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3 겨울.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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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붕괴를 가속하는 극단화된 한국 정치

김성균 | 정책교육국장
 

서론

 
2022년 《계간 사회진보연대》 겨울호 정치정세전망에서 정치양극화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틀로 한국 정치 지형을 분석한 바 있다. 정치양극화는 엘리트 정치인이 먼저 부추기고 대중이 이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한국에서 정치양극화는 열린우리당, 즉 민주당 계열에서 본격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는 정치양극화를 주도하는 엘리트 정치인이 활동하는 조건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양극화를 심화하는 토양을 마련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가지는 권한이 막강할수록 그것을 획득했을 때 가지는 수많은 권한으로 ‘아군’을 챙겨주고 ‘적군’을 물리칠 수 있으므로, 이를 획득하기 위해 정치엘리트는 대중을 파당적으로 동원하고 이 과정에서 대중의 정치적 역량은 침식된다. 결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진영의 명운을 가르는 한판승부가 되므로,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이라는 정점을 향하는 단핵적 권력구조를 공고화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요소보다 인물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정언은 이런 정치구조를 반영하는 말이다.

글을 발표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정치양극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키워드에 비춰 한국 정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시 살펴보려 한다. 혹자는 왜 다시 정치양극화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는 우리가 현재 한국 정치의 위기를 그만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사르토리는 다당제 아래 정치양극화를 분석하는 정치이론은 존재하지만, 양당제에서 정치양극화를 분석하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를 양당제에서 정치양극화는 사실상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즉 양당제 아래서 정치양극화는 사회가 준내전 상태에 돌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중대한 국제정세적 변화가 휘몰아치는 지금 국내적으로 한국 정치가 붕괴를 앞둔 현 상황은 한국 정치의 양극화와 이를 강화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문제를 어떻게든 제대로 파악하고 반경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요청한다.
 
 
 

정치 양극화를 심화해 온 민주당

 
민주당은 지난 1년간 정치양극화의 심화에 기여했는가, 완화에 기여했는가. 어렵지 않게 심화에 기여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봤을 때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한 극단화된 팬덤 정치 형성 외에는 다른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않았다.
 

이재명 사당화를 위한 1년 ① 체포동의안 부결

새해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1월 12일에 있었던 검찰 출석에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비리 혐의를 은근슬쩍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과 같은 위상으로 두면서 투쟁할 결의를 밝혔고, 이에 호응해 그의 지지자가 검찰청 앞에 운집했다. 이재명 대표에 반대하는 세력도 검찰청 앞에서 맞불집회를 벌이면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중심에 두고 다시 한번 한국 사회가 크게 분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월 말에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송부되었는데, 민주당 내 30여 명의 이탈파가 존재함을 확인하며 가까스로 부결됐다. 이는 당과 이재명 대표 개인의 사법리스크를 분리하고 당을 개인의 비리를 방탄하기 위해 사당화하지 말라는 자당 의원의 강력한 의견표출이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이런 의견표출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친정체제를 강화해 갔다. 
 

이재명 사당화를 위한 1년 ② 김은경 혁신위원회

김은경 혁신위원회는 이재명 체제 강화의 상징이었다. 민주당 혁신위가 출범한 직접적인 계기는 송영길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되었던 2021년 전당대회에서 당시 강래구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장이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을 통해 여러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이 발생한 돈 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였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의 도덕성이 끝을 모르고 타락하자 비명계 의원을 중심으로 당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제기가 분출했고, 이 제기가 혁신위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비상 상황에도 이재명 지도부는 혁신 요구에 지지부진하게 대응했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처음 인선한 혁신위원장은 이재명살리기국민운동본부의 출범을 주도했던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이었다. 의미는 명확했다. 혁신위는 이재명 체제의 방패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래경 이사장은 그 편향성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여러 논쟁적인 과거 발언으로 결국 낙마했고, 지도부는 김은경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인선한다. 비록 이래경 이사장보다는 그 색채가 옅어졌지만,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혁신위에 참여한 서복경 혁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혁신위가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라는 지적에 대해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혁신위의 성격이 이렇게 설정된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언급했듯 혁신위는 이재명 대표에 지역구를 넘겨줘 국회의원이라는 방탄 배지를 제공해 최측근 인사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송영길 전 대표가 연루된 돈 봉투 사건과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그룹인 처럼회 소속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런데 이재명 지도부는 위 두 의혹이 불거지자 일성으로는 정치검찰의 소설이라는 식으로 큰 고민 없이 대응하다가 사건이 그런 방식으로 감당할 수 없으리라 판단되자 검찰에 공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지도부와 매우 밀접한 인물이 연루된 사건이라 당 차원에서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이처럼 지도부가 도덕적 타락을 방치하는 무능을 벌이고 있음을 비판하며 혁신 요구가 당내에서 불거졌고, 이 때문에 혁신위가 발족한 것인데, 혁신위의 성격이 지도부를 혁신하는 게 아니라 지도부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역할이라니 이보다 역설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는가.

게다가 김은경 혁신위는 여러 설화에 휘말려 예정된 활동 기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종료했는데, 이렇게 도망치듯 종료하면서도 이재명 지도부 유지, 혹은 이재명 친화적인 지도부를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제출했다. (혁신안과 관련한 내용은 “민주당의 혁신=이재명 대표의 일인지배?”, 《사회운동포커스》, 2023년 8월 16일 참고.) 혁신안은 모두의 예상대로 당내 반발이 매우 컸고, 결국 혁신안은 의원총회와 같은 당내 논의기구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혁신위는 이재명 지도부를 향한 비판의 화살을 혁신위로 향하도록 하여 이재명 지도부가 위기를 모면하도록 도운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혁신위가 자기가 자초한 설화로 아무 결과물도 남기지 못하고 활동을 마감했으니 이재명 지도부가 그만큼 무능하다는 점은 굳이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명하다.
 

이재명 사당화를 위한 1년 ③ 단식과 체포동의안 가결을 둘러싼 혼란

여러 방식을 동원했음에도 당내 불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자 이재명 대표는 9월 초, 단식이라는 초강수를 둔다. 이재명 대표가 단식에 나서며 내건 요구는 윤석열 행정부 국정기조를 국민중심으로 전환할 것,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천명하고 국제해양재판소에 일본을 제소할 것, 윤석열 정권의 전면적 쇄신과 개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요구사항은 매우 추상적인 데다 애초에 상대방이 수용하기 매우 어려운 만큼, 과거 여러 정치인이 단식에 돌입할 때 내건 요구와는 궤가 매우 다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기에 단식의 이유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고 해석됐는데, 실질적인 단식의 목표는 본인의 사법리스크에 민주당 전체가 끌려가는 것에 대한 당내 불만을 틀어막고 본인을 향한 검찰 수사에 지장을 주기 위함이라는 해석이었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순조롭게 달성되어 가는 것으로 보이던 단식의 목표는 그러나 국회에 보고된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이재명 대표 본인이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공언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뒤집으며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SNS 글로 사실상 무너져 버렸다. 당내에 큰 역풍이 불었고, 결국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당 지도부를 비롯한 친명계 의원, 친명계 원외인사, 강성지지자까지 가결파 의원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가결파 의원을 색출하려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검찰과 윤석열 정권에 놀아난 민주당 가결파의 폭거도 기가 막힌다”, “‘이재명을 지키자, 민주당을 지키자’는 분노의 행렬이 벌써 3만 명이라는 분노의 표출로 이어지고 있다”며 강성 지지자의 숫자로 가결파를 압박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익명의 그늘에 숨는다고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고, 서은숙 최고위원은 “자신이 해당 행위를 한 것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친명계 원외 단체인 더민주혁신회의의 강위원 공동대표는 “이번에 가결표를 던졌던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재명 대표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이틀 후 “민주당의 부족함은 민주당의 주인이 되어 채우고 질책하고 고쳐 달라”는 강성지지자에 보내는 듯한 SNS 글을 올렸다. 이에 부응하듯 강성지지자들은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문자와 전화를 돌리며 색출 작업을 벌이고, 이에 압박을 느낀 일부 의원은 부결표를 SNS에 인증하기도 했다. 

참으로 역설적으로 이런 격정 상태를 진정시킨 건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모든 친명계 인사가 험악하게 공격해 댄 그 가결파 의원 덕에 이재명 대표로서는 엄청난 정치적 기회를 다시금 부여받은 셈이었다. 그런데도 정청래 의원은 “반드시 외상값은 계산해야 할 것”이라며 뒤끝을 남겼다. 비명계 의원들 역시 칼집에 칼을 넣어뒀을 뿐 자신들을 향한 공격이 끝난 게 아니리라 전망했다.
 

정치양극화를 양분으로 완성되어 가는 ‘이재명의 민주당’

구속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한 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자 이재명 대표 체제로 2024년 총선을 치르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대통령 후보 시절 언급한 바 있듯 명실상부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는 모양새다. 소수의 비명계 의원이 모여 “원칙과 상식”이라는 당내 계파를 형성했으나,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의원은 4명에 불과한, 최소 30명은 될 것으로 추정한 가결파 의원 숫자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더 공개적으로 당의 혁신을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당내 입지는 이전보다도 더 줄어들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이재명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남은 한 걸음은 총선에서 자기 사람을 대거 공천하고, 그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비리 혐의를 받으면서도 제1야당의 대표가 되고, 그 비리 혐의로 말미암아 벌어진 여러 정치적 위기를 맞으면서도 꿋꿋이 버텨 1인을 위한 당을 만들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온 사례는 없다. 이 전대미문의 상황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를 따르는 강성지지층이었다.

이른바 ‘개딸’로 일컬어지는 이재명 대표의 팬덤은 이재명 대표가 무엇을 하든 그를 배타적으로 옹호했다. 이들은 당 내외부의 정치적 경쟁자를 모두 그들이 생각하는 개혁에 역행하는 적으로 인식하면서 상대방의 몰락을 목표로 전진했다. 이들은 오히려 당 내부 이견 그룹에 대한 공격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예를 들어 지난 6월 이낙연 전 대표가 귀국할 즈음하여 있었던 그의 강연에 수박 현수막을 펼친다든가 이낙연 지지자를 ‘낙지탕탕이’라 부르며 조롱하고 공격했다. 비명계 의원인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에는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매국노(비명계)를 처단할 것”이라는 공격적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강성지지층은 당원 중심주의를 명분으로 기존 당의 구조를 허물고 당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하고 당이 그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길 바랐다. 김은경 혁신위가 대의원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혁신위의 최종안으로 제출한 것은 이런 강성지지층의 염원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대의 민주주의를 비난하며 그 대신 자신의 의지가 곧바로 반영되는 직접민주주의를 무제한으로 옹호한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이라는 위험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는 독립된 사법부, 한쪽의 의견만 과도하게 대표되지 않게 하는 다원화된 정당 체계와 같은 견제장치를 구축해 왔다. 작년 정세전망에서 대의제에 관한 발리바르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대의기구가 오히려 인민의 즉각적 요구와 거리를 두고 이로부터 공적 토론을 조직해 더 적합한 결론을 도출한다면 공동체의 역량을 증진할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즉 각기 분출하는 대중의 즉각적인 열정을 일정 정도 냉각하는 한편 이성적 토론을 통해 각각의 이익을 중재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공익적 대안을 도출하는 대의제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쟁점을 다루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접민주주의는 인민주의자의 출현에도 취약한데,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도자와의 직접적 연결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의 흥분을 고양하고 적대감을 자극하는 데 능한 인물이 대중의 의지와 열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동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강성지지층은 그러한 지도자에 충성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충족한다. 이런 지도자들이 바로 2000년대부터 민주당 계열이 적극적으로 추동해 온 정치양극화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점차 세를 불리고 유력한 인물로 부상했다. 이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기득권 탓으로 돌리며 자신이 벌이는 모든 과격한 행동은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한다. 

이러한 지도자와 그에 충성하는 강성지지층이 힘을 얻으면서 협상과 타협,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형 정치인은 힘을 잃고 사라지고 있다. 점차 내부 이견 그룹은 배제되고 지도자와 지지자의 일치된 하나의 목소리만 남는다. 그런데 이렇게 지도자 1인의 의지에 귀속되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효율적으로 실현하려는 정당의 모습은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 전체주의가 대중의 참여를 억압한 게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의 형태로 대중을 동원해 이견을 가진 세력에 가차 없이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행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했는가

 
정치양극화를 강화해 온 민주당의 지난 1년을 돌아봤다면, 지금부터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틀에서 윤석열 행정부를 분석한다. 윤석열 행정부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1년 전 글에서는 행정부 개혁을 통해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는 있으나, 그 조치가 의도에 부합하게 실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며, 무엇보다도 국회와의 권한분산,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정상화라는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핵심에 관해서는 전혀 밝힌 바가 없어 한계적이라 평가했다.

다만 평가하기에 앞서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요소는 정치양극화를 자극하는 야당의 존재다. 정치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심지어 그것을 더욱더 극단화해 강성 팬덤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야당의 존재를 고려하면, 언급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핵심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이를 고려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공약한 부분에서는 어떤 활동을 벌여왔는지 평가하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개헌하지 않고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할 수 있다면서 총리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책임총리제), 대통령실을 축소하겠다고 공약했고, 대통령실을 이전해 언론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을 다시 임명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책임총리제

우선 검토할 부분은 책임총리제다. 책임총리제는 국무총리의 권한을 실질화하여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하려는 시도로, 1997년 15대 대선 이후 꾸준히 주장됐다. 특히 노무현 행정부 이해찬 총리의 사례를 책임총리제가 실현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가전략 수립과 개혁, 국민통합 과제에, 총리는 내각관리에 책임”을 지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책임총리제라 언급하며 일상적 정책업무와 내각관리를 국무총리가 전담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무총리가 관계 장관 회의와 법정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직접 의제를 설정해 예산 방향을 밝히는 정기국회 시정연설을 전담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국무총리가 중요 국정과제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었다는 의미다. 이를 뒷받침했던 것은 국무총리의 헌법적 권한인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정부 통할권 강화였다.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 기용은 이해찬 총리가 제청을 밀어붙여 성사된 대표 사례였다.

물론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총리의 임면권이 대통령에 있기에 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있었다. 즉 책임총리가 아무리 강력한 권한을 가지더라도 권력의 분점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한 것이기에 대통령이 위임을 철회하면 언제든 권한과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해찬 총리가 퇴임한 이후 한명숙 총리는 다른 총리와 마찬가지로 실질적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임총리제는 한국에 익숙한 국무총리제를 활용하면서도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현행보다는 분권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이후 행정부에서도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수단으로 책임총리제를 이야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통령 권한 분산의 방안으로서 책임총리제를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일환으로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취임 직후 장관 인선에서 한덕수 총리는 인사제청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윤 대통령 측근 인사를 선임하고 그저 서명만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불거졌다. 결정적으로 국무조정실장 인선에서 한덕수 총리 추천 인사가 이른바 ‘윤핵관’의 반대로 인선되지 않으면서 책임총리제가 시작부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은 정례 주례회동을 통해 국무총리와 많은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후 주례회동은 비교적 꾸준히 진행됐고, 국회가 국정운영과 관련한 법안과 정부조직개편에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음에도 무난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책임총리라는 이름에 걸맞을 정도의 권한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부분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과 행보에 한 총리가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는 평가, 특히 인사에 있어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는 평가다. 


대통령실 축소

다음으로 대통령실의 규모를 줄이겠다고 한 공약을 살펴보자. 현재 대통령실 인력 규모는 “2022회계연도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소관 결산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이전 문재인 행정부의 490명 수준에서 줄어든 413명이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30%를 줄인다면 343명까지 줄여야 하는데, 임기 2년 차인 현재 이 공약은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의 전체적인 규모 축소와 더불어 비서실장, 수석비서관과 같은 장차관급 인사도 축소하겠다고 공약했고, 취임 직후 이전 행정부의 3실 8수석 체제에서 2실 5수석 체제로 간소화했다. 먼저 정권의 실세라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과거 민정수석이 막강한 권한을 남용해 각종 권력형 비리에 휩싸인 것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의 역할 중 법률 보좌와 공직기강 확립은 법률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이, 인사검증은 법무부로 이관했다. 그런데 공약은 이행이 됐으나, 윤석열 행정부의 부실한 인사검증 문제가 반복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대통령실은 최근 대통령실 체제를 2실 8수석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됐다. 사실 작년부터 대통령실 장차관급 인사는 조금씩 확대되어 왔다. 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정책실장을 폐지하고 일부 정책 기획 역할만 맡는 정책기획관을 두었으나, 임기 초 정책 난맥상의 원인으로 대통령실 내 컨트롤 타워 부재가 지적되자 2022년 8월 21일 정책기획수석 비서관을 신설했다. (이후 국정기획수석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또 올해 11월 13일에는 과학기술 수석과 환경노동 수석을 신설하는 대통령실 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과거 노무현, 문재인 행정부 시기 정책실장 산하에 과학기술보좌관이 존재했고, 정책실장이 경제와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권한을 행사했음을 고려하면, 이번 보도는 차츰차츰 대통령실 내에 정책실장의 역할을 복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대통령실 내 장차관급 인사 규모 재확장에 대해 대통령실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도 있지만, 애초 대통령실 축소 공약을 제대로 실현할 로드맵을 갖추지 못한 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결국 실패하고 공약 역행으로 귀결되고 있는 무능을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약 파기를 공식 사과하고 대통령실을 어느 정도까지는 다시 확장하라는 비판도 많다.)
 

전 정권 때리기만으로 한국 정치를 개혁할 수는 없다

언급한 공약 외에도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취임 다음 날부터 도어스테핑을 진행했지만 반년 만에 중단한 뒤 재개하지 않고 있다. 이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진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이전이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음을 고려하면 문제가 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의 친인척을 포함해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인물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을 문재인 행정부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윤석열 행정부에서는 임명하겠다고 공약했으나 1년 반째 임명하지 않고 있다. 물론 국회에서 특별감찰관 후보를 추천해야 함에도 여야가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임명에 의지를 보인다면 논의가 진척되리라는 점도 분명하기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그 가족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상황이기에 특별감찰관 임명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최근에는 언론장악이 쟁점으로 불거지고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전후로 하여 방송통신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임명 전, 윤석열 대통령은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면직을 재가했고, 야당 추천 위원인 최민희 방통위원 내정자의 임명을 거부했다. 이로써 5인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에서 여당 위원 2인, 야당 위원 1인의 3인 구조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됐는데, 3인 체제에서 공영방송인 KBS, EBS, MBC 이사진 교체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원이 혐의만으로도 해임되고 해임된 자리를 채우지 않았음에도 의사결정을 단행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행정부에 대해 독립성을 확보해 사회적, 경제적 규제 업무를 수행하는 게 본연의 역할인 합의제 행정기관의 취지를 고려하면, 이와 같은 거친 의사결정 과정이 정당성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정권교체의 의미가 무엇이었느냐에 관해 다시 질문하게 한다. 문재인 행정부도 대통령이 뒤에 숨어 언론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으며, 언론중재법 발의를 비롯해 비판 언론에 소송을 남발하고 지지자들을 동원해 언론사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이런 행태를 포함해 문재인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 비판한 것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개혁하겠다고 공약한 것인데도 집권 후 비슷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언급했듯 행정부에 대한 비토로 일관하며 정치양극화를 부추기는 야당으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에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스스로 공약한 부분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윤석열 대통령 역시 제왕적 대통령일 따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한국 정치의 대안이었나

 
지금까지 정치양극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관점에서 정부와 거대 양당의 지난 1년을 돌아봤다. 그렇다면 거대 양당 외의 세력이 이 두 요소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는가. 

먼저 정의당은 계속되는 대형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22년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7%를 득표하는 데 그쳤고, 이어서 치러진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은 물론 시군구청장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광역, 기초의원 9명만 배출했다. 2018년 37명 당선과 비교해도 확연히 줄어든 숫자로, 같은 선거에서 진보당이 21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것보다도 저조한 성적이었다. 

결국 지방선거 참패를 계기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의당의 지난 10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면서 혁신 재창당을 전국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하며 이를 추진할 새 지도부로 이정미 대표를 선출한다. 그리고 지난 6월 전국위원회에서 재창당 방안으로 ‘정의당의 사회 비전과 가치에 동의하며 기득권 양당체제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가진 노동과 녹색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민사회와 제3 정치세력들과의 통합과 연대를 통한 신당 창당’을 의결했다. 

다만 이 방안은 실질적으로는 정의당 내부 ‘자강론’(정의당을 유지한 채 변화를 모색)과 ‘신당 창당론’(극단적으로는 당 해산 후 신당 창당까지 포함) 사이의 갈등을 적당히 봉합한 결론이었다. 즉 제3 정치세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신당 창당의 수준과 방식은 어느 정도인지를 비롯한 쟁점 사항에 관해서는 모호하게 남겨둔 방안이었다. 방안 의결 이후 정의당 내 각 세력은 공동의 합의라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의결사항을 수용했다. 다만 민주당과의 종속적 관계를 끊어내고 사회운동 세력화를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기조에 반발한 국민참여당계 “새로운진보”는 위선희, 천호선, 정호진을 필두로 집단 탈당했다.

재창당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실시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1.83%의 지지율을 얻으며 다시 한번 저조한 성적을 거둔다. 당 지도부도 당혹스러운 결과라 평했고, 지난 1년간 혁신 재창당을 추진해 왔음에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면서, 재창당작업 역시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정미 지도부는 돌파구를 녹색당과의 연합에서부터 찾아보겠다는 계획으로 일단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정당을 합의했다. 이어 11월 5일 전국위원회에서는 녹색당을 비롯한 진보당, 민주노총 중심의 노동계와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기로 결의하며 이정미 지도부는 총사퇴한다. 이후 정의당은 선거연합신당 추진을 위한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했다.

대선, 지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후 혁신 재창당 작업에 착수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정의당은 또다시 냉엄한 현실을 마주했다. 이런 현실은 정의당이 ‘친윤도 친명도 아닌 오직 주민 편’(권수정 강서구청장 후보 공보물)이라며 거대 양당과 선 긋기를 아무리 시도해도 지난 1년간 외부에 보인 행보는 사실상 더불어민주당과 그다지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 가장 주목받은 이정미 대표의 행보는 한일 정상회담 반대 집회에서 민주당 지지 성향의 집회 참가자에게 강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모습,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즈음해 벌였던 단식이었다. 즉 사실상 민주당이 반일 선동으로 정치양극화를 부추기는 흐름에 정의당도 함께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정의당으로서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가결표를 던졌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에 관해 특권 내려놓기라는 소극적인 의미 부여만 할 뿐,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재 한국 정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관해서는 어떤 평가도 내지 않았다. 이러한 정의당의 태도가 이재명 대표를 향한 수사가 검찰 독재, 검찰 탄압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묵인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진보당은 아예 한술 더 떠 민주당과 완전히 밀착하고 있다.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강성희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지역구 자리를 비켜준 민주당에 고맙다는 현수막을 게시했고,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민주당 친명계 핵심 그룹인 ‘처럼회’에 가입해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 강성희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도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나마 정쟁을 줄여보자며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은 것과도 비교되는 모습이다. 진보당은 정치양극화를 자극하는 민주당의 행보에 관한 비판의식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더 강하게 민주당과 밀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진보정당 역시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지점인 정치양극화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을 제시하거나 스스로를 대안 세력으로 구축하는 데 실패했고, 실질적으로는 민주당의 반윤석열 전선에 동참했다. 한국 정치를 개혁하는 데 진보 ‘정당’으로서 어떤 역할이 요청되는지 신중하게 살펴야 할 때다.
 
 

2024년 한국 정치에서 주목할 지점

 
최근 몇 년간 한국 정치는 중장기적인 전망을 논의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자당의 정치적 이익만 보고 휘발성 높은 의제를 마구 내지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몇몇 정치 평론가가 지적하듯, 여야가 두세 달만 내다봐도 하지 않을 정치적 수를 당장 눈앞의 정치적 이익만 보고 던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여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일 횡재세법을 띄우고 있다. 비공개 최고위에선 횡재세법을 강행하더라도 선거엔 호재가 될 거란 말이 나왔다고 하는데, 민주당이 어떤 생각으로 횡재세를 주장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예산안 논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약속한 새만금 사업 예산(5391억 원), 지역화폐예산(7053억 원), ‘3만 원 청년패스 예산’(2900억 원)을 단독으로 증액하고, 행정부의 청년 관련 예산 3028억 원 중 2411억 원을 삭감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거둘 정치적 이득만을 철저히 옹호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행보다.

한편 여당도 이런 야당에 대응해 휘발성이 강한 이슈를 던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포시 서울 편입이다. 지난 9월 홍철호 국민의힘 김포시 당협위원장이 처음 제기한 후, 10월 30일 김기현 대표가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보름 정도가 지난 11월 16일에는 「경기도와 서울특별시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특별법률안」을 발의했다. 김포시의 요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논의가 제대로 되기에도 부족한 두 달여의 시간 만에 특별법까지 발의하면서 급하게 추진한 이유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 이후 국면을 전환하고 김포를 비롯해 서울 인접 중소도시의 표심을 자극해 다음 총선에서 유리한 지형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당 원내대변인인 장동혁 의원에게 ‘저희가 이번에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합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휴대폰 화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김포시 서울 편입 정책이 중장기적인 국토 계획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기획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여당의 이런 행보를 민주당은 어떻게 대응했나. 민주당은 김포시와 인접 도시의 동향을 살피며 애매한 입장을 취하다가 지난 11월 23일,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를 단독으로 열고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인구 50만 명 이상의 접경 지역이 포함된 대도시권 광역철도 확충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내용으로 김포와 파주가 대상이다. 사실상 5호선 연장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인데, 노선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일이라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거대 양당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거두는 데 매몰되어 차분하고 합리적인 논의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합리적인 논의가 실종된 한국 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처럼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국 정치가 인민주의에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정치가가 숙의를 거치기보다는 자신이 자의적으로 구성한 특정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인민주의 정치가의 전형적인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사익의 관점에서 모든 행동이 도출되기 때문에 정치인에게 기대되는 공익, 상식의 관점에서는 인민주의 정치인이 수를 던지는 걸 예측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는 상당 기간 예측 불가능성이 지배하는 정세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기에 확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보다는 몇몇 주목해 볼 만한 변수를 논하고자 한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총선 예고편인가?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두고 여러 분석이 있었다. 대체로 오만한 태도를 보인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경향신문》의 칼럼 “과연 정권 심판 선거였을까?”에서는 민주당의 대선분석 자료, ‘새로고침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거대 양당 모두 핵심 지지층만 투표장에 나왔고 잠재적 지지층을 비롯한 중도 유권자까지 투표장에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보수의 잠재적 지지층은 전체 유권자에서 50%인데, 크게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자유보수주의’ 그룹 20%, ‘온건보수’ 그룹 20%, 이준석 지지층으로 분류 가능한 ‘포퓰리스트’ 그룹 10%로 나뉜다. 이번 김태우 후보자의 득표수(9만 5492표)를 전체 유권자 수(50만 명)에 대비해 보면 20% 정도 되므로 핵심 지지층만 나왔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의 경우 잠재 지지층은 약 40%였고, 열혈지지층인 ‘개혁 우선’ 그룹이 5%, 더 넓은 지지층인 ‘평등평화’ 그룹이 약 35%로 나타났다. ‘평등평화’ 그룹에서 무조건 선거에 나오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민주당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투표장에 나올지 결정한다고 응답했다. 칼럼은 열혈지지층 5%와 평등평화 그룹에서 무조건 투표하는 35%의 절반인 약 17.5%를 더한 22.5%를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교훈 민주당 후보는 13만 7066표를 얻었는데, 이는 전체 유권자의 27% 정도로 중도층을 동원하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에서 우선 주목할 만한 점은 주로 핵심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왔다는 부분인데, 그만큼 이번 선거가 정치양극화에 포획된 선거였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을 봤을 때, 내년 총선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반복되리라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겠다. 다만 글의 결론은 잠재적 지지층, 중도층이 선거에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기에 정권심판 선거가 아니라는 것인데, 국민의힘의 경우 핵심 지지층 외에는 움직이지 않은 것과 비교해 민주당은 제시된 분석자료를 근거로 하면 핵심 지지층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으므로 정권심판론이 조금이나마 더 힘을 받은 것으로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보궐선거에서 지난 대선 때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한 강서구 내 지역에서도 크게 패배했다는 점은 정부 여당으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요소다. 지배적인 분석처럼 강서구 보궐선거 결과가 수도권 위기론을 반영하고 있는 결과라면 총선에서도 여당이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정권심판론이 작동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작동한 이유는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재명 대표와 검찰과의 대치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일단은 이재명 대표가 정치적으로 판정승을 거뒀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난 1년 6개월을 돌아봤을 때 최대 쟁점은 이재명 대표의 비리 혐의가 얼마나 실체를 갖춰 밝혀지느냐였다. 설사 이재명 대표가 유죄판결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혐의의 중대성을 고려했을 때 검찰이 우위에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중간 계기는 이재명 대표의 구속 여부였다.

그런데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당연히 구속영장 기각이 곧 무죄는 아니다. 기각문에도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백현동 개발사업은 이재명 대표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만한 상당한 의심’이 된다고 했으며, 대북송금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혐의가 소명됐다고 명시했음에도 영장이 기각된 데 대한 비판도 컸다. 특히 대북송금 사건의 경우 사법 방해로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상당하여 피의자가 야당 대표라서 위증교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납득가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구속영장 기각이 마치 무죄가 소명된 것처럼 선동했다. 불행히도 민주당의 이런 선동은 상당한 효과를 거뒀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엄존함에도 이재명 대표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회생했다. 이제 이재명 대표 체제로 총선이 치러지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만약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윤석열 행정부는 레임덕에 빠지게 될 것이고 다음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은 상당히 커질 것이다. 최근 여권은 김포 서울 편입을 비롯해 이슈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2024년 총선이 다시 한번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로 치러지면 여당이 패배하리라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슈 전환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보궐선거 패배를 딛고 혁신을 향해 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선거 패배 이후 꾸려진 김기현 대표 체제 2기는 ‘도로 영남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역시 선거 패배를 계기로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가 영남, 중진, 친윤 성향 의원들에 불출마 혹은 수도권 험지 출마를 촉구했음에도 당이 이렇다 할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혁신위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자초한 설화로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있는데, 김은경 혁신위와 민주당이 그랬듯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한편 민주당은 선거 승리 이후 여권발 이슈에 밀리고 있으나 공고화된 이재명 대표 체제 아래 연일 탄핵을 제기하는 탄핵 남발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곧 패스트트랙 발의 요건을 갖춘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특검)도 발의할 텐데, 선거 승리 이후에도 여전히 강성지지자를 열광시키는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는 셈이다. 

종합하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후 여야 모두 큰 틀에서 행로에 변화가 없다는 것인데, 내년에도 한국 정치의 퇴행이 예상되는 암울한 상황이다. 다만 이번 보궐선거 결과와 정권 중반에 실시 되는 총선이 정권에 대한 평가 선거로 작용해 여당에 그리 유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당 모두 현상 유지에 그쳤을 때 총선에서 여당이 불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있겠다.
 

선거법 개정 동향

현재까지 여야가 합의한 부분은 의석수 유지, 3대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알려져 있다. 국민의힘 정개특위 간사인 김상훈 의원은 여야 ‘2+2협의체’에서 권역별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까지 합의했으나 민주당 내 합의가 아직 미진해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 국민의힘이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 김영배 의원은 3대 권역별 소선거구제까지만 동의했다면서 병립형으로 회귀할 경우 지역구를 줄여 비례의석을 60석으로 늘리거나 의석수를 유지한다면 반드시 연동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실제 양당 간 합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인지 알 수는 없으나 병립형으로의 회귀가 완전히 사라진 선택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상훈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까지는 병립형이 수용됐으나 당내 반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내년 총선 비례대표 선출 방식으로 연동형 대신 병립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언론 보도가 있기도 했다. 오히려 병립형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할 수도 있다. 지금껏 민주당과 강성지지층이 보여온 태도를 봤을 때, 그들이 보기에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동의하는 정의당과 같은 입장이 모호한 진보정당보다는 이재명 대표가 장악한 민주당에 한 석이라도 더 붙여주는 게 훨씬 개혁적인 일이라 여길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데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비판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된다면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즉 대체로 진보적 색채를 가진 소수정당이 진출할 가능성이 크니 다양한 의견을 국회가 수용할 수 있다는 명분을 챙기면서도 범 민주당 세력의 확장에 유리하므로 지도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현재 민주당이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민주당 계열 정당 중 현재 거론되는 유력한 세력은 이른바 ‘조국 신당’이다. 그런데 조국 신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계속해서 조국 전 장관을 지원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친문을 규합하는 구심점이 되리라는 예측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민주당인데 뭐가 문제냐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이재명 대표가 아주 큰 위기감을 느꼈다고 알려졌는데, 이런 이재명 대표로서는 체포동의안 가결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당의 장악력을 더욱 강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아닌 민주당 진영의 또 다른 큰 권위(문재인 전 대통령)를 등에 업은 조국 세력을 온전히 제어할 수 있을지와 관련해 불확실성을 느낄 수 있다. 조국 신당에 관해서도 이렇게 인식하는 이재명 대표가 그 외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고려할 가능성은 더욱 낮을 것이다. 

현재까지 기류를 보았을 때, 민주당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가장 유력한 선택지로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실시될 경우 민주당과 연대연합을 도모하는 세력은 더욱 강하게 이재명 대표와의 결합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이준석 신당을 비롯한 제3지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이 정계에 입문한 날짜인 12월 27일에 맞춰 신당을 창당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준석 전 대표는 “신당을 창당하게 되면 국회 입성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비례신당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수당이 될 수 있도록 스펙트럼을 대폭 넓게 시작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고, 이준석계로 분류되는 이른바 천아용인(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허은아 의원, 김용태 전 청년최고위원, 이기인 경기도의원)과의 회동에서는 신당 창당 시 수도권에 기반을 두면서 ‘보수 텃밭’인 영남권에도 지역구 후보를 대거 출마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매일 1%씩 신당 창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발언으로 시선을 끌던 이준석 전 대표의 행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 가능성이 커지자 이슈선점에서 밀리는 모양새다. 되려 한동훈 장관에게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며 한동훈 장관이 국민의힘 총선 대응에서 중책을 맡고 그와 연대하며 국민의힘에 남을 생각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제출되는 상황이다. 다만 11월 24일 현재까지 여러 언론에서 분석하듯 비대위원장 혹은 단독 선대위원장 정도의 직책을 받는 게 아니라면 당에 남아있을 명분이 없을 정도로 이준석 전 대표가 발언한 내용과 태도가 여당에 적대적이었던 만큼 탈당 가능성이 여전히 좀 더 큰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이준석 전 대표는 신당의 스펙트럼은 넓게 가져갈 것이라며 비명계 인사와도 접촉했고, 11월 10일에는 금태섭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회 대표와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비대위장과 만나 신당 창당과 관련한 논의를 나눴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금태섭 새로운선택 창준위 대표도 “양당 구조를 깨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미래가 없다”는 부분에 관한 인식이 비슷하며, 여성 문제와 같이 다른 관점을 가진 쟁점은 “어떤 문제든지 우리가 토론하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옳은 의견, 현실에 맞는 의견이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저는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며 예전 민주당의 공수처 설치처럼 청와대의 뜻이라는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토론하고 양보할 수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물론 이준석 전 대표가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 금태섭 대표로서는 먼저 삽을 떴음에도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게 아쉬울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일단 2024년 총선에서 국회에 유의미한 숫자로 진출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변화를 도모하는 데 선결조건이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판단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의 연대연합을 저울질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만약 두 세력의 연대가 이뤄진다면 현시점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영향력이 훨씬 큰 게 객관적인 조건이라, 기존에도 양당과 차별화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새로운선택이 결국 이준석 전 대표의 기조로 물들어갈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할 수 있다.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지난 11월 5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을 합의하고 민주노총과 여타 다른 진보세력과의 연합도 열어둔 선거연합정당을 구성하는 안건이 통과되었고 이정미 지도부는 사퇴했다. 이러한 정의당의 결정은 선거연합정당을 진보당까지 열어두고 진행한다는 의미다. 이런 행보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에서 정의당이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나? 통합진보당 해산에 관한 정의당의 평가는 어떤 것이었나? 정의당은 진보정당의 야권연대 역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패권주의,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에 관해 별다른 언급 없이 진보당까지 열어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자는 정의당의 결론은 앞의 질문에 대해 ‘과거는 잊고 다시 뭉쳐서 의석을 얻자’는 정치공학적 접근인 것은 아닌가.

현재 정의당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당과 거리두기가 재창당의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음에도 실제 행보는 민주당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올해 내내 반일 선동, 검찰 독재 프레임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민주당과 각 사안을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대동소이했다는 게 핵심이다. 지금 정의당은 실리를 위해 맹목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진보정당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매서운 비판에 제대로 답하지는 못하고, 다만 맹목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태도는 취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의지만 읽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진보당은 오히려 매운맛 민주당이 되어 그들과 연대 연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정의당은 이런 진보당과도 함께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한편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제안을 진보당이 수용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021년도 정당의 활동 개황 및 회계보고」에 따르면 정의당은 이미 진보당에 당원 숫자가 역전됐다. (정의당 50,618명, 진보당 85,718명)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당 당선자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으나 진보당의 바람대로 민주당과 연대연합이 성사된다면 정의당이 원내진출 국회의원 수도 밀릴 수 있다. 정의당으로서는 이미 내용은 민주당에 빼앗겼고, 조직세는 진보당에 밀리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정의당이 이들과 다르게 무엇으로 진보정당으로서 자신의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지 자체가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당이 정의당 안을 받으면 받는 대로, 받지 않으면 또 그대로 정의당이 진보정당 간 논의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게다가 함께하기로 합의한 녹색당은 21대 총선 당시 당원투표에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할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최종 불발되었으나, 논의가 긍정적으로 흘러갔다는 것은 민주당이 녹색당의 의제를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소위 녹색 의제에서도 정의당의 의도대로 민주당과 구별되는 더 확실한 색을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정의당으로서는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몇몇 산발적 발언에서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중하게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때다.
 
 

결론: 사회운동이 한국 정치의 퇴행을 막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내년 총선의 최대 목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묻지마 거부권’을 행사하는 기반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야권) 연합 200석이 필요하다.” 처럼회 소속 이탄희 의원이 연동형 비례제가 병립형 비례제로 퇴행하는 것을 직을 걸고 막겠다면서 했던 말이다. 명분은 거부권을 들었지만, 실제 속내는 대통령 탄핵에 있으리라는 짐작은 습관적으로 탄핵을 외치는 최근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탄핵은 중대한 헌법적 위반이 발생했을 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매우 무거운 제도지만, 민주당에 의해 그 의미는 국회 다수당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 정도로 가벼워지고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어마어마한 사회적 파장을 낳고 국론이 분열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민주당이 이에 대한 경각심 없이 탄핵을 마구 휘두르는 것도 민주당이 정치양극화를 부추기고, 또 그것을 자산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한 근거다.

점점 퇴행하는 한국 정치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것이 절실한 현재다. 언급했듯 양당제에서 정치양극화는 사실상 붕괴다. 준내전 상태에 돌입한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년 정치정세전망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상투적인 비판을 반복한다면 극단적인 정치로 연명하는 인민주의자와 공명할 위험이 있으며, 이러한 인민주의 정치인을 배제하고 대의제가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조건에 주목하는 게 더 유익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회운동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앞장서 왔다. 극단적인 정치인으로 인해 한국 정치가 퇴행하면서 한국 사회 전체가 퇴보할 위기에 처해있는 현재, 사회운동은 이를 막아내면서 반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사회운동이 위기에 처한 한국 정치의 조건에 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되묻게 된다. 사회운동은 여전히 야권연대의 미망을 버리지 못하고 민주당과 과감히 단절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더욱 강하게 야권연대를 통해 보수를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최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 출신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공동대표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서고 있다. 그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목표는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이고, 이재명을 통해 그 목표를 이루려는 거다”라면서 “2017년 촛불 혁명 이후 우리가 그려야 할 새로운 밑그림은 ‘제7공화국 건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학생운동 경력에 관해서도 “저평가 때문에 19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정치 사회적 진출이 좀 늦었다”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이며, 곳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총련 출신 활동가들은 1996년 연대 사태나 1997년 이석 씨, 이종권 씨 치사 사건 등 학생운동이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 것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 적도, 그들의 활동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즉 자신들이 왜 저평가를 받아왔는지에 관한 인식이 전혀 없다. 또 이들은 운동권 출신이지만 뚜렷한 이념을 지향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의적으로 옳고 그름은 뒷전으로 밀어 두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무조건 흠집 내 무너뜨리려는 행태를 보여왔다. 지금껏 정치양극화를 주도하며 한국 정치를 퇴행시킨 세력의 대표주자가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집단인데, 그들과 행동양식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 97세대가 86세대가 노무현 대통령을 통로로 정계에 진출했듯 이재명 대표를 통로로 정계에 진출하려는 모양이다. 민주당과 연대연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민주당 당적을 갖겠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이 더 나쁜 형태로 민주당에 또다시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강한 우려가 든다. 

사회운동은 최소한 한국 정치의 퇴행을 막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 시작은 한국 정치의 퇴행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과 단호하게 단절하는 것이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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