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총선 이후 정국 전망

누가 극단적 포퓰리즘을 견제할 것인가

임필수 | 정책교육실장

여당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대패한 후,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참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했다. (총선 결과는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사회운동포커스》로 발표한 「4·10 총선평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진을 예고하는가」(4월 18일)를 보라.)

총선 직후 《한겨레》 사설, ‘국민은 윤 대통령을 심판했다’(4월 11일)는 총선 결과가 “집권 뒤 2년간 오만과 독선, 불통과 퇴행의 정치로 일관한 성적표”라고 규정했다. 보수 측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예컨대 《동아일보》은 ‘유례없는 여 참패… 국민은 윤 대통령을 매섭게 질책했다’(4월 11일)에서 총선 결과를 “불통과 독선 끝내고 소통과 협치하라는 명령”이라고 규정했다. 4월 16일,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총선 민의와 정치 현실 제대로 읽고 있나’라는 사설을 통해 총선 후 엿새나 고심했다고 하는데도 실망스러웠다면서 “당장 절실한 소통과 협치에 대해 그 어떤 구체적인 계획조차 제시하지 않았다”고 거듭 비판했다. 

《한겨레》나 《동아일보》 모두 윤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규정할 때 불통과 독선이라는 용어를 동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그럴까. 《한겨레》나 《동아일보》 각각이 그 용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필자가 보기에 불통과 독선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소통과 협치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고, 따라서 우리가 그만큼 세심하게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총선 이후 정국을 전망하기 위해서 이 문제로부터 시작해보자. 
 
 

1. 윤석열 행정부의 ‘불통’과 ‘독선’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1) 불통: 대의제와 설명 책임

윤 대통령의 ‘불통’은 언론과의 관계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MBC 기자와 청와대 홍보비서관 사이의 언쟁을 계기로 2022년 11월 21일부터 출근길 기자문답(도어스테핑)을 중단했고, 그 후로는 단 한 차례의 공개 기자회견도 없었다. 오죽하면 올해 초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열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관심을 모으는 뉴스거리가 되었겠는가. 

《서울신문》의 ‘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할까… 역대 대통령은 몇 번 했나’(2024년 1월 12일)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을 제외하고) 신년 기자회견을 연 횟수는 문재인 4회, 박근혜 3회, 이명박 1회(당선인 시절), 노무현 5회, 김대중 3회, 김영삼 3회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전까지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연 것을 제외하곤 단 한 차례도 신년 기자회견을 연 적이 없으므로 그때까지 0회를 기록한 셈이었다. 결국 2024년에도 신년 기자회견은 없었고, KBS 특별대담(2월 7일)으로 대체되었다. 

KBS 대담에서 윤 대통령은 “저녁까지 [도어스테핑에서 본인이 한 말로] 기사가 덮이다 보니 각 부처 메시지가 전달 안 되어서”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어스테핑이나 언론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은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이 대통령실 직원의 업무 공간인 여민관이나 기자가 상주하는 춘추관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통령 집무실이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여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초기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보안의 어려움을 이유로 포기했다.) 그런데 도어스테핑이 중단된 후, 대통령 출입로와 기자실 사이에 다시 칸막이가 설치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필요성, 정당성의 근거 중 큰 축이 무너진다. 

대통령이 기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계속 피한다면, 그 이유가 결국은 답하기 곤란한 질문 때문이 아닌가, 나아가 답하기 곤란한 이유는 실제로 무언가 떳떳하지 못하거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이나, 해병대 채 상병 순직 관련 외압 의혹, 이준석-김기현-한동훈으로 이어지는 당 지도부와의 반복된 갈등과 같은 ‘뜨거운’ 문제를 두고 언론과 직접 대면하는 일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 떳떳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 말이다. 

사실 대의제에서는 선출된 대표와 유권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선출된 대표는 유권자의 의사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정치적 결정을 내릴 권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여론을 매개로 공중의 의견을 선출된 대표에게 전달하고 압력을 가함으로써 이러한 간극을 보완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여론의 자유’가 대의제가 민주주의적 성격을 띠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여론의 자유가 작동하려면 유권자가 정치적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선출된 대표는 유권자의 판단에 필요한 정치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한다면 그런 판단을 내린 과정과 이유를 유권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직자의 설명책임(accountability)이다. 따라서 선출된 공직자의 설명책임이란 ‘하면 좋은 것이지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만약 공직자가 설명책임을 다 하지 못한다면, 유권자가 공직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음 방법은 다음 선거에서 그를 선출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볼 때 선출직의 임기가 반드시 한정되어야 할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즉 종신직을 선출할 수도 있다), 종신직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의제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려면 선출직의 임기가 반드시 제한적이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러야만 한다.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라면, 대통령의 임기 중에 있는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된다. 미국의 경우,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고, 임기가 6년인 상원의원도 2년마다 1/3씩 재선출하므로, 대통령의 4년 임기 가운데에 반드시 하원 선거와 상원 1/3의 선거가 있다. 이는 대통령 중간평가라는 성격을 띤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는 대통령이 여론과의 상호작용을 회피했다, 즉 설명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불통’이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불통은 정치인 개인에 대한 정치적 신뢰성을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독선: 대의제와 협치 

서구에서 정당 간에, 예컨대 보수당/자유당과 노동당/사민당 사이의 대립선이 가장 분명했던 시대는, 오히려 정치적 타협이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사활적 조건이 되었던 때이기도 했다는 역설이 있다. 그때에는 정당뿐만 아니라 언론사나 이러저러한 사회단체까지 정당 간 분할선을 따라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면 타협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양당제에서 (타협이 없는) 정치양극화는 곧 내전’이라는 말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정당 민주주의에서 협치란 단지 권장할 만한 미덕 수준이 아니라 사활적 조건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바는, 이러한 타협 또는 협력이 ‘극단주의’ 세력을 가능한 한 주변화한다는 합의를 동시에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파든 좌파든 간에 극단주의 세력(각각 극우, 극좌)과 손을 잡는 대신에, 중도 지향성 있는 세력 간에 협력을 추구함으로써, 극단주의 세력을 가능한 주변화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극단적 포퓰리즘이 창궐하고 있는 시대에, 극단적 포퓰리즘을 주변화한다는 합의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극단적 포퓰리즘 세력이 양당 외부의 신흥정당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견제하기 위한 협력방식을 여러모로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극단적 포퓰리즘 세력이 양당 외부의 소수정당이 아니라 양당 체계의 한 축을 이루는 거대 정당에서 지배적 세력으로 부상한다면,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는 매우 곤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무리 위험천만한 극단적 포퓰리즘 세력이더라도, 양당 체계의 한 축인 만큼 타협을 모색해야 하는가? 반대로 그들을 주변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거대한 세력을 주변화할 수단이나, 함께 할 세력이 존재하긴 하는가? 

이런 경우라면, 타협할 수도 없고, 주변화하기도 어렵다는 진퇴양난의 문제가 떠오른다. 필자가 보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공화당이나, 이재명 대표의 한국 민주당이 정확히 바로 그런 사례일 것이다. 참으로 곤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우리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현직 대통령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서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바이든 지지를 선언한, 이른바 ‘바이든 리퍼블리컨’(바이든 후보 지지 공화당원)일 듯하다. 대표적으로, 대선 전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은 《USA 투데이》에 대통령의 품격을 강조하며 “바이든은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모든 미국인을 하나로 모아 도전을 극복할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일에 자랑스러운 공화당원의 표를 받을 것”이라고 썼다. 공화당 소속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도 “평생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바이든에게 투표했다”며 “당을 넘어 나라를 위해 투표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당시 바이든 지지를 선언한 공화당 유력인사는 대략 750명으로 조지 H. W. 부시(아버지), 조지 W. 부시(아들) 행정부의 장관급 인사나 전직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과 전·현직 상·하원 의원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당시 트럼프 후보와 바이든 후보의 승패를 가를 격전지에도 영향을 미쳐 바이든 후보의 당선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정부가 독선적이었고 협치에 무능했다는 일부 언론사의 평가는 그래도 민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그 의미를 반드시 이재명 대표 개인을 국정 파트너로 끌어안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내에도 이재명 대표의 극단적 포퓰리즘이나 강력한 사당화(私黨化) 경향을 우려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존재할 수 있고, 그들과 직간접적 협력을 모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체포동의안 국회투표를 보더라도 민주당 의원 중에도 이재명 대표를 견제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의원들의 반란표가 얼마간 존재했고, 민주당 일반 지지층 중에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선거 전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파동도 사실 총선 훨씬 전부터 예상되던 바였고, 실제로 벌어졌을 때 나타난 파장도 매우 컸다. 또한 민주당의 여러 정책적 요구 중에는 이재명 대표가 주도하는 극단적 포퓰리즘 정책 외에도 수용 또는 타협이 가능한 정책이 존재했다. (필자는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극단적 포퓰리즘을 견제하기 위한 협력의 경로를 그려보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렇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정치적 신뢰 하락, 지지율 부진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간에 이재명 대표의 포퓰리즘을 견제하려는 세력과의 협력을 가능케 할 흡입력, 구심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바이든 후보가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트럼프를 심각하게 경계하는 공화당원이더라도 바이든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2.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총선 때 무엇을 했나? 

 

1) 이재명 대표가 주도하는 포퓰리즘의 위험

향후 정국을 조망하기 위해선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총선 때 무엇을 했느냐도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현 정세와 사회운동의 상황에 대한 인식」(《계간 사회진보연대》, 2023년 겨울호)이라는 글에서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보이는 포퓰리즘의 핵심적 특징으로 △ 반(反)경제학, △ 외교사안의 정치화, △ 법치주의 파괴(사법방해)를 꼽았다. 이러한 틀로 총선 시기 민주당의 행보를 살펴보자.  

첫째로 주목할 만한 행보는 ‘민생회복지원금’ 제안이다. 이재명 대표는 4·10 총선을 17일 앞둔 3월 24일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전 국민 일 인당 25만 원, 4인 가구 평균 100만 원씩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취약계층은 일 인당 10만 원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680조 원 연간 예산에 비하면 푼돈에 가까운 13조 원으로 가구당 100만 원을 줘서 동네에 장 보러 다니면 돈이 도는 거고 이게 경제 활성화”라며 정부·여당을 향해 “아이 무식한 양반들아, 이렇게 하면 된다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2020년 총선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 표를 얻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인식에 따라,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 이재명 대표의 ‘쎄쎄’ 발언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월 20일, 그는 중국에도 “쎄쎄(감사합니다), 대만에도 쎄쎄 하면 되지. 왜 자꾸 여기저기 찝쩍거리고 양안문제 왜 우리가 개입하나”, “대만 애들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있나.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또 “러시아 우크라이나(전쟁)에 우리가 왜 끼느냐”라고도 말했다. 

또 그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을 겨냥하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인재 양성의 대표적 케이스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자주독립 국가 국회의원을 해서야 되겠냐”고 말했고, 나아가 “이번 총선은 완벽한 신(新)한일전”이라며 “지금 이 나라에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 잔재가 너무 많다. 이번 총선에서 국가 정체성이 의심되는 후보들은 다 떨어뜨리자”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재명 대표는 친중·친러시아, 반일적 입장으로 국민의힘과 정치적 대립선을 분명히 세우고자 했다.
 
셋째로, 4월 4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는 자신의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에서 “김성태 등의 회유로 진술을 조작했다”며 이른바 ‘음주회유’를 내세웠다. (그는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다가 지난해 2023년 6월경 검찰 피의자신문에서 일부 혐의를 인정하며 “대북송금을 이재명 도지사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재차 진술 내용을 번복하며 “검찰과 김성태 등의 회유가 있었다”고 한 바 있다.) 그러더니 선거가 끝난 후 4월 25일에는 수사 검사와 쌍방울 직원을 형집행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음주가 이뤄졌다고 이화영 씨가 주장하는 영상녹화실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벽에 큰 창이 있기 때문에, 음주가 사실이었다면 이화영 씨를 따라다니는 교도관이 훤히 볼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변론해야 할 변호사가 변론 종결 이후 수사·공판 검사에 대한 무고성 고발을 했다”며, 한 마디로 “사법시스템을 공격하고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화영 씨 재판은 지금까지도 여러 희한한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이화영 씨가 대북송금을 이재명 도지사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을 한 후, 이화영 씨 부인이 변호사를 해임하려 하자 이화영 씨는 해임이 내 뜻이 아니라고 하고, 부인은 이화영 씨가 ‘정신차려야 한다’고 받아치면서, 재판 도중 ‘부부싸움’을 벌인 일이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에 이화영 측이 검사를 고발한 건은 또 한 번의 어이없는 일로 치부할 수 없다. 총선에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자 이재명 대표를 비호하는 피의자가 검찰을 고발한 게 사태의 핵심이므로, 만약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권력을 쥐면 사법시스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미리 맛보여주는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대표적 사례만 보더라도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앞으로 △반(反)경제학, △외교사안의 정치화, △법치주의 파괴(사법방해)를 더욱더 강력하게 밀고 갈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다. 
 
 

2) 친민주당 언론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비판했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더 다뤄보겠다. 이번 선거가 현직자, 즉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신뢰성 문제가 유권자의 투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고 평가한다면, 유권자는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의 정책에 대해서도 동의를 표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예컨대 유권자가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이라든지,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국-대만 양안 문제에 관한 민주당식 입장을 지지하고, 검찰의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도 봐야 할까? 

이러한 의문에 관해서는 필자가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민주당과 그 위성정당, 그리고 조국혁신당에 투표한 많은 유권자 중 일부는 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을 것이고, 또 다른 일부는 민주당 정책에 대한 지지보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더 중요한 투표 결정 요인이었을 것이지만, 이를 수량적으로 분석하거나 단정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민주당에 가까운 언론사들이 민주당에 대해서 보인 태도가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었는지 문제를 따져보겠다. 2월 말 민주당의 공천파동이 일단 마무리된 후, 3월부터 총선까지 기간에 《한겨레》, 《경향신문》이 경제, 외교, 사법 이슈를 다룬 사설을 살펴보겠다. 

첫째로 총선시기 경제 이슈와 관련된 사설을 보면, 우선 《한겨레》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주도한 민생토론회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감세정책 위선 드러낸 ‘청년도약 계좌’ 고소득층 확대”(3월 6일), “전략지역 돌며 공약 남발, 대통령이 선대위원장인가”(3월 7일), “이젠 한국형 아우토반까지, ‘안 되면 말고’ 민생토론회”(3월 14일) “총선 앞 막 쏟아낸 감세 공약, 이제 어찌 감당할 건가”(3월 28일) 등이다. 《경향신문》도 이 문제를 대동소이한 기조로 다뤘다. “올해도 국세 감세 77조, 총선 ‘표퓰리즘 공약들’ 어찌할 건가”(3월 26일). 윤 대통령이 주도한 민생토론회가 총선용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이나 ‘부자감세’ 약속을 남발했다, 한 마디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은 분명히도 정당하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총선 공약, 특히나 이재명 대표의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서는 사설에서 아예 다루지 않고,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은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둘째로 외교 이슈를 보면, 《한겨레》는 이재명 대표의 ‘쎄쎄’ 발언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으나, “미-일 동맹 ‘업그레이드’, 한반도 악영향 주시해야”(3월 25일) “윤석열 대통령, 중국과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잡아야”(4월 7일)라는 식으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식 국제정세 인식을 옹호했다. 《한겨레》는 “한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한 문제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헝클어져 그 피해를 홀로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발생한다면, 그 여파는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친러·친중노선이 마치 ‘균형외교’인 듯 포장하고자 했다. 

《경향신문》은 “대만 문제로 한·중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 문제이다”(3월 26일)에서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직접 다루는데,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즉 “그의 발언이 중국에 대한 굴종적 태도라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의도는 한국이 양안 관계와 관련해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완전히 기우는 것이 국익에 얼마나 이로운가 하는 문제 제기로 보인다.” 또한 “무력화되는 대북제재, 윤석열 정부 책임도 크다”(3월 31일)라는 글에서는 “정부는 대북 압박만으론 비핵화를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북핵 대응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냉각 상태인 러시아·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친러·친중 노선이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사회진보연대가 발행한 소책자,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를 보라.) 

셋째로,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재판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외압 의혹이나, 이종섭 전 국방장관 호주대사 임명과 관련된 문제가 두 신문사의 주요 초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보이는 문제도 첫 번째 경제이슈에서 드러나는 것과 비슷하다. 즉 그 의혹들과 관련된 윤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정당하나, 이재명 대표의 재판 관련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종합해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같이 친민주당 언론은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핵심사안들을 전혀 다루지 않거나,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특히나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이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면, 보수언론의 편파성을 비판할 토대가 사라질 것이다. 필자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행동방식도 이와 유사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언론이나 민주당 지지층 전반이 여전히도 이재명 대표의 포퓰리즘에 대한 경각심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포함해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민주당의 공천파동(비명횡사, 친명횡재)를 보며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며 점잖게 우려를 표명하는 일은 있어도,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는 짐짓 모르는 체하거나 에둘러 옹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진보세력’이 포퓰리즘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는 게 사회운동이 위기에 빠져있다는 핵심적 징표라고 판단한다. 특히나 국제정세에 관한 인식 차이는 첨예한 문제로, 우리가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3. 총선 이후 정국 전망 

 

1)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다시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가 

총선 패배 후, 특히나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스타일’, 즉 불통과 독선이 참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한 후, 윤 대통령과 여당, 검찰은 몇 가지 변화를 보였다. 첫째로, 의대 증원 문제에 관해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4월 19일 한덕수 총리는 2025학년도 신입생에 한해, 대학이 증원 규모의 50~100%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정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둘째로, 4월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 처음으로 ‘영수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협치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냐는 문제는 이미 앞에서 다뤘다. 협치를 위한 더 바람직한 길로 가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물로 봐야 할 듯하다. 

셋째로, 윤석열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도 민심청취를 근거로 민정수석실 부활을 내비쳤고, 5월 7일 새 민정수석비서관을 임명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부활이 바람직한 개혁방향이냐는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었다. 검찰을 포함하여 사정기관에 대한 대통령실의 장악력을 다시 높이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넷째로, 5월 2일 여야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독소조항’으로 지목한 불송치·수사중지 사건 등에 대한 조사 권한과 압수수색영장 청구 의뢰권을 삭제하는 데 민주당도 합의했다. 이태원특별법은 영수회담에서 다뤘던 사안으로,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영수회담으로 “협치와 정치의 복원이 시작됐다”, “이태원특별법 합의는 그 구체적인 첫 성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섯째로, 5월 2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 관해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여섯째로, 윤 대통령은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채 상병 사건에 관해서는 “경찰과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고 국민이 ‘봐주기 의혹이 있고 납득이 안 된다’고 하면 그때는 내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본인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나 이종섭 전 장관을 임명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일곱째로,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단됐던 민생토론회를 5월 14일 재개하면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노동법원 신설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매일노동뉴스》의 기사, “노동약자 지원법 약속한 윤 대통령: 사용자 없는 노동자라면서 ‘노동자성’은 인정 안 해”(5월 16일)는 “윤석열 대통령 발표는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기존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다시 드러내면서 진정성에 의심을 보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을 거부한 사실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윤 정부와 여당의 행보에 관해 다시금 우려나 의심을 품게 하는 일이 이어졌다. 첫째로, 5월 13일 검찰의 검사장급 인사가 단행되었는데,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장과 1차장검사, 4차장검사가 한꺼번에 교체됐다. 김 여사 수사를 막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진보, 보수언론 가릴 것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이러한 인사조치가 민정수석실 신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이어졌다. 

둘째로, 4·10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하는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의 공천 평가 회의가 5월 17일에 열리기로 했는데, 공천 업무를 담당했던 전 외부 공관위원 6명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싫다”며 모두 불참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총선 참패의 주된 원인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돌리느냐,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에 돌리느냐가 핵심쟁점인 듯하다. 따라서 이는 당 내부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보인다. 즉, 선거 시기에 불거졌던 ‘윤-한 갈등’이 선거 이후로도 이어진다는 신호인 셈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총선 참패의 원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로, 이를 두고 여당 내 논란이 점점 더 커진다면, 국민이 보기엔 코미디일 것이다. 

셋째로, 청와대 인사개편이 선거 때 낙선하거나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는 ‘회전문’이라 쇄신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비판이 나왔던 가운데, 5월 23일, 시민사회수석실 제3비서관(국민공감)에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문고리 3인방’의 한 명으로 불렸던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발탁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 후, 2022년 말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되었다.) 이는 도무지 의도나 메시지를 알 수 없는 인사였다. 

넷째로 5월 21일, 윤 대통령은 채상병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고, 특검법은 5월 28일 국회에서 재의결에 필요한 196명 찬성을 넘지 못해 폐기되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그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당의 국회 재의결 부결로는 쏟아지는 의혹과 불신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최소한 총선 결과로도 확인되었다. 

다섯째로,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5월 28일에도 국민의힘은 연금개혁에 관해 22대 국회로 넘겨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최종 무산되었다. 5월 23일 이후로 민주당이 양보안을 제시했는데, 내는 돈(보험료율)을 소득의 13%로 인상하고,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44% 또는 45%로 인상하자는 것이었다. 내는 돈 13%는 양당이 이미 합의했고, 받는 돈은 국민의힘도 44%로 절충안을 제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양당 합의가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측이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다음 국회로 넘기자는 입장을 고집하여 합의가 무산됐다. 여전히 민주당이 다수인 차기 국회에서 국민의힘 자신의 시각에서 볼 때 더 나은 합의를 끌어 낼 만한 그럴듯한 복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역시 의도나 메시지를 도무지 알기 어렵다. 

종합해보면, 총선 참패 직후 윤 대통령이나 여당, 검찰이 어쨌든 간에 얼마간 변화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국민의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기 어려운 행동을 이어가거나(채 상병 특검 거부와 무대책, 총선백서특위의 내부 갈등), 변화를 스스로 뒤집는 듯 보이는 조치를 취하거나(민정수석실 신설과 검찰인사), 의도나 메시지를 알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일(정호성 발탁, 연금개혁 불발)이 연거푸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미 총선 시기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던 채 상병 사망 사건이나 김건희 여사 사건, 아니면 제3의 어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서 정국을 폭발시키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2) 민주당: ‘당원 민주주의’를 가장한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의 강화   

 
(1) 국회의장 후보 우원식 의원 당선 파장 
총선 이후 민주당의 행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우원식 의원이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과 그 전후에 벌어진 일들일 것이다. 허를 찔린 이재명계 의원들은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17일 전날 국회 회의장에서는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내부 경선이 진행됐다. 이때 우원식 의원은 추미애 국회의원 당선자를 89표 대 80표로, 9표 차이로 이겼다. 결과가 발표되자 회의장은 일순간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하는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경선 전 우원식 의원도 5월 15일 유튜브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재명 대표가 “‘형님이 딱 적격이다,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며 자기도 친명이라고 내세우고자 했으나, 사실 ‘명심’은 추미애 당선자 쪽이라는 게 다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예상을 깨는 결과였다. 

더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우원식 의원의 승리가 낳은 파장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처받은 당원과 지지자들께 미안하며 당원과 지지자 분들을 위로한다”라고 썼다. 당내 경선에서 누가 당선되면,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인가. 낙선된 후보의 지지자는 상처 입은 피해자인가. 정청래 의원이 꺼내든 ‘상처’라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연히 강성 당원들이 격렬한 의사표시에 나섰는데, 당원 게시판에는 “민주당 안에 잔존 수박(비이재명계)이 많다는 증거”라거나, “탈당하고 조국혁신당에 입당하겠다”며 탈당 신청서를 인증하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이재명 대표 온라인 팬카페인 ‘재명이네마을’에 올라온 글도 우원식 의원이 활동하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등을 겨냥해 “민평련과 친문, 586 등 계파 문제가 많다. 이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글은 민평련-친문-586, 즉 1970~80년대 학번 이후 세대, 즉 1990년대 한총련 세대가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 문제는 뒤에서 ‘더민주혁신회의’를 다루며 다시 언급한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장 경선 후 하루 동안 탈당을 신청한 건수가 수천 명이고, 5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2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2023년 9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 하루 동안 탈당을 신청한 건수가 500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시간이 지난 후 탈당 의사를 철회했다고 한다. 강성 지지층이 이러한 행동패턴으로 당을 ‘길들이려’ 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5월 23일 부산에서 열린 ‘당원주권시대 더불어민주당 부산·울산·경남 콘퍼런스’에서 “우원식 후보를 찍은 분들이 여러분의 의사에 반하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떠날 결심을 한 오랜 동지들께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올렸는데, “당원 동지 여러분, 포기하고 탈당할 것이 아니라 당의 주인으로서 회초리를 들어 민주주의를 위한 여러분의 도구로 바꿔달라”고 적었다. 우원식 후보를 찍은 자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당원들의 회초리를 맞아야 하는 사람인 건 맞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5월 22~23일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은 “당원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한다”는 결의 내용이 담겼다. 워크숍에서 김민석 의원은 지금까지 의원들이 뽑아온 원내대표나 국회의장 후보 선거에 당원 표심을 10% 반영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장경태 의원과 양문석 당선자는 각각 20%, 5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29일 장경태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 태스크포스(TF) 단장은 국회의장·원내대표 경선에 당원투표를 20%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방선거 공천권을 쥐고 있는 시·도당 위원장 선출 때도 권리당원 표의 반영 비율을 현재보다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는 《한겨레》도 우려를 표현했다. 사설 ‘민주당 국회의장 선출에 당원투표 반영, 적절치 않다’(5월 30일)는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 후보 선거까지 ‘당심’을 반영하겠다는 건 헌법이 정한 대의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처사”며, “적극적 지지층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자칫 보편적 민심과 괴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 문제를 얼마나 강하게 우려하는지는 얼마나 집요하게 이 문제를 앞으로도 파고드느냐 여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2)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원내 입성 
한편, 이러한 흐름의 중핵에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혁신회의)가 자리 잡고 있다. 혁신회의는 2023년 6월 공식 출범한 조직으로 당시에는 친명계 원외조직이었으나, 이번 4·10 총선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소속 인사가 현역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아 원내에 입성했다. 총 50명이 출마해 31명이 당선되어, 당내 최대계파로 급부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실 그들은 출범 직후부터 공천 룰을 아예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19일, 10대 공천혁신안을 발표했는데, 공천 룰을 바꿔야 하는 이유는 다른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바로 의원 물갈이라고, 즉 자신들이 대신 그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아예 대놓고 주장했다. 그들은 “현역 의원 중 적어도 50%, 3선 이상 다선의원은 4분의 3 이상, 즉 39명 중 30명은 물갈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0대 혁신안 중 첫째는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국회의원 공천 제한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동일 지역구 3선 이상이면 경선 득표율에서 50%를 감산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공천심사 과정에서 ‘공직자 평가’ 비율을 높이고, 경선에서도 이를 반영해 감산하자는 제안이다. 셋째는 ‘공직자 평가’를 수행할 때, ‘당 정체성’ 항목을 추가하자는 제안이다. 즉, 당내 정치인이 ‘소신’이라며 당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자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원외에 있는 본인들에게 유리하도록 경선 규칙을 바꾸자, 특히나 이재명 대표 체제에 반항하는 듯한 기미가 있는 의원들을 몰아내고 본인들이 그 자리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반당원 동원력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7일 민주당 당무위원회에서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대비 권리당원의 투표 비중을 높이기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는데(기존 대의원 65 대 권리당원 1에서, 대의원 20대 권리당원 1로 권리당원 비중 상향), 혁신회의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의원 투표 비율을 완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인 1표가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가치”며 대의원 표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제도가 “민주정당에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말한 3선 이상 득표율 감산이나, 공직자 평가 결과를 반영한 득표율 감산도 결과적으로 1인 1표에 위배되는데, 이는 어찌 합리화할 것인가. 그들의 평가기준은 오직 자신들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일 뿐이다.) 

한편 더민주혁신회의가 공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태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86 전대협 대 97 한총련 세대 간 전면전’이라는 식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첫 번째 계기는 정의찬 당 대표 특보가 공천 적격으로 판정을 받았다가 1997년 남총련 의장(조선대 총학생회장) 시절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전력이 다시 문제로 불거져 부적격으로 번복된 사건이었다. 그러자 혁신회의 측은 “정치 신인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86세대 “현역 의원은 프리패스”라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뇌물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고가의 양복을 받은 것을 인정한 기동민 의원이나 지방의원 공천 장사를 한 의혹이 있는 송갑석 의원은 아무런 제재 없이 검증위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번째 계기는 올해 1월 19일 3선 김민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혁신회의 측이 “지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장관급 이상을 역임한 중진급 인사들의 재출마를 당내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과감하게 선택해주길 정중히 요청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일이었다. 이 역시 임종석, 이인영, 전해철로 대표되는 86세대의 퇴진을 주장한 셈이었다. 

혁신회의는 총선 후 더욱 강력해진 자신의 위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을 극단적으로 강경한 분위기로 끌고 가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혁신회의는 자신이 개최한 ‘총선평가 및 조직전망 간담회’에 국회의장 후보 모두를 불러들였는데, 이때 후보들이 각각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은 “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의 효능감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고, 우원식 의원도 “국회의장은 국회의 사회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법으로 국회의장이 당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이들의 발언이 국회의장 후보의 발언으로서 적합한지 의문이다. 

그런데 다른 후보는 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추미애 당선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며 “거국 중립 내각을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당 대표로서 거부하고 탄핵을 준비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절대 민심과 동떨어진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즉 상황이 도래한다면 현 대통령 탄핵을 준비하겠다는 입장 표명이었다. 조정식 의원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고, 필요하다면 탄핵소추에 필요한 의석도 200석에서 180석으로 낮추는 개헌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그 역시 현직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다. 

국회의장 후보자들이 원래 생각과 다른 말을 한 것은 아니겠으나, 혁신회의가 개최한 간담회 자리였기 때문에, 청중의 구미에 맞는 말을 더 세게 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 함의는 무엇인가. 혁신회의가 당내에 극단적 강경 흐름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는 뜻이다. 국회의장 후보조차 그들의 눈치를 보도록 말이다. 원외조직인 혁신회의가 당을 장악해 들어가는 과정의 진상을 아직 확실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들이 과거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개인의 수족처럼 움직였던 원외 자유당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옛날처럼 유니폼을 입거나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아니라, SNS와 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 정치깡패들처럼 각목을 들고 상대방을 습격하는 게 아니라, 누가누가 ‘수박’이라며 갖은 모욕과 괴롭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욕과 괴롭힘도 일종의 ‘정치폭력’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선 물리적 폭력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들의 내밀한 움직임에 대한 르포도 앞으로 있으리라 예상한다. 
 
 
 

3) 정치양극화와 정치폭력화를 누가 제어할 것인가

훗날의 역사가들이 2024년 현시기 한국의 정치상황을 평가한다면, 매우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묘사할 듯하다. 한편으로는 집권세력이 자신이 말한 약속이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역행함으로써 신뢰를 상실하고 표류하는 반면, 야권세력은 포퓰리즘적이고 극단주의적인 집단이 원외로부터 힘을 키워 원내를 장악해 들어가는 시기로 말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후대 역사가가 아무도 이를 제어하려 시도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을 우리는 막아야 한다.  

‘양당제에서 양극화는 준내전’이란 말이 점점 더 실감 날 정도로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양극화는 날로 도를 더하고 있다. 횡행하는 정치인에 대한 사적 폭력(물리적 폭력과 상징적 폭력을 모두 포함한다)은 정치양극화가 결국 ‘정치의 폭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던지기 때문이다. 폭력은 상호적이므로, 어느 누가 시작했든 상호 반복되면서 증폭된다.

앞서 소개한 ‘바이든 리퍼블리컨’의 사례를 생각해 본다면, 현 상황을 바꾸려면, 여권은 여권 내부에서, 야권은 야권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져야 하고, 야권에서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를 강력히 경계하는 흐름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양극화를 이끄는 힘을 제어하고, ‘소통’과 ‘협치’를 모색하는 세력들이 서로 힘을 보탤 수 있는 국면도 찾아올 수 있다. 

덧붙이자면,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세력도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 국면에서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세력이 ‘정권심판’이나 ‘야권연대’ 프레임에 찬동하거나 최소한 그에 안주하려 하는 것은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나 더민주혁신회의의 포퓰리즘, 극단주의적 흐름을 경계하기는커녕 그에 몸을 싣겠다는 뜻과 같다. 우려스럽게도,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정권심판에 나서는 게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차별화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극단주의 포퓰리즘 세력의 권력장악을 위한 고속도로를 내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세력이 오히려 내걸어야 할 구호는 “정당, 정파를 초월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극단적 포퓰리즘의 발호를 막고, 인권과 법치, 헌정을 지키는 것이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세력의 선차적 과제다. ●
 
 
 
주제어
정치
태그