대의 부담을 후세대에 넘기는 것을 의미하는, 보험료율 인상 전면 반대 주장도 상당히 제기되었다.

 

한편, 경기침체기에 저생산성 부문인 자영업의 하방 분해도 가속화된다. 실업자와 퇴직자들이 자영업에 지속해서 진입하지만, 도·소매, 숙박·음식업 등 저생산성 부문의 서비스 자영업에서 폐업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실업자가 되거나 다른 불안정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을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면서 이해 대변이 누구보다도 취약한 실정이다.

 

2020년 노정·노사관계 전망

 

2020년의 중요한 정세적 계기는 정치 일정과 맞물려 있다. 우선 4월 총선이 있다. 총선 전 마지막 정기국회인 올해 하반기에는 개혁 법안이든 개악 법안이든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 정당들은 대중적 선호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정책은 총선 공약용으로, 부정적 여론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정책은 총선 이후 공론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정책은 정부·여당에 총선 전에는 피하고 싶은 이슈다. 대부분 실패한 것은 물론 민주노총의 양보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 이후에는 올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던 여러 법안이 다시 추진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반대하는 노동법 개악 법안이 다수이겠지만, 정부·여당은 현재 국회에 정부·여당 입법안으로 이미 상정한 탄력근로제·노조법·ILO 협약 비준 등을 묶어 정기국회에서 일괄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있을 최저임금 논의에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동자들보다 열악한) 중소·영세자영업자들의 여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미 “최저임금 1만 원” 요구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나 국민경제 전체의 중장기 발전방향을 고려하지 않고 당위적으로 임금인상 주장을 항상 우위에 두었던 민주노총의 경향을 고려하면, 실제로 집행부가 기조를 변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경제와 노동시장 전체 상황을 고려한다면 노동운동도 “최저임금 극대화”가 최선이라고 전제한 후 인상률만 논쟁하기보다는 중소·영세사업장,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하는 영세자영업자의 조건과 고용유지 가능성을 고려한 대안(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보다는 미지급 사업주 단속 및 사회안전망 확충 등의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저임금노동자, 중소·영세자영업자의 상황과 국민경제 전체를 포함하는 총연맹의 분석이 필요하다.

 

2019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위원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년 총선이 끝나고 나면,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에 대한 평가가 이어질 것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김명환 집행부의 대응이 적절했는가, 경제 위기가 가시화되는 시기에 ILO 핵심협약 비준, 구조조정 저지 투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에서 노동운동 대응 방향은 적절했는가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총선 이후에는 지역상생일자리 쟁점이 여러 지역에서 다시 주목받을 것이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예비하는 쟁점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각 지역에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역대 정부들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나 부동산 정책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려 했으나 한계가 분명했다. 노동기본권 제약을 통한 “바닥을 향한 경쟁”을 막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각 지역의 고용 문제, 이와 연계된 산업정책·지역노사관계 정책에 대한 대안이 동시에 제출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미 실패한 사회적 대화를 재편하려 할 것이다. 재구성된 2기 경사노위를 형식적으로 유지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는커녕 의미 있는 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양극화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총선 이후 사회적 대화를 둘러싸고 다시 시험대에 들 것이다. 경사노위 참여여부를 떠나 사회적 대화에서 의제로 제기되는 사항을 포함하여 민주노총은 총노동의 쟁점에 대해서 일관된 입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임기 막바지의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러한 쟁점에 대한 대응 전략 논의를 주도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거쳐 차기 집행부의 과제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임금정책을 둘러싼 쟁점: 연대 임금은 가능한가

 

2020년에는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임금체계가 노동시장 정책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은 2016년 공공기관 노조의 공동파업과 뒤이은 정권의 붕괴로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성과연봉제 지침을 폐기하는 한편, 공공기관(정규직)에는 직무급을 도입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5개 산별 연맹)’의 반발로 주춤하고 있지만, 다시금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경사노위 산하의 ‘공공기관위원회’ 구성과 함께 임금체계를 의제로 채택하기로 했고, 올해 말까지 임금체계 쟁점을 포함한 합의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에 대해서도 6급 이하에 대해 직무급 성격의 임금체계를 도입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직무급제 추진은 정규직 이전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에 대해서 우선 추진되어 왔다. 정부는 2018년에 이미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자 중 청소·경비·조리 종사원 등 주요 5개 직종에 대한 ‘표준임금체계’ 도입을 시도한 바 있다. 이 역시 정부가 최근 고용노동부 장관 소속으로 구성하기로 한 ‘공공부문 공무직위원회’에서 다룰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에서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면 민간에도 확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시도가 본격화될 것이다.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대신 노정 협의를 통해 추진하려는 것은 지난 정부의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 실패의 교훈때문이기도 하며, 임금체계 변경은 노사(정) 합의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임금체계의 변화를 반대하고 연공성이 상당히 높은 기존의 연공급 유지만을 주장할 것인지, 자신의 대안을 가지고 개편 시도에 대응할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가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는 것은 공공부문·대기업에서 주류적인 기존의 연공급 체계가 지속적인 임금인상을 불러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인건비 부담을 준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직무급제 관행을 형성한 후 민간에도 확산하려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주류적 입장은 기존 연공급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임금 불안정성을 높이므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은 공공부문에서 먼저 추진되고 있지만, 민간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부문 대기업이 직접적 대상이 되기 때문에 총연맹 차원의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노총이나 공공부문 노조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 주장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자를 기존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체계에 편입하자는 주장이어서 실현 가능성 측면이나 대중적 정당성 측면에서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과 직무가 다른 전환자들에 대한 임금체계가 문제가 되는데, 전환 과정에서 기관 내 임금 격차, 기관 간 임금 격차, 민간과의 임금 격차라는 세 가지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관 간 임금 격차 축소에는 공공부문 산별(노정)교섭, 민간과의 임금 격차에는 총연맹 차원의 교섭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노조는 대부분 기관 내 임금 격차만 문제를 제기할 따름이다. 초기업-산업별 임금이라는 운동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제 상황에서는 기업(기관)별 임금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규직과 임금격차 축소는 당연히 이루어져야하지만 공공부문에서 기업별로 이를 추구할 경우 한계가 분명하다. 예를 들어 같은 청소노동자가 고임금 기관에서는 높은 임금을 받고 저임금 공공기관에서는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바로 옆에 있는 민간의 상가 건물에서는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공정’하며 대중적 정당성이 있는지 노동운동이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최근 공공부문 청년 정규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제기된 ‘공정성’ 담론도 연장선에 있다. 2017~2018년 인천국제공항, 서울지하철, 철도공사에 이어 2019년에는 건강보험공단 등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일부 직원들은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무임승차’ 정규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비난은 허구적이다. 정규직 전환되는 직종의 노동자들이 기존 정규직 직제에 직접 편입되는 것도 아니며, 모회사로 전환된다고 해도 기존 직원들의 경제적 이해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은 ‘공정성’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공공기관의 높은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으로 인해 많은 청년 실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통한 고용 형태 전환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를 약화하는 방향, 즉 대기업·공공부문과 민간 부문, 중소·영세비정규직 부문의 격차를 축소하는 것이 해법일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정규직의 ‘특권’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다만 이는 내부 동의를 조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당장은 기존의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내부 토론과 소통, 설득과 교육을 통해 노조의 평등주의적 이념을 확인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별 임금 극대화를 추구해온 노동운동의 지향에 대한 자기반성도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운동은 고용안정이 확보된 정규직에게만, 그것도 기업별 수준에서만 작동하던 기존의 연공급 체계를 그대로 두는 것이 더는 노동자 전체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르크스가 비판한 임금체계는 시간급과 성과급이었다. 자본가는 노동의 시간과 성과에 임금을 지급한다는 형식을 만들어서 마치 임금이 노동의 대가인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가 온전히 지급된다면 자본가의 이윤은 있을 수 없다. 임금은 사실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잠재적 노동능력의 가격일 뿐이다. 마르크스가 임금체계를 비판한 것은 임금의 속성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그는 자본가가 시간급을 통해 노동자가 더 오래 일하도록 만들고, 성과급을 통해 더 강도 높게 일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노동자 개개인이 더 오래, 더 강하게 일할수록 노동자계급은 상호경쟁하며 분열하고,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취득한다. 자본가들이 만드는 임금체계의 핵심은 노동자 각각의 잠재적 노동능력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노동자들을 경쟁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대안적 임금체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다만, 노동자계급의 운동이란 측면에서 임금체계의 개선을 주장할 수는 있는데, 임금노동제도를 당장 혁파하지 못한다면, 계급적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연공급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나, 아니면 경제사정 상 모두가 누릴 수 없는 연공급을 확대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임금체계 개선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최소화하고, 노동자가 가능한 넓게 단결할 수 있는 임금체계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연대임금이다.

 

노동조합운동, 2020년대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이처럼 많은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이지만 아쉽게도 노동조합운동의 체계적인 대응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요 노조들은 2020년 상반기에는 4월 총선을 염두에 두고 여러 정당들과 정책협약을 맺거나 각 노조를 기반으로 출마한 (진보정당) 후보들의 지지운동에 몰두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년 상반기까지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차원의 일관된 투쟁 조직화나 대응 사업은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에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진행된다. 각 지역본부 선거도 동시에 진행되며 민주노총 최대 산별인 공공운수노조의 선거도 같은 시기에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사회적 대화 실현을 전면에 내세운 김명환 집행부에 대한, 또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대중적 평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둘 다 실패했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때, 민주노총 현 집행부를 주도하는 세력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고전할 것이다. 그러나 구래의 정파 구도 하에서 이를 비판해온 ‘현장파’가 의미 있는 대안을 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사회적 대화인가 총파업과 현장 투쟁인가라는 구래의 논쟁 구도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2020년 민주노총은 시험대에 서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구조조정과 함께 탄압의 고삐를 쥐고 조직 노동자를 흔들려 할 때 민주노총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경제위기에 맞서 민주노총이 연대임금·연대고용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비가 필요한가. 민주노총 조직 혁신의 출발점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와 총파업 사이의 선택이라는 전술적 쟁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불황과 인구감소, 노동자 격차 확대라는 정세에서 민주노총이 노동자 계급의 입장을 낼 수 있는가, 이를 위한 정책적 준비와 조직 내부적 합의를 형성할 수 있는가, 이를 통해 다시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를 계기로 민주노총은 구래의 정파 구도를 넘어서서 한국 사회와 노동시장, 노사관계 등 노동체제에 어떤 의미 있는 쟁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 저성장과 인구 위기, 양극화 등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어떤 대안을 제기할 수 있을까?

 

김명환 집행부는 문재인 정권과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안전망 확충과 재벌개혁을 실현하고, ILO 협약 비준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을 통해 대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16~2017년 촛불집회와 박근혜 정권 퇴진에 대해서도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의 계기로 보고, 이를 문재인 정부가 실현할 것이라 기대했다. (2019년 민중대회도 같은 기조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2017년 11~12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당시 조합원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현재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전망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선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실패와 현 집권 세력에 대한 오해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비판에는 현 집행부를 선출한 대중의 기대도 포함된다. 대중의 기대와 선택이 항상 옳지는 않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한 대항 투쟁을 반복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지난 정권 시기 노동기본권 탄압에 대해 민주노총은 결사적으로 투쟁했다. 2014년 민주노총 총파업, 2015년 민중총궐기, 2016년 공공부문노조 연대파업과 촛불집회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투쟁이 정세상으로 불가피했을 수 있지만, 이 때문에 간과한 것이 많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권의 반노동 정책에 대한 투쟁에 몰두하느라 민주노총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국 산업구조의 변화와 노동자 간 격차의 심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이제는 이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체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에너지를 보수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에만 소진했다. 어떤 식으로든 경제·사회 체제에 대한 대안을 논의해야 하는 와중에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이 반 보수 정권 투쟁에 몰두하면서 ‘촛불’을 매개로 민주당과 사실상 연합해왔다. 이와 함께 재벌·공공부문 정규직이 주도하는 민주노총은 노동자 간 격차에 대해서는 형식적 언급만 했을 뿐 진정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기업별 연공급(호봉제)을 옹호하는 논리도 고임금, 고물가, 고인구를 거시경제 조건으로 전제한 기업별 임금 극대화 논리이다. 그러나 노동자 간 격차의 핵심 요인이 기업별 격차이고, 성장·물가가 정체되는 현재 경제사정에서는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노조운동이 지향해온 산별노동조합운동을 통한 기업별 격차 해소와도 상충한다.

 

이런 점에서 2020년에는 민주노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험에 들 것이다. 비단 민주노총과 지역본부, 주요 산별노조의 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와 민주노총 창립 25주년이다. 전태일로부터 두 세대, 민주노총 건설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셈이다. 민주노총 건설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를 온전히 계승하지 못한 결과란 점부터 잘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노총은 중소기업 노조들과 지역연대운동의 구심이었던 전노협이 약화된 후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가 주도하여 만들어졌다. 어떤 이들은 민주노총이 전노협을 청산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평가이긴 하지만, 전노협이 표방하던 ‘노동해방’ 정신, 기업과 산업을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인 연대가 민주노총에 계승되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이제 물리적으로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세대가 정년퇴직으로 노동시장에서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이제 이념적으로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단절 직전에 이르렀다.

 

현 정세는 민주노동조합운동이 형성되던 고성장·인구증가 시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에는 조직 노동의 투쟁을 통해 저임금 부문의 임금 상승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어떤 면에서는 ‘낙수효과’론, ‘동반성장’론의 논리구조와도 근본적 차이가 없다.) 그런데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그런 구도는 이미 작동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조건에서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20~30대 세대의 민주노조운동 주체들에게 기존에 형성된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정세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민중총궐기 시즌 2가 아닌 구조적 위기의 대안을 논의하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는 한국 경제의 최근 추세가 ‘저성장’이라기보다는 붕괴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럴수록 현재의 경제구조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계급적 단결의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노동자 간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연대임금, 연대고용 정책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혁의 주체적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으로는 유의미할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은 2020년 상반기 총선과 하반기 민주노총 선거를 거치면서 거시적 정책 방향에 대해 재검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래의 논쟁 구도를 단순히 반복할 가능성이 크며, 이 구도 하에서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어렵다.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청년 조합원들의 반발과 기존 노조의 위기, 세대·고용 형태 쟁점과 중첩된 임금체계 개편, 지역상생일자리 문제와 같이, 노동조합운동이 피할 수 없는 쟁점들이 여러 곳에서 부각될 것이다. 집권세력은 2022년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포장하든 “노동존중” 시즌 2가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 양보를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ILO 협약 비준의 대가로, 혹은 일부 정규직 노조의 특권을 제약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노동기본권을 후퇴하는 노조법 개정이 총선 후 곧 다시 추진될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이유로 자유한국당이 요구하는 주휴수당 폐지 등이 추진될 수 있다. 이미 자유주의, 범 민주당 진영도 노동 측의 추가 양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노동자의 희생으로 위기를 지연시켜보자는 자본가들의 대안은 답이 될 수 없다. 심지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노동유연화로 대응할 단계도 이미 지나갔다. 그렇다고 민주당 정권 재창출과 협조(국민파적 대안), 혹은 기업별 임금 극대화 투쟁(현장파적 대안) 역시 해답이 되기 힘들다. 경제 위기에 대안이 되지도 못할 뿐더러, 이 과정에서는 그나마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부문 외에,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기도 힘든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은 2020년대 이후 장기 정세에서 어떤 계급적 대안을 추구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논쟁할 때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분노에 기반하여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시기 노동조합운동의 전술이던 민중총궐기 투쟁을 반복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는 급진적인 투쟁으로 보이지만 실상 별로 그렇지는 않다. 객관적 정세 분석과 노동자계급의 내부 분할에 대한 진단, 독자적 대안이 없는 당시 투쟁의 귀결이 2016년 촛불 정국과 현 문재인 정권이라는 점을 고려할때, 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보수 정권 시기, 2008~2017년 지난 10년의 실천을 먼저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똑같은 결과를 몇 년 주기로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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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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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사관계 민중총궐기 노동조합 민주당 연대임금 노동시장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존중 연대고용 ILO협약 노동자간 격차 임금체계 개편 국민파 임금 극대화 현장파 임금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